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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철옹성이 무너졌다"…분노한 민심이 선택한 대안 [스프]

심영구 기자

입력 : 2026.05.14 09:00|수정 : 2026.05.14 09:00

"100년 노동당 왕국의 몰락"…영국 뒤흔든 '리폼 UK' 돌풍과 분열되는 연합왕국


⚡ 스프 핵심요약

노동당의 역사적 참패: 100년간 웨일스를 지배했던 노동당이 3위로 추락하고, 잉글랜드 '심장부' 선더랜드마저 잃으며 1,400석 이상의 지방의석 상실.

나이젤 패러지의 부활: 자금력과 조직력을 갖춘 '리폼 UK'가 보수-노동 양당의 텃밭을 잠식하며 영국 정치를 '5당 체제'의 무한 경쟁 시대로 재편.

연합 해체 신호탄: 스코틀랜드(SNP), 웨일스(플라이드 컴리), 북아일랜드(신페인) 모두 친독립·자치 세력이 장악하며 중앙정부와의 헌정 갈등 최고조.
"변화를 줬는데 왜 삶은 더 나빠졌나?"

2026년 5월, 영국의 민심은 이 한마디로 요약됩니다. 100년 넘게 노동당의 철옹성이었던 웨일스에서부터 반세기 동안 노동당을 지지해온 잉글랜드 북동부 공업지대까지, 영국 정치의 지형도가 송두리째 바뀌었습니다. 이번 지방선거는 단순한 정권 심판을 넘어, 브렉시트 이후 누적된 기성 정치에 대한 분노가 '리폼 UK(Reform UK)'라는 강력한 대안을 만나 폭발한 사건입니다.

1. 웨일스의 변심: 100년 노동당 시대의 종언

지난 5월 8일 발표된 웨일스 자치의회(세네드, Senedd) 선거 결과는 가히 충격적입니다. BBC와 로이터(Reuters) 보도에 따르면, 웨일스 민족당인 플라이드 컴리(Plaid Cymru)가 43석으로 제1당에 올랐고, 나이젤 패러지가 이끄는 리폼 UK가 34석으로 2위를 차지했습니다. 1999년 의회 창설 이래 줄곧 집권해온 노동당은 단 9석에 그치며 3위로 추락했습니다. 엘루네드 모건 제1장관마저 의석을 잃으며 노동당의 웨일스 지배력은 사실상 소멸했습니다.

주목할 점은 유권자들이 반드시 '독립'을 원해서 이들을 선택한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여론조사기관 유고브(YouGov) 조사 결과 독립 찬성은 22%에 불과했습니다. 즉, 이번 투표는 독립에 대한 열망보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노동당 정부에 대한 가차 없는 징벌이었습니다.

2. '레드 월(Red Wall)'의 붕괴와 리폼 UK의 자금력

잉글랜드 북동부의 노동당 텃밭, 이른바 '레드 월'의 붕괴는 더욱 극적입니다. 1973년 이후 노동당이 장악해온 선더랜드 시의회는 리폼 UK가 43석을 휩쓸며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레졸루션 파운데이션(Resolution Foundation) 보고서는 영국 저소득층이 지난 20년간 실질 소득 정체를 겪었으며, 이것이 "누가 해도 똑같다"는 냉소와 "차라리 판을 바꾸자"는 리폼 UK 지지로 이어졌다고 분석합니다.

리폼 UK의 이러한 급성장 배경에는 막대한 자금력이 있습니다. 영국 선거관리위원회(Electoral Commission) 자료에 따르면, 리폼 UK는 2025년 4분기에만 약 547만 파운드(약 97억 원)를 기부받았습니다. 특히 암호화폐 투자자 크리스토퍼 하본(Christopher Harborne)이 기부한 300만 파운드(약 53억 원)는 소셜미디어 타깃 광고와 전국적 조직 구축의 핵심 동력이 되었습니다.

3. 사면초가의 키어 스타머, 그리고 5당 체제의 도래

키어 스타머 총리는 당내 퇴진 압박이라는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노동당은 이번 선거에서 잉글랜드에서만 1,400석 이상의 의석을 잃었습니다. 당내 진보파와 온건파 모두에서 "올가을 당 대회를 끝으로 사퇴 일정을 내놓으라"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반면, 이번 선거는 영국 정치가 보수-노동 양당제를 넘어 5당 체제(리폼 UK, 녹색당, 보수당, 노동당, 자유민주당)로 완전히 재편되었음을 선언했습니다. 정치 분석가 존 커티스(John Curtice)는 리폼 UK(26%)가 득표율 1위를 기록하고 녹색당(18%)이 그 뒤를 잇는 등, 유권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대변할 '세분화된 정당'을 찾기 시작했다고 평가합니다.

4. 시사점: 한국과 글로벌 시장에 주는 메시지

영국의 이러한 '정치적 분절화'는 단순히 강 건너 불 구경이 아닙니다. 양극화된 소득 구조와 이민 문제, 지방 소외 현상이 맞물릴 때 기성 정당이 얼마나 빠르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글로벌 투자자들에게는 영국의 불확실성 증가와 중앙-지방 정부 간의 갈등 비용 상승이 향후 파운드화 및 영국 국채 시장의 변동성을 키우는 핵심 리스크가 될 전망입니다.

[Deep Dive Q&A]

Q1. 리폼 UK는 단순한 '극우 포퓰리즘' 정당인가요?

A1. 리폼 UK는 2016년 브렉시트 찬성 지역(득표율 40% 기록)을 기반으로 성장했지만, 단순한 항의 정당을 넘어섰습니다.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지방정부 14곳을 장악하며 '집권 능력'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다만, 소수민족에 대한 혐오 발언 논란 등은 전국 정당으로 가는 길에 여전한 걸림돌입니다.

Q2. 연합이 실제로 해체될 가능성이 커졌나요?

A2. 당장 독립 투표가 실시되기는 어렵습니다. 스코틀랜드와 웨일스의 친독립 정당들도 당장은 중앙정부로부터 더 많은 '재정 자율권'과 '입법권'을 뺏어오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약화되면서 영국 내부의 행정적 분열과 갈등 비용은 필연적으로 증가할 것입니다.

Q3. 노동당 참패의 결정적 원인은 무엇인가요?

A3. 세 가지 복합 요인입니다. 첫째, 20년간 정체된 실질 임금으로 인한 생활고, 둘째, 이민 통제 실패에 대한 안보 불안, 셋째, 지방세는 올리면서 공공 서비스는 악화시킨 지방정부의 무능이 유권자들을 리폼 UK와 녹색당으로 등 돌리게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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