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7일 방송된
<특집: 장기 실종 아동 찾기 2 - 그녀를 찾습니다>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가수 조째즈, 배우 김혜은, 그룹 키스 오브 라이프 벨이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사라진 송혜희
때는 1999년 2월, 경기도 평택시. 밤 10시가 다 됐을 무렵, 여고생 한 명이 헐레벌떡 뛰어왔어. 버스가 막차였거든. 마을로 가는 7번 버스에 열여덟 살 혜희가 간신히 올라탔어. 당시 혜희가 살던 곳은 평택 시내에서 꽤 떨어진 곳이라 버스나 택시를 타야만 갈 수 있었다고 해. 그렇게 마지막 버스가 출발한 지 약 15분 뒤,
"이번 정류장은 '아랫마을 입구'입니다."
혜희가 마을 앞 버스정류장에 내렸어. 그 시각, 집 앞에선 혜희의 아버지가 기다리고 있었어. 그런데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나고, 자정이 넘도록 혜희가 오질 않는 거야. 아버지는 곧바로 파출소에 신고했어. 하지만 혜희를 찾지 못했어. 혜희는커녕 작은 단서 하나도 찾지 못했어. 혜희가 감쪽같이 사라진 거야. 이후 혜희의 부모님은 딸을 찾기 위해 방송에도 출연하셨어.

"생업도 포기한 송길용 씨 부부. 사라진 딸을 찾기 위해 매일 아침 전단을 챙기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데리고 계신 분이 있다면 무사히만 돌려주던가 아니면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그 목소리만 듣게 해 주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습니다."
-송길용, 송혜희 아버지
혜희는 도대체 어디로 간 걸까? 혜희가 사라진 1999년 2월 13일로 가볼게. 고3을 앞둔 겨울방학이라 혜희는 그날 독서실이 있는 평택 시내로 나갔다고 해. 그런데 평소 독서실에서 늦어도 밤 10시 반이면 돌아오던 혜희가 이날은 밤 11시가 넘도록 들어오질 않는 거야. 당시만 해도 휴대전화가 흔치 않던 시절이라, 아버지는 혜희의 수첩에 적힌 친구들의 집 번호로 전화를 걸었어.
"어? 혜희 막차 타고 갔는데? 제가 봤어요!"
-혜희 친구
친구들은 혜희가 버스 타는 걸 똑똑히 봤다는 거야. 그럼 혹시 혜희가 그 버스를 타고 다른 곳으로 간 걸까?
사라진 혜희의 사진을 보여줄게.

혹시 본 적 있어? 혜희는 어떤 아이였을까? '꼬꼬무'가 1999년 당시 혜희의 지인들을 어렵게 만나봤어.

"혜희가 뭐 기본 이상 다 모든 과목을 잘했던 걸로 기억은 해요. 그리고 이제 굉장히 쾌활하고 밝아서 반 아이들이랑 다 같이 격의 없이 지냈고."
-중·고등학교 동창

"제가 노래 대회를 한 번 나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혜희 양이 굉장히 교우관계가 좋아서 100명 정도의 자기 친구들을 경기 남부 문화회관이었는데 강당을 가득 메웠었습니다. 그래서 그 응원 덕분에 사실은 장기자랑에서 제일 큰 상을 받고 나온 기억이 있고요. 아주 가족에 대한 생각도 많았던 친구고, 굉장히 밝았던 친구고. 가치관도 아주 올바른 친구로 저는 기억하기 때문에, 전혀 가출을 하거나 그럴 성향의 사람이 아니었죠."
-혜희 양의 지인
▲ 의문의 30대 남성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아버지는 다음 날 새벽, 파출소로 달려가 실종신고를 했어. 그리고 곧바로 버스회사로 향했어. 전날 7번 막차를 몰았던 버스기사를 찾아서, 혜희의 사진을 보여주며 물었지.
"어? 이 학생! 어제 마을 앞 버스정류장에서 내렸어요."
-버스기사
평소 혜희가 이 7번 버스를 타고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버스기사도 혜희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어. 그런데 그때, 버스 기사가 뜻밖의 이야기를 덧붙여.
"그 버스정류장에서 웬 남자도 한 명 내렸는데?"
-버스기사

그날 밤, 마을 앞 버스정류장에서 내린 또 다른 사람이 있었다는 거야. 30대쯤 되어 보이는 남성이었어. 그는 이 버스에 언제부터 탔던 걸까? 남자는 혜희가 버스에 타기 30분쯤 전, 평택역 앞에서 승차했다고 해. 그런데 잠이 들어서, 중간 회차 지점에 도착하도록 내리지 않더라는 거야. 버스기사는 남자를 깨우며 목적지가 어디냐고 물었어. 남자는 술냄새를 풍기며 목적지를 말했어. 바로 혜희네 마을 앞 버스정류장. 그리고 잠시 후, 한 여고생이 버스에 올라탔어. 바로 혜희였어.
그렇게 두 사람을 태운 버스가 출발하고 약 15분 후, 혜희와 이 30대 남성은 모두 마을 앞 버스정류장에서 내렸어. '꼬꼬무'는 당시 7번 버스를 함께 운행했던 버스기사 김 씨의 동료를 만나봤어.

"그 형님(7번 막차 운행 기사)도 오래 다녀서 그 동네 사람을 다 안단 말이에요. 노인이고 학생이고 거의 다 알아요. (30대 남자는) 전혀 안면이 없고 처음 보는 사람이라고 그랬어요. (당시 외지 사람이 그 시각에 그 동네에 내리는 일이 종 종 있었는지 묻자) 나는 없었어요. 낯선 사람이 그 저녁 늦게 내리는 건 없었다고. 거기서 내리면 교통수단이 없으니까 낯선 사람은. 버스가 끊어지면 택시도 없고…"
-임병호, 1999년 당시 7번 버스 기사
밤 10시가 넘은 시각, 외지인이 내려서 갈만한 곳이 어디가 있을까? 주변은 온통 논과 밭뿐인데. 혜희가 살던 마을까지도 걸어서 약 20분은 가야 했다고 해. 이런 곳에 외지인이 막차를 타고 내린다? 이상하지. 그렇다면 그는 혜희의 실종과 관련이 있는 사람일까?
근데 여기까지 들었을 때, 좀 이상한 점 없었어? 혜희가 실종된 다음 날, 아버지는 분명 파출소에 신고를 했잖아. 근데 왜 아버지 혼자 이렇게 딸을 추적하고 있는 걸까?
"열여덟 살이요? 혹시 가출 아니에요?"
-당시 파출소 직원
혜희가 청소년이라는 이유만으로 파출소 직원이 단순 가출이라고 판단한 거야. 그렇게 가장 중요한 골든타임을 놓쳐버렸어. 그리고 실종 4일째가 돼서야, 사건은 평택경찰서에 정식으로 접수가 됐어. 형사들은 이 30대 남성을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그를 찾는 데 수사력을 집중했다고 해.

"그 동네 마을에서 내렸으니까요. 당연히 (그 남성이) 그 동네에 살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을 찾지를 못했어요. 그래서 이제 그 당시에는 콜택시라 그래서 혹시 그날 택시를 타고 이동할 수도 있잖아요. 거기 버스가 다 끊긴 상태이기 때문에. 그래서 저희가 평택 일대 택시 회사를 탐문을 했었어요. 그것까지 전부 다 수사를 했었는데, 역시나 그 택시 기사들 탐문 수사에서도 그 사람을 밝혀 내지 못했어요."
-박광규, 당시 평택 경찰서 형사
당시 혜희네 마을은 가구 수가 100가구도 되지 않는 곳이었어. 경찰이 마을을 샅샅이 탐문해 봤지만, 그날 버스기사가 목격했다는 30대 남성은 마을에 없었다는 거야. 그렇다면 그는 버스에서 내려 택시도 이용하지 않고 어디로 사라진 걸까?
▲ 두 번째 실종자
그런데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02년 9월. 혜희의 실종신고가 접수됐던 그 파출소로 한 남자가 다급히 뛰어 들어와. 인근에 사는 주민이 아내의 실종신고를 하러 온 거야. 사라진 아내는 40대 초반의 여성, 최 씨. 전날 밤, 시내버스 막차를 타고 귀가한다고 했는데, 다음 날이 되도록 오지 않았대.

"피자 박스를 들고 계셔서 저녁 시간이니까, 그냥 '피자 맛있겠다' 이렇게 어린 마음에 생각했던 게 기억이 나요. 아랫마을 입구 LPG충전소 있는 그쪽에서 내렸던 걸로 기억해요."
-목격자
그녀가 내린 버스 정류장은 '아랫마을 입구'. 3년 전 혜희가 사라졌던 그곳이야. 혜희가 내린 버스정류장. 그리고 전날 최 씨가 내린 버스정류장.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같은 이름의 버스정류장이었어. 최 씨가 탔던 마지막 시내버스는, 3년 전 혜희가 탔던 7번 버스야. 최 씨도 혜희와 같은 마을 주민이었거든.
그런데 승객들의 진술에 따르면, 그날 마을 앞 버스정류장에서 내린 사람은 최 씨 한 명뿐이었다고 해. 혹시 최 씨가 스스로 자취를 감춘 건 아닐까? 버스에 탈 때, 최 씨가 손에 피자박스를 들고 있었다고 했잖아. 이건 전날 생일이었던 딸을 위해 산 피자였어. 이 피자를 들고 최 씨가 가출을 한다? 이상하잖아. 형사들은 최 씨의 실종에 대해 '연쇄 범죄'라고 판단했어.

"아 이거 혹시 동일범 소행이지 않느냐. 하필이면 같은 버스 정류장에서 두 여성분이 없어진 사건이기 때문에, 평택 경찰서뿐만 아니라 경기도 경찰청에서도 '야 이거 이상하다'…"
-박광규, 당시 평택 경찰서 형사
같은 버스를 타고, 같은 이름의 버스 정류장에서 내린, 같은 마을의 두 여성이 3년 간격으로 연달아 실종된 거야. 형사들은 혜희 사건의 범인과 최 씨 사건의 범인이 동일범이라고 판단한 거야.
▲ 연쇄 실종 사건
미스터리한 연쇄 실종 사건 소식에 당시 마을에는 '화성 연쇄 살인 사건'과 연관된 게 아니냐는 소문이 돌았다고 해. 1986년부터 1991년까지 경기도 화성 일대에서 벌어진 최악의 연쇄살인사건. 이때까지만 해도 범인 이춘재의 정체가 밝혀지기 전이었어. 그래서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이 지리적으로 가까운 평택에서 또다시 범행을 저지른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온 거야.

"그때 당시에 이춘재 한창 (화성에서 범행을 저지를) 때거든. 이춘재가 여기 내려오려면 차 갖고 내려오면 금방 내려와."
-동네주민
게다가 당시 버스정류장에서 마을로 가는 길은 하나뿐이었어. 가로등도 거의 없는 1차선 비포장도로. 주민들은 이 길이 뉴스에서 본 화성 연쇄 살인사건의 범행 장소들과 똑 닮았다고 말했어.
그런데 2009년, 또 다른 용의자가 나타났어. 그의 정체가 밝혀지고, 실종자 가족들은 충격에 휩싸였어. 새로운 용의자 누구였을까?

"두 얼굴의 살인범, 강호순에 대한 경찰 수사는 전국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끔찍한 범행이 알려지면서 여죄로 의심되는 사건들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강 씨가 모두 부인을 하고 있어서 수사가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당시 뉴스 보도 중
"56살 송길용 씨는 강호순의 연쇄 살인 소식을 접하며 실종된 딸 생각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립니다."

"혹시 내 딸도 저렇게 되지 않았나, 더 이상 마음 가질 게 못 되네요."
-송길용, 실종된 송혜희 아버지
2000년대 중반 강원도와 경기도 일대에서 총 10명의 여성을 살해한 연쇄살인범 강호순. 혹시 강호순이 피해 여성들을 유인했던 장소가 대부분 어디였는지 기억나? 바로 버스정류장. 강호순은 한적한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여성들을 노렸어. 그렇다면 평택의 버스정류장에서 사라진 두 여성, 강호순의 숨겨진 희생자였을까?
경찰은 당시 광범위한 탐문 수사를 실시했어. 비슷한 범죄 경력이 있는 전과자들도 일일이 조사했지. 하지만 아무런 성과도 없이 5개월 가까운 시간이 흘렀어.
▲ 논에서 발견된 시신
그렇게 해가 바뀐 2003년 2월. 봄농사를 앞두고, 들판마다 사람들이 모였어. 혹시 '논두렁 태우기'라고 들어본 적 있어? 겨우내 언 땅을 녹이고 마른 풀을 태우려고, 논에 불을 놓는 거야. 그런데 어디선가 역한 냄새가 진동해. 사람들은 크게 개의치 않고, 논에 불을 놓기 시작했어. 사람 키만 한 풀들이 불길에 타들어 가자, 들판 바닥에 놓인 뭔가가 모습을 드러내.

바로 시신이었어. 뼈만 앙상하게 남았을 만큼 부패가 심각한 상태였다고 해. 근데 시신에서 한 가지 눈에 띄는 점이 있었어. 하의가 벗겨진 상태로, 양말만 신은 채 발견이 된 거야. 이게 뭘 의미할까? 경찰도 끔찍한 성범죄를 의심했어.
시신으로 발견된 이 사람은, 최 씨였어. 경찰은 버스정류장 인근에서 납치된 최 씨가 이곳에서 성폭행당한 뒤 사망한 것으로 추정했어. 근데 최 씨의 시신이 발견된 곳, 버스정류장에서 겨우 300미터 떨어진 들판이었어. 잡풀이 시야를 가릴 만큼 무성하긴 했지만, 바로 옆 도로는 사람들의 통행이 많은 곳이었다고 해. 그럼 이 살인범, 혜희의 실종과도 연관이 있을까?
▲ 송혜희가 나타났다?
그런데 최 씨의 시신이 발견되고 약 1년 후, 평택경찰서에 또다시 깜짝 놀랄 소식이 들려와.
"선배님! 송혜희가 나타났습니다!"
20대의 성인이 되었을 혜희의 생활반응을 추적하던 중, 혜희의 위치를 짐작할 만한 단서를 발견했다는 거야.

"혹시나 싶으니까 예금이라든가 신용카드 이런 거 다 점검을 하거든요. 그러니까 송혜희 양이 ID를 쓰고 있다. PC방에서 사용하고 있던 거를 찾아낸 거죠. (혜희가) 살아 있구나..."
-박광규, 당시 평택 경찰서 형사
경찰은 곧장 혜희의 ID가 접속했던 그 PC방으로 달려가 잠복을 시작했어.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혜희 ID가 접속됐어. 잠복해 있던 경찰들이 바로 해당 위치의 컴퓨터로 달려가, 사용자를 확인했지. 사용자는 20대의 젊은 여성. 그리고 30대 내외로 보이는 남성이었어. 이 두 사람, 누굴까? 이 20대 젊은 여성은 혜희가 아니었어.

"나중에 확인을 해봤더니 송혜희 양과 전혀 관련이 없는 다른 사람이 ID를 만들어 쓰고 있던 거죠. 송혜희 양의 부모님들이 플래카드에 (개인정보) 적어놓은 그걸 입수해서 만들었다고 그러더라고요."
-박광규, 당시 평택 경찰서 형사
이후 2004년 수사본부는 해체됐어. 최 씨 살인범을 검거하지도, 실종된 혜희를 찾지도 못한 채로. 두 사건 모두 미제 사건이 되고 만 거야.
▲ 아버지의 다짐
혜희 부모님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아버지는 딸을 꼭 찾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그날의 다짐을 이렇게 적었어.

"나의 딸 송혜희는 꼭 찾는다. 아빠가"
그날 이후 시작된 아빠의 혜희 찾기. 혜희 사진으로 가득 채운 차를 타고 다니고, 아버지는 전단지를 돌리며 딸을 찾아 나섰어.



"이거라도 안 붙이면 이 마음이 평생을 못 찾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 사진을 갖다 보고 전단을 돌리고 하니까, 같이 다니는 느낌이 들고."
-송길용, 송혜희 아버지
해남 땅끝마을까지 가서 애타는 심정으로 전단지를 돌리고, 전국에 현수막을 직접 설치한 아버지. 그에겐 혜희의 전단과 현수막이 유일한 희망이었어.


"만약에 내 딸이 저거(현수막) 보고, 아빠가 나 아직도 찾는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면,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편할 것 같아요. 나는 더 이상 바랄 게 없어요."
-송길용, 송혜희 아버지
아버지의 간절함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한 사람. 현수막 업체 사장님을 만났어.

"아버님이 오시면 가만히 현수막 찍는 거 보고 계세요. 그러시면서 그냥 흐뭇해하시는 거예요. 나는 현수막만 옆에 있어도 배가 부르고 든든하다… 그래서 그때 제가 현수막을 좀 고급 현수막으로 자재비만 받고 제작을 해 드리게 됐죠. 제가 할 수 있는 게 이런 게 응원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을 했죠."
-마명락, 현수막 업체 사장
마 사장님이 만들어주신 실제 현수막을 보여줄게.

만약에 네가 혜희의 얼굴이 익숙했다면, 전국에 걸려있는 이 현수막 때문일 거야. 아버지가 이 현수막과 전단지를 들고 전국 팔도 안 가본 곳이 없거든.
아버지가 딸 혜희를 찾아다닌 주행거리는 약 108만 km. 지구를 스물일곱 바퀴나 돈 셈이야. 그동안 거리에 붙인 현수막이 약 3700장. 사람들에게 나눠준 전단지는 450만 장이 넘어. 대략 대한민국 국민 열 명 중 한 명은 아버지의 전단지를 받은 셈이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렇게 25년 동안 딸을 찾아다닌 아버지. 그토록 혜희를 찾으러 다녔지만, 아직 혜희는 돌아오지 않았어.

"내가 할 일은 전단 돌리는 일 밖에 지금은 없어요. 어디든지 가볼 데 다 가봤어요.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찾아야 하는데 아직 내가 부모에 대한 책임을 못 했어요. 찾지를 못 했으니까."
-송길용, 송혜희 아버지
아버지는 이제 그만하면 됐으니 포기하라는 사람들한테 "혜희는 어딘가 분명히 살아있습니다"라고 말하곤 했어. 만약에 혜희가 죽었다면, 최 씨처럼 어디선가 시신이라도 발견됐을 거라는 거지. 그리고 혹시라도 만약에, 누군가 혜희를 살해한 거라면, 반드시 범인을 잡아서 진실을 밝혀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꼬꼬무'는 장기 미제 실종사건으로 남은 이 사건을 원점에서부터 다시 들여다보기로 했어. 미리 말하자면, 지금까지의 판을 완전히 뒤집을 새로운 이야기들을 듣게 될 거야.
▲ 끝나지 않은 추적
혜희가 그날 스스로 잠적한 게 아니라면 남은 가능성은 '납치'. 대체 누가 버스정류장에 내린 혜희를 데려간 걸까. '꼬꼬무'는 최고의 프로파일러와 함께 27년 전 문제의 버스정류장을 다시 찾아가 봤어.

"이 장소의 특성으로 봤을 때 호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산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오랫동안 발견되지 않을 정도로 유기할 방법은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송혜희 양이 지금 현재 살아있는지 또는 뭐 피살당했는지 우리가 알 수는 없지만, 실종 그 자체만으로 보자면 막차인 버스를 타고 이곳 정류장에 내려서 그 이후에 사라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차량 밖에 없다."
-표창원 프로파일러, 범죄과학 연구소 소장
범인은 차량을 이용했을 확률이 크다고 해. 이건 생각보다 더 많은 걸 의미해. 시신으로 발견된 두 번째 실종자 최 씨. 최 씨 사건과 혜희 사건은 동일범의 연쇄 범죄일까?

"우선 공통점이 꽤 많이 있죠. 젊은 여성이라는 점, 그리고 마지막 버스를 타고 같은 정류장에 내렸다는 점. 상당이 인적이 드문 거의 통행인이 없는 시간과 장소였다는 점. 다만 차이점이 있죠. 가장 큰 차이점은, 송혜희 양은 차량에 의해서 어디론가 납치 이동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거예요 실종 직후에. 그런데 최 씨는 실종 장소 인근에서 시신으로 발견됐습니다."
-표창원 프로파일러, 범죄과학 연구소 소장
최 씨 살인범이 차량을 이용했을 확률은 낮다고 해. 혜희 사건과 동일범이다, 아니다 단언할 수는 없지만, 차량을 이용한 범행 수법에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는 거야.
그렇다면 범인은 혜희를 어떻게 차에 태웠을까? 억지로 태웠을까? 아니면 스스로 타게 했을까? 이 질문의 답 역시, 현장에 있을지 몰라. 이번엔 혜희가 버스정류장에서 내린 그 이후의 동선을 따라가 볼게.

"차량을 가진 누군가가 송혜희 양을 강제로 차량에 태웠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1999년 2월 당시에 이곳은 차량이든 사람이든 야간에는 통행이 거의 없는, 특히나 2월이었기 때문에 추운 겨울이었고요. 그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때, 이 춥고 어둡고 무서운 먼 길을 걸어가는 것보다 같은 방향의 차량을 타고 가는 것이 낫겠다 싶은, 이런 자발적인 동승이었을 가능성도 있고요."
-표창원 프로파일러, 범죄과학 연구소 소장
혹시 '호의동승'이라고 들어봤어? "어디까지 가세요? 방향이 같으면 태워 드릴까요?" 하면서, 과거 교통이 불편한 지역에서는 이런 동승문화가 있었어. 어쩌면 혜희가 사는 마을도 마찬가지였겠지. 그런데 사실 이건 어느 연쇄 살인마의 시그니처이기도 해. 바로 강호순. 강호순이 피해 여성들을 유인한 장소가 버스정류장, 그리고 호의동승. 이런 유사점들 때문에 2009년 강호순이 검거되고, 혜희를 납치한 범인이 강호순이 아니냐는 가능성도 제기가 됐어.
"강호순이 주로 활동하던 지역이 수원, 안산, 광명 그리고 화성. 그런데 여기에 국한되지 않거든요. 강원도 정선까지 뻗쳐 있습니다. 그 이동성이 무척 넓은 범죄자가 강호순이에요."
-표창원 프로파일러, 범죄과학 연구소 소장
그리고 많은 전문가들이 아직 밝혀지지 않은 강호순의 여죄가 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어. 그 이유가 뭘까? 작년 '꼬꼬무'에서 최초로 공개한 영상이 있거든. 바로 강호순의 자백 영상이야. 이 영상에서 그는 총 10건의 살인사건 중 1차 사건에 대해 자백했어.

"이거 별건으로, 저 숨긴 게 하나 있습니다. 사람 죽인 게 하나 더 있습니다. 강원도에서 사람 하나 죽인 게 더 있습니다. 강원도 정선에서요. 군청 가는데 어디로 가냐고 물어보니까, 그 아가씨도 마침 군청 간다고 해서. 그 아가씨 태워서 가다가 제가 딱 강간해서 죽였습니다."
-강호순
강호순이 살인 도구로 사용한 곡괭이에서 신원 미상 여성 2명의 DNA가 나왔어. 그가 자백한 피해자 외에, 다른 피해자가 더 있을 수 있다는 뜻이지. 이런 상황에서 뜬금없이 첫 번째 범행을 자백한 거야. 당시 강호순을 직접 만난 권일용 프로파일러는 이 자백에 대해 이렇게 분석했어.

"강호순은요, 저렇게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이 아니에요. 뭔가 지금 숨기고자 하는 다른 범죄가 있다면, 첫 번째 범죄를 빨리 드러내서 다른 것을 부각시키려고 하는 그 수법 중 하나예요. 그렇다면 그렇게까지 하면서 숨겨야 될 범죄는 결국 뭐가 있느냐. 자기가 생각해도 세상에 드러났을 때 너무나 파렴치한 범죄일 수 있어요. 아동이거나 노인이거나. 이런 유형의 범죄일 가능성을 우선순위로 분석할 수 있겠죠."
-권일용 프로파일러
강호순이 첫 번째 범행을 자백하면서 까지 감추려고 했던 게, 권일용 프로파일러는 그의 여죄가 미성년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를 노린 범행일 수 있다고 분석했어. 그래서 강호순이 신원 미상 여성 2명의 정체를 끝까지 숨기려고 한다는 거야. 정말 강호순이 여죄를 숨기고 있다면, 혜희 사건과도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을까? 물론, 강호순이 범인이 아닐 가능성도 존재해. 그가 본격적으로 범죄를 저지른 건 2000년대 중반부터였으니까. 하지만 혜희 사건 당시, 범인에 대한 작은 단서가 남아있었더라면, 과학수사 기법이 발전한 지금이라도 다시 조사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특히 송혜희 양 사건의 경우에는 차량 이용의 가능성을 염두에 뒀을 때, 차량의 이동 경로에 있는 톨게이트라든지 경찰이 하는 수사 기법이 있거든요. 그리고 특히 만약에 송 양 실종 추정 지점의 도로 바닥에 찍혀 있는 자국, 타이어의 흔적을 윤적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흔적을 못 찾은 것이 아니라 안 찾은 것이죠. 전혀 초기에 대한 수색과 수사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특정 대상자에게 혐의를 씌울 수 있는 근거도 전혀 없어요."
-표창원 프로파일러, 범죄과학 연구소 소장
▲ 유일한 열쇠
이제 혜희 사건의 남은 단서는 딱 하나, 혜희와 함께 내린 30대 남성뿐이야. 당시 수사기관의 판단대로, 그가 혜희를 납치한 범인일까? 표창원 프로파일러는 그가 범인일 수도, 목격자일 수도 있다고 말해.

"우선 첫째, 그 30대 남성이 버스에 탑승할 때 송 양보다 먼저 탑승했고요. 아울러 기사에게 자신의 행선지를 밝혔습니다. 그건 결국 납치를 계획하고 있던 사람이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행동인 거죠. 그다음에 더 중요한 것은 뭐냐 하면, 송 양은 어딘가로 이동이 이루어졌습니다, 바로 그 뒤에. 그런데 같은 버스를 타고 온 사람이 송 양을 다른 곳으로 이동시킬 수단은 없는 거죠. 그 남성이 지나가면서 마주쳐 오는 차량을 봤다든지 혹은 주차하고 기다리고 대기하고 있는 차량을 봤다든지, 그럴 경우에 이 목격자가 봤던 것은 매우 중요하죠."
-표창원 프로파일러, 범죄과학 연구소 소장
아직 그의 정체가 뭔지 단언할 수는 없어. 하지만 단 하나 확실한 건, 그가 이 사건을 해결한 유일한 열쇠라는 거야. 지금까지 나온 그에 대한 단서들을 정리해 볼게.

이 외에 그에 대한 단서, 또 어떤 것들이 있을까? 처음 보는 얼굴, 외지인이라는 거. 그를 찾기 위해 '꼬꼬무' 제작진이 다시 한번 사건이 일어난 마을을 샅샅이 취재했어. 27년 전 그날에 대해 기억하는 사람이 있었을까?

"그때 당시 공사했을걸? 길 공사. 공사하는 데는 (외지인 인부들이) 왔다 갔다 했지."
"도로공사 할 때 막 인부들이 막 왔다 갔다 일을 하고 있었던 상태였기 때문에. 혹시나 (범인 아닌가) 추측하고 그런 말들이 좀 있었기도 하고. 그런 게 좀 조심스럽다고 그러더라고요. 무섭기도 하고."
-마을 주민들
당시 마을에선 공사장 인부들 중 범인이 있다고 의심한 주민도 있었다고 해. 혹시 우리가 찾는 30대 남성, 이 공사장 인부 중 한 명은 아니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30대 남성이 공사장 인부였을 확률은 매우 적어. 그가 막차를 타고 내렸다는 건 마을 인근에 거처가 있었다는 건데, 당시 마을엔 외지인이 머물 숙박시설 자체가 없었다고 해. 그렇다면 이 30대 남성은 외지인이면서, 마을 근처에 거처가 있는 사람이었을 확률이 커. 이것도 중요한 단서가 될지 모르지.
근데 숙박업소가 없는 마을에 외지인이 머물 만한 곳. 뭐가 있을까? 제작진도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탐문을 했어. 그러다 정말 상상도 못 한 이야기를 듣게 됐다고 해. 바로 이곳에 관한 이야기야.

"저기 직업훈련원 자리가 저 공장 자리 있는 데예요. 직업훈련원에서 굴착기하고 지게차하고 다 저기 가서 시험 봤으니까. 그거 뭐야 기숙사. 여기 사람이 아니라고. 타지에서 왔으니까 여기 기숙사 생활을 한 거지."
-동네 주민
마을에 중장비 기술을 가르치는 직업훈련원이 있었고, 외지에서 온 교육생들이 머무는 기숙사가 있었다는 거야. 자세한 내막을 알아보기 위해 업체를 수소문해 봤지만, 이미 약 10년 전에 폐업했대. 그럼 이대로 포기해야 할까? 제작진이 꼬리에 꼬리를 문 취재 끝에 당시 관계자를 찾아냈어.

제작진: "선생님은 직업훈련원 시절부터 쭉 근무를 해 오신 거예요?"
당시 직업훈련원 강사: "그렇지. 94년도에 입사해서 20년을 내가 거기서 근무했으니까."
제작진: "그러면 거기 있던 학생들은 다 통학하고 그랬었어요?"
당시 직업훈련원 강사: "다 기숙이라니까 100%. 100% 기숙이에요. 여기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오는 게 아니라 부산, 대구, 전국에서 오니까."
제작진: "그러면 거기에서 만약에 학생들이 밖에서 나가서 놀려면?"
당시 직업훈련원 강사: "평택. 평택이 제일 많이 가요. 왜 그러냐면 평택으로 가는 버스밖에 없으니까. 그게 7번인가 몇 번인가 할 거야. 7번."
당시 교육생들이 이용한 버스가 7번. 혜희와 30대 남성이 탔던 바로 그 버스야. 그럼 이곳 교육생들이 이용한 버스정류장은 어디였을까? 맞아. '아랫마을 입구' 정류장이야. 그리고 또 한 가지 확인해야 할 게 있어. 아까 표창원 소장이 언급했던 범행 수단, 바로 차량.
제작진: "기억나시는 학생들 중에는 뭐 차를 가지고 있었던 사람은?"
당시 직업훈련원 강사: "있기는 있었지. 근데 그렇게 많지는 않아. 뭐 한 두 명 정도?"
우리가 찾는 30대 남성이 이곳의 교육생이 맞다면, 그는 범인일 수도, 목격자일 수도 있는 상황이야. 비록 업체는 폐업했지만, 어딘가에는 당시 교육생들의 명단이 남아있을 거야. 그러니 지금이라도 이 사건에 대한 재수사가 이뤄져서,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진범, 이춘재의 정체를 밝혀낸 것처럼. 사라진 30대 남성, 그리고 그날의 진실까지 꼭 찾기 바라는 마음이야.

"법적으로는 이미 공소시효가 다 경과가 되고 더 이상 해결할 수 없다 할지라도, 우리가 진실을 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거든요. 이춘재 같은 경우에 그의 연쇄 살인 사건은 공소 시효가 다 경과가 된 이후예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경찰은 가서 밝혀냈잖아요. 송혜희 양이 살아있는지 사망했는지 어디에 있는지 어떤 상태인지 그리고 누가 왜 이런 범행을 저질렀는지 반드시 밝혀져야 합니다."
-표창원 프로파일러, 범죄과학 연구소 소장
▲ 아버지의 숨겨진 이야기
2024년 8월. 오랜만에 아버지 얼굴에 생기가 감돌아.
"마 사장, 이번엔 왠지 느낌이 좋아. 현수막 좀 튼튼하게 잘 부탁해!"
다가올 추석 연휴에 서해 영종도 쪽으로 혜희 현수막을 붙이러 갈 거래. 아버지도 처음 가는 곳이라, 새로운 제보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들떠 계셨어. 그런데, 현수막을 찾아가기로 한 날짜가 다 됐는데 아버지가 오질 않는 거야. 그 시각, 아버지의 트럭이 뜻밖의 장소에서 발견됐어.

"그때 제가 현장 도착했을 때는 1톤 트럭 차량이 역주행해서 상대편 마주 오는 덤프트럭과 충격한 상태이고 그때 당시 앞면 전면 유리가 다 파손됐고… 통상적으로 이 사고처럼 반대편 차선을 넘어서 계속 질주하는 경우는 정상적인 운행 패턴은 아니라고 봐야죠."
-임종열, 당시 현장 출동 경찰
당시 역주행을 했다는 1톤 트럭, 누구의 차일까? 맞아. 아버지의 트럭이야. 상대 덤프트럭 운전자는 큰 부상이 없었다고 해. 하지만 아버지는, 이 사고로 돌아가셨어.


사고 현장에서 발견된 아버지의 유품. 아버지는 마지막까지 "애타게 찾고 있습니다"라고 적힌 혜희의 현수막을 곁에 두었어.
아버지는 딸을 찾아다닌 그동안 수천만 원의 빚을 지고, 신용불량자가 됐어. 호떡을 팔고 폐지를 주워 적은 돈이라도 모이면, 그 돈을 전부 전단지와 현수막을 만드는데 쓰셨대. 간혹, 후원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모두 거절하셨다고 해. 실종된 자식 앞세워 돈을 받고 싶진 않다면서.
아버지의 건강도 날이 갈수록 악화돼 갔어.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높은 곳에 현수막을 다느라, 사다리에서 수도 없이 떨어졌대. 진통제 없이는 허리를 펼 수 조차 없었대. 이후 심장 쪽에도 문제가 생기면서, 여러 차례 수술까지 받으셨어. 그러다 재작년 8월 교통사고가 일어난 거야. 경찰은 아버지가 운전 중에 심장 질환으로 의식을 잃은 걸로 판단했어.
아버지는 자신의 삶을 희생하며 왜 이렇게까지 혜희를 찾아다녔을까? 아버지는 주변인들에게 이렇게 말했대.
"혜희가 사라진 건 다 나 때문입니다."
지금껏 혜희를 찾는 데 이토록 매달린 것도 그 죄책감 때문이었대. 아버지는 왜 모든 게 본인 탓이라고 말씀하셨을까? 아버지의 오랜 지인의 이야기를 들어볼게.

"혜희 아버지가 가축 사업을 했는데, 그 일을 안 했으면 혜희를 안 잃어버렸을 거라고 자꾸 후회를 해요. 왜냐하면 그렇게 가축 사업을 하다 보니까, 외딴곳으로 들어가야 되잖아요. 동네에서 좀 외진 곳으로. 그러다 보니까 그 외진 곳을 혜희가 혼자 이렇게 걸어 다니고 그래서 노심초사했는데, 그 일이 현실로 다가와서. 혜희가 또 실종이 되고."
-나주봉, 아버지의 20년 지인
그날 내가 버스정류장으로 마중만 나갔더라면… 그 외진 곳으로 이사만 가지 않았더라면… 애초에 혜희가 나 같은 부모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아머지는 지난 25년간 이런 후회와 자책들을 수도 없이 해오셨다고 해. 25년간 그토록 애타게 찾은 혜희. 아버지는 딸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었을까?

"혜희야 한 번만이라도 아빠를 한번 찾아다오. 아빠는 너 찾는 게 평생의 소원이고, 너 찾아야 아빠가 조용히 죽을 것 같다. 꼭 살아서 돌아와 다오. 사랑하는 내 딸 혜희야, 혜희야…"
▲ 거리의 현수막을 본 사람들
간절한 마음으로 혜희를 찾아다녔던 아버지. 그리고 그 간절함을 본 많은 사람들이 있어.

"아버지가 그 현수막을 설치하는 걸 한번 봤어요. 직접 차를 타고 가면서. 99년도 같은 경우는 제가 진짜 왕성하게 활동할 때라 유독 거리에 현수막이 눈에 띄었던 것 같아요. 그런 게 보일 때마다 찍었어요. 지방 촬영을 갔을 때에도 '이곳에도 오셨구나' 하고 또 찍고. 그러니까 저한테는 좀 더 가슴 깊이 와닿는 거죠."
-이상민, 가수
이상민은 16년간 현수막을 보고 SNS에 직접 글을 올려 실종된 혜희를 찾아달라 했어.

"저야 뭐 이렇게 SNS를 통해서 쉽게 올릴 수 있지만, 아버님은 당시에는 거리를 계속 걸어 다니시고 운전하고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하셨으니까요. 동참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상민, 가수
현수막을 오랫동안 지켜본 또 다른 사람이 있어. 바로, 가수 솔비야.


"그때 아버님을 직접 만나 뵀었어요. 아버님은 무슨 형광색, 초록색 같은 옷을 입고 내리신 거예요. 고속도로 같은 데 현수막을 걸 때 혹시라도 안 보일까봐, 그 형광 옷을 입고 계신다라고 얘기를 들어서 굉장히 좀 인상 깊었고. 굉장히 간절해 보였어요. 그래서 제가 혹시 뭔가 함께 그 슬픔이라도 나눌 수 있다면 좋겠다…"
-솔비, 가수
솔비는 'Find'이라는 곡에 아버지의 바람을 가사로 적었어.

"계절이 바뀌어 가도 너는 없고 네 사진만 있는데/ 길고 긴 터널 끝 문턱에서 어둠 속에 불을 밝혀 기다리고 있을게."
딸을 찾는 아버지의 현수막을 보고, 누군가는 SNS로 마음을 모으고, 누군가는 아버지의 슬픔을 노래로 위로했어. 연극 '나영이를 찾아주세요'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극으로 만든 거야.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힘을 보탰어.

▲ 남겨진 숙제
혜희처럼 18세 미만에 실종돼 20년 넘게 돌아오지 않고 있는 아이들이 전국에 몇 명이나 될 것 같아? 올해 1월 기준으로 1,192명.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여전히 실종상태라는 거, 알고 있었어? 그 부모님들 역시 혜희 아버지처럼 수십 년째 애타는 심정으로 아이를 찾고 있어.
그래서 '꼬꼬무' 제작진은 작년 연말부터 6개월에 걸쳐 특별한 프로젝트를 준비했어. 한국과학기술연구원 AI·로봇연구소의 최신 얼굴 나이 변환 AI 기술을 통해, 장기 실종 아동의 현재 얼굴을 제작하기로 한 거야.

"옛날 저희가 초기 모델에서는 어릴 때 사진이 모자를 쓰거나 돌아가는 얼굴이면 사실 정면을 추정하기가 좀 어려웠어요. 무엇보다 또 만 2~3세 이런 얼굴은 거의 손을 못 대는 수준이었어요. 그런데 요즘 쓰고 있는 생성형 AI 기술은 아무래도 더 많은 데이터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일반화 능력이 뛰어납니다."
-김익재 소장, 한국과학기술연구원 AI·로봇연구소
그리고 약 100일간의 수많은 회의와 작업 끝에 드디어 결과물이 나왔어. 이 결과물을 들고 찾아간 곳은 어딜까.


"이게 하늘이(실종 당시 만 4세)가 마지막으로 유치원에서 찍은 사진이고요. 그래서 실종 당시 그때 사진이고요. 지금은 아무리 나이 먹은 그 얼굴을 기억을 하려고 그래도 기억이 안 되고, 지금도 다섯 살 그 무렵만 얼굴이 선해요."
-조병세, 조하늘 아버지
실종 당시 만 4세였던 조하늘 양. 2026년, 30대 현재 추정 모습이야.




"우리 하늘이가 이렇게 변했다고 한다면, 너무나도 뭐라고 이렇게 말을 할 수가 없네요…"
-조병세, 조하늘 아버지
실종 당시 만 2세였던 김선영. 현재 50대 추정 모습이야.




"(이 사진으로) 희망을 좀 가지게 되는 것 같더라고요. 앞으로 이렇게 해서 찾을 수만 있으면 참 좋겠다…"
-백명자, 김선영 어머니
그럼 열여덟 살, 한창 꿈 많을 나이에 실종됐던 혜희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 올해 45세가 됐을 그녀의 현재 얼굴도 추정해 봤어.



'꼬꼬무'는 장기실종아동들의 현재 모습을 추정했고, SBS A&T 영상디자인팀에서 생성형 AI 기술을 이용해 이 사진들을 초고화질 동영상으로 만드는 작업을 진행했어. 움직이는 영상에 셀럽들이 목소리 참여를 해서, 실종 아이들을 찾는 영상을 만들었어.

"송혜희 씨를 찾습니다. 1999년 당시 열여덟 살이었던 그녀는, 경기도 평택시 도일동 인근 버스정류장에서 실종됐습니다."
-목소리 재능 기부, 이상민

"이름 조하늘, 여아. 실종 당시 만 4세. 1995년 서울 구로구에서 실종되었고, 입술 아래 점이 있었으면, 당시 빨간색 상하의를 입고 있었습니다."
-목소리 재능 기부, 손담비

"이름 김선영, 여아. 실종 당시 만 2세. 1978년 경기도 부천에서 실종되었고, 당시 주홍색 상의와 빨간 꽃무늬 바지를 입고 있었습니다."
-목소리 재능 기부, 최진혁

"이름 최민석, 남아. 실종 당시 만 2세. 1991년 광주 북구에서 실종되었고, 당시 주황색 구두를 신고 있었습니다."
-목소리 재능 기부, 고우림

이 QR코드를 촬영하면, 장기 실종 아동 찾기 대국민 프로젝트를 확인할 수 있어. 실종 아동들의 이름과 얼굴을 확인하고 널리 공유해 줘.
우리나라에 실종아동 관련 법률이 처음 만들어진게 언제일 것 같아? 2005년이야. 지금은 18세 미만 아동의 경우, 실종 신고 즉시 수사가 시작돼. 경찰이 실종아동 정보를 공개해 재난문자를 발송할 수 있게 된 것도 다 실종아동법 덕분이야.
이런 법이 만들어지기까지 맨 앞에서 가장 애쓴 사람들, 누구였을까? 바로 장기실종아동의 부모님들이야. 실종아동의 부모이자, 실종단체 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서기원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볼게.

"저희 딸아이가 1994년 4월 27일 날 실종이 됐어요. 그때만 해도 내 아이가 없어지면 그 근처 파출소에 신고하면 다 연결이 된 줄 알았단 말이에요. 그런데 실상은, 실종이 되면 아이를 찾을 수 있는 시스템이 아무것도 없었던 거죠."
-서기원, 실종아동 서희영 아버지


부모님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실종아동법 덕분에 현재는 실종아동이 발생해도 99% 조기에 해결되고 있다고 해.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수치가 장기실종아동 부모들을 더 힘들게 한대.
"결국에 국가가 생각하고 있는 건, 이제 실종 아동 문제 어느 정도 해결됐어요. 그리고 관심도 떨어졌어요. 심지어는 공익 광고조차도 안 해요. 실종 아동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나라 실종법이 만들어지고, 지금 현재 우리 아동들이 안전하게 성장할 수 있게 만들어진 거잖아요. 그럼 여기에 희생자들이 있었다는 걸 기억해 주셔야 돼요. 알아주시고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고."
-서기원, 실종아동 서희영 아버지
전국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실종아동의 부모였던 혜희 씨의 아버지조차도 사람들의 무관심이 가장 무섭다고 말씀하셨어.
그래서 오늘 방송은 이 프로젝트의 끝이 아닌, 시작이 될 거야. 한국과학기술연구원 AI로봇연구소와 함께 이 프로젝트를 올 한 해 동안 계속해서 이어갈 예정이거든. 혹시, 미처 신청 못 한 장기 실종 아동의 가족들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연락 주시길 바라.


"(과거에 나이 변환했던) 사진을 보면서 저희가 만들 때 아쉬운 부분이 많이 있죠. 얼굴 해상도가 낮아서 질감을 그대로 쓰지 못한 경우에는 얼굴 사진에 톤이 전반적으로 잘못 예측이 되거나 하는 부분이 있었어요. 다시 생성형 AI로 전체로 진행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훨씬 더 퀄리티가 좋아졌고요. 이번에 새로운 기술을 도입할 수 있다는 기회가 된 것 같아서 굉장히 또 기쁘고, '꼬꼬무' 하는 것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저희는 이런 기술로 기여를 하지만, 그걸 또 방송으로 내보내 주시고, 누군가는 그걸 보고 제보해 주시는 분이 있고. 단 한가족이라도, 아니면 더 많으면 좋고. 그런 가족들의 상봉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정말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거 같습니다."
-김익재 소장, 한국과학기술연구원 AI·로봇연구소
이번 특집 방송에 많은 관심과 제보가 이어져서, 단 한 명의 아이만이라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그날이 왔으면 좋겠어.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BS연예뉴스 강선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