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남 서해안 염전
"잊을 만하면 또 일이 터지네요.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인권 침해 사건은 못 막아요."
지난 24일 전남 서해안 지역의 한 염전은 적막하다 못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맴돌았습니다.
1주일 전 전남 영광 한 소규모 염전에서 업주와 종사자들이 노동자 3명을 수년간 폭행·감금하며 노동 착취를 이어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염전이 밀집한 이곳도 무겁게 가라앉은 모습이었습니다.
내리쬐는 햇볕 대신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은 날씨 탓에 수십만㎡ 규모 염전 결정지와 그 주변에는 사람의 그림자조차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평소였으면 소금을 긁어모으거나 물길을 정비하는 노동자들로 분주했겠지만, 이날은 빠른 걸음으로 염전 결정지를 벗어나는 소수의 노동자만 드문드문 눈에 띄었습니다.

염전 결정지를 뒤로하고 노동자들이 수 개월간 먹고 자고 이용한다는 쉼터·기숙사로 들어가보면 열악한 환경이 단번에 눈으로 들어옵니다.
자물쇠가 채워지지 않은 철제문을 열자마자 눅눅한 곰팡냄새가 코끝을 찔렀고, 음식물이 치워지지 않은 싱크대와 그 옆 물컵, 냉장고에는 손길이 닿은 지 오래된 듯 먼지만 수북이 쌓여 있었습니다.
컨테이너 형태에 이부자리 정도만 있는 쉼터는 바닥에 장판 대신 시멘트 위로 페인트를 덧칠한 상태여서 울퉁불퉁했고, 벽지 곳곳에도 습기를 머금은 흔적이 엿보였습니다.
그나마 쉼터 한쪽에 놓인 흔들의자만 사람 손때로 손잡이 부위가 하얗게 닳아있었습니다.
염전에서 일한 지 4년이 지났다는 한 노동자는 "예전보다 생활 공간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다른 근무 현장의 숙소와 비교하면 부족한 부분이 많다"며 "날씨 영향을 많이 받는 염업 특성상 결정지 주변에서 생활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기숙사 밖으로 펼쳐진 결정지를 가리키던 그는 "저 염전 대부분은 섬이나 도심 변두리에 있어 퇴근해도 외부로 나가기 어렵다"며 "밤에는 어두컴컴해 밖에 나가기도 조심스럽고,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알기가 힘들다"고 털어놨습니다.
염전에서 만난 한 업주는 반복되는 노동 착취·인권 유린 사건에 관해 묻자 깊은 한숨부터 내쉬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염전에서 일하다 염전을 운영한다는 그는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부족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두드리며 "노동자들을 하대하는 인식이 바뀌지 않으니 이 사달이 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백날 점검하거나 조사해도 반복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업주와 노동자의 관계는 고용 관계이지만, 일부 업자는 과거 품앗이로 소금을 생산하던 문화나 인식에 사로잡혀 일탈을 저지른다"며 "노동자를 동료가 아니라 아랫사람으로 여기는 인식도 인권 침해가 반복되는 원인인데 이를 뜯어고쳐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현행 지방자치단체의 실태조사 방식에는 명확한 한계가 있어 이를 개선하는 것이 급선무라고도 했습니다.
그는 "공무원들이 현장 점검을 한다고 해도 이미 염전에서 준비한 근로계약서·근로 지급 명세 등의 서류만 확인하는 수준에 그친다"며 "노동자가 피해 사실을 털어놓지 않는다면 진정한 실정은 파악할 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일부 업주의 범죄 행위를 염업 전체로 일반화하거나 '주홍 글씨'를 새겨서는 안 된다고 호소했습니다.
그는 "업주들도 저마다 열악한 환경을 고치려고 노력한다거나 자체 인권 교육도 하고 있는데 이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며 "일개 업주의 범죄를 산업 전체의 범죄로 바라보는 현실은 안타깝다"며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