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무기체계 사업에 지장을 초래할 정도로 돈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KF-21 전력화가 지연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공대공 버전의 블록Ⅰ 40대와 공대지 추가 버전의 블록Ⅱ 80대 양산을 위해 내년부터 6년 동안 매년 3조~5조 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스케줄로 인해 국방비 주머니 사정이 팍팍해져 어떤 식이든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방사청 설명입니다.
예산의 제한을 타개하려고 방사청은 블록Ⅰ과 Ⅱ의 양산 일정을 최대 2배 연장한다는 구상을 하고 있습니다. KF-21의 한국 공군 인도 시기도 그만큼 늦춰져 전력 공백이 명약관화입니다. 생산률 저하 탓으로 가격 내리기 어려워 수출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KF-21 양산은 어제 오늘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업이 아닙니다. 방사청은 개발, 양산 관련 예산과 일정을 끊임없이 다듬어왔습니다. 그래서 올해 들어서야 갑자기 "내년부터 KF-21이 돈을 너무 많이 먹는다"는 방사청의 해명은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양산 일정을 늦추고 늘리겠다"는 방사청의 처방은 대충 겉에 드러난 현상만 다독이려는 대증요법 같습니다.
방사청이 애초에 단추를 잘못 꿰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시계를 5년 전으로 돌리면 흥미로운 장면들이 나옵니다. 당시 방사청은 "장거리공대지미사일 없는 전투기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꼬리(장거리공대지)가 몸통(KF-21)을 흔들 수 있다"고 일찌감치 예언했었습니다. 5년 전 예언대로 장거리공대지 없는 KF-21 블록Ⅰ이 나타났고, 한발 늦게 장거리공대지 붙이는 블록Ⅱ 양산 일정과 꼬이면서 예산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2026년 방사청의 KF-21 사업 진단은 5년 전 상황을 살피는 데서 시작하면 어떨까요? 질환의 기저를 꿰뚫는 진단에서 바른 처방이 나오는 법입니다.
2021년 방사청장의 우울한 예언
2021년 10월 12일 국회 국방위의 방사청 국정감사에서 기동민 민주당 의원은 국산 장거리공대지미사일 개발 주관기관이 국방과학연구소에서 업체로, 다시 국방과학연구소로 오락가락하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장거리공대지미사일이 일찍 개발되지 않고 장거리공대지 없는 KF-21이 먼저 등장하면 KF-21 사업이 실패할 것이라는 우려가 깔린 질의였습니다.
기 의원 질의에 강은호 당시 방사청장은 "(장거리)공대지미사일이 없는 무기체계(KF-21)가 나온다면 상당 기간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깊이 고려해야 한다"는 미래지향적 답변을 내놨습니다. 강 청장의 걱정대로 '공대지 없는 무기체계'인 KF-21 블록Ⅰ이 양산되기 시작했습니다. 강 청장이 '상당 기간 문제 발생'을 언급했듯 블록Ⅰ은 공대지 없는 상태에서 예산난까지 이중의 문제와 맞닥뜨렸습니다.
강 청장은 이날 국감에서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일까지 발생하지 않도록 검토를 해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꼬리는 장거리공대지미사일이고, 몸통은 KF-21입니다. 장거리공대지 없는 KF-21은 외국 공군은 물론이고 한국 공군조차 외면하는 반쪽 전투기가 될 것이라는 방사청장의 통찰이었습니다. 이후 5년이 지난 현재, KF-21 블록Ⅰ은 장거리공대지 없는 전투기가, 블록Ⅱ는 장거리공대지 개발 난항을 겪는 전투기가 됐습니다.
장거리공대지미사일 없는 KF-21은 애물단지가 될 것이라는 예언은 강은호 청장의 전매특허가 아닙니다. 여러 언론, 방산업계에서 "장거리공대지미사일 없는 블록Ⅰ은 한국 공군이야 울며 겨자 먹듯 받겠지만, 수출은 안 된다", "국산 장거리공대지 개발에 발목 잡히지 말고 블록Ⅰ부터 성능 검증된 장거리공대지미사일을 체계통합해야 한다"고 '염불'을 외웠었습니다.
2021년 국방과학연구소장의 우울한 예언

방사청장이 KF-21의 불안한 미래를 예언했던 방사청 국감 일주일 뒤인 2021년 10월 19일 국방과학연구소 ADD 국감이 열렸습니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국방과학연구소 관계자로부터) 2028년까지 (국산 장거리공대지의) 개발이 불가능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박종승 ADD 당시 소장은 "2028년도에 연동해서 나가는 것은 유도 폭탄류가 의논됐다", "2028년도 국산 장거리공대지에 대해서는 공군에서는 그렇게 요구하고 있고, 방사청은 거기에 맞게 어떤 형태든지 정책 결심을 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어 "스케줄에 대해서는 추후에 검토해 봐야 되겠지만 그것은 별도로 보고하겠다"며 즉답을 피했습니다.
박종승 소장의 발언은 유도폭탄이야 2028년까지 되겠지만 국산 장거리공대지미사일 2028년 개발 기한은 모종의 정책적 판단에 따라 변경될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됐습니다. 하태경 의원실 관계자는 "국산 장거리공대지 개발을 위한 중요한 시험 스케줄을 잡지도 못하고 있다", "개발 우선순위에서 밀린 것으로 보인다"고 기자에게 부연설명했습니다.
작년 봄 기자는 박종승 전 소장과 전화통화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국산 장거리공대지 개발을 하면서 동시에 투 트랙으로 KF-21 블록Ⅰ부터 타우러스나 슬램ER같은 성능이 입증된 외국 장거리공대지를 체계통합했어야 블록Ⅰ이 살아나는 것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박 전 소장은 "국산, 타우러스 등을 모두 체계통합해야 KF-21의 수출 경쟁력이 높아진다", "구매 희망 국가들 앞에 다양한 메뉴를 펼쳐놔야 KF-21 수출이 잘 될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결국 몸통 흔드는 꼬리

이렇듯 방사청과 ADD는 장거리공대지가 KF-21의 앞길을 막을 줄 일찌감치 알았습니다. 실질적인 처방을 못 내렸을 뿐입니다. 그 동안 꼬리가 몸통을 흔들어 버렸습니다. 방사청이 발 빠르게 각성해 행동에 나섰으면 어땠을까요?
타우러스나 슬램ER 같은 검증된 장거리공대지를 KF-21 블록Ⅰ에 체계통합했으면 블록Ⅰ은 공대공, 공대지를 모두 갖춘 완성형 전투기로 양산돼 벌써 수출 전선에 올랐을 것입니다. 블록Ⅰ 양산의 꼬리를 물고 곧바로 천문학적 예산의 블록Ⅱ를 연쇄 양산하는 기괴한 계획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종합하면 현재의 방사청이 골치를 앓고 있는 블록Ⅰ과 Ⅱ의 예산난과 양산 일정 조정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방사청과 ADD, 방산업체들이 적의 재밍, 방공망을 뚫고 유유히 500km를 초저공 비행해 창문 크기 표적을 정확히 때린 뒤 삼중 관통 탄두로 강화콘크리트 5.5m를 뚫고 폭발하는 국산 장거리공대지를 적시에 단박에 개발한다면 그나마 다행일 터. 하지만 국산 장거리공대지는 관통력 약한 단일 탄두로 알려졌습니다. 개발 초기부터 추진력 급감 등의 원인으로 두 번 연속 바다에 빠졌습니다. 양산되면 한국 공군이야 떠안아야 하겠지만 성능이 한두 차원 향상되기 전까지는 KF-21 수출에 도움 될 것 같지 않습니다.
방사청장과 ADD 소장의 5년 전 예언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아직도 외양간에 남아있는 몇몇 소들 생각하면 지금도 외양간 고치기에 늦은 때는 아닙니다. 방사청은 2021년 10월 강은호 방사청장과 박종승 ADD 소장의 국감 발언을 되새기고 KF-21 예산난의 근본적인 원인과 효과적인 처방을 찾아볼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