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악뮤 4집 앨범의 평범치 않은 성공
악뮤(舊 악동뮤지션)의 4집 앨범 '개화'는 발매 전부터 큰 관심을 끌었다. 2019년 3집 앨범 발매 이후 무려 7년 만에 내놓는 신보다. 무엇보다 2014년 데뷔 이후 10년 넘게 굳건한 울타리였던 YG라는 대형 기획사에서 독립한 뒤 처음 내놓는 작품이다. 이찬혁이 해병대에서 군역을 이행하느라 가졌던 1년 6개월의 공백기 영향도 궁금했다. 게다가 또 다른 핵심 멤버인 이수현의 슬럼프가 세간에 회자되면서 이런저런 우려도 있었다.
악뮤는 악뮤였다. 타이틀곡 '기쁨, 슬픔, 아름다운 마음'이 4월 20일 기준 멜론 차트 1위에 올랐다. 또 다른 수록곡 '소문의 낙원' 역시 2위에 올랐고 다른 여러 곡도 순위에 랭크되면서 이른바 '줄 세우기' 모드이다. 하지만 악뮤 아닌가. 그동안 모든 정규 앨범의 주요곡들이 음원 차트 1위에 올랐던 만큼 특별히 더 대단한 결과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이번 성공은 사뭇 다른 의미를 갖는다. '기쁨, 슬픔, 아름다운 마음' 뮤직비디오가 유튜브를 통해 공개된 지 2주도 안 된 지난 4월 20일, 댓글이 8천 개 넘게 달렸다. 그 중의 상당수는 저마다의 힘겨운 삶을 토로하며 위안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누리꾼 A 씨는 "부모님이 다 돌아가시고 1년, 가족 없이 혼자 맞이하는 첫 생일에 부모님 계시던 곳에 와서 듣고 있어요. 생일 선물 받은 기분이에요"라고 전했다. 다른 누리꾼 B 씨는 "여보 떠난 지 벌써 5년이 됐네. 이 뮤비를 보고 잠이 들어 그런지 여보 꿈을 꿨다"며 "악뮤는 하늘에서 보내준 천사들 같다"고 위로 받은 심경을 털어놓는 식이다. 이런 글이 지금도 댓글창에 계속 올라오고 있다.
물론 이찬혁이 쓴 가사가 마음을 어루만진다. 기쁨 다음에 슬픔이 찾아오는 것 역시 아름다운 마음이라며 기쁨과 슬픔 등이 모두 조화롭게 모여야 아름다움을 이루니 잘 품어주라 한다. 하지만 단순히 이런 가사 내용만으로 청자들에게 전례 없는 감동과 위로를 주는 것은 아니다. 이수현의 슬럼프와 이를 극복한 과정의 서사가 이 곡에, 더 나아가 전체 앨범에 특별한 감성을 더해준다. 질적 수준과 차원이 다른 성공이다.
2. 콘텐츠에 맥락을 더하다
① 천재라 칭송받는 아티스트
악뮤의 이찬혁이 16살, 이수현은 13살에 경연 프로그램 K팝스타를 통해 처음 대중 앞에 섰다. 어린 나이에도 자작곡으로만 경연을 소화했고 우승까지 차지했다. 이후 발표한 3장의 정규 앨범을 포함해 모든 음원들은 이찬혁의 작사, 작곡, 편곡으로 만들어졌다. 또 모든 앨범을 직접 프로듀싱 해내는 전무후무한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데뷔 초에 주로 선보였던 포크와 어쿠스틱 장르는 물론 재즈와 힙합, 레게, 댄스, 발라드 등 폭넓은 스펙트럼의 곡을 발표했고 대부분 수작이다. 천재라 불리는 이유다.
이찬혁의 이런 놀라운 창작력은 동생 이수현의 탁월한 보컬이 있기에 빛을 발한다. 이수현의 보컬은 기교, 소화 음역, 발성 등 모든 측면에서 압도적 기량을 인정받는다. 특히 '음색깡패'로 불리며 현재 활동 중인 여가수 중에서 독보적인 음색을 자랑한다. 창작에서는 이찬혁이, 음악적 표현에서 이수현이 역할을 맡고 있는 셈이다.
이 둘은 각자의 영역에서 상호 보완하며 국내를 넘어 세계에서 음악적, 대중적인 호평을 이끌어내고 있다. 두 명의 이런 탄탄한 음악 실력이 4집 앨범 '개화' 인기의 밑바탕이자 원동력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이 이례적이고 특별한 성공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② 멤버 이수현의 슬럼프와 극복
어린 나이의 성공, 이후 아티스트로서, 연예인으로서 소화해야 했던 살인적 일정, 대중 앞에 노출된 삶은 결국 큰 대가를 요구했다. 이수현은 오빠가 군에 입대했던 시기 동안 홀로서기를 하면서 급격히 커진 책임의 무게를 감당해야 했다. 자기 나이에 겪어야 했던 경험과 사고, 감정들을 모두 건너뛰면서 오는 공백과 공허함은 갈수록 강해졌다. 그런데도 휴식을 취하지 못한 채 주위의 관심과 요구에 지쳐가다 결국 '번아웃'이 왔다. 음악계 은퇴까지 생각할 만큼 심각했다고 한다. 폭식에서 위안을 찾으면서 급격한 체중 증가를 겪었다. 방안에 갇힌 '은둔 청년'이 됐다. 자존감은 바닥을 쳤고 삶이 무너졌다.
이때 오빠 이찬혁이 손을 붙잡았다. 동생과 합숙을 하면서 해병대식 '정신 개조 캠프'를 차렸다. 함께 운동하고 밥을 먹고 생활했다. 식단까지 관리했다. 산티아고 순례길도 함께 걸었다. 이수현은 이 시기에 "다시 지더라도 피어나는 법을 배웠다"고 고백한다.
③ 숨기는 대신 콘텐츠化
연예인은 좋은 모습만 대중에 보여주려 한다. 일반인도 자신의 '찐모습'을 보여주기 싫은 것이 인지상정인데 대중에게 환상을 선물하는 연예인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악뮤는 달랐다. 이수현은 체중이 늘어난 모습 그대로 방송 출연에 나섰다. 여러 프로그램에서 자신이 겪었던 슬럼프, 오빠와 함께 극복한 과정을 털어놨다.
심지어 이런 개인사를 콘텐츠로 만들었다. 일종의 다큐멘터리인 'The Past Year'를 통해 이찬혁과 이수현이 합숙 훈련에서 강도 높은 운동과 식단 관리 등 '정신 개조'를 하는 영상 기록과 산티아고 순례길을 함께 걸어간 모습, 그 시간의 생각과 소회, 감정 등을 생생하고 솔직하게 보여줬다. 이 콘텐츠는 유튜브에서만 100만 명 가까이 봤다.
④ 4분짜리 음악이 다큐멘터리로
신곡 '기쁨, 슬픔, 아름다운 마음'의 러닝타임은 4분 37초이다. 하지만 청자들은 가사와 곡조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수현과 이창혁의 서사는 가사를 해석하는 강력한 단서로 작동한다. 가사의 한 구절 한 구절이 이들의 실제 고통과 극복을 반영한 것으로 치환돼 감동의 밀도는 배가된다. 노래 자체의 완성도에 '회복의 서사'까지 더해지며 단순한 음원을 넘어 하나의 위로 프로젝트로 기능한다. 음악이 다큐멘터리 혹은 휴먼 드라마로 감동의 영역을 확장했다.
이찬혁은 이미 음악에 서사를 더하는 작업을 시도한 바 있다. 2019년 3집 앨범 '항해'를 내놓기 전 '물 만난 물고기'라는 소설을 발표했다. 소설을 통해 새 앨범에 깔린 철학과 세계관을 제시함으로써 음악이 갖는 시간적, 공간적 제약을 뛰어넘으려 했다. 하지만 자신의 경험을 서사화 한 이번 시도는 허구를 통한 장르 확장과는 차원을 달리 한다.
아티스트의 가장 내밀한 부분까지 공유함으로써 대중은 '관찰자'가 아닌 '동반자' 위치에 서게 된다. 나아가 '공유된 고통'이 주는 카타르시스를 통해 대중 역시 각자의 아픔을 치유하는 동기를 얻게 된다. 이수현의 회복 과정은 개인사를 넘어 대중에게 "우리도 다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의 메타포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는 음원 스트리밍 횟수뿐 아니라 아티스트의 브랜드 가치를 장기적으로 끌어올리는 핵심 동력이 될 수 있다.
3. 진정성을 통해 '감각'이 아닌 '영혼'을 자극했다
현대 콘텐츠 시장에서 소비자는 단순히 '들리는 노래'나 '보이는 영상'만 즐기지 않는다. 그런 결과물이 나오기까지의 과정, 즉 맥락을 함께 소비한다. 많은 뮤지션들이 음악 활동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평소의 생활과 사유를 꾸준히 팬들과 소통하는 이유이다. 하지만 이런 활동에는 치명적인 위험 요소가 내재돼 있다. 꾸며낸 이야기, 소위 '주작'으로 드러날 때 팬들은 실망을 넘어 분노를 표출한다. 자신의 사랑에 대한 배신이라고 느끼고 가졌던 애정의 크기만큼 증오를 갖게 된다.
이찬혁은 다른 길을 간다. 이수현의 슬럼프와 고백, 이찬혁의 헌신적인 서포트라는 실제 이야기는 가상의 스토리텔링이 줄 수 없는 깊은 진정성을 부여한다. 이는 청자로 하여금 노래를 '평가'하는 대신 '응원'하게 만들었다.
악뮤의 이번 성공은 "좋은 콘텐츠는 감각을 자극하지만, 훌륭한 콘텐츠는 영혼을 자극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특히 이찬혁이 동생의 슬럼프를 비즈니스적 손실로 보지 않고, 이를 회복시키는 과정을 음악적 영감으로 승화시킨 작업은 다른 창작자들에게도 큰 울림을 준다. 단순히 잘 팔리는 상품으로서의 콘텐츠가 아니라, 세상에 편익을 주는 '가치재'를 추구했다는 점이다. 이는 소재의 진정성뿐 아니라 음악을 대하는 태도의 진정성까지 담보한다. 이런 진정성은 단순한 콘텐츠의 상업적 성공을 넘어 악뮤라는 아티스트의 사회적 가치를 높여주는 진정한 성공까지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