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지방선거 과정에서 불거진 투표용지 부족 등 참정권 침해 사태를 계기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구조적 개혁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시민사회와 법학계, 청년단체 등에서 잇따라 제기됐습니다.
서울 송파구의 한 대학에서 열린 선관위 개혁 관련 시민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선관위의 독립성은 존중하되, 조직 운영의 책임성과 투명성을 높이고 외부 견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김 총리 "선관위 개혁, 원포인트 개헌 필요하다면 해야"
▲ 김민석 국무총리
먼저, 이 토론회를 주최한 김민석 국무총리는 선관위 개혁 문제와 관련해 "근본적으로 끝을 봐야 한다"며, 필요하다면 선관위의 독립성을 존중하되 외부 견제를 받도록 하는 원포인트 개헌도 추진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김 총리는 "제가 헌법학자들께도 의견을 여쭤보는데 선관위 구성 문제, 독립성 문제 등등에 대해서 원포인트 개헌을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는 얘기를 듣고 있다", "저희가 할 수 있다면 여야를 넘어서 국민적 공론화를 통해서 추진하면 좋겠다고 생각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김 총리는 이번 사태가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공정과 신뢰의 기준이 달라졌음을 보여준다며, 선관위 개혁은 정파적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라 여야와 국민이 함께 공론화해 풀어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선거제도 전반에 대해서도 포괄적 논의가 불가피하다며, 사전투표와 투표 시간 등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제기된 여러 쟁점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김 총리는 특히 청년과 대학생들이 문제를 제기한 점을 중요하게 봐야 한다며, 청년·대학생들이 주도하는 사회적 공론화 방식을 정부가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다양한 전문성 반영되도록 선관위 개편하고 견제 강화해야"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이소영 실행위원은 이번 사태의 문제를 조직 역량 부족과 제도적 견제 장치 부재라는 두 가지 차원에서 봐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위원은 선거 관리가 물류 배분과 위기 대응, 조직 운영 등 복합적이고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영역인데도, 관련 전문가가 선관위에 들어올 통로가 거의 막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현재 선관위가 대통령 추천 3명, 국회 추천 3명, 대법원장 추천 3명으로 구성돼 있다며, 다양한 전문성이 반영될 수 있도록 위원 정수를 늘리거나 전문가와 시민사회 대표성을 반영하는 방식의 개편이 필요하다고 제안했습니다.
또, 선관위를 제대로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는 시민 통제 방식의 장치가 필요하다며, 국회를 중심으로 특별위원회나 상설위원회를 두고 선거법 해석 같은 정치적 영역을 제외한 행정과 조직 운영 영역에 대해서는 정기적인 감사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 위원은 선관위가 선거 지원 기관이 아니라 규제 기관처럼 인식돼 왔다며, 선거법 전반을 검토해 불필요한 규제는 줄이고 표현의 자유는 확대해 유권자의 참정권 보장과 선거 참여를 지원하는 조직으로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시민의눈 박세진 대표도 선관위 위원장 상임화와 외부 감사 도입을 주요 개혁 방안으로 제시했습니다.
박 대표는 "비상근 판사들이 겸직하는 구조로는 아무리 사무처 열심 일해도 소용 없다", "의사결정 정점에 있는 위원장이 선거 사무 현장을 모르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라며 위원장을 상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선관위의 독립성은 유지하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며, 국회가 후보자를 추천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는 특별감사관 제도 등을 검토할 수 있다고 제안했습니다.
박 대표는 투표용지 부족뿐 아니라 개표 실수도 있었다며, 본투표에서도 사전투표처럼 현장에서 투표용지를 바로 출력하는 방식을 도입하면 배분 오류를 줄일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개표 방식과 관련해서는 본투표분을 독일처럼 투표 현장에서 바로 개표하고, 사전투표분은 철저히 보관한 뒤 합산하는 방식 등 투개표 업무 전반이 바뀌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박 대표는 사전투표함 CCTV 6개월 의무 보관 등 시민단체 '시민의눈'이, 선관위와 수년간 교섭해 온 사안들이 있었지만 변화가 매우 더뎠다며, 개혁 이후에도 시민단체가 계속 감시하고 교섭할 수 있는 채널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선관위, 자정 노력도 외부 통제도 부족"…"법원도 반성 필요"

법학계에서도 선관위의 자정 노력과 외부 통제 부족을 지적하며 개혁 필요성에 공감하는 제언이 나왔습니다.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장영수 명예교수는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부실관리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지만, 선관위 구성 60년이 훨씬 넘은 최근에 이런 일이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장 교수는 "결국 선관위가 고인물이 되어버린 게 아닌가. 서서히 부패하고 타락해서 결국 이 지경된 게 아닌가 싶다"며 선관위 내부의 자정 노력도, 외부통제도 부족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장 교수는 최근 헌법재판소가 감사원의 선관위 직무감찰 권한이 없다는 결정을 내린 것을 선관위가 자신들의 방만한 태도에 대한 면죄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며 "이런 것은 확실하게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장 교수는 그러면서 선관위 위원들의 상임화 등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가시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면서도 선거제도 개혁이 자칫 부정선거 음모론을 키우는 방향으로 가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장 교수는 또, 김 총리가 제시한 원포인트 개헌과 관련해서는 헌법 개정을 통해 가능하기는 하지만, 진영 갈등과 상호 불신이 심한 현 상황에서 여야 합의와 국민적 공감대, 국민투표가 필요해 현재로선 만만치 않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오히려 제가 당부드리고 싶은 건, 선관위 개혁과 관련해 디테일이 정교하게 짜여졌으면 좋겠다"며 "당연히 나올 수 있는 이야기들, 가령 선관위 직원들이나 동원되는 공무원들도 사전에 시간을 들여서 교육을 한다는 얘기 등도 너무 사소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이런 디테일부터 챙기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가천대 법대 이근우 교수는 "선관위가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할 선거 관리 사무 외에, 정당 사무와 각종 위탁선거 사무까지 다 발을 넓혀 놨다"며 지나치게 확장한 업무 범위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교수는 또 "잠시 왔다 가는, 선거 사무를 제일 모르는 사람이 제일 높은 자리에 있다"는 취지로 언급하며, 선거 사무에 비전문적인 위원들이 윗선에 있는 현행 위원회 구조가 문제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번 사태에 대한 수사는 수사대로 진행이 되겠지만, 그것에만 의존하면 개혁이 되지 않는다며 외부 전문 기업의 컨설팅을 받아서라도 조직과 인력, 예산 배분을 철저하게 재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법관들의 관행과 관련해 "관행적으로 각급의 법관들이 (선관위에) 갔는데 아무것도 안 하고 왔다", "대법원장은 사과멘트를 좀 해야하지 않나 생각이 든다", "법원의 반성과 각오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선거 절차에 대한 국민 신뢰 회복도 함께 해야"
김태윤 전현직 총학생회 연합 대표는 4년 전 이른바 '소쿠리 투표' 사태 이후에도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이 없다며, 일부 제도를 손보는 수준이 아니라 개혁이라고 부를 만한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습니다.
김 대표는 이번 사태를 미봉책으로 넘길 경우 다시 부실선거와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될 수 있다며, 의혹이 제기되지 않을 만큼 신뢰도 높은 선거제도를 구조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또, 국정조사와 검경 합동수사본부, 특검 등 어떤 방식이든 진상 규명과 수사 과정이 공개되고 투명하게 진행돼야 국민 신뢰 회복의 토대가 마련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다만 선관위에 대한 감독 권한이 행정부나 사법부, 입법부 어느 한쪽에 집중될 경우 또 다른 권력 독점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며, 시민 영역의 참여도 견제기구와 감시기구 안에 포함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전국총학생회협의회 김진경 미디어홍보국장은 국민의 의심이 길어지지 않도록 진상 규명이 최대한 신속하고 투명하게 진행돼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김 국장은 선관위 개혁 과정에서 책임 소재가 뭉뚱그려지지 않도록 책임 구조를 명확히 해야 하며, 실질적인 신뢰 회복 방안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