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연구소는 한국을 대표하는 외교안보 연구기관이지만 현재는 서울 종로구의 연합뉴스 빌딩 한 층에 세 들어 사는 곁방살이 신세입니다. 경기도 판교의 드넓은 자연녹지 위의 대형 건물을 독점했던 몇 년 전과 비교하면 상전벽해의 변화입니다. 어쩌다가 세종연구소는 부동산 부자에서 세입자로 전락했을까.

판교 시절의 세종연구소는 별다른 수입 없이 연구원과 직원 임금, 재산세 등을 꼬박꼬박 대느라 만성적인 재정난을 겪었습니다. 문재인 정부 때까지의 대책은 자연녹지인 연구소 부지를 용도 변경시킨 뒤 민간 사업자에게 임대해 주고, 임대 수익으로 연구소를 운영하는 것이었습니다. 땅과 건물을 팔아버리면 당장 손에 현금이야 쥐겠지만 세금 내고 연구원 임금 주다 보면 밑 빠진 독처럼 금고는 곧 바닥을 드러내기 때문에 감독관청인 외교부도 임대에 동의했었습니다.
윤석열 정부 들어 상황이 급변했습니다. 제법 오랫동안 추진됐던 임대 계획은 백지화됐고, 세종연구소 재정난 해소 대책은 매각으로 급선회했습니다. 그리고 용도 변경되면 수조 원이 될 수 있는 판교 땅 5만 7천여㎡와 건물 1만 3천여㎡가 3천억 원에 팔려 나갔습니다. 비합리적 조치로 비칠 소지가 있습니다. 현 외교부의 수장도 "왜 매각했는지 참 의아하다"며 혀를 찼습니다.
여당에서는 세종연구소 부지 매각을 윤석열 정부의 국공유 자산 헐값 매각의 사례로 보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김건희 여사와 연결됐다는 주장까지 나옵니다. 세종연구소 판교 부지와 건물을 품은 곳은 K-방산의 간판 주자인 LIG D&A입니다. LIG D&A는 윤석열 정부와 유착 의혹을 낳고 있는 사족보행 로봇 업체 고스트로보틱스도 인수했습니다. LIG D&A가 고스트로보틱스와 세종연구소 판교 부지를 인수하던 시기에 LIG D&A의 오너는 설 명절 특사로 복권됐습니다. LIG D&A와 윤 정부의 동시다발적 연루 의혹입니다.
5년여 임대 추진…정권 교체 후 1년 만에 매각 급변
SBS 취재를 종합하면 세종연구소와 감독관청인 외교부는 일찍이 세종연구소 부지의 임대에 합의했습니다. 박준우 세종 재단 이사장 재임 시기(2015년 2월~2018년 2월)에 세종연구소와 외교부가 세종연구소 부지 임대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것으로 파악됩니다.

세종연구소 부지 임대 계획은 백종천, 문정인 이사장 시기(2018년~2023년)에 추진됐습니다. 임대 사업 실무를 맡은 세종연구소 발전위원회는 이종석 수석연구위원(현 국정원장)이 이끌었습니다. SBS가 확보한 2018년 6월부터 2020년 4월까지 세종연구소와 외교부 간 주고받은 공문을 보면 세종연구소는 판교 부지의 용도 변경과 임대 추진을 몇 차례 요청했고, 외교부는 매번 이의 없이 허가했습니다.
세종연구소는 공모를 통해 모다라는 업체를 임대 사업자로 선정했습니다. 2023년 3월 '외교부 승인 후'의 조건부로 임대 계약은 체결됐습니다. 부지 3만 8천여㎡를 50년간 빌려주고 세종연구소는 모다 측으로부터 매년 112억 원을 받는 내용이었습니다. 당시 계약에 정통한 세종연구소 소식통은 "112억 원을 받고 매년 재산세 등을 납부해도 90억 원 정도가 남는 구조였다", "세종연구소가 살 길이 열렸었다"고 말했습니다.
윤석열 정부의 외교부가 갑자기 제동을 걸었습니다. 임대 계약의 조건은 외교부의 승인이었는데 이전까지 임대에 찬성했던 외교부가 반대로 돌아선 것입니다. 외교부는 2023년 6월 "(임대) 사업의 불확실성이 크므로 '세종 재단이 현 사업계획 승인을 요청할 경우' 이를 수용하기 어려운 것으로 판단한다"는 공문을 내놨습니다. 특이한 점은 당시 세종연구소는 외교부에 사업계획 승인을 요청하지도 않았다는 것입니다. 외교부는 공직 사회가 가장 꺼리는 가정적 상황을 전제로 요청 불수용 결정을 한 셈입니다.

세종연구소 소식통은 "이용준 세종 재단 이사장, 김태효 안보실 1차장 등이 이야기가 돼서 '매각 반대, 임대 찬성'의 기존 입장이 180도 뒤집혔다"고 전했습니다. 이후의 일은 일사천리였습니다. 이사장이 바뀐 세종연구소는 2023년 12월 연구소 부지와 건물을 매각해서 서울 시내로 이전하겠다는 계획의 승인을 요청했습니다. 외교부는 2024년 1월 매각 계획을 승인했습니다. 석 달 후 세종연구소 부지 5만 7천여㎡와 건물 1만 3천여㎡는 민간 업체에 팔렸습니다. 기자는 매각으로 방침을 바꾼 경위 등을 묻기 위해 세종연구소에 몇 차례 연락했지만 세종연구소 측은 어떤 답변도 하지 않았습니다.
"국공유 재산 헐값 팔아먹기"…"참 의아한 매각"
작년 8월 18일 국회 외통위 전체회의에서 세종연구소 부지 매각 문제가 공론화됐습니다. 김영배 민주당 의원은 먼저 윤석열 정부에서 임명된 세종연구소의 이사장과 연구소장의 이력을 비판하는 것으로 포문을 열었습니다. 이어 세종연구소 부지와 건물 매각을 맹공했습니다.
김영배 의원 : 세종연구소가 자구를 위해서 위원회를 만들어 가지고 2015년부터 계획을 세워서 성남시하고 도시계획 절차에 따라서 지구단위계획을 몇 년간에 걸쳐서 용역비를 들여서 했어요. 그런데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폐기하고 그 부지를 LIG한테 매각을 했습니다, 3천억에. 한 1만 7천평 이상 되는데 이게 자연녹지로 있는 땅이거든요. 만약에 기존의 계획대로 개발을 해 가지고 팔면 엄청난 액수의 돈입니다. 이 자연녹지를 이렇게 팔기 위해서, 저는 아무리 봐도 공공부지를 짜고 팔아먹은 것 아니냐 이렇게밖에 볼 수 없거든요.
작년 8월 18일 외통위 전체회의에서 조현 외교부 장관은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며 소극적인 태도를 취했습니다. 두 달 뒤인 작년 10월 15일 외교부 국감에서 김영배 의원은 세종연구소 부지 매각 문제를 재차 질의했고, 조현 장관은 "왜 매각했는지 의아하다"며 의혹에 쐐기를 박았습니다.
김영배 의원 : 결국에는 그 (용도 변경 및 임대) 사업을 무산시키고 세종재단의 땅을 기업한테 매각하게 되는, 이게 지난번에도 제가 지적드렸지만 전형적으로 많이 보이는 국공유재산을 팔아먹는 이런 의혹이 강하게 드는데, 이것 어떻게 보십니까? 조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이시지요?
조현 장관 : 예. 조사는 철저히 하겠습니다. 저는 그런 것 떠나서 거기가 KOICA도 있고 여러 가지로 세종연구소가 함께 그 지역을 특화시킬 수 있는 좋은 위치인데 왜 매각을 해 버리고 그렇게 했는지 참 의아하게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철저히 조사하겠습니다.
김영배 의원 : 맞습니다. 이게 최근에 제기되는 김건희 여사 관련되어 있는 각종 땅 투기 혹은 매각 의혹하고 직결된다, 저는 그런 감을 갖고 있거든요. 함께 보시면 좋겠습니다.
2024년 집중적으로 윤 정부와 엮인 LIG D&A
LIG D&A는 2024년 4월 세종연구소 토지 5만 7천여㎡, 건물 1만 3천여㎡ 취득을 공시했습니다. 취득 가격은 약 3천억 원. LIG D&A 측은 "증가하고 있는 국내외 연구개발 수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R&D 인력이 더욱 효율적으로 일하는 근무 환경을 조성해 지속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부지 매입의 의의를 밝혔습니다.
용도 변경되면 가치가 10배 이상 뛸 수 있는 국공유 자산을 헐값에 매입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LIG D&A 고위 관계자는 "취득 부서가 오히려 너무 비싸게 샀다는 사내의 비판을 받았다"며 일축했습니다. 또 "경쟁 입찰로 취득한 것이라서 특혜는 없었다"고 해명했습니다. 경쟁 입찰을 통해 되레 비싸게 매입한 정당한 행위였고, 특혜 소지는 없다는 뜻입니다.

세종연구소 부지와 건물의 매각 공고와 입찰이 있었던 때와 LIG D&A 구본상 회장의 사면복권(2024년 2월), LIG D&A의 고스트로보틱스 인수(2023년 5월~2024년 7월) 시기가 겹치는 점이 공교롭습니다. 사면복권은 권력의 의지가 없으면 안 되는 일이고, 고스트로보틱스는 거액 명품 시계 검건희 제공과 용산 대통령실 로봇개 시범 운용 등으로 권력 유착 의혹을 받는 회사입니다. (▶ 관련 기사 :
윤 정부의 '고스트로보틱스 스캔들'과 LIG D&A의 어떤 연루 [취재파일]) 여기에 더해 윤석열 정부로부터 헐값에 세종연구소 부지를 사들였다는 특혜 의혹이 더해졌습니다. LIG D&A는 "까마귀 날자 배 떨어졌다"고 항변하지만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라는 시선도 많습니다.
다음 주에 의혹의 실타래에서 실마리 하나가 풀립니다. 세종연구소와 임대 계약을 맺었다가 해지 당한 모다 측이 세종연구소와 LIG D&A를 상대로 제기한 소유권 말소 소송의 1심 선고가 오는 14일 예정된 것입니다. 재판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제30민사부가 어떤 판단을 할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