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2박 4일 일정이라던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의 미국 방문이 길어져서 8박 10일로 마무리됐습니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대로 미국에 가서 '의회 외교', '정당 외교'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1 야당 대표가 건너가야 할 정도로 한미 간 외교 관계가 급박한지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히려 지방선거를 목전에 둔 시점에 당 대표가 한국을 비운 것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 국민의힘 안팎에서 봇물처럼 쏟아졌습니다. 장 대표의 이번 방미는 방문 기간 중 활동 내용과 성과라는 측면, 그리고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이라는 시기적 측면에서 비판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방미 결정은 현 정권의 외교 참사 때문"...제시한 근거는 방미 중 사안들
이런 상황을 부인하기는 어려웠던지, 장동혁 대표는 오늘 오전 '방미 성과 기자회견'에서 이런 말로 발언을 시작했습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방미를 결정하기까지 깊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논란이 따를 것도 충분히 예상했습니다". 그런데도 미국을 방문한 이유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그럼에도 어렵게 방미를 결정한 것은 이재명 정권의 잇따른 외교 참사로 대한민국이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기 때문입니다." 현 정권의 외교 참사가 잇따라서 제1 야당 대표라도 나서야 하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라는 설명입니다. 그 근거로 제시한 것이 이재명 대통령의 최근 이스라엘 비판 글과 이에 따른 이스라엘 정부의 반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북한 핵시설 위치 관련 발언과 미국 정부의 대응 조치 등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사안들은 장 대표가 미국에 있는 동안 발생한 사안들이기 때문에, 장 대표가 방미를 결정한 요인으로 설명하긴 한계가 있습니다.
한국갤럽의 4월 여론조사 결과를 찾아봤습니다. 대통령의 직무수행을 평가할 때 긍정적, 부정적 요인을 꼽는 항목에서 '외교'가 어떤 점수를 받았는지 살펴보는 게 '잇따른 외교 참사로 대한민국이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장 대표 주장이 현실에 부합하는지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4월 첫째 주에 대통령 직무수행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응답자들 가운데 외교를 꼽은 것은 5%에 불과했습니다. 아래 표에 보이는 것처럼 높은 순위는 아닙니다. 4월 둘째 주에는 6%로 비슷했습니다. 반면, 이 주에 대통령 직무수행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응답자들 가운데 12%는 '외교'를 잘하는 항목으로 꼽았습니다. 4월 둘째 주가 장 대표가 미국으로 떠난 시점입니다. 따라서, '외교 참사'를 방미의 이유로 제시한 장 대표의 주장은 설득력이 크지 않습니다. 4월 셋째 주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서 대통령 직무수행 부정 평가자 가운데 외교를 꼽은 응답은 12%로 늘었습니다. 이 대통령의 이스라엘 관련 글이 찬반 논란을 빚은 것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입니다.

미 국무부 차관보와 면담...신원 비공개로 뒷말
장동혁 대표는 방미 기간 중 공화당 소속 의원들을 만났습니다. 그는 오늘 회견에서 "미국 공화당 핵심 인사들과 실질적인 핫라인을 구축하여 흔들리는 한미 동맹을 지탱할 신뢰의 토대를 만들었다"고 자찬했습니다. 미국 공화당 인사와 만남은 같은 보수 정당 간 교류라는 점에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만, 뚜렷하게 내세울 만한 성과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는 국무부 인사와 만남에 대해서는 "상호 협력을 지속해 나갈 소통 창구를 열었다"는 데 의의를 두었습니다. 하지만 누구를 만났는지는 "외교 관례상 공개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며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국무부 인사와 만남이 뒷말을 계속 낳고 있습니다.

우선, 귀국 직전에야 만남이 이뤄졌다는 점. 장 대표는 "귀국하기 위해 공항에서 수속을 다 마치고 라운지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국무부로부터 메일을 받았고, 다른 의원님들은 여러 일정이 있기 때문에 귀국하고 저만 남아 국무부 일정을 소화하게 되었다"고 오늘 설명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만난 인사가 국무부 차관보인 것 같습니다. 국무부 차관보는 한국으로 치자면 외교부 국장, 실장급 인사입니다. 미 국무부 직제는 장관-부장관-차관-차관보-부차관보 순으로 돼 있습니다. 국무부에 차관보는 최대 25명까지 둘 수 있게 돼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담당하는 '동아시아·태평양(동아태) 차관보'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직위입니다. 제1 야당 대표도 공식적으로 여러 차례 만난 미국 외교직입니다. 하지만 사전에 얘기가 되지 않아서 귀국길에서야 발길을 돌려 만났다는 것은 그만큼 이번 장 대표의 방미가 충분히 준비되지 않았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장동혁 방미, 면담 인사의 직급과 공개 여부에서 한계
장 대표는 면담 대상자인 국무부 차관보의 신분을 밝히지 않는 게 외교 관례라고 했습니다. 미국 정부로서는 다른 나라 야당 대표와의 면담을 공식화하고 싶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국 정부에 대한 입장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2006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크리스토퍼 힐 당시 동아태차관보를 만난 사례처럼 공개된 사례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차관보 이상 만나기 어렵다는 주장도 있지만, 2002년 1월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는 미국을 방문해 딕 체니 당시 부통령과 파월 당시 국무장관을 만났고, 국무부가 면담 사진을 공개한 일도 있습니다. 면담한 인사의 직급이나 공개 여부에 있어서, 많이 모자란 방미였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자신이 만났다는 차관보의 뒷모습만 담긴 사진을 공개했습니다. 앞에 말씀드린 대로 미국 국무부에 차관보는 여러 명이기 때문에 누구인지 뒷모습만 봐서는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한국 야당 대표를 만날 만한 인사라면 딜런 존슨 대외협력 담당 차관보나 마이클 디솜브리 동아태 차관보 중 한 명일 거라는 게 언론의 추측입니다. 하지만 디솜브리 차관보는 이미 방한해 한국 인사들과 만난 적이 있기 때문에 굳이 비공개까지 할 이유가 있을까 의문이 생깁니다. 그러다 보니, 장 대표가 만난 인사가 '사이버공간 및 디지털 정책 수석부차관보'인 존 밀스일 수 있다는 서정욱 변호사의 말마저 흘려듣기 어려워 보입니다. 오늘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한 서정욱 변호사가 한 말인데, 서 변호사는 친국민의힘 성향의 정치 평론가입니다. 존 밀스는 부정선거가 있다고 주창하면서 선거감시 활동을 했던 인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만약 서 변호사의 말대로, 정 대표가 만난 사람이 존 밀스라면 '부정선거' 이슈를 지속적으로 끌고 가려는 게 방미 목적이라는 일각의 주장이 맞게 됩니다. 장 대표나 국민의힘 차원에서 서 변호사 말의 진위를 가려주는 게 바람직할 것입니다. 만약 미국 국무부가 장 대표와 차관보의 만남을 비공개로 하려 했다면 사진을 공개한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미국 가서 한 게 뭐냐는 말을 듣고 있는 장 대표 입장에서는 이 한 장의 사진이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국무부 인사가 이에 동의한 것은 의아합니다. 그래서 직업 외교관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선거 코앞' 시기 적절성 두고 비판 이어져...'현장 방문' 제대로 이뤄질까?
장 대표가 방미 성과를 뚜렷하게 내세울 만한 것이 없다 보니, 방미 시점의 적절성에 대한 비판은 더욱 거세지고 있습니다. 장 대표가 출국한 지난 11일은 지방선거 D-53일, 오늘은 D-44이 되는 날입니다. 국민의힘은 전례를 찾기 어려운 공천 사태를 겪었고 지금도 지방선거에서 희망을 찾기 어렵다는 말이 후보들 사이에서 나오는 실정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장 대표의 느닷없는 장기간의 방미는 생뚱맞은 외유(外遊)라는 비판을 받았고, 장 대표를 옹호해 온 나경원 의원한테서도 좋은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나 의원은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와 전화 인터뷰에서, 시기적으로나 내용적으로 아쉬운 점이 많았다고 지적했습니다. 주호영 의원의 비판은 더 매서웠습니다.


오늘 회견에서 장 대표의 거취에 대한 질문이 나왔습니다. 장 대표의 답은 "저는 당원들이 선택한 대표입니다. 상황에 따라서 필요한 거취는 제가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장 대표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서울과 부산 선거 결과에 "자신의 정치 생명이 달렸다"고 지난 2월 말한 적이 있습니다. '정치 생명'이라는 말은, 선거 결과에 자신의 진퇴를 건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게 정치권의 일반적 문법입니다. 그렇지만 장 대표의 최근 말은 바뀌어서, 선거 뒤에 국민의힘 정강 정책을 정비하고 당명 개정도 추진하겠다고 했습니다. 선거 결과 책임론에 따른 사퇴와는 분명한 선을 그은 셈입니다. 오늘 발언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국민의힘 최고위원회 구성을 보면, 장 대표가 버틸 경우 대표직에서 끌어내리는 게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치라는 게 내일 일을 장담할 수 없는 영역이기도 합니다. 장 대표가 오늘 회견에서, 지방선거를 위해 예비후보들이 등록한 곳을 중심으로 이번 주부터 현장 방문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일각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장 대표 방문을 꺼리는 분위기 때문에 현장 방문이 제대로 안 되는 것은 아닌지, 앞으로 장 대표 거취의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으로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