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1 : 戰雲 일시에 걷어낸 평창 올림픽 교류
2017년 말 한반도는 분단 이후 전쟁 가능성이 가장 높은 '최악의 위기 국면'이었습니다. 북한은 이 해 9월 6차 핵실험을 감행하고 11월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5형'을 발사하면서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습니다. 미국은 초강경 맞대응에 나섰습니다. 트럼프 당시 대통령은 '화염과 분노', '북한 완전 파괴' 등 거친 말을 쏟아냈습니다. 미국 정계와 군부에서는 북한의 핵심 시설을 정밀 타격하는 '코피 작전' 등 전쟁 시나리오가 공공연히 논의됐습니다. 지금의 이란 꼴이 날 수 있는 살얼음판이었습니다.
남북한 관계도 최악이었습니다. 2016년 개성공단 가동 중단 이후 모든 공식 대화 채널이 끊겼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평화 올림픽'을 제안하며 북한의 참가를 지속적으로 타진했지만 북한은 올림픽 직전까지 묵묵부답이었습니다. 올림픽 안전마저 우려됐습니다.
절망적 분위기는 2018년 1월 1일 북한 김정은의 신년사를 기점으로 급반전했습니다.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평창 올림픽 참가 의사를 밝힌 것입니다. 사흘 만인 3일 판문점 남북 직통 연락 채널이 2년 만에 전격 재개됐고 9일 고위급 남북회담에서 북한의 올림픽 참가 조건과 절차가 일사천리로 합의됐습니다. 올림픽 개막식에 남북 선수단은 한반도기를 들고 공동 입장했습니다.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이 결성돼 함께 뛰었습니다.
스포츠가 앞장서자 얼어붙었던 한반도가 순식간에 녹아 내렸습니다. 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제1부부장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포함된 고위급 대표단이 청와대를 방문해 문재인 대통령에게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했습니다. 그해 4월 27일 제1차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이 개최됐고, 그해에만 세 차례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습니다.
남한 정부는 이런 외교적 공간을 활용해 북한과 미국 사이를 적극적으로 중재했습니다.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됐습니다. 직전까지 '꼬맹이', '늙다리'라고 서로 욕하며 전쟁을 불사할 태세였던 북한과 미국 정상이 손을 맞잡았습니다.
장면 2 : 대결에서 교류로 이끈 통일축구대회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로 가시화된 냉전 해체의 바람이 거세지는 상황이었습니다. 특히 남한이 88년 서울 올림픽 성공과 북한의 맹방 소련과의 수교, 중국과의 관계 개선 등 북한에 전방위 외교적 압박을 가하면서 북한의 국제적 고립 위기감이 커졌습니다. 북한이 더 극단적 대결로 치달을 지, 국면 전환을 꾀할 지 갈림길에 섰을 때 그 돌파구가 된 것이 스포츠 교류였습니다. 1990년 9월 분단 이후 최초의 남북 총리간 '제1차 남북고위급회담'과 직후 베이징 아시안게임 기간 중 열린 남북 체육 장관 회담을 통해 역사적 '통일축구대회'가 성사됐습니다. 1990년 10월 남북 축구 대표팀이 평양과 서울을 오가며 축구대회를 치렀습니다. 남과 북의 선수단과 기자단 등 각각 76명이 판문점을 거쳐 평양으로, 서울로 교차 방문했고 서울과 평양 시민들이 상대방 선수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냈습니다.
축구 대회가 튼 물고를 통해 남북 관계의 패러다임을 바꾼 결정적 마중물이 흘렀습니다. 불과 1년 뒤인 1991년 12월 남북은 상호 체제를 인정하고 불가침에 합의하는 '남북 기본합의서'를 채택했습니다. 향후 사회, 문화, 예술 등 다방면의 민간 교류가 이뤄졌습니다.
장면 3 : 8년 만에 방한한 북한 선수단 '무표정, 무관심'
선수 27명, 스태프 12명 등 총 39명으로 이뤄진 북한 내고향 선수단이 어제(17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했습니다. 20∼23일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진행되는 2025-26 아시아축구연맹 여자 챔피언스리그 4강 토너먼트에 출전하기 위해섭니다. 북한 스포츠 선수가 방한한 것은 2018년 12월 국제탁구연맹 월드투어 그랜드파이널스 이후 8년 만입니다. 여자 선수로 한정하면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이후 12년 만입니다.
많은 기자들과 시민들이 공항을 찾아 이들을 환영하고 말을 건넸습니다만 단 한 마디의 대답도 들을 수 없었습니다. 표정 역시 굳어 있었고 희미한 미소조차 볼 수 없었습니다. 당초 북한 선수단은 남한팀인 수원FC 위민과 같은 호텔을 쓰기로 계획돼 있었습니다. 하지만 북측은 이를 거부하고 AFC를 통해 숙소를 따로 정해 동선을 철저히 분리했습니다. 북한 관영 매체들은 선수단의 방남 사실을 일절 보도하지 않고 있습니다. 북한 측은 이번 방한이 대회 참가 이외 다른 의미로 해석되는 것을 원천 차단하려는 모습입니다.
이번에도 남북 관계 전환 돌파구 되나?
정부 당국이나 남한의 시민들이 이번 스포츠 교류에 거는 기대가 작지 않습니다. 정치적 절연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뤄진 유일한 '공식 접촉'이기 때문입니다. 국가 간, 당국 간 대화가 전면 중단된 상태에서 국제 대회를 매개로 한 스포츠 교류는 물리적 이동과 만남을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첫 번째 클럽 수준 교류라는 점도 관심입니다. 과거 국가대표 중심의 대항전이나 단일팀 구성과 달리 이번에는 북한의 특정 '클럽팀'이 방한했다는 점에서 다변화된 교류 가능성을 내포합니다. 그래서 소통 재개의 발판이 될 수 있지 않겠냐는 희망도 나옵니다. 선수단의 안전 보장, 출입국 절차, 체류 관리 등을 위해 남북 당국 간 혹은 민간 채널 간의 눈에 띄지 않는 실무 행정과 소통이 재가동됐습니다. 이는 향후 전면적인 대화 재개의 기술적 기반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평가는 부정적입니다. 가장 직접적이고 강력한 방한 배경은 이번 경기를 해야 결승에 갈 수 있고 불참할 경우 감당할 국제적 징계와 손실이 너무 크기 때문이라며 선을 긋습니다. 아시아축구연맹이 주관하는 최고 권위의 공식 클럽 대회를 정치적 이유로 보이콧하면 향후 수년 간 북한 여자축구 전체가 AFC 및 FIFA 주관 국제대회에 출전하지 못하는 중징계를 받을 수 있습니다. 북한이 가장 강세를 보이는 여자 축구 자산을 스스로 사장시킬 수 있습니다. 나아가 이번 대회 우승 상금인 100만 달러도 포기해야 합니다. 외화난을 겪는 북한 정권에게 국제 스포츠 대회를 통해 벌어 들이는 15억 원은 결코 작은 돈이 아닙니다.
또한 북한이 이번 남북 대결에서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크다는 점도 방한의 핵심 요인입니다. 북한 여자축구는 최근 U-17, U-20 월드컵을 휩쓸며 세계 정상급 전력을 증명했습니다. '내고향여자축구단' 역시 객관적 전력에서 남한의 수원FC 위민보다 우세하다는 평가입니다. 북한 주민들에게 "적대국 심장부에서 남한팀을 꺾고 공화국 위상을 떨쳤다"는 선전은 내부 결속에 더없이 좋은 소재입니다. 패배할 위험이 컸다면 방한을 주저했겠지만, '실력의 우위'가 확실하다는 계산 아래 방한을 승인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북한 정권이 "이번 기회에 남한과의 대화 문을 열거나 관계 복구의 모멘텀을 만들려는 취지"는 없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게 대체적 평가입니다.
'두 개의 적대국가론' 속 '해빙의 틈'은 없을까?
북한의 현재 대외 전략은 남한을 철저히 패싱하고 판을 크게 짜자는 것입니다. 북한은 작년 말부터 남한을 '동족'이 아닌 '제1 주적'이자 '별개의 적대 국가'로 규정했습니다. 이번 축구팀 방한은 이 기조의 전환이 아니라, "적대국가이지만 국제기구의 회원국으로서 룰에 따라 경기를 하러 간다"며 '정상 국가'임을 인식시키려는 포석일 따름입니다. 실리와 체제 선전, 국제적 이미지 개선을 노렸을 뿐 여전히 외교적 문을 걸어 잠그고 있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북한이 아무리 철저히 통제하려 해도 축구장이라는 물리적 공간에서 남북 청년들이 만나 발을 맞추고 남한의 관중들이 지켜보는 것 자체가 큰 자극입니다. 북한이 구축한 '적대국 프레임'에 내는 균열입니다. 따라서 이번 북한 축구단의 방한에 정치적 메시지를 억지로 부가하는 것은 피하고 스포츠 본연에 집중함으로써 북한 당국에 정치 외교적 부담을 지우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향후 비슷한 교류가 이어지고 그런 움직임들이 쌓이고 모여 현재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습니다. 나아가 궁극적으로 스포츠가 다시 한 번 '해빙의 돌파구' 역할을 하기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