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이 사실상 봉쇄 중인 호르무즈 해협에서 수에즈 운하와 비슷한 방식으로 '통행료'를 징수하겠다는 방침을 굳혔습니다.
이란 의회에서 이를 위한 근거가 될 법률안을 준비하고 있고, 정부 관계자들이 언론을 통해 이런 방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란 반관영 파르스통신 보도를 인용해 이란 의회가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가는 선박들로부터 안전을 제공하는 대가로 통행료를 징수하는 법안의 초안을 다듬고 있으며 다음 주에 최종안이 나올 예정이라고 전했습니다.
파르스통신 기사에 인용된 이란 의원은 "우리는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이란의 주권, 통제권, 감독권이 법적으로 공식 인정되고, 아울러 통행료 징수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라고 말했습니다.
앞서 지난 21일(현지 시간) 반관영 '이란학생뉴스통신'(이스나·ISNA) 보도에도 이런 소식이 실렸으며, 당시 기사에서 에드 라흐마트자데 의원은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 부과는 수에즈 운하나 파나마 운하의 통행료 부과와 마찬가지로 "주권적 권리"라고 말했습니다.
중동 뉴스와 에너지 뉴스 전문 매체들의 보도에 따르면 "전쟁 비용 보전"과 "안보 유지 비용"을 명목으로 삼은 이 법안이 실제로 통과돼 시행될 경우 이란이 받으려는 선박 1회 통행료는 약 200만 달러(30억 원) 수준으로 알려졌습니다.
현재 걸프 해역에 발이 묶인 선박만도 약 3천200척에 달합니다.
이란의 '통행료 징수' 구상이 그대로 현실화한다면 이 선박들이 모두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것만으로도 이란은 약 64억 달러(9조 6천억 원)에 이르는 수입을 얻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2019년에도 이와 유사한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 징수 법안이 당시 트럼프 1기 행정부의 '최대 압박' 정책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이란 의회에 제출됐으나 통과되지는 않았습니다.
이란 정부 관계자들은 현 단계에서 통행료에 대한 직접 언급은 부각하지 않고, 이란 당국과 "조율"하는 "비적대적" 선박들은 통항을 허용하겠다는 방침을 국제기구들에 보낸 공식 서한과 국내외 언론 인터뷰를 통해 강조하고 있습니다.
에스마일 바가이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24일 밤 인도의 영어 TV 채널 '인디아 투데이' 인터뷰에서 "이란에 부과된 전쟁 상황으로 인해 호르무즈 해협 통과를 위한 일련의 조치가 시행 중"이라며 "이런 침략 행위와 무관한 다른 국가들은 안전하고 확실한 통행을 보장하기 위해 이란 당국과 필요한 조율을 거친 후 해협을 통과할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이란의 국영 영어·프랑스어 매체 '프레스TV'는 25일 정부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이란의 영유권 인정과 함께 전쟁에 따른 손해에 대해 금전적 보상을 원한다는 이란 정부의 입장을 밝혔습니다.
앞서 이란 외무부는 22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에 '"비적대적" 선박들은 이란 당국과 조율을 거치면 호르무즈 해협을 통항할 수 있다'는 취지의 서한을 보냈습니다.
이 서한은 24일에는 런던에 본부가 있는 국제해사기구(IMO) 회원국 176개국에도 배포돼 회람됐습니다.
이런 이란 정부의 입장은 이란을 공격한 미국과 이스라엘, 그리고 공격에 협조하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동맹국 등을 제외하고 중국, 인도 등 "비적대적" 국가들의 선박에 대해서는 통행료를 받고 호르무즈 해협 통과를 허용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유엔해양법협약(UNCLOS) 제26조와 제44조에 따르면 국제 항행에 이용되는 해협에서는 모든 선박에 통과 통행권이 보장되며, 영해 내에서도 통과 자체에 통행료를 부과할 수는 없고 외국 선박을 위해 제공된 특정 서비스의 대가로만 비용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이란, 미국, 이스라엘은 이 협약의 당사국이 아닙니다.
이란은 1982년 이 협약에 서명하긴 했으나 비준하지는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은 서명도 비준도 하지 않았으며, 미국은 일부 관련 협약 조항만 1994년에 서명했고 비준은 하지 않았습니다.
이란이 만약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 징수를 시행할 경우 이는 '안보 서비스'에 대한 대가라는 주장도 펼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과 이스라엘 등은 UNCLOS의 해당 조항이 공백 상태에서 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확립된 국제해양관습법을 문서화한 것이라며 이란도 해당 국제관습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 것으로 전망됩니다.
인도는 1995년, 대한민국, 중국, 일본은 1996년에 UNCLOS를 각각 비준해 당사국이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