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26일 방송된
'진범은 누구인가?-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배우 겸 가수 손담비, 밴드 루시의 신예찬, 코미디언 이국주가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 사건
때는 2009년 9월 2일. 전라남도 순천의 한 마을이야. 조용했던 시골마을이 아침부터 소란스러워. 전국에서 수십 명의 기자들이 몰려왔거든. 얼마 전 이 마을에서 의문의 살인사건이 발생했어. 50대 중반의 여성 최 씨가 막걸리를 마시고 사망한 거야.

"막걸리 색이 좀 그렇더라고. 시커멓잖아. 그 여자가 그새 마셨어. 마셔서 눈이 휘딱 까져버려 그냥. 말도 못 하고 푸푸 하면서 그냥, 막 눈이 그냥 꼬막처럼 확 까져버렸어."
-사건 목격자
문제의 막걸리 속엔 치사량을 훌쩍 뛰어넘는 양의 청산가리가 들어 있었어. 정식 명칭은 사이안화 포타슘.

이 알약 한 알의 3분의 1만큼만 먹어도 사망에 이를 정도로 독성이 강해. 그래서 이 사건엔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 사건'이라는 이름이 붙었어. 혹시 들어본 적 있어?

"지난달 전남 순천에서 발생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검찰에 붙잡혔습니다. 검찰은 A씨가 막걸리에 청산가리를 넣은 사실을 자백했다고 밝혔습니다."
-당시 뉴스 보도 中
대체 누가 이렇게 끔찍한 범행을 저질렀을까? 당시 현장검증 영상을 보여줄게.

앳돼 보이는 피의자 백희정(가명), 당시 25세였어.

검찰 수사관: 그때 그거 청산가리를 막걸리에다가 뭐로 넣었지?
백희정: 숟가락으로.
수사관: 숟가락은 어디에서 가져왔어?
백희정: 부엌에서.
사건 현장검증에서 희정 씨는 막걸리에 청산가리 두 스푼을 넣는 장면을 재연했어. 그렇게 희정 씨가 살해한 사람은 바로, 그녀의 어머니였어. 희정 씨가 사망한 최 씨의 딸이었던 거야. 그런데 또 한 가지 충격적인 사실이 있어. 그녀가 공범으로 아버지 백점선(당시 59세) 씨를 지목한 거야.

당시 사건 담당 검사: 결국 피의자는 딸하고 공모해서 아내를 살해하기 위해서 피의자 본인은 청산가리와 막걸리를 구매했고 딸은 이걸 섞어서 놔둔 다음에, 본인이 아내에게 건네준 게 맞습니까?
백점선 씨: 네.

공범은 사망한 최 씨의 남편이었어. 부부에겐 1남 3녀의 자녀들이 있었는데, 모두 독립을 하고 막내딸만 남아 부부와 함께 살았대. 그 막내딸이 바로 첫 번째 피의자 백희정 씨. 부녀가 공모해 어머니이자 아내인 최 씨를 독살한 거야.
검찰의 발표에 따르면, 사건 당일 새벽 3시, 희정 씨는 청산가리가 든 막걸리를 대문 안 쪽에 두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 잠을 잤어. 이후 오전 5시 30분, 아버지는 우연히 그 막걸리를 발견한 듯 아내 최 씨에게 이렇게 말해.

"어이 누가 막걸리를 가져다 놨네. 일 나갈 때 가져가소."
그리고 그 문제의 막걸리를 신발장 앞에 옮겨뒀어. 최 씨가 아무런 의심 없이 문제의 막걸리를 일터에 가져가 마셨고, 결국 이날 오전 9시 10분 경, 청산염 중독으로 그 자리에서 사망을 했어. 검찰은 부녀가 약 한달 전부터 범행을 준비했다고 발표했어.

"이 사건 범행은 모의부터 실행까지 부녀가 같이 분담해서 역할을 했다 보시면 됩니다. 막걸리하고 청산가리는 아버지가 주고, 제조한 건 딸이 하고, 막걸리를 전해주는 건 아버지가 하고."
-검찰 브리핑 中
마을 주민들도 충격에 휩싸였어. 불과 며칠 전까지 장례식장에서 오열하던 유족이 사실은 범인이었다니. 심지어 이 부녀는 사건 직후, 청산가리 막걸리를 두고 간 범인을 찾아달라며 방송에 출연까지 했거든.

"막걸리를 누가 갖다 놓은 줄로만 알았지. 일하는 데 갖고 나가라고 그런 줄만 알았지. 너무 너무 억울해요.(눈물)"
-백점선, 아버지

"바라는 건 없고 그냥 범인만 잡히길 바라는 거 밖에 없어요."
-백희정(가명), 딸
근데 이게 끝이 아니야. 이 사건이 당시 세간에 큰 충격을 안겼던 건 부녀의 범행동기 때문이었어. 부녀는 대체 왜 아내이자 엄마를 살해했을까? 당시 기사들 제목이야.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부녀' 불륜 숨기려 범행>
<'청산가리 막걸리' 근친상간이 살인 동기>
<15년 성관계 부녀, 짜고서 어머니에게 청산가리를>

"피고인들은 친 부녀지간으로서 약 15년 전부터 부적절한 성적 관계를 유지해 오면서 이를 알게 된 최 모(아내)씨와의 사이에 누적된 갈등으로 인하여 이 사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검찰 브리핑 中
별다른 물증이 없어서 하마터면 미궁에 빠질 뻔한 사건이었지만, 검찰이 부녀의 자백을 받아냈어.
"이 사건 자체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이 있다는 점을 참고해 주시고요. 그 부분은 저희도 여러 사람을 통해서 피고인 본인들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들 통해서 구체적으로 확인한 내용입니다."
-검찰 브리핑 中
그럼 재판부는 어떤 판결을 내렸을까?
"주문 피고인 백희정을 징역 20년에 피고인 백점선을 무기징역에 각 처한다."
결국 2012년 3월 15일 부녀의 형은 이대로 확정이 됐어. 그런데 12년이 지난, 2024년 1월,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겨. 교도소에 수감된 지 12년 만에 부녀가 형집행정지로 풀려난 거야.

피디: 이렇게 나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보셨어요?
백희정: 아니요. 생각은 안 해 봤고. 그래도 많은 희망은 그냥 안고 있었어요.

백점선: 아주 무겁습니다. 차마 말할 수가 없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부녀의 법률대리인, 박 변호사의 이야기를 들어볼게. 어쩌면 너도 아는 사람일지도 몰라.

"저는 재심 사건을 주로 하는 변호사로 알려져 있고요. 청산가리 사건의 변호인 박준영 변호사입니다. 먼저 영상 보면서 너무 충격을 받았고요. 그리고 사람이 다른 사람을 어떻게 이렇게 짓밟고 실적의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을까. 인권과 존엄에 대해서 그냥 너무 처참한 모습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박준영 변호사, 청산가리 사건 변호인
박준영 변호사는 대한민국 대표 재심 전문 변호사로 잘 알려져 있지. 그가 부녀를 도와 형집행정지를 이끌어 낸 거야. 박 변호사는 이것을 보고 이 사건을 맡기로 결심했다고 해.

이 열 한 장의 CD 안에는 어떤 영상이 담겨있어. 광주지검 순천지청 325호 검사실을 촬영한 녹화영상이야. 바로 부녀가 범행을 자백한 곳이야. 대체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오늘 이야기는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야.
▲ 325호 검사실의 비밀
먼저 열 한 장의 CD 중 첫 번째 CD에 담긴 내용부터 살펴볼게. 희정 씨가 아버지와 공모를 인정하던 날의 영상이야.

검찰 수사관: 청산가리에 막걸리를 섞고 (엄마를) 죽일 생각은 누가 했지?
백희정: 제가요.
수사관: 제가? 네가 한 게 아니잖아. 아빠가 사다 놓은 거기 가보라고 했다며. 그렇지? 응? 네가 처음 한 거야? 아빠하고 죽이자고 할 때? "아, 청산가리에 막걸리 타 죽입시다" 이야기한 거야? 어느 게 맞아. 말해봐.
희정: 내가 혼자.
수사관: 혼자가 아니잖아. 아빠가 갖다 놨잖아, 거기다가. 누가 됐든 아빠가 누굴 시켰든, 아빠가 됐든 결국 가봐라 그랬잖아, 창고에.
희정: 네.
수사관: 그럼 그 창고에 있는 청산가리하고 막걸리를 누가 가져다 놓았다고 생각했어? 당연히 아빠지. 그치? 아빠가 거기서 사가지고 왔어! 방금 전에!
희정: 네.
사건의 중요한 정보들 대부분이 희정 씨가 아닌 수사관의 입을 통해 나오고 있어. 급기야 희정 씨의 진술이 틀렸다고 말하면서 본인이 원하는 대답으로 수정하기 까지 해.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야. 더 큰 문제는 그 다음 날 영상에 있어.

수사관: 너한테 이런 걸 물어봐야 되나? 비극이다. 아버지는 너를 이성으로 사랑하고 있다고 하는데, 네 생각은 어때?
희정: 그거 아닌데.
당시 사건 담당 검사: 엄마는 널 정말 똑바른 사람으로 키우려고 했는데 아빠가 그걸 방해했어. 그리고 아빠가 널 도구로 이용했어. 그 생각하니까 어때? 아빠한테 배신감 느껴? 그러면서 아빠가 뭐라는지 알아? 네가 다 했대.
희정: …
담당 검사와 수사관은 희정 씨에게 이렇게 말했어. "아버지가 모든 혐의를 너에게 떠넘기고 있다! 가만히 있으면 결국 너 혼자 다 덮어쓸 거다"라고. 본인은 청산가리와 막걸리만 구해다 줬을 뿐, 모든 건 딸이 했다고 진술했다는 거야. 가만히 있으면 혼자 다 덮어쓴다며, 희정 씨를 위하는 척 이런 진술을 유도했어. '아버지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고, 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범행에 가담했다'라고.

수사관: 당당하게 해.
검사: 날 이렇게 만든 사람은, 아빠가 초등학교 때부터 날 (부적절한 관계를) 했기 때문에 내가 지금 이 상황에 처해있는 거다, "아빠가 다 주범이요" 이렇게 말해야 된다니까.
수사관: 지금 그렇게 보이잖아. 너를 어떻게 보면 노예로서 반항을 못하게 만들었잖아. 아빠가 짐승이야, 아니야?
희정: 짐승…
수사관: 널 일종의 성적 노리개로 쓴 거지 딸을?
근데 여기엔 함정이 숨어있어. 아버지가 희정 씨에게 혐의를 미루고 있다는 말, 모두 거짓말이야. 희정 씨를 속이고 부녀 사이를 이간질하면서 딸이 아버지를 공범으로 지목하도록 만든 거야.
근데 아무리 검찰에서 자백을 유도했다고 해도, 내가 어머니를 죽였다는 허위자백을 할 수 있겠어? 어쩌면 여기에 그간 들을 수 없었던, 희정 씨의 속마음이 숨어있을 지도 몰라. 바로 희정 씨가 직접 그린 그림들이야.

혹시 눈에 띄는 점 있어? 그림을 분석한 전문가는 희정 씨가 왜 검사와 수사관이 원하는 대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다고 말했어.

"그림에서 제일 인상적인 건, 사람 그림에서 이목구비가 없는데 딱 하나가 있죠. 귀만 있어요. 남의 비판을 듣는 게 귀잖아요. 이 사람이 굉장히 주변의 평가, 시선 이런 것들을 신경 쓰고 있다는 거예요. 매우 순응적이고 수동적인 사람일 가능성이 있어요. 세상을 살아 가는 데 자기 주도로 살아가기보다는 누가 원하는 대로…"
-김태경 교수, 서원대학교 상담심리학과
영상을 희정 씨는 검사와 수사관이 커피를 마시라고 하면 마시고, 그걸 마시면서도 엄청 눈치를 봐.
"수사관들한테도 더더군다나 얼마나 높은 톤으로 여러 남자들이 에워싸면서 심지어 조사하잖아요. 그런 분위기에서 희정 씨가 생존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건 아마 그거였을 거예요. 비위 맞추기, 알아서 정리해 주기. 그냥 시키는 대로 하는 착한 아이의 역할을 자처했을 가능성이 높아요."
-김태경 교수, 서원대학교 상담심리학과
희정 씨는 요구특성에 취약한 사람이라고 해. 갈등이 생겼을 때 본인의 과실을 크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문제를 회피하려는 성향이 강해. 그래서 상대의 요구에 쉽게 끌려가는 거야. 그런 희정 씨에게 담당 검사와 수사관은 본인들이 정해놓은 답을 요구했지.

수사관: 아빠는 왜 엄마를 죽이려고 했을까?
희정: …
수사관: 아빠 입장에서는 엄마가 걸림돌이었을까 솔직히? 그랬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아저씨는 그렇게 생각이 되는데. 말해봐. (성)관계 했을 것 같은데 아저씨 생각은. 어때? 그런 것 같아 아저씨 생각에는.
이런 상태에서 희정 씨가 끝까지 자신의 범행을 부인할 수 있었을까?

"본인들의 유도와 암시, 회유, 기망에 취약한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취약함을 보완하는 어떤 걸 하지 않고 이용했다는 거잖아요. 역으로. 그게 이 사건 수사에 큰 문제라는 겁니다."
-박준영 변호사
희정 씨의 취약함을 이용한 문제의 인물들, 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먼저 이 사람 이 사건을 담당한 K검사야. 당시 3년 차 검사였던 그는 수사 열정이 아주 남달랐다고 해. 순천지청에 부임하자마자 골칫거리였던 한 미제사건을 맡아, 단박에 해결했거든. 당시 그가 미제사건을 해결한 결정적 증거는 바로 자백이었어. 8년 간 범행을 부인했던 살인 용의자가 K검사를 만나 일주일 만에 범행을 인정한 거야. 이후에도 그는 피의자들의 자백을 받아 굵직한 사건들을 해결했고, 순천지청의 해결사로 이름을 날렸다고 해.

이런 K검사 곁에는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는 파트너가 한 명 있었어. 바로 J수사관. 영상 속에서 K검사와 함께 희정 씨를 조사했던 인물이야. 그는 이전 근무지에서 탁월한 업무능력으로 대통령 격려 서신까지 받은 에이스 수사관이었다고 해. 그가 희정 씨의 자백에 대해 인터뷰한 영상이 있거든. 같이 볼게.

J수사관: 처음부터 어머니를 왜 죽였느냐고. 그렇게 해서 그런 수사가 시작된 게 아니었고요.
피디: 그럼 딸이 인정을 했다는 말이에요?
J수사관: 예 인정했습니다. 아버지와 대질조사를 하려고 했는데 아주 경악을 합니다. 아버지를 안 만나겠다고요. 표정이 역력합니다. 거의 사시나무 떨 듯이 떱니다.
희정 씨를 조사한 지 단 2일만에 공모 자백을 받아낸 검찰은 곧바로 아버지를 체포했어. 아버지는 범행을 부인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모든 혐의를 인정해. 그럼 아버지는 왜 자백을 했을까?
▲ 자백의 이유
사건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가족들이 어려운 결정을 해줬어. 지금부터 진술조사 영상 속 아버지의 얼굴을 공개할 거야. 영상 속 아버지의 표정을 집중해서 봐줘.

K검사: 처를 살해하기로 언제 딸과 공모했어요?
백 씨: 그런 건 없었습니다. 공모한 것은.
K검사: 그럼 어떤 말 했어요?
백 씨: 아무 말 안 했습니다.
K검사: 뭐 죽이자는 말도 안 했다?
백 씨: 네.
K검사: 청산가리하고 막걸리 본인이 지금 구입해 놓은 거 딸이 탔다며. 그거 인정한다며? 맞아요 틀려요? 네?
백 씨: 그것도 거짓말입니다.
K검사: 뭐가 또 거짓말이야? 백점선 씨! 백점선 씨! 고개 들어봐요! 아이! 이 양반. 본인 말 한마디면 다 끝날 거 같아요?
강압적인 분위기에도 아버지는 범행을 부인했어. 그런데…

J수사관: 돌아가신 처한테 미안한 생각 없으세요?
백 씨: 엄청나게 미안하죠.
J수사관: 본인이 엄청나게 미안합니까? 왜 엄청나게 미안하세요? 예? 엄청나게 미안하신 이유가 뭡니까?
백 씨: 약물을 먹였기 때문에.
J수사관: 약물을 먹여서?
백 씨: 네.
J수사관: 그리고 죽여서?
백 씨: 네.
J수사관: 그동안 마음 편히 발 뻗고 주무셨어요?
백 씨: 아닙니다. 그것도.
J수사관: 발 뻗고 못 주무셨어요?
백 씨: 네.
J수사관: 왜 그랬을까요?
백 씨: 죄를 지었기 때문에.
갑작스럽게 아버지의 태도가 변했어. 아버지는 분명 이렇게 말했어. '아내에게 미안하다', '약물을 먹였다', '죄를 지었다' 라고. 아버지는 대체 왜 이런 말을 했을까?
사건 당일 새벽, 아버지는 누군가 대문 안 쪽에 가져다 놓은 문제의 막걸리를 신발장 앞에 옮긴 뒤 아내에게 알렸어. 이건 사건 초기부터 아버지가 인정했던 부분이야. 만약, 내가 권한 음식으로 가족이 사망했다면? 아버지는 본인 손으로 문제의 막걸리를 집에 들여놓았다는 그 사실 때문에 스스로 크게 자책을 했다고 해. 그러니까 아버지가 '약물을 먹였다', '죄를 지었다'라고 하는 말은, 실제로 '독살했다', '살인을 인정한다'는 뜻이 아니야. 하지만 당시 검사는 바로 이 자책감을 교묘하게 이용했어. 마치 살인에 대한 죄책감인양 아버지의 진술을 의도적으로 왜곡한 거야.

J수사관: 차마 아내에게 미안해서? 너무 미안해서 말이 막 헛나오잖아. 그래요? 맞아요 틀려요?
백 씨: 맞습니다.
K검사: 근데 왜 막걸리와 청산가리 구입한 사실이 없다고 앞서 진술했습니까?
J수사관: 처한테 미안해서 그랬습니까?
백 씨: 네.
J수사관: 처한테 후회하고 후회되고 미안하고 그런 마음이 교차했을 거 아니야? 후회는 많이 하셨잖아?
백 씨: 네. 그런 건 있습니다.
J수사관: 죽인 건 인정하는데 그동안 내가 한 번 모른다고 (인정 안)했기 때문에 계속 입 다물고 있었다는 거죠? 그렇죠?
백 씨: 네.
J수사관: 이제라도 사실대로 말씀하셨다는 것이고요?
하지만 정작 영상 속 아버지는 자신의 진술이 왜곡되고 있다는 사실 조차 모르는 눈치야. 왜 그랬을까? 사실 아버지는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 한 채 평생을 묵묵히 일만 해오신 분이야. 당연히 한글을 읽고 쓰는 데 서툴렀고, 평소 의사표현을 할 때도 굉장히 소극적이셨대. 그런 아버지가 K검사와 J수사관의 교묘한 왜곡을 논리정연하게 지적하고 반박할 수 있었을까? 이번엔 아버지의 그림을 보여줄게.



"아빠의 경우에는 선의 퀄리티가 지저분하게 흔들리는데, 자신감이 없고 부적절감이 되게 심하신 거예요. 뿌리가 다 드러나 있잖아요. 줄기가 너무 약해서. 스트레스에 굉장히 취약할 가능성이 있고, 외부의 압력에 의해서 굉장히 쉽게 부러지는 그런 경향이 있을 거예요. 굉장히 많이 초조하고 불안하고. 자기를 남들에게 내세우고 자기의 상태를 남들에게 언어로 설명해내는 거는 굉장히 어색해하고 불편해하고, 무엇보다 경험이 별로 없는 분인 것 같아요."
-김태경 교수, 서원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그런 아버지가 한 글자 한 글자 어렵게 적은 자술서가 있어.

"딸이 저와 함께 엄마를 죽였다고 인정했다면 저도 인정합니다."
-아버지 자술서 中
아버지는 왜 이런 자술서를 썼을까? 부녀간 성관계는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야. 그런데 딸이 그걸 인정했다는 말에, 아버지는 반박하지 않고 눈물만 흘렸어.

J수사관: 아빠와 딸이 성관계하는 게 정상이 아니잖아요. 그렇죠? 왜 비정상적인 짓을 하였나요? 왜 그랬습니까?
백 씨: …
J수사관: 말씀을 해보세요.
백 씨: 제가 그랬다고요?
J수사관: 왜 딸하고 관계를 하셨냐고요.
백 씨는 연신 땀만 닦아냈어. 누구보다 딸의 특수한 성향을 잘 알고 있기에, 희정 씨가 왜 그런 거짓말을 했는지 그 순간 짐작하셨던 건 아닐까. 어쩌면 이 때 결심한 건 아닐까? '모든 걸 내가 떠 안아야겠다'라고. 그래서 합의된 성관계가 아니라 본인이 15년간 일방적으로 성폭행 해왔다고 허위 자백을 한 거야.
J수사관: 딸이 원해서 하신 거예요?
백 씨: 아닙니다.
J수사관: 그러면? 딸은 원하지 않았죠?
백 씨: 네.
J수사관: 딸은 원치 않았는데 본인이 강제로 하신 건가요? 맞습니까?
백 씨: 네.

허위 자백을 하며 아버지는 끝내 눈물을 닦았어.
검찰이 희정 씨에게 했던 거짓말과는 정반대로, 아버지는 끝까지 희정 씨를 지키려고 했어.

"한 가족을 완전히 망가뜨렸잖아요. 아내와 백점선 씨의 관계에 대해서 주민들은 하나같이 '금실이 좋았다', '남들이 하지 않으려고 하는 일들을 앞장 서서 했다' 이런 진술로 가득했거든요. 정말 순박한 이 사람들을 어떻게 이렇게 악랄한 범죄자로 만들 수 있을까. 모든 검사가 그런 건 아니지만, 하지만 이 사건 검사만 놓고 본다면, 검사가 할 수 있는 권한을 남용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게 여기 다 담겨 있구나."
-박준영 변호사
이제 재심으로 진실을 밝혀야 해. 하지만 한가지 난관이 있어. 이 사건은 이전의 허위자백 사건들과는 분명 다른 사건이었어. 조사과정에서 고문이나 폭행 같은 물리적인 가혹행위는 없었어. 그럼에도 부녀가 허위자백한 이유에 대해 논리적으로 재판부를 설득해야만 하는 거야. 박준영 변호사는 순천 근처에 허름한 사무실을 하나 빌렸어. 아예 그곳에서 먹고 자고 생활하면서 재심 신청에 몰두했다고 해.
그리고 2022년 1월, 조사 영상과 자료를 바탕으로 법원에 재심 신청서를 제출했어. 법원은 부녀의 재심 신청을 받아들였어. 그리고 동시에 형집행정지를 명령해. 아까 부녀가 교도소를 나오던 영상 기억하지? 재심이 결정됨과 동시에 형이 정지된 건 대한민국 역사상 이때가 최초였다고 해. 무려 12년 만에 교도소 밖을 나선 두 사람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 부녀의 진심
그래서 '꼬꼬무'가 직접 만나봤어. 아버지 백점선 씨의 이야기를 지금 들려줄게. 2009년 당시 59세였던 그는 16년이 지나 어느새 75세가 됐어.

백점선: 안녕하세요. 저는 백점선이라고 합니다.
피디: 긴장이 많이 되세요?
백점선: 긴장은 없는데 워낙 내가 말재주가 없으니까 말하려면 말이 안 나와요. 지나온 일들을요? 말할 수 없죠. 뭐라고 말할 겁니까. 한다고 해도 이제… 기가 막힌 것만 있습니다. 뭐 다른 것도 아니고 진짜로.


피디: 저 사진은 누가 걸자고 그랬어요?
백점선: 제가 걸었습니다. 한 식구라 이제 걸어놨죠. 보기 좋으라고.(웃음)
죽은 최 씨의 발인 날, 남편 백 씨와 딸 희정 씨는 오열했어. 그날부터 지금까지 스스로를 자책하며 괴로워한 백 씨.

백점선: 그저 애들 앞에 엄마가 없다는 것이 제일로 그게 마음에 걸려요. 안 울려고 그랬더니 한참을 울었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지금도 아내가 같이 밥 먹어야 되는데 밥숟가락 들려고 하면 눈물부터 나요.

이건 아버지 백점선 씨의 노트야. 교도소에서 글씨를 연습하기 위해 필사를 했던 거야. 아버지가 옮겨 적은 글귀 중에 가장 좋아하시는 구절이 있어.

"첫 눈이 펑펑 내리는 오늘도 팔순이 다 된 아내가 면회를 왔다. 아내가 꽁꽁 언 손바닥을 면회실 유리벽에 대면 나도 따라 찬 유리벽에 손바닥을 맞댄다. 고생한 당신을 그때는 몰라봐서 미안해요. 업어주고 안아주고 활짝 같이 웃어주고 싶어요. 여보 사랑해요. 나도 찬 유리벽에 손바닥을 맞댄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스물 다섯의 희정 씨는 어느새 마흔 하나의 나이가 되었어. 그간 실제 이름도 얼굴도 숨긴 채, 세상을 피해왔던 희정 씨가 사건이 있고 16년 만에 처음으로 용기를 냈어.

"저는 백영주라고 합니다. 나이는 41살."

피디: 그 안에서는 혹시 생활이 어땠어요? 교도소 안에서.
백영주: (울컥) 조금… 힘들었어요. 엄마 죽인 사람 아니냐고. 내가 얘기를 해도 안 믿으니까…
(아버지를) 쳐다보지를 못 하겠더라고요. 다 그냥… 그냥 다 나 때문에 이렇게 된 거다. 죄책감… 그게 제일 많이 들더라고요. 내가 얘기 안 했으면 아빠도 안 들어갔을 것이고, 가족들도 풍비박산 날 것도 아니고. 거기서 계속 있으면서 계속 죄책감, 그런 게 많이…
피디: 아빠한테 하고 싶은 말 있어요?
백영주: 하고 싶은 말이요? 죄송하다는 거…
피디: 직접 한 적 없어요? 둘이 있을 때?
백영주: 아니요, 없는 것 같아요.
16년 만에 되찾은 그녀의 진짜 이름 백영주. 영주 씨는 10년이 넘는 수감생활 동안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고 해. 본인의 허위 자백이 어떤 결과를 불러왔는지, 뒤늦게 깨달은 거야.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 적도 있었대.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숨지 않기로 했어. 아버지를 위해서라도 결백을 증명해내겠다, 결심한 거야.
그럼 형집행정지가 된 후 부녀는 옛 집으로 돌아갔을까? 혹시나 마을 주민들이 손가락질 할 까봐 가보지도 못 하고, 고향 같던 옛 동네를 그리워만 하신대. 그리고 부녀 못지않게 힘든 나날을 견뎌온 이들이 있어. 바로 영주 씨와 아버지의 가족들이야.

"내가 처음으로 이렇게 울면서 얘기해요. 언니가 많이 그립죠. 아파서 죽었다면 어떻게든 잊어버리고 사는데. 청산가리 사건만 있다면 '아이고 어떻게 이렇게 죽어서' 얘기할 건데, 뒤에 (부녀간 성관계) 허위 사실을 꾸며서 내놓지 못할 사건이 됐잖아요 이것이. 집안 망신 사건이 됐죠."
-어머니 故최 씨의 동생

"사는 게 사는 것 같지가 않았죠. '혹시나 알아볼까' 막 그런 생각도 들고. 숨어 산 것처럼 살았죠."
-셋째 딸
가족들을 괴롭혔던 범행 동기 '부녀간 성관계'. 분명히 말하지만 이건 사실이 아니야. 하지만 매일같이 자극적인 기사들이 쏟아졌고, 가족들은 숨 죽인채 살아야 했어. 가족들이 이 고통을 끝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는 것 뿐이야.
▲ 은폐된 기록
박준영 변호사는 부녀의 결백을 증명할 새로운 증거를 찾기로 해. 바로 사건 당시 2009년 경찰의 수사기록에서. 당시 경찰은 대규모 인력을 투입해서 대대적인 수사를 했어. 약 두 달간 300여 명의 마을 주민을 일일이 탐문하며 범인의 단서를 찾았다고 해. 그런데 당시 경찰의 수사 기록이라면 이미 이전 재판에서 검토 됐을텐데, 이게 왜 새로운 증거가 될까? 사건 담당 K검사가 재판에 제출하지 않은 비밀 기록이 있었거든. 그 양이 얼마나 될까?
무려 19권. 모두 4000여장에 달해. 하지만 K검사는 이 기록들을 이전 재판에 제출조차 하지 않았어. 대체 왜 이 수사자료들을 검찰청 캐비넷 안에 봉인해두었던 걸까?

지도를 보면서 설명을 해줄게. 먼저 아버지가 살던 마을은 위쪽, 그리고 검찰이 막걸리 구입처로 주장한 시장은 아래야. 문제의 막걸리는 이 시장이 있는 순천 시내에서만 구입이 가능했대. 만약 검찰의 주장대로 아버지가 자동차를 타고 이 길을 지나 막걸리를 구입해왔다면, 이 사이엔 반드시 CCTV가 있었을 거야. 그런데 이 CCTV에 대해 K검사는 이렇게 주장해.
"경찰 초동수사에서 가지고 있었던 CCTV자료도 뇌우에 맞는 등 경찰 내부에서 문제가 있어 화질 상태가 굉장히 좋지 않아 판독이 어려운 상황이 되어 제출하지 못하였습니다."
초동수사에서 수집된 CCTV자료가 경찰의 보관 착오로 벼락을 맞아 훼손되었다는 거야. 그런데 수사 기록에 이런 게 있어.

CCTV에 찍힌 차량 번호판 사진이야. 촬영일은 2009년 7월 5일. K검사가 주장하는 막걸리 구입일 3일 후야. 그런데 사진이 깨끗해. 번호판이 다 보여. 아버지가 막걸리를 구입한 7월 2일의 CCTV 자료는 벼락을 맞아 훼손됐다는데, 3일 후인 7월 5일 CCTV는 이렇게 기록이 남아있어. 만약 K검사의 말이 사실이라면, CCTV가 3일 만에 갑자기 멀쩡해졌다는 건데. 그게 가능할까?

"벼락을 맞아서 어떻게 됐다는 것은 지금 처음 들어요. 이때까지 그 얘기는 처음 들었거든요. 제 기억에 (경찰들이) 수사할 때는 CCTV 수사를 철저하게 진행을 했던 기억을 하고 있지."
-당시 수사 경찰
이 CCTV에 찍힌 차가 바로, 아버지의 화물차야. 아버지가 집 근처 주유소에 가던 길에 찍힌 사진이야. 당시 순천경찰서는 관내 CCTV 16대를 모두 분석했고, 사건 전후 일주일을 분석한 결과 아버지의 차량이 찍힌 사진은 딱 한 장, 이게 전부였다고 해. 이게 뭘 의미하는 걸까? 아버지는 7월 2일 이 시장에 간 적이 없다는 거야.
그렇다면 이 사진, 아버지의 결백을 증명할 결정적 증거가 될 수도 있어. 그런데 K검사는 왜 이 사진을 재판에 제출하지 않았을까?
"검사는 객관 의무가 있다라고 하거든요. 때로는 억울한 사람의 무죄 증거가 발견되면 수집하고 증거로 제출해야 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는 그 의무를 저버렸죠. 이거는 적극적으로 사실관계를 왜곡하려고 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박준영 변호사
심지어 이건 K검사가 은폐한 경찰의 수사 기록 중 극히 일부분에 불과해. 박준영 변호사가 검토한 결과, 이 캐비넷 안에서 부녀의 무혐의를 입증할 만한 자료들이 70 개도 넘게 발견됐다고 해.
박 변호사는 이 기록들을 재심 법원에 제출하면서 두 명의 전문가를 증인으로 신청했어. 한 사람은 앞서 부녀의 진술을 분석했던 김태경 교수. 김태경 교수는 진술영상을 근거로 부녀가 허위자백을 한 심리적인 동기에 대해 설명했어. 그리고 또 한 사람은 중앙대 화학과 권선범 교수. 권 교수는 지금까지의 검찰의 주장을 뒤집을 또 하나의 새로운 증거를 제시했어.

아까 현장검증 영상에서 영주 씨가 막걸리에 청산가리를 넣을 때, 뭘 사용했는지 기억해? K검사는 영주 씨가 플라스틱 숟가락으로 두 번을 퍼서 청산가리를 막걸리에 넣었다고 주장했어. 그 상황을 우리가 한 번 재연을 해볼게.

먼저 빈 막걸리병을 저울에 올려서 무게를 재니 34g이 나왔어. 다음은 청산가리 대신 밀도가 비슷한 설탕을 플라스틱 숟가락으로 퍼서 막걸리 병에 두 번 넣어. 그런데 플라스틱 숟가락으로 좁은 막걸리 병에 가루를 넣는 게 쉽지 않아. 밖으로 흘리는 게 많아. 이렇게 이 설탕을 넣은 막걸리 병의 무게는 50g. 그럼 막걸리 병에 넣은 설탕 2스푼의 무게는 16g 정도 나오지?
권선범 교수가 당시 기록을 바탕으로 계산한 결과, 문제의 막걸리에 투입된 청산가리의 양은 약 29.63g. 실험 결과보다 약 10g이상 더 들어간 셈이야.
이 외에도 검찰이 주장한 공소 사실들에 대해 박준영 변호사는 "아버지 백점선 씨가 유독 물질인 청산가리를 입수한 경위에 대해서 구체적인 증거가 있습니까?", "부녀가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는 주장에 근거가 있습니까?"라며 계속 의문을 제기했어. 그러자 상대편인 재심의 공판 검사는 이 사람들을 증인으로 신청해. 바로 사건 당시 순천지청 325호 검사실의 K검사와 J수사관. 둘은 사건 이후 어떻게 지내고 있었을까?
J수사관은 사건이 있던 2009년 검찰총장 표창을 받고, 이듬해엔 국무총리 표창까지 받았어. 현재는 법무사로 활동하고 있다고 해. 그는 재심 재판에서 당시 조사에 대해 어떻게 말했을까?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검사님이 하라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수사관으로서 소양이 부족했을 뿐, 다른 의도는 없었습니다."
그럼 K검사는 사건 이후 어떻게 지냈을까?
"사건 관계인으로부터 향응수수 유흥주점 출입 장면이 동영상 촬영되는 등 직무 상 의무 위반 및 품위 손상."
-2013년 법무부 관보
이 일로 2013년 검사직에서 면직이 되고 변호사로 제 2의 인생을 시작했다고 해. 그런데 그것도 잠시, 2019년 변호사법 위반으로 변호사 자격을 정지당하고 징역 3년을 선고받아. 그는 재심 재판에도 아예 나오질 않았어. 결국 공판검사가 직접 K검사를 찾아가 설득하겠다고 했어. 그럼 K검사, 재판에 모습을 드러냈을까?

"출석을 한동안 안 했죠. 계속 소환을 피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막판에 나왔습니다. 모든 게 뻔뻔했어요. 말도 안 되는 변명, 예를 들면 '조서를 그렇게 작성해도 되냐', '부인을 이렇게 오랫동안 했는데 왜 이걸 안 담았냐' 물으면 '수사 기법이었다'. 그리고 CCTV 증거를 제출하지 않은 것도 검사의 증거에 대한 판단 문제다…"
-박준영 변호사

백점선: 기가 막혔죠. 옆에 앉았을 때, 한 소리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못 했어. 나 잡아 넣을 때는 기분 좋았냐고 그 소리 하려고 했는데 말 못 했어요.

백영주: 제 얼굴이.. 그냥 뭐라고 그래야 하지. 얼굴이 그냥 빨개졌어요.
피디: 검사랑 수사관들이 아버지나 영주 씨한테 사과한 적 있어요?
백영주: 아니요. 없어요.
피디: 어떤 사과를 받고 싶으세요?
백영주: 그냥 진심 어린 사과.
2025년 10월 28일. 마침내 부녀의 재심 판결이 내려졌어. 결과는 어땠을까?
▲ 비로소 받은 무죄

막걸리 살인사건의 피해자 故최명숙 씨의 묘.

백점선: 여보, 나 왔어. 앞으로 애들 돌봐줘.

백영주: (눈물) 엄마, 나 막내딸 왔어. 많이 못 와서 미안해.
부녀는 묘 앞에서 판결문을 읽었어.

백영주: 피고인의 사이에 성관계 및 살인 범행의 공모가 있었음을 뒷받침할 증거가 존재하지 않는다. 피고인 백점선, 백영주 무죄. 엄마 16년 만에 무죄 받았어. (울컥) 이거 들으니까 기쁘지? 엄마도 이거 꼭 듣고 싶었잖아.
백점선: 고생했다, 막둥이.
백영주: 아니야. 아빠가 더 고생했어.
오랜만에 마주 앉은 부녀. 아버지가 딸의 손을 잡았어. 그리고 16년 만에 서로에게 위로를 건넸어.

백점선: 몇 년 만에 모처럼 잡아 보네요. 너 잘못한 거 하나도 없어.
백영주: 아빠도 고생 많으셨어요. 아빠 죄송해요.
백점선: 뭘… 알았다. 이제 앞으로 이제… 마음 놓고. 전부 다 밝혀서 충실하게 가족끼리 열심히 살도록 하자.
백영주: 네.
이번에 '꼬꼬무' 제작진과 함께 부녀가 재심 판결문을 들고 찾아간 곳이 있어. 그간 차마 용기가 나질 않아서 단 한 번도 못 가본 곳이야. 바로, 부녀가 살았던 옛 마을이야.

백영주: 사건 이후 처음 오는 거예요. 겁은 나기는 겁나요. 사람들이 어떻게 대할까 사람들이..
무죄를 선고 받고 16년 만에 찾은 동네. 아는 사람들을 만났어. 마을 사람들은 부녀를 반겼어.

할아버지: 아유 안녕하세요.
백점선: 오랜만이야. 나 무죄 받고 나왔어.
할아버지: 그래. 우리 다 알고 박수 쳤지. 우리 동네 사람이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냐. 애썼어 애썼어.

이웃 형수: 아유, 고생을 얼마나 했소. 아이고.
백점선: 내가 죄도 안 짓고 엄한 놈 잡아다가 이렇게 고생했어.
이웃 형수: 그러니까, 세상에. 엄한 사람만 이렇게 해서 고생을 시키는 게 어디에 있어. 세상에 이렇게 오니까 얼굴이라도 쳐다보겠네.

영주 씨는 마을회관에 들렀다가 따뜻하게 반겨주는 동네 어르신들 품에서 눈물을 쏟았어.

"아버지가 옛날에 안 착했으면 우리가 이렇게 눈물도 안 나와요. 워낙 착한 사람들이에요."

"동네에서 아니라 하는 거 인정하고 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잘 살아 이제. 나왔으니까 고생 많이 했다."
아버지 백점선 씨는 이제야 홀가분한 표정으로 들뜬 목소리로 말했어.

"훨훨 날아다닐래. 앞으로 훨훨 날아다니렵니다. 감사합니다."
아버지와 영주 씨에겐 아마도 저 순간이 비로소 살인자의 누명을 벗고 진정한 무죄 판결을 받는 순간 아니었을까?
이른바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 사건'으로 이 사건이 세간의 이목을 끌었던 것에 비해, 작년 말 부녀가 재심에서 무죄를 받았다는 사실은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 했어. 부디 오늘 이후에는, 부녀를 끔찍한 범죄자로 기억하는 사람이 없기를 바래.

"일단 명예 회복하는 게 제일 바라는 거고요. 인터넷 이런 데 찾아보면 막 부녀의 부적절한 관계 그거부터 시작해서 글이고 사진이고 막 뜨는데. 저는 우리 가족들 명예회복하는 거 그거밖에 없죠."
-둘째 아들
"지금도 검색을 하면 거짓된 기사들이 많거든요. 그 당시에 어떤 검찰의 수사 결과를 반영한 기사들. 이제는 방송을 통해서 그 기사들을 완전히 덮어버렸으면 좋겠어요."
-박준영 변호사
▲ 진범은 누구인가
그리고 우리가 절대 잊어선 안 되는 게 있어. 이분들이 무죄를 받은 건, 16년을 돌고 돌아, 이제 겨우 원점으로 돌아왔을 뿐이라는 거야. 영주 씨 어머니의 사망사건은 2009년 7월 6일 그날에 그대로 멈춰져 있어. 그래서 이번 방송을 준비하면서 '꼬꼬무' 제작진도 19권의 경찰 수사기록을 다시 한 번 샅샅이 살폈다고 해. 그 결과 뜻밖의 기록을 발견했어. 당시 경찰이 주목했던 또 다른 용의자에 대한 기록이야.
"현장 주변 탐문 등 수사하다가 같은 마을에 사는 도 씨가 최 씨와 자주 다투어 왔고 주민들로부터 지탄을 받아 왔다는 첩보를 입수."
-2009년 경찰 수사 보고 중
사건 당시 영주 씨 어머니와 갈등을 겪던 사람이 마을에 딱 한 명 있었다는 거야. 바로 이웃주민 도 씨(가명). 그래서 사건이 있던 마을을 다시 찾아가 봤어. 미리 말하자면, 정말 상상도 못 한 이야기를 듣게 될 거야.

"우리 집 아저씨가 그때는 비닐하우스 농사를 했거든 우리가. 그래서 '아이고 더워 죽겠다' 그러고 비닐하우스 바깥에 나가니까. 집 대문에 술이 한 병 딱 섰어. 요렇게 생겼어. 요래 갖고 딱 있더라고. 그래서 나는 풀어보지도 않고 냉장고에다 갖다 넣었단 말이야. 넣었는데…"
-마을주민 김 씨
김 씨 할머니의 남편분이 아침 일찍 집을 나서는데, 대문 손잡이에 막걸리 한 병이 든 봉지가 걸려있었다는 거야. 누가 두고 간 건지도 모르고 찝찝하니까 할머니가 막걸리를 쏟아 버렸다고 해.
"술이 웬 시커먼 칡술처럼 검은 색의 썩은 술이 나와. 그래서 부어버리고 쓰레기통에가 병을 갖다 버렸지."
-마을주민 김 씨
그리고 약 1년 후, 영주 씨의 어머니가 마신 문제의 막걸리 역시 청산가리 때문에 짙은 색으로 변색이 된 상태였어.
"누구하고 누구하고 죽었다고 그래서, '아이고 그때 우리 술 그거 안 먹길 다행이네' '먹었으면 우리도 죽어버릴 거였는데'"
-마을주민 김 씨
인적 드문 새벽, 누군가 집 앞에 두고 간 짙은 색의 막걸리. 두 사건이 묘하게 겹치는 부분이 있지? 그리고 또 한가지. 당시 김 씨 부부도 누군가와 크게 다투었다고 해. 그게 누구였을까? 바로 이웃주민 도 씨. 이뿐만이 아니야. 영주 씨의 어머니가 사망한 날, 도 씨에게 전화를 받은 마을 주민이 있거든. 근데 그 내용이 좀 이상했다고 해.

"(도 씨에게서) 전화가 왔지 나한테. '저기 물 그거 틀어졌는가 좀 가보소' 그래. 자기 집에다 나를 가보라는 거야. 그래서 다녀와서 내가 전화를 했지. '아 물도 안 틀어졌는데 뭐 물이 틀어졌다고 그래요' 그러니까 '동네 뭐 아무 일이 없는가?' 하면서. '아무 일 없지 뭐 일이 있어' 나도 그랬어. 그러니까 '그래? 그러면 됐네' 이제 그런 식으로. (나중에 도 씨가) '내가 언제 전화를 했냐'고 경찰에 가서 이러더라니까. (왜 거짓말을?) 몰라 그러니까. 근데 그 사람은 원래 그런다고 그러더라니까. 동네에서 원래 신용이 없더라고."
-주민
더 이상한 건 이날 도 씨에게 이런 전화를 받은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는 거야. 이후 도 씨는 오간다는 말도 없이 이사를 갔어. 그래서 당시 마을 사람들도 도 씨를 수상하게 생각했다고 해.

"그 사건 나니까 바로 그냥 이사를 가더라고. 그래서 사람들이 생각했지. 참 이상하네…"
-주민
"의심스럽지, 이제 우리도. 그 말 듣고는 동네 사람들이 다 의심은 가졌지."
-주민2
도 씨에 대해 더 조사를 해봐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당시 경찰은 더 이상의 수사를 진행할 수 없었어. K검사가 영주 씨와 아버지를 이 사건의 범인으로 발표해버렸거든. 물론 도 씨가 진범이 아닐 수도 있어. 하지만 엉뚱한 사람을 범인으로 만드느라, 진범을 잡을 수 있는 기회조차 놓쳐 버렸다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까워. 만약 그 때 경찰수사가 계속됐다면 결과는 어땠을까?
다행히 작년 11월, 경찰이 이 사건에 대해 전면 재수사에 들어간다고 발표했어. 과거 유력용의자에 대한 부분도 다시 조사가 시작될 걸로 보여.
3월 27일. 이날은 돌아가신 영주 씨 어머니의 일흔 세 번째 생신이야. 하늘에 계신 어머님께 진범을 잡았다는 소식을 전하는 그 날이 너무 멀지 않았으면 좋겠어.
아버지 백점선 씨는 글을 배우면 세상에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어. 그게 어떤 말이었을까? 아버지의 자필 문장이야.

"앞만 보고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말했어. 자기의 경험과 삶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갖지 못할 때, 우리는 누구나 약자가 돼. 만약 그날 325호 검사실에 아버지와 영주 씨에게 보호자나 변호인이 함께 했다면 어땠을까? 이번 방송을 통해서 우리 곁에 있는 언어 약자 들에 대한 고민도 함께 해봤으면 좋겠어.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BS연예뉴스 강선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