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일 미국 플로리다주 웨스트팜비치 공항에서 전용기 에어포스원에 탑승하기 직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기자들에게 말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등 걸프국 일부가 미·이스라엘의 대이란 전쟁에 점차 깊이 관여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미국 매체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3일(현지시간) 보도했습니다.
그간 중동 전쟁에 거리를 두려던 이들 국가는 이란의 계속된 공격에 경제가 타격을 입고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이란의 장악력 확대 우려가 커지면서 강경한 태도로 돌아서고 있다는 것입니다.
보도에 따르면 사우디는 최근 미군이 자국 서부의 킹 파드 공군기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합의했습니다.
지난달 28일 개전 초기만 해도 사우디는 자국 시설이나 영공이 이란 공격에 이용되는 것을 불허하며 전쟁과 거리를 두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란이 미국·이스라엘에 대한 보복을 빌미로 사우디 수도 리야드와 주요 에너지 시설에 미사일과 드론 공격을 쏟아붓자 입장이 달라졌습니다.
사우디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억지력 회복을 위해 군사 행동에 참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며, 참전 결정이 임박했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파이살 빈 파르한 알사우드 사우디 외무장관 역시 "이란의 공격에 대한 사우디의 인내는 무한하지 않다"며 "걸프 국가들의 대응 능력이 없다고 믿는다면 오산"이라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
UAE도 대이란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습니다.
두바이 내 이란 병원과 클럽을 폐쇄하는 등 이란 관련 자산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며 이란 정권의 주요 자금줄을 차단하고 있습니다.
UAE 정부는 이란 정권 및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와 직접 연관된 기관들이 UAE 법률을 위반해 폐쇄 조치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동안 UAE는 이란 기업과 개인의 주요 금융 거점 역할을 해왔으나, 전쟁 발발 이후 수십억 달러 규모의 이란 자산 동결 가능성을 시사했습니다.
이 같은 조치가 실제로 이뤄지면 제재와 인플레이션으로 이미 고통받는 이란 경제에 추가 타격을 줄 것으로 전망됩니다.

'쿠드스의 날' 이란 테헤란 집회
걸프국들은 공식적으로는 대이란 공격 불참을 선언했지만, 실제 상황은 복잡하다고 WSJ은 진단했습니다.
바레인에서 이란을 향해 지상 발사 미사일이 발사된 정황이 포착됐고, 미군 당국은 사우디 프린스 술탄 공군기지에서 미 공군 급유기 5대가 이란의 미사일에 맞아 파손됐다고 확인했습니다.
걸프국들이 강경 대응으로 선회하는 배경에는 이란의 도발 수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위기감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에너지 시설 타격으로 글로벌 에너지 대란을 일으켜 미국과 이스라엘의 전쟁 의지를 꺾으려는 이란의 의도가 걸프국들이 감내할 수 있는 선을 넘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란은 이스라엘이 자국의 사우스 파르스 가스전을 타격하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카타르 라스라판 에너지 허브와 사우디 홍해 에너지 시설, UAE 등을 전방위로 공격했습니다.
UAE는 지금까지 2천 번 이상의 공격을 방어해야 했습니다.
이에 사우디와 UAE 지도자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이란의 군사력을 완전히 파괴해 줄 것을 촉구했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다만 걸프국들은 전면에 나서는 것을 여전히 부담스러워하고 있습니다.
좁은 바다를 사이에 둔 이란과 전면전을 벌이는 것은 너무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갑자기 전쟁을 끝내버릴 경우 이란의 위협을 홀로 감당해야 한다는 현실적 우려도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을 향한 걸프국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고 WSJ은 전했습니다.
미국의 안보 파트너로서 막대한 투자를 해왔는데도 트럼프 행정부의 결정에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회의를 느끼고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미국은 사우스 파르스 가스전 타격을 만류하던 걸프국들의 로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타격을 묵인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워싱턴 중동연구소의 그레고리 가우스 분석가는 "걸프 국가들은 강대국과 동맹을 맺은 약소국들이 겪는 구조적 딜레마에 빠져 있다"며 "미국이 강경 노선을 취할수록 원치 않는 전쟁에 끌려들어 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