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19일 방송된
'얼굴 없는 살인자'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배우 한지혜, 신소율, 그룹 앳하트 멤버 아린이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의문의 추락
때는 2020년 1월 22일, 전라북도 순창에 있는 한 아파트야. 뭔가 쿵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났어. 그날, 이 소리를 직접 들은 사람 이야기를 들어볼게.
"그날 비가 부슬부슬 왔었죠. 관리실 문을 열고 이만큼 돌아 나갔는데 쿵 소리가 나는 거예요. 처음엔 주차장 차에다가 뭘 던진 줄 알았어요. 그래서 가 봤더니 사람이 이렇게 누워 있는 거예요. 저는 처음에는 술에 취한 줄 알았어요. 그런데 보니까 술 취한 사람이 아니에요. 아 이거 떨어졌구나. 15층에서 떨어졌구나…119에 전화하고 심폐 소생술 하고. 전화하고 2~3분도 안 돼서 119가 도착했어요"
-당시 아파트 관리소장
사람이 15층 아파트 옥상에서 떨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이야. 추락한 남자는 14층에 사는 28세 청년 김후빈 씨야.
"저희 도착해서는 눈에 띄는 외상은 현장에서 보이지 않았고, 심폐소생술 현장에서 5분 정도 진행하고 바로 병원으로 이송했습니다."
-당시 출동 구급대원
그리고 얼마 후, 후빈 씨의 어머니는 경찰로부터 연락을 받았어.
"(경찰이) 누구 어머니 되냐고 그러면서, 의료원 응급실로 빨리 와 봐야겠다고… 병원 대기실에서 이제 기다리고 있는데, (아들이) 사망했다는데... "
-김후빈 씨 어머니
젊디젊은, 꽃같은 나이의 아들이 갑자기 죽었다는 거야. 지금까진 옥상에서 추락한 것으로 보이는 상황이야. 당시 후빈 씨는 2년 정도 일을 하다가, 공무원 임용시험을 준비하려 퇴직한 상태였어. 술, 담배 안 하고, 운동 좋아하고. 일주일 전에는 가족들 먹으라고 구충제를 챙겨주던, 세심한 아들이었어. 그런 아들이 갑자기 왜 아파트에서 추락해 사망한 걸까.
22일 사건 당일 아파트 CCTV에 찍힌 후빈 씨의 모습이 있어. 추락 1시간 전이야.
아파트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14층 집으로 향하는 후빈 씨의 모습이야. 추락 1시간 전인데 별다른 특이점은 없어 보여. 그리고 이 CCTV 영상 전에, 후빈 씨의 모습이 찍힌 CCTV는 이틀 전인, 20일에 남아 있었어. 그 모습도 함께 볼게.
14층 집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에서 내려 밖으로 나가는 후빈 씨 모습이야.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있어. 후빈 씨는 20일 집을 나선 후, 이틀 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았어. 도대체 20일, 21일, 22일 이 3일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 휴대전화에 남긴 것
20일 오전 11시경 전라북도 순창에 있는 집에서 나온 후빈 씨. 오후 1시경, 택시를 타고 차로 한 시간 거리인 정읍으로 갔어. 그리고 정읍에서 3시간 정도 머물다 오후 5시 경 정읍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로 향한 거야. 20일, 21일은 서울에서 머물다 22일 다시 순창 집으로 내려온 것으로 보여.
그런데 이 20대 청년의 죽음은, 그의 휴대전화에서 뭔가가 발견되며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돼. 당시 후빈 씨가 실제로 사용했던 휴대전화를 어머니께서 잠시 빌려주셨어. 이 휴대전화에서 후빈 씨가 직접 녹음한 내용이 발견됐거든.
"제가 이걸 남기는 이유는 이런 걸 안 남기면 너무 좀 허무하고 답답하실까 봐 그래서 남기는 거예요. 엄마 아빠 동생, 그냥 무슨 먼 여행을 떠났다고 생각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엄마는 뭐… 재미있는 거 좋아하시니까 노는 재미, 놀러다니는 재미로 즐겁게 살았으면 좋겠고. 아빠는 장사 잘 되고 개 키우는 재미, 정원 키우는 재미로 사셨으면 좋겠고. 동생은 게임 좋아하니까 게임도 하고 복학하면 학교생활도 즐겁게 하면 좋겠고… 다들 행복하고 즐겁게 살아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후빈 씨 휴대전화에 녹음된 내용 中
후빈 씨가 남긴 유언이였어. 그는 왜 이런 유언을 남겼을까. 그런데 후빈 씨 휴대전화에는 수상한 기록이 더 남아 있었어. 후빈 씨가 순창 집을 나섰던 1월 20일의 통화 목록을 보면, 저장되지 않은 번호와 통화를 한 기록이 있어. 그런데 첫 통화가 무려 7시간, 그 후 두 번의 장시간 통화가 이어져서, 총 통화 시간이 무려 11시간 가까이 돼. 누구와, 어떤 이유로 무려 11시간 동안 통화를 했을까? 혹시 이 통화가 20대 청년의 죽음과 어떤 연관이 있을까?
이 11시간의 통화 내용이, 모두 휴대전화에 남아 있었어. 이를 토대로 지금부터 후빈 씨의 마지막 행적을 쫓아볼게.
▲ 덫에 걸렸다
20일 오전 9시 54분. 후빈 씨 휴대전화 벨이 울렸어. 후빈 씨는 전화를 받았어.
<후빈> 여보세요.
<수사관> 여보세요. 여기 서울중앙지검이고요. 이도현 수사관입니다. 지금 본인 앞으로 명의 도용 사건이 접수가 됐어요 그래서 개인 정보 유출건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연락을 드린 겁니다. 저희 지검에서 금융 사기단을 지금 검거를 한 상태예요. 근데 검거 현장에서 김후빈 씨 본인 명의의 통장이 지금 2개가 발견됐어요. 그래서 이게 본인이 개설한 건지 아니면 개인정보 유출로 명의가 도용이 된 건지 확인하기 위해서 연락을 드린 겁니다.
서울중앙지검 이도현 수사관이라며 전화가 온 거야. 금융사기단을 검거했는데, 압수품 중에서 후빈 씨의 통장이 발견됐대. 통화는 이어졌어. 수사관에서 검사로 말이야.
<검사> 여기는 서울중앙지검검찰청 첨단범죄 수사팀에 팀장을 맡고 있는 김민수 검사예요. 지금 현재 저희 수사 1팀이 금융 범죄 사기단 28명을 검거했는데. 지금 전국에는 한 70~80명 정도의 전국에 범인들이 있는 걸로 확인이 됐어요. 그 말은 수사 기관 입장에서 김후빈 씨를 봤을 때 피해자도 피해자일 수도 있지만 피의자일 가능성도 있는 상태라는 얘기에요 현재는.
이들의 정체는 보이스피싱범이야. 후빈 씨에게 보이스피싱 전화가 온 거야. 이들은 후빈 씨의 이름도 생년월일도 전부 알고 있었어.
<가짜 김민수 검사> 92년 9월 2일생 김후빈 씨 맞습니까?
<후빈> 네.
<가짜 김민수 검사> 사건 내용 저한테 다시 한 번 설명해 주세요.
<후빈> 제 개인정보를 도용해서 통장 개설? 2개? 그렇게 하고 있다, 이렇게까지 알고 있는데요.
"진정한 가스라이팅인 거예요. 검사를 사칭하는 순간, 그 사람이 정말로 진짜 검사라고 믿는 순간, 이 사람은 권력관계에서 완전히 을이 되어 버리는 거예요. 그러면 물리적으로 그 사람을 폭행하는 것 못지않게 심리적으로 제압하는 거죠. 그러니까 정보를 가지고 있고 권력 관계자라고 사칭하는 거 이 두 가지면 생각보다 가스라이팅이 쉬워요."
-김태경 교수, 서원대학교 상담심리학과
지금부터 보이스피싱범들의 말과 수법에 집중해봐. 만약 내가 그 상황이었으면 어땠을지 생각하면서.
<가짜 김민수 검사> 본인에게 물어볼게요. 본인이 어떻게 이해하고 인지했는지. 김후빈 씨, 보안이 왜 중요한 것 같습니까?
<후빈> 만약에 다른 사람에게 이 얘기가 들려서 퍼지게 되면 수사하는데 좀 방해된다 뭐 이런 말을 들었었는데…
<가짜 김민수 검사> 본인이, 김후빈 씨가 범인이라고 가정을 한번 해볼게요. 그럼 이런 행동할 수 있겠죠? 전국에 체포되지 않은 공범들에게 공유할 수 있겠죠? '나 지금 사건 걸렸고 조사중이니까 모두 도주하고 자료 다 숨기고 불태우세요, 폐기하세요'라고 할 수 있는 여지가 있나요, 없나요?
<후빈> 있습니다.
<가짜 김민수 검사> 그중에서 제가 지시하는 거 꺼주세요. 모바일 데이터, 와이파이 두 가지 모두 꺼주세요.
<후빈> 네 껐어요.
<가짜 김민수 검사> 위치, 블루투스 꺼 주세요.
<후빈> 네 껐어요.
<가짜 김민수 검사> 지금부터 김후빈 씨 명의로 된 대포폰이나 복제된 휴대전화가 있는지 추적할 거예요.
외부와의 차단, 완벽한 고립. 가스라이팅을 하고 이를 유지하기 위한 필수조건이야. 게다가 공무집행방해죄로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고 해.
<가짜 김민수 검사> 자, 본인이 지금 녹취가 되고 있고, 본인이 진술하는 내용이나 모든 것들이 실시간으로 녹취에 담기겠죠? 전화가 종료되면, 담당 검사는 금일 딱 3번만 본인한테 전화를 드릴 거예요. 3번 전화를 드렸을 때, 본인이 전화를 안 받거나 통화 중이거나 전화가 꺼져있다면, 이런 경우도 강제 수사로 자동 전환됩니다. 검사가 지시한 거에 대답 안 하거나, 뜸 들이거나, 횡설수설하고 오해 받을 행동 계속하면 강제 수사로 전환되고. 본인은 전국에 체포 영장 바로 내려지고, 수배 내려지고, 체포되면 2년 이하의 징역, 처벌 받아서 살아야 돼요.
공무원 임용시험을 준비하고 있던 후빈 씨에게 이런 보이스피싱범의 말은 유독 크게 들렸을 거야.
"(공무집행방해죄가) 이 사람한테는 되게 중요한 협박 수단이 되는 걸 알고 있는 거예요. '저기요' 하고 의구심 한번 품는 순간 그게 녹음되잖아요. 계속 '너의 일거수일투족이 기록되고 있어' 이 사람이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 시간 내내. 그러니까 이 사람의 정신, 이 사람의 행동, 모든 걸 통제하기에 너무 좋은 방법인 거죠."
-김태경 교수, 서원대학교 상담심리학과
▲ 11시간의 통화
<가짜 김민수 검사> 제일 중요한 거 설명할게요.
<후빈> 네.
<가짜 김민수 검사> 본인이 수사받는 방식을 본인이 선택하는 거 예요. 1번은 '압수수색 영장을 통한 수사 방식'이 있고, 2번은 '임의 협조 수사 방식'의 협조 수사가 있어요. 압수수색 영장을 본인이 받았다면, 다음주 수요일 09시 30분까지 서울중앙지검을 본인이 출석하셔야 하는데, 3일동안 조사를 받으셔야 하니까 간단한 세면도구 챙겨 오셔야 되겠죠? 본인이 혐의점이 발견이 됐다면, 최대 법정 90일 동안 구속 수사를 받을 수가 있어요. 2번은 이미 협조 수사 방식인 협조 수사라고 했어요. 자, 협조가 무슨 말인 거 같아요? 후빈 씨?
<후빈> 도와준다고... 그런 내용인 거 같은데요?
<가짜 김민수 검사> 2번을 선택하게 되면 조사가 바로 시작됩니다. 전화가 끊어질 수 없단 얘기고요. 자, 장점은 금일 조사가 끝나는 게 장점이에요. 오늘 사건이 종결됩니다. 단점도 있어요. 후빈 씨가 발로 뛰어다니셔야 해요. 본인이 수사관처럼 보조 수사관 역할을 하시는 거예요. 쉽게 말하면.
압수수색 영장을 통한 수사방식과 임의협조 수사. 둘 중에 수사 방식을 선택하라는 거야. 후빈 씨는 2번, 협조 수사를 선택했어. 이제부터 후빈 씨는 보조 수사관이 되어 자신의 금융 피해를 직접 확인해야 한대. 그렇게 1월 20일 오전 11시경, 후빈 씨는 협조 수사를 하기 위해 집을 나선 거야. 계속 통화 중인 상태로. 귀에 꽂은 이어폰은 통화를 위한 장치였어.
그렇게 집에서 나온 그가 향한 곳은 집 근처의 한 커피숍이었어. 그곳에서 가짜 김민수 검사는 모바일 데이터를 잠시 켜고 인터넷 창을 열라고 해. 그리고 인터넷 주소를 불러줘. 뭐가 검색이 됐을까? 바로 대검찰청 홈페이지야. 그리고는 사건 공문을 조회하라고 해. 그러자 문서가 화면에 나타나. 바로 이거야.
사건 공문에는 "도용침해 신고접수를 받음과 동시에 계좌양도혐의거나 개인명의 도용피해자라는 것을 본인 스스로 해명을 해야 함."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고, 직인도 찍혀 있어. 그리곤 이런 질문들을 던져.
<가짜 김민수 검사> 본인 몇 급으로 되어있어요?
<후빈> 특급이요.
<가짜 김민수 검사> 물어볼게요. 특급이면 어느 정도 사건인 것 같아요? 본인이 관련된 사건이 어느 정도 규모의 사건인지 감이 오죠? 그럼 사건에 집중하셔야 되겠어요 어떻게 하셔야 되겠어요?
<후빈> 잘 해야겠어요.
이들이 보여준 건 사건 공문만이 아니야. 검사 신분을 증명하는 공무원증과 명함까지 확인시켜 줬어.
가짜 김민수 검사는 후빈 씨에게 은행에 가서 삼천만 원 정기예금부터 확인해 보자고 해.
<가짜 김민수 검사> 후빈 씨. 은행에 가서 통장을 해지해 보는 겁니다. 해지가 정상적으로 되면 문제가 없는 거고. 그런데 은행에서 '대출금이 있어서 해지가 안 됩니다'라고 하면 후빈 씨는 이미 피해를 당한 거고. 그렇죠? 그러니까 통장을 해지해 보면 바로 알 수 있겠죠?
그러면서 가짜 김민수 검사는 은행 직원도 믿으면 안 된다고 해. 이번 사건의 범인들이 금융권 전문가들이라 은행 직원도 한 패일 수 있다는 거야. 은행 직원의 인상착의, 수상한 점이 있는지 잘 파악하고 은행에서 나오면 진술하라 해. 후빈 씨는 먼저 순창에 있는 은행에 갔어. 그리고는 부동산 계약 때문에 통장 해지하고 돈을 모두 찾으려 한다고 해. 그러자 은행 직원은 액수가 크니까 현금으로 찾는 것보다 계좌로 송금하는 게 좋을 것 같다며, 지금 송금할 계좌를 모른다면 나중에 다시 오는 게 어떠냐고 제안해. 결국 후빈 씨는 돈을 찾지 못하고 나와. 그리고 가짜 김민수 검사에게 이렇게 말해.
<후빈> 선생님! 머리는 긴 파마머리고, 얼굴은 둥근형에 눈에 쌍꺼풀이 있고요. 코도 오똑하고...
돈은 못 찾은 채 은행 직원의 인상착의에 대해 자세하게 말을 해. 후빈 씨는 혹시 공범이 있다면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가짜 김민수 검사는, 후빈 씨에게 피해 확인을 제대로 못 했다고 닦달을 해. 그렇게, 다른 지점이 있는 정읍까지 가게 된 거야. 하지만 후빈 씨는 또 돈을 찾지 못했어. 타 지점에서 통장 해지 시, 개설 지점에 확인이 필요하다고 했거든. 출금 계좌에도 이상이 있을 수 있다며, ATM기에서 돈을 인출하게 만들어. 결국, 후빈 씨는 420만원을 인출하게 돼.
후빈 씨가 가짜 김민수 검사에게 보낸 사진이야. 그럼 이제, 다음 지시는 뭐였을까?
<후빈> 선생님 저 나왔습니다.
<가짜 김민수 검사> 후빈 씨 지금 시간이 없어요. 지금 그 앞에 기차역이죠? 기차역으로 빨리 뛰어갈게요. 20분이 지금 서울 올라오는 기차인데 빨리 탑승.
서울에 있는 금융감독원에 가서 본인의 돈이 범죄로 얻은 불법적인 돈이 아니라고 후빈 씨가 직접 자금 소명을 해야 한다고 한 거야. 그렇게 후빈 씨는 420만 원을 가지고 서울행 기차를 타게 돼. 지금까지 무려 7시간 동안 통화가 지속되고 있어.
그리고 후빈 씨의 휴대전화에는 이런 사진도 남아 있었어. 20일 날 사용한 영수증들이야. 김민수 검사가 이렇게 얘기를 했거든.
<가짜 김민수 검사> 모든 비용은 영수증을 꼭 챙기세요. 영수증을 챙겨 오시고 금융감독원 도착해서 수사관한테 제출하면 국가에서 오늘 당일 바로 지급할 거예요.
영수증 챙겨오면 처리를 해주겠다는 거야. 국가기관에서 말이야. 지금 이 일이 아주 적법하고 정당하다는 거겠지.
"믿으라고 하는 얘기예요. 내가 국가를 대신해서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거야', '네가 수고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내가 줄게'가 아니라 '다 국고에서 지원될 거야. 그러니까 네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정당하고 책임감 있는 행동이야', 이런 걸 강조하기 위해서 계속 그래요."
-김태경 교수, 서원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그리고 후빈 씨를 위하는 척 식사도 챙기고, 다치지 않게 조심하라고 해.
<가짜 김민수 검사> 본인 뭐 구매했어요?
<후빈> 녹차 천원 샀어요.
<가짜 김민수 검사> 녹차 갖다 식사가 어떻게 돼?
<후빈> 저.. 배가 안 고파서.
<가짜 김민수 검사> 아니 그래도 먹어야지. 간단하게 빵이라도 먹고. 이거 본인 법적으로 제공하게 돼 있는 거예요. 수사할 때. 본인 움직이시면서 턱 같은 거 잘 보시고요 넘어져서 다치고 그러시면 안 되니까. 수사 받으면서. 본인 안전도 중요하시니까 조심하시고.
후빈 씨는 어쩌면 이들을 '구원'이라 생각했을지도 몰라. 본인이 범죄에 연루됐을지 모르는 상황에, 자신의 무고를 밝혀줄 단 하나의 동아줄.
오후 6시 30분경. 후빈 씨는 서울에 도착해. 가짜 김민수 검사는 먼저, 금융감독원 인근 주민센터로 이동하라고 지시해. 그리고 주민센터에 있는 택배보관함을 찾으래. 금융감독원에 들어갈 때 몸 수색을 하는데, 반입 안 되는 물건이 있을 수 있으니 소지품과 현금 420만 원을 두고 가야 한다는 거야.
<가짜 김민수 검사> 김영란법이 뭐예요. 후빈 씨 설명 한번 해줘 봐 나한테. 녹취되고 있으니 설명 한번 해보세요.
<후빈> 5만원 이상으로 뭐 상품 같은 것들을 준다거나 이런 것이 안된다는 내용으로 알고 있어요.
<가짜 김민수 검사> 후빈 씨가 사건이 아직 안 끝났어. 자, 다량의 현금을 들고 국가기관에 입장했다고 칠게. 본인이 뇌물 먹이면서 청탁하면서 '저 먼저 빨리 수사 좀 마무리해 주면 안 돼요?'라는 형태로 식사비가 됐든 뭘 줄 수도 있잖아. 그러다 보니까 다량의 현금을 가지고 입장 자체가 안 되는 거야. 이해했나요?
결국 후빈 씨는 현금과 소지품이 든 가방은 택배보관함에 넣은 채 보이스피싱범의 지시에 따라 또 이동을 해. 금융감독원에 이미 조사 중인 사람이 있으니 근처 커피숍에서 대기를 하라는 거야. 그 사이, 택배보관함에 넣었던 420만원은 보이스피싱 일당이 가져갔어. 시간은 어느덧 오후 9시를 향해가고 있어. 이때, 김민수 검사가 금융감독원 직원이 후빈 씨가 있는 곳으로 갈 거라고 해. 그리고 이런 얘기를 덧붙여.
<가짜 김민수 검사> 자 지금 전화 종료하고 전화 끊자마자 바로 전원 끄고 15분 후에 전원 켜고, 그러면 제가 2분 후에 전화 바로 할게요. 알겠죠?
<후빈> 네.
<가짜 김민수 검사> 그래요 자, 전화기 끄세요.
후빈 씨는 휴대전화를 끄고 금융감독원 직원을 기다렸어. 후빈 씨는 기다리는 시간동안 그 커피숍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후빈 씨는 지시대로 15분 후 다시 휴대전화 전원을 켜. 그렇게 2분의 시간이 흘러. 김민수 검사가 다시 전화를 주겠다고 한 시간이야. 하지만, 전화는 오지 않았어. 당연히 금융감독원 직원 역시 오지 않았어. 무려 11시간 동안 통화를 하며 전북 순창에서 서울까지 올라왔는데, 갑자기 낯선 도시에 홀로 버려진 거야.
"(보이싱피싱범들이) 마지막에는 쓸모가 없다고 생각해서 버리는 거거든요. 개인적으로는 되게 나이브하게 얘기하면, 화가 났어요."
-김태경 교수, 서원대학교 상담심리학과
후빈 씨는 그 후, 바로 순창 집으로 내려가지 않았어. 이틀간 서울에 머물렀다고 했잖아. 후빈 씨는 왜 계속 서울에 머물렀을까?
"고군분투를 11시간을 했는데 갑자기 상황이 종료가 되었어요. '좀 이따 연락할 테니까 안 받으면 네 인생 큰일 나니까 전화 받아' 이렇게 얘기하면서 통화가 끝나잖아요. 그런데 이 사람 머릿속에서 심지어 종료도 된 게 아니에요. 연락이 안 오니까 이 사람은 '모든 게 끝났어'라는 신호를 못 받은 거예요."
-김태경 교수, 서원대학교 상담심리학과
잔인하게 버려진 그날, 후빈 씨의 카드 내역에는 커피숍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의 흔적은 없었어. 식사도 안하고 숙소를 잡지도 않은 거야. 다음날도 그 주변을 떠나지 못한 채 자신에게 전화가 왔던 그 번호로 수차례 통화를 시도했어. 당연히 보이스피싱범들은 전화를 받지 않았어. 그러던 중 갑자기, 후빈 씨의 휴대전화가 울려.
<동생> 어디야?
<후빈> 아 미안해. 나 지금 저기 딴 데 있어서 연락 못해서 미안.
<동생> 일어났는데 형이 없어.
<후빈> 아 미안 미안. 너 어떻게 출근하고 퇴근했어?
<동생> 나 엄마가 데려다줬어.
<후빈> 아, 미안 미안. 내가 데려다줘야 하는데 지금도.
<동생> 언제 오는데?
<후빈> 글쎄 이번 주에나 가려나. 설날엔 보겠지?
<동생> 왜 뭔데?
<후빈> 아 미안해. 지금 뭐 있어 가지고…
<동생> 바쁜 일이야?
<후빈> 있어…
지독한 공포와 절망 속에서도 후빈 씨는 동생의 출퇴근이 걱정인 거야. 그리고 21일 밤, 후빈 씨는 근처 모텔 방 하나를 잡아. 그리고 숙소로 들어가기 전, 편의점에 들렀어. 편의점에서 구매한 건 휴대전화 충전기. 언제 올지 모르는 김민수 검사의 전화를 꼭 받아야 하니까.
그렇게 이틀간 서울에 머물다 순창 집으로 온 후빈 씨는 끝내 죽음을 맞은 거야. 후빈 씨의 휴대전화 메모장에 유서가 남아 있었어.
"저는 억울한 피해자입니다. 저는 서울지방검찰청에서 연락받은 금융범죄 공모단 수사를 고의로 방해한 게 아니며 저와 같은 선량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길 바랍니다… 제가 유서를 쓰는 본 목적은 공무집행방해죄를 얻게 된 이러한 상황이 있었고 고의가 아니며, 범죄를 옹호하지 않고 협조하려 했던 선량한 피해자였단 걸 알리고 싶어서입니다. 그리고 억울하게 또는 선량하지만 어떠한 계기로 불행을 얻지 않길 바랍니다."
유서 말미에 이런 내용도 있었어.
"제 물품은 주민센터 입구 택배보관함에 있습니다. 두려움에 가져오지 못했는데 챙겨올 걸 그랬네요..."
후빈 씨는 죽는 순간까지도 자신이 보이스피싱을 당했다는 사실을 몰랐던 거야.
"너무 무서웠던 거예요. 공무원을 준비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런 범죄에 연루됐다는 것만으로도, 그냥 인생이 끝난 거거든요. 이 사람의 머릿속에서 자기 인생을 잃은 거예요. '너 바보지? 내가 네 돈 갈취했어' 라고 했으면, 범인들이 그 말 한마디라도 해주고 전화를 끊었으면 달랐을 거예요. 보이스피싱이라는 거 알았으면 이분이 죽음을 선택했을 가능성은 0%. 자기를 철석같이 믿고 있다는 걸 뻔히 알고, 연락을 끊으면 이 사람이 얼마나 불안해할지조차도 이 사람들은 알았을 거거든요. 그런데 그거에 대한 일말의 측은지심조차도 없는 부류의 집단인 거죠. 이건 살인이에요. 자살이 아니라 살인이라고 생각해요."
-김태경 교수, 서원대학교 상담심리학과
▲ 얼굴 없는 살인자
후빈 씨 어머니는 아들이 갔던 장소들을 찾아가 보셨대.
"너무 서울이 추운 거야. 서울이. 추운데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거기까지 오면서. 뭘 먹지도 못하고. 주민센터 바로 앞에 파출소가 있었어요. 애가 얼마나 세뇌가 됐으면 바로 코앞에 파출소가 있는데도 거기에 돈을 넣고 그랬겠어요. 그리고 거기 커피숍 들어가서 아들이 앉았던 자리도 보고… 뭘 먹었나. 아마 아메리카노 한 잔인가 시켰던 것 같아요. 거기서 계속 기다렸으니까요. 그냥 돈만 보내라고 그랬으면 분명히 여기(순창)서도 보냈을 건데, 굳이 서울까지 오라고 해서… 사람을 그렇게까지 하는 거는 걔네들이 되게 재미 붙인 거예요. 사냥을 한 거야."
-故김후빈 씨 어머니
후빈 씨 가족들은 아들의 유서와 함께 "내 아들을 죽인 얼굴 없는 김민수 검사, 잡을 수 있을까요?" 라는 내용의 국민 청원을 올렸어.
"선량한 사람들이 피해를 입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런 일을 안 겪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 있어요. 그래서 국민청원을 하게 된 거죠. 그 유서가 바탕으로 해서…"
-故김후빈 씨 어머니
그런데 그 후, 후빈 씨 어머니는 충격적인 일을 또 겪었어. 아들의 첫 기일 쯤, 아들 이름으로 문자가 온 거야. 보이스피싱 문자였어.
"엄마 나 후빈. 폰 떨어뜨려 액정 나갔어. 임시폰 받은 건데 문자만 가능. 부탁할 거 있어 문자 줘."
-보이스피싱범이 아들 이름으로 보낸 문자 내용
여기에 어머니는 답장을 했어. 어머니는 이 보이스피싱범은 잡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답을 했대.
이 보이스피싱범들을 그대로 둬선 안 되겠지? 지금 이 순간에도 가짜 김민수 검사, 가짜 이도현 수사관이 또 다른 누군가의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고 있을지 몰라. 그런데, 이 보이스피싱범들을 잡는 게 쉽지 않아. 보이스피싱 조직의 근거지는 외국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거든. 그리고 점조직 형태라서 국내 수거책, 대포통장 모집책을 잡더라도 콜센터 직원, 조직원, 총책이 누군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해. 심지어, 후빈 씨의 420만 원을 가져간 수거책은 고등학생이었다고 해.
현재까지 알 수 있는 가짜 이도현 수사관, 가짜 김민수 검사에 대한 정보는 뭘까? 우리가 아는 건 목소리 하나 뿐이야. 본명, 인상착의, 당연히 몰라. 통화를 했던 번호도 아무 소용이 없어. 막막해. 그런데 가짜 김민수 검사를 잡을 수 있는 단서가, 아주 뜻밖의 곳에서 흘러나와.
▲ 가짜 검사를 잡아라
2년 전인 2018년, 부산에 있는 한 미용실이였어. 부산경찰청 소속 형사 한 명이 이 미용실을 찾았어. 이발을 하고 있는데 미용실 원장이 형사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
"우리 애 친구가 중국에 갔다 왔다 그라는데, 무슨 보이스피싱 조직에서 일하다 온 것 같다 카데예."
부산경찰청은 이 첩보를 받고 내사에 착수했어. 보이스피싱 조직에서 일했다는 그 친구를 조사하고, 2년에 걸쳐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을 검거 중이었어. 그런데, 검거한 조직원 중 한 명에게서 아주 뜻밖의 이야기를 듣게 돼.
"당시에 사건 수사를 진행해서 검거한 콜센터 팀장이 있었습니다. 본인 조직에서 목소리가 우렁차고 화법이 좋아서 범행 실적이 우수한 조직원이 있었는데, 그 조직원이 한 사람 상대로 범행을 했는데 극단적인 선택을 해서 그게 청와대 국민청원 에 올라왔고 보도가 되었다, 그런 진술을 확보를 했습니다.
-이지완 경감, 부산경찰청 형사기동대
이 이야기 속 우수한 조직원이 누구야? 바로 가짜 김민수 검사야.
"(이지완 형사님이) '어머니 꼭 잡아드릴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랬어요."
-故김후빈 씨 어머니
"사실 못 잡을 수도 있거든요. 확신은 아니었지만 어머님께 꼭 잡겠다고 말씀드렸죠."
-이지완 경감, 부산경찰청 형사기동대
형사들은 검거된 보이스피싱 조직원에게 물어봤어. 그 김민수 검사라는 사람의 진짜 이름이 뭐냐고. 하지만 조직원도 모른다는 거야. 신원 특정이 안 되도록 조직원들 모두 가명을 사용했다는 거야.
"가명 하나만 알고 있거든요. 그런데 그 가명도 계속 교체를 하기 때문에 특정할 수가 없습니다."
-이지완 경감, 부산경찰청 형사기동대
"어떻게 보면 점조직의 특성이죠. 서로 실제로는 모르고 가명 정도만 알고 있고. 수거책이나 인출책이 잡히더라도, 그 수거책은 윗사람이 누군지를 모릅니다."
-이영재 경사, 부산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
그런데 말이야. 이런 말이 있잖아.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김민수 검사랑 같이 일했다는 조직원에게서 압수한 물품 중에 외장하드가 있었거든. 여기서 뭐가 나온 거야. 바로 이거야.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의 회식 사진이야.
"조직원들이 담합을 위해서 주기적으로 회식을 합니다. 그 때 우연히 촬영된 사진이 하나 있었거든요."
-이지완 경감, 부산경찰청 형사기동대
중앙에 흰옷 입고 여자 안고 있는 남자 있지? 그가 바로 가짜 김민수 검사야.
조명 아래 마이크를 들고 서 있는 사진도 있어.
이 사진 속 검은 상의를 입고 춤을 추는 남자는 가짜 이도현 수사관이래.
좀 흐릿하긴 하지만 목소리 뒤에 가려져 있던 진짜 얼굴이 드러나는 순간이야. 그리고 조직원을 조사하던 중에 결정적인 정보가 하나 더 나와.
"김민수 검사, 2019년 3~4월 경, 중국 칭다오에서 한국으로 입국했다가 다시 중국으로 출국."
형사들은 이 기간 중국 칭다오에서 한국으로 들어온 입국자 명단을 확보해.
"한국에 2019년 3~4월 쯤에 갔다 온 적이 있다고 해서, 그 기간에 한국에서 중국 왔다 갔다 한 사람 전체를 확보한 다음에 여권 사진과 회식 사진을 비교해봤었죠."
-이영재 경사, 부산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
입국자 명단의 인원이 어느 정도될까? 무려 14,000명이야.
"14,000명 정도에서 1차로 추리니까 300~400명 정도 되었던 것 같고, 그 300~400명에 대해서 현재도 중국에 있는지 중국에 어느 기간 체류했었는지 비교해 봤죠. 뭐 AI나 이런 것도 그때 없이 진짜 오로지 수작업밖에 없고 눈으로 보고 판단하는 작업밖에 없었죠. 시력이 좀 나빠진 것 같습니다. 그때 이후로."
-이영재 경사, 부산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
눈이 침침하고 충혈될 정도로 보고 또 봤어. 그렇게 추리고 추리는 과정을 매일 반복하던 어느 날, 드디어 뭔가를 찾았어.
"그때 엑셀 파일을 보고 있었거든요. 오른쪽은 엑셀 파일, 왼쪽에는 얼굴 사진을 실시간 조회하는 거죠. 두 개 화면을 비교하는데, 소리를 지르는 거죠. '인마 맞제?' 그러는 거죠. 우리 팀원들이 다 달라붙어서 '맞다'… 자, 시작하자..."
-이지완 경감, 부산경찰청 형사기동대
"피의자 인적 사항이 특정됐을 때, 저희는 '됐다' 이런 생각도 했고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런 생각도 약간 두가지 생각이 동시에 들었습니다."
-이영재 경사, 부산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
가짜 김민수 검사, 놀랍게도 지금 국내에 있는 것으로 확인이 돼. 이제 검거하면 되겠지? 그런데 그게 쉽지가 않아. 주민등록상 주거지를 찾아가 봤더니 없어. 살지를 않아. 계좌, 카드 내역을 조회했지만 거의 사용을 안 하고 있어. 형사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구치소, 교도소를 찾아갔어. 이미 검거된 조직원들에게 작은 실마리라도 얻으려는 거야. 그리고 휴대전화 통신내역을 조회해서 자주 등장하는 번호, 자주 사용된 기지국 위치들을 점차 좁혀 갔어. 그렇게 밤낮 없이 뛰어다니던 어느날, 형사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사무실 가득 긴장감이 감돌아. 드디어 은신처가 확인된 거야.
형사들은 가짜 김민수 검사, 가짜 이도현 수사관, 그리고 또 다른 조직원까지, 세 팀으로 나눠 동시에 검거 작전을 진행하기로 해. 이지완 형사와 이영재 형사는 가짜 김민수 검사의 은신처로 향했어. 오피스텔 복도를 조심조심 걸어가 현관문에 귀를 대봐. 인기척이 느껴져. 문 너머 들리는 목소리, 가짜 김민수 검사의 목소리가 맞아.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고 저희가 맨날 듣던 녹취 음성하고 일치했고."
-이지완 경감, 부산경찰청 형사기동대
"압수수색 영장이 있기 때문에 문을 부수고 들어갈 명분은 되는데, 그 사이에 휴대전화 내용을 지우거나 아니면 밖으로 뛰어내리거나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냥 문 열릴 때까지 기다렸죠."
-이영재 경사, 부산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
그렇게 문 앞에서 기약 없는 잠복이 시작돼. 1시간, 2시간, 3시간... 무려 7시간이 흐른 그때!
"음식물 쓰레기 봉지를 들고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인사하고 같이 들어갔죠. '안녕하세요 경찰청입니다' 그러면서. '왜요?' 그러더라고요. 영장 보여주고 수갑 채운다고 했더니,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더라고요."
-이영재 경사, 부산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
3군데서 체포 작전이 펼쳐졌고, 체포된 보이스피싱범들은 "내가 무슨 죄를 지었냐", "왜 수갑을 채우냐", "무슨 사기를 쳤다고 그러냐", "너무 황당하다" 면서 하나같이 뻔뻔한 반응을 보였어.
▲ 판결의 시간
가짜 김민수 검사와 가짜 이도현 수사관은 원래 알던 사이였대. 사실 국내에서의 생활도 돈에 쪼들리는 것도 아니었다고 해. 그냥 쉽게 돈을 벌려고 간 거야. 중국에서도 호화스럽게 생활했다고 해.
가짜 김민수 검사와 가짜 이도현 수사관에 대한 경찰 조사가 시작됐어. 이들은 자신의 혐의에 대해 뭐라고 했을까?
"형사님~ 제가 한 거 같긴 한데 애매해요. 기억이 잘 안 나요."
자신의 죄를 줄이기 위해 생각이 안 난다고 대답한 것도 있겠지만, 범죄를 너무 많이 저질러서 진짜 기억을 못하는 것 같았다는 거야.
"이 사람이 워낙 많이 해왔기 때문에 자기가 속였던 피해자가 누구누구였는지도 모를 정도로 많이 성공했다 하더라고요. 이게 자기들한텐 일상이 된 거죠."
-이영재 경사, 부산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
이들은 검찰 조사를 받을 때도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해.
"안녕하세요. 검사님. 식사는 하셨어요?"
"네~ 그건 제가 잘못한 거죠. 인정합니다."
순한 양이 따로 없어. 이들의 의도는 뭘까?
"상황 판단을 빨리 하는 사람들이구나. 이 상황에서 내가 바짝 엎드려야 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검사나 수사관한테는 깍듯하게 하고, 최대한 협조해서 빨리 빠져나오자 이런 전략을 택한 것 같아요. 다른 보이스피싱 조직원들보다 이 사람들은 굉장히 수준급이다, 선수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나 검사 사칭 피고인 같은 경우는 굉장히 노련한 사람인 거죠."
-이치현, 당시 사건 기소 검사
그리고, 재판이 시작돼. 재판정에는 후빈 씨 어머니가 참석하셨어. 가슴에 아들의 영정사진을 안고 재판정에서 이런 말을 하셨대.
"그 범인이 들으라고 말했어요. '우리의 삶은 이제 완전히 무너졌다' 담양에 추모 공원에 우리 아들이 있으니까 나중에 꼭 가서 사과하라고. 그렇게 했어요."
-故김후빈 씨 어머니
어머니는 정당한 심판이 내려지길 바라며, 아들을 죽게 만든 이들을 똑똑히 바라봐. 하지만 범인들은 재판 내내 어머니를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다고 해. 그러면서 눈물의 호소를 했다고 해. 본인의 돌봐야 할 가족 이야기를 하면서.
검찰은 가짜 김민수 검사에게 징역 13년을, 가짜 이도현 수사관에게 징역 11년을 구형했어. 하지만 선고된 형량은 각각 6년이었어.
"이 사건에서 제일 중요한 건 사기죄였는데요. 사기죄는 재산적인 피해 규모가 선고형을 정하는 기준입니다. 사기 피해를 당해서 사망한 것까지를 처벌하는 별도의 죄명은 없거든요."
-이치현, 당시 사건 기소 검사
그런데 가짜 김민수 검사와 가짜 이도현 수사관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어. 형이 너무 무겁다며.
"2심에서는 오히려 검사 사칭 피고인은 5년 6개월로 감형이 됐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피해자들과 합의했는지 여부입니다. 사기죄는 재산적 피해인데, 사망한 피해자 이외에 다른 피해자 중에 상당수는 합의했기 때문에 형 감경의 요소로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거든요. 근데 그 합의금의 출처가 어딘지는 모르죠. 보이스피싱 범행으로 취득한 돈이었을 수도 있거든요."
-이치현, 당시 사건 기소 검사
재산범죄의 특성상 5000만 원의 피해를 당했어도 1000만 원에 합의하자고 하면 거부하기가 힘든 거야. 끝내 피해 회복이 안 될 수 있으니까. 이들의 형량은 이대로 확정됐어.
"저는 10년형만 받았어도 조금 더 마음이 편했을 거예요. 10년이면 이제 강산이 한 번 변하니까. 10년이라도..."
-故김후빈 씨 어머니
▲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법
이번에 '꼬꼬무'가 어렵게 만난 사람이 있어. 바로 '진짜' 김민수 검사야.
"저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민수 검사입니다. 저는 지금 형사 4부에서 다단계 사건이랑 보이스피싱 같은 서민 다중 피해 범죄를 전담하고 있습니다."
-김민수 검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형사4부
우리가 진짜 김민수 검사를 만난 이유가 있어.
"제가 처음에 중앙지검에 발령이 나서 피의자 조사를 하기 위해 출석 요청을 위한 전화를 했습니다. 전화를 해서 '안녕하십니까?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김민수 검사입니다' 라고 얘기를 했더니, 그 피의자분께서 끊으셨습니다. 그래서 '왜 끊으시지?' 하고 다시 전화를 드렸더니, 또 끊는 겁니다. 조금 이따 경찰에서 연락이 와서 보이스피싱이라고 신고가 들어왔는데 거기 뭐하시는 곳이냐 묻더라고요. 그런 면에서 조금 당혹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수사기관에서 하지 않는 것들을 범죄에 악용해서 하는 것에 대한 설명이 더 필요할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김민수 검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형사4부
무엇보다 수사기관에서 하는 일과 하지 않는 일을 안다면 보이스피싱 피해 예방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지금부터 보이스피싱범들의 범죄 수법을 파헤쳐 볼 거야.
가짜 김민수 검사가 전화를 해서 처음에 이렇게 얘기를 했지. '당신이 피해자일 수도 있고, 피의자일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보조 수사관 역할로 직접 피해 확인을 해야 한다'라고.
"피해자에게 '당신은 피의자도 아니고 피해자도 아니다'라고 말하는 게 가장 의아했습니다. '네가 정말로 피해자가 맞다면 내가 시키는 대로 해. 그러면 내가 널 피해자로 인정해 줄게' 이렇게 하는 경우는 절대 없습니다."
-김민수 검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형사4부
그리고 가짜 김민수 검사가 '우리 수사 1팀이 금융 범죄 사기단 28명을 검거했는데 전국에 한 7~80명 정도의 범인들이 있는 걸로 확인이 됐다'라고 말했잖아. 이거 또한 말이 안 된대.
"누가 체포되었다, 공범들을 하나씩 체포하고 있다, 이런 것들은 수사 기밀이기 때문에, 절대 사건 관계인이나 피의자나 피해자에게 직접적으로 그것도 전화통화로 얘기하지는 않습니다."
-김민수 검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형사4부
또 범인들은 수사기관의 전화를 끊거나 안 받거나, 심지어 말을 제대로 못하면 공무집행방해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고 했어.
"말을 조금 더듬었다든지 아니면 말을 똑바로 못 했다고 해서, 수사에 협조하라는 식으로 겁박하는 경우는 절대 없습니다. 개인의 신체나 자유, 재산을 침해하기 위해서는 굉장히 다양한 법적 절차를 거쳐야 하고, 그 기간이 짧지 않게 걸리기 때문에 그런 일은 절대 없습니다."
-김민수 검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형사4부
그리고, 수사기관에서 전화를 하는 경우는 단 세 가지뿐이라고 해. 첫 번째, 출석 일정 조율. 두 번째, 간단한 진술 청취. 세 번째, 자료 제출 요청. 혹시 검사나 수사 기관이라고 전화가 오면 지금 들은 정보들을 잘 기억하고 대처를 하면 좋을 것 같아.
"대검찰청에서 '보이스피싱 찐센터'라는 것을 개설했습니다. 검사나 수사관 이름을 사칭한 보이스피싱이 너무 횡행하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검사한테 연락이 왔는데 진짜 검사 맞나요?'라고 문자를 보내면, 검찰 관련된 보이스피싱인지 아닌지를 알려주는 보이스피싱 찐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김민수 검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형사4부
기술의 발전과 함께 보이스피싱 범죄 수법이 나날이 진화하고 있어. AI로 가짜를 진짜처럼 만들 수도 있어. 단 10초 정도의 음성만 있으면 AI로 목소리 복제가 가능하대. SNS 영상 속 짧은 목소리도 얼마든지 범죄에 이용될 수 있는 거야. AI 조작 음성을 활용한 '자녀 납치 빙자' 보이스피싱까지 등장했어.
근데 이건 기술의 문제가 아니야. 그걸 악용하는 사람들이 문제인 거지. AI로 만든 목소리를 AI로 판별하는 세상이 왔어. 진화하는 범죄 수법만큼 이를 막는 기술 또한 발전하고 있어.
▲ 누구나 예외는 없다
가짜 김민수 검사 보이스피싱 사건 후 5년이 흘렀어. 어머니의 메신저 프로필 화면이야. '언젠가는♥울아들'이라는 문구가 눈에 띄어. 아들을 가슴에 묻은 지 2000일이 넘게 흘렀어. 그 일 이후 처음에는 둘째 아들과의 통화도 수월치가 않았대. 둘째 아들에게 전화해서 "엄마야"라고 하면, "진짜 엄마 맞아?"라고 확인부터 하게 되는 거야.
그런데, 사건 이후 무엇보다 가슴이 아픈 일은 따로 있었다고 해. "도대체 보이스피싱을 왜 당하는 거야? 바보 아니야?", "그런 거에 속은 사람 잘못이지"라며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차가운 시선들 때문이야.
"'바보야? 그걸 왜 보내?' 막 이렇게. 안 당해본 사람들이 하는 말이죠. 보이스피싱은 단순한 범죄가 아니에요. 사람이 당하게 되면 정말 한순간에 당하는 거니까 자기가 자기 의지대로 한 되는 거니까, 절대 자책하지 마세요. 본인의 잘못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제발 이제 멈췄으면 좋겠어요. 피해자가 정말 한 사람도 안 생겼으면 좋겠어요."
-故김후빈 씨 어머니
"보이스피싱범들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그거에 대응하는 우리의 태도들은 진화하지 않고 있어요. 왜냐하면 순전히 피해자 탓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똑 같은 수법이 이렇게 끊임없이 몇 년 동안 먹히는 이유가 딱 그 지점인 거예요. 근데 피해자도 현명한 사람 이었어요. 그런데 그들의 덫에 걸리는 순간, 생존의 뇌로 모드를 바꿔버리면 그 현명한 판단이 더 이상은 작동을 안 하는 거예요. 이건 누구나 똑같아요. 진짜 관심을 가져야 돼요. 나한테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는 건 대단한 착각이에요. 범인이 작정하고 타깃으로 삼는 순간 누구든지 걸릴 수 있어요."
-김태경 교수, 서원대학교 상담심리학과
2025년 한 해에 발생한 보이스피싱 건수는 23,360건. 피해액은 무려 1조 2,578억 원에 달한다고 해. '나는 절대 안 당해'라고 감히 장담할 수 있을까? 오늘의 이야기가 후빈 씨 어머니의 바람대로 보이스피싱 범죄가 없는 세상을 만드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BS연예뉴스 강선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