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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7번째 총리 기다리는 고양이…다우닝가 터줏대감

유영규 기자

입력 : 2026.07.03 07:30


▲ 다우닝가 10번지 앞 래리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가 사의를 표명할 거란 관측이 한껏 높아진 6월 22일 오전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취재진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한 가운데 나이 든 고양이 한 마리가 무심한 표정으로 검은색 문 앞에 앉았습니다.

내각 수석 쥐잡이(Chief Mouser to the Cabinet Office)란 어엿한 직함과 소셜미디어 공식 계정까지 보유한 다우닝가 터줏대감 고양이 래리입니다.

스타머 총리는 결국 이날 사임 계획을 발표했고, 래리는 '총리 7명을 맞이하게 된 고양이', '총리 6명보다 오래 살아남은 최장수 관리'란 새로운 별명을 얻었습니다.

래리는 2007년 길고양이로 태어나 동물보호소에서 지내던 중 보수당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 재임기인 2011년 총리 관저로 입양되는 '묘생역전'을 했습니다.

이후 테리사 메이, 보리스 존슨, 리즈 트러스, 리시 수낵 등 보수당 총리 4명을 더 맞이했고 2024년 7월 노동당의 정권교체까지 목격했습니다.

스타머 총리를 맞이한 그해, 래리가 고양이로서 상당한 고령인 17세였기 때문에 총리실 직원들이 '부고 계획'을 짜뒀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당시 영국 언론은 이 계획이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서거에 대비한 정부 종합대응 계획의 코드명 '런던브리지 작전'에 빗대어 '래리 브리지'로 불린다고 전했습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나 래리는 19세에도 건재한 모습으로 영국민에게 기쁨과 안도감을 주고 있고, 스타머 총리는 다우닝가 생활에 마침표를 찍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래리와 스타머 총리의 운명을 대비해 보여주는 언론 보도나 소셜미디어 게시물에는 씁쓸함이 묻어납니다.

한때 안정적인 체제를 자랑했던 영국 정치의 혼란스러운 현실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10년간 나라를 이끈 정상 수로는 영국이 주요 7개국(G7) 중 가장 많습니다.

이탈리아와 일본이 각 5명, 미국과 독일이 각 3명, 프랑스와 캐나다가 각 2명입니다.

스타머 총리의 고속 추락은 경제 대실책으로 49일 만에 사임해 '양배추 총리'라는 별명을 얻은 트러스, 코로나19 파티 스캔들의 불명예를 안고 물러난 존슨 전 총리와는 사정이 좀 다릅니다.

총선에서 650석 중 412석을 휩쓰는 압승을 안긴 지도자가 2년 만에 고개를 떨구며 사임을 발표하는 대반전을 맞았는데, 뚜렷한 사유 딱 하나를 꼽기가 어렵습니다.

굳이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당내 권위를 잃었다'는 것인데 이 역시 원인이라기보단 결과입니다.

당내 통제력을 잃은 여러 사유를 다시 찾아 나열해야 합니다.

복지 삭감 정책을 발표했다가 되살리기를 반복한 우왕좌왕 국정 운영, 내각 주요 인사들의 옷 선물 수령, 수 그레이 총리 비서실장의 문고리 권력,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틴과 친했던 피터 맨덜슨 주미 대사 인사 등입니다.

지지율이 수직 낙하하며 당 내부에서 불만이 쌓이다가 지방선거 참패로 폭발하며 통제 불능이 됐다는 다소 뻔한 정치 서사에, 영국에선 스타머 총리 한 명이 실패한 원인보다는 '왜 자꾸 총리가 바뀔까'에 주목하는 분위기입니다.

유럽에선 총리 교체가 잦은 국가로 흔히 이탈리아를 꼽곤 했는데 "그 이탈리아의 조르자 멜로니 총리가 이제 4번째 영국 총리를 보게 됐다"는 자조부터 "영국은 이제 통치 불가능한 나라가 됐나"라는 한탄까지 나옵니다.

원인도 다양하게 제시됩니다.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 대격변을 전후로 한 사회 분열, 2007∼2008년 세계 금융위기에서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경제, 총리들의 잇단 실책과 대중의 깊은 정치 불신, 다우닝가 10번지 입성 후 끊어지는 평의원들과의 소통이 지목됩니다.

소셜미디어 발달에 설왕설래의 수준이나 규모가 이전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배경도 있습니다.

수석 쥐잡이 래리가 맞이할 다음 다우닝가 10번지 주인으로는 '북부의 왕' 그레이터 맨체스터 시장 출신 앤디 버넘 하원의원이 유력합니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이번 의회 임기인 2029년 여름까지 3년입니다.

(사진=AP,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