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 대통령
미국의 주택난을 해소하기 위해 대규모 주택 공급을 촉진하는 법안이 미 상·하원 문턱을 넘었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현지 시각 24일 서명을 보류하면서 당분간 법안 발효가 불투명해졌습니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주거비 부담 완화를 위해 공화·민주당이 모처럼 초당적으로 처리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상원에 계류 중인 '유권자 ID법'과 연계하고 나서면서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 의원들의 관계도 한층 긴장감이 높아지는 모습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후 의회에서 앞서 상·하원을 통과한 '21세기 주택 공급 확대법'(21st Century ROAD to Housing Act) 서명식을 할 예정이었지만, 이를 취소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루스소셜에서 "주택 공급 관련 기자회견 및 서명식은 내가 국가적 비상사태로 간주하는, 절실히 필요한 '세이브 아메리카 법안'(SAVE America Act·투표자격보호법, 이하 세이브 법안)이 통과될 때까지 취소된다"고 밝혔습니다.
일명 '유권자 ID법'으로 불리는 세이브 법안은 유권자 등록 시 시민권 증명을 의무화하고 우편 투표를 크게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면서 주택 공급 확대법이 세이브 법안이나 금리 인하에 비해 중요성이 떨어진다고도 주장했습니다.
그동안 민주당이 기존 투표 제도를 악용해 '부정선거'를 저질러왔다고 주장해 온 트럼프 대통령은 세이브 법안이 공화당의 중간선거 승리에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해당 법안은 연방 하원을 통과한 뒤 상원에 계류 중이지만 민주당의 반대로 통과 가능성은 희박한 상태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화당에 민주당의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강제로 종료해서라도 세이브 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압박해 왔습니다.
전날 의회 문턱을 넘은 주택 공급 확대법은 주택 공급 및 주거비 절감을 위해 양당 의원들이 발의한 여러 법안을 통합해 모아놓은 패키지 법안입니다.
이 법안은 주택 건설을 촉진하기 위해 환경 영향 평가 등 규제를 완화하고, 지방 정부에 주택 건설 심사를 신속하게 진행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습니다.
또, 350채 이상의 단독주택을 가진 기업이 추가로 주택을 사들이는 것을 제한했습니다.
앞서 상원은 지난 22일 찬성 85명 대 반대 5명으로 이 법안을 가결했고, 하원은 다음날인 23일 찬성 358명 대 반대 32명으로 통과시켰습니다.
이번 법안 통과는 중간선거를 앞두고 유권자들의 주거비 부담을 완화해야 한다는 양당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로 해석됩니다.
여당인 공화당으로서는 물가 상승 등 경제 문제로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하락세를 보이는 상황에서 이를 만회할 정책 성과가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민주당도 대형 부동산 소유주들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주거 부담을 완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법안 처리에 힘을 실은 것으로 보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서명식을 취소했지만, 의회에서 공화당 상원의원들과의 비공개 회동은 예정대로 진행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상원이 전날 이란전과 관련해 자신의 전쟁 권한을 제한하는 결의안을 가결한 데 대해 강한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CNN 방송은 보도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빌 캐시디 의원과 이란전과 관련해 격렬한 언쟁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고성이 오간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도대체 누가 이런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지느냐"고 말하자, 캐시디 의원은 "당초 4주간 지속될 예정이던 군사 작전이 4개월이나 이어졌다"며 국민들의 알 권리를 강조하며 맞섰다는 겁니다.
전날 캐시디 의원은 이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공화당에서 캐시디 의원을 비롯해 4명의 이탈표가 나오면서 해당 결의안은 찬성 50명, 반대 48명으로 통과됐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동을 마친 뒤 기자들에게 "정말 훌륭한 회의"였다면서 공화당이 "정말 단결력이 뛰어난 정당"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방에 있던 모든 사람을 좋아한다"면서도 "몇 명은 좋아하지 않지만 괜찮다. 여러분도 누구를 말하는지 알 것"이라고 말해 당내 이견을 우회적으로 드러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주택 법안 서명 보류를 계기로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 지도부 간 입장차도 한층 부각되고 있습니다.
이란전 재개를 제한하는 결의안 처리와 법무부가 추진한 '사법 피해자 지원 기금'을 둘러싼 당내 반발 등 양측은 주요 현안을 놓고 잇따라 엇박자를 내왔습니다.
존 슌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는 "이 법안은 주택 공급을 늘리고, 사람들이 주택을 구입할 수 있도록 대출 기회를 확대하는 훌륭한 법안"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결국 서명할 방법을 찾길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공화당 상원 지도부는 여야 협치의 상징이자 의회의 오랜 전통인 필리버스터를 무력화하면서까지 세이브 법안을 통과시키기는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주택 공급 법안의 공동 발의자 가운데 한 명인 민주당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식을 취소한 데 대해 "우리가 결승선까지 다다랐음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마치 투정 부리는 아이처럼 서명을 거부했다"고 비판했습니다.
(사진=AP,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