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례 1.
개미 투자자들 사이에서 '슈퍼개미'의 대명사로 통하던 A 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와 SNS 등에서 특정 종목들을 언급해 시세를 띄운 뒤, 보유하던 주식을 매도해 50억 넘는 차익을 올린 '선행매매' 혐의로 금융당국과 검찰 수사를 받고 지난 2023년 기소됐다. 하지만 1심 법원은 A 씨에 무죄를 선고했다. 2심에서는 일부 뒤집혔지만 집행유예에 3억 원의 벌금형만 선고됐다. A 씨가 벌어들인 수익에 비하면 가벼운 처벌이었다. A 씨 말에 속아 피해를 봤다고 주장한 개미 투자자들은 소송을 통해서도 피해를 보상받지 못했다.
# 사례 2.
코스닥 바이오 열풍의 중심이었던 S사에는 개미들의 투자금이 몰려 있었다. 하지만 S사 임원들은 임상 3상 실패라는 대형 악재가 공시되기 직전, 보유 주식을 전량 매도해 수십억 원의 손실을 회피한 혐의가 드러나 지난 2020년 재판에 넘겨졌다. 하지만 긴 재판 끝, 법원은 해당 임원들의 미공개 정보 이용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 "주식을 판 시점에 임상 실패라는 결과가 확정되지 않았고, 임원이 그 결과를 미리 알았다고 볼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개미 투자자들은 S사가 임상 성공 가능성이 낮다는 사실을 알고도 호재성 정보를 유포해 주가를 띄웠다고 주장했지만, 형사 처벌은 물론 민사상 손해배상도 대부분 받지 못했다. 악재 공시 직전 실현된 수익은 S사 임원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갔다.
대한민국에 유가증권 시장이 개장한 이래 취임한 대통령들 중 '주식'에 대해 가장 많이 언급하는 이는 단연 이재명 대통령이다. 자본시장 선진화 방안을 추진하며 반복적으로 언급하는 "주가조작 패가망신" 구호는 이제 많은 개미 투자자들에게 '환호의 밈'이 되었다. 전례 없는 증시 호황까지 실현되면서, 이 대통령의 자본시장 정책은 집권 2년차 고공행진 지지율의 탄탄한 주춧돌이 되고 있다.
폐지의 기로에 서 있는 검찰 또한 정부와 여당의 정책 드라이브에 발맞춰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서울남부지검(지검장 성상헌) 금융범죄합수부(부장검사 신동환)는 최근 주가조작 사건 수사 속도를 한껏 높이고 있다. 현직 증권사 부장이 대기업 총수 일가 3세인 A 씨 등과 공모해 코스닥 상장사 시세를 조종했다는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달 초 증권사 부장을 구속한 검찰은, 그제 (17일) 유명 인플루언서의 남편이기도 한 A 씨에게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그야말로 '속도전'이다.
기사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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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증권사 부장이 '시세 조종'…대신증권 압수수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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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주가조작에 유명 인플루언서 남편도…검찰 구속영장 청구 (D리포트)
하지만 새 정부 들어 탄력을 받고 있는 '주가조작 패가망신' 드라이브가 보여주기식 '이벤트'가 아닌 실질적인 결과물을 낳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제도적 과제들이 있다. 이것들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지금은 대중의 박수갈채를 받고 있는 "주가조작 패가망신" 구호는 몇 년 뒤 '그래서 이뤄진 게 뭐냐'는 비난의 부메랑이 돼 날아올 공산이 크다.
법은 20세기, 수법은 21세기

대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 무죄 선고율은 2017년 3.5%에서 2024년 9%까지 증가했다. 전체 형사 사건 무죄율이 1% 조금 넘는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9배 가까이 높은 수치다. 대한민국에서 일반 범죄에 비해 주가조작 범죄를 처벌하기는 훨씬 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전문가들은 십수 년 전 만들어진 형법은 더디게 개정되는데, 주가조작 세력들의 수법은 빠르게 진화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한다. 2012년 경 벌어진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은 주요 피의자들의 핸드폰에 문자메시지가 남아 있었고, 증권사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주문을 하던 시절이었기에 녹취록 또한 남아 있었다. 하지만 2026년, 핸드폰 문자메시지로 '작전'을 주고 받고, 증권사 직원을 통해 매수 주문을 넣는 '세력'은 단언컨대 없다. 단대단 암호로 처리되는 '텔레그램', '시그널' 메신저를 통해 소통한 뒤 연락 기록을 지우고, 증권사 직원과의 통화 기록 같은 것도 애초에 존재할 일이 없다.
주가조작 사범들을 처벌할 단초인 '부당이득액 산정' 또한 쉽지 않다. 지난 2024년과 2025년 자본시장법의 연이은 개정으로 '산정이 어려운 경우 총 수입에서 총 비용을 뺀 금액'을 부당이득으로 보도록 하고, 부당이득액의 최대 2배까지 과징금을 매길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법정에서 총 수입과 총 비용 중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부당한' 것인지 입증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주가조작 수사 경험이 많은 한 변호사는 "형사법상의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대원칙 앞에서 주가조작 세력의 부당이득액을 상세히 산정해 처벌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고 평했다.
많게는 수백~수천억대 차익을 실현한 뒤 호화 변호인단 구성에 아낌없이 돈을 쓰는 주가조작 세력에 비해 검찰 등 수사기관의 대응력이 날로 후퇴하고 있는 점도 문제다. 최근의 형사사법 제도 개혁 논의는 일반 국민 99%는 살면서 받을 일이 없는 정치 관련 특수수사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패가망신"을 주문하고 있는 자본시장 범죄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처벌할 것인지와 관련된 담론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수사 인력이 재판에 정식으로 참여하는 것이 일률적으로 제한되고, 수사 주체와 절차도 복잡해지면서, 사건이 터지고 세월이 흐른 뒤 '큰손'들은 조용히 무죄를 받고 나올 확률이 점점 커지고 있다.
수사-재판 효율화·민사 소송 등으로 '실제 패가망신' 시키는 선진국

자본시장 형성 역사가 오래된 선진국들은 자본시장 교란 행위에 대해 효율적이고도 중층적인 처벌 시스템을 갖춰왔다. 외국의 형사사법 제도가 다 좋은 것은 아니지만, 금융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하는 과정 속에서 선진국들은 적어도 자본시장 교란 사범에 대해서는 효율적인 대응 시스템을 정비해 오고 있다.
자본주의의 심장인 미국은 자본시장 교란 사범에 대해 검찰과 감독당국이 유기적으로 협력해 '실제 망할 수 있을 정도'의 제제를 가한다. 우선 미국 검찰은 자진 신고 시 형벌을 감경해주는 '리니언시' 제도는 물론, 피고인이 유죄를 인정하거나 수사에 협조하는 대가로 형량을 줄여주는 '플리바기닝'이라는 무기를 갖고 있다. 자본시장 범죄가 조직화·대형화되고, 기술 발달로 '세력'들의 범죄 은폐 수단은 나날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수사기관이 제도적 대응력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검찰 수사와 함께 당국의 민사 소송 절차도 실효적 압박 수단으로 기능한다. 여러 재량권을 가진 미국 SEC(증권거래위원회)는 형사 소송보다 입증 책임이 완화된 민사 소송 절차를 통해 피해를 입증하고, 자본시장 교란 사범으로부터 부당이득액을 실효적으로 돌려받는다. 스티븐 코언이 설립한 SAC 캐피털이 약 10년간 20여 개 상장사의 미공개 정보를 입수해 거래한 혐의 사건에서, SAC 캐피털은 총 8억 달러(약 2조 4천억 원)의 벌금을 내기로 당국과 합의했다. 부당이득 환수와 민사 배상금, 형사 벌금이 결합된 형태인데 한국에서는 사례를 찾기 힘든 액수다. 말레이시아 국영투자펀드(1MDB)의 자금 횡령 과정에서 골드만삭스가 채권 발행을 주관하며 뇌물을 방조하고 막대한 수수료를 챙긴 사건에서도, 골드만삭스는 미국 SEC에만 민사 벌금 4억 달러와 부당이득 환수금 6억 달러를 냈다.
한국, 무엇이 문제인가?
과거에 비해 정부와 여당이 자본시장 정상화에 대한 강한 의지를 피력하고 있고, 검찰 등 수사기관도 '정치 수사' 대신 금융 범죄 등에 대응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점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게다가 최근 추진되고 있는 일부 형사사법 제도 개편 방안은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자본시장 범죄는 회계, 금융 기법, IT가 결합된 고도의 전문 범죄다. 하지만 경찰이나 금융당국 특사경이 수사한 뒤 검찰이 송치 받아 기소하는 구조 속에서는 범죄 대응에 엄청난 시간이 소요된다. 경찰이나 금융당국 내부에도 우수한 인력들이 많지만, 수사와 기소 절차가 갈수록 복잡해지면서 효율적 협업에 여러 장애가 따른다. 금융당국 특사경/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이 별개 기관으로 대응하는 방식으로 대형 로펌들의 조력을 받는 '세력'들의 범죄 양태를 최종심에서까지 입증해내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정부-여당의 형사사법 제도 개편 합의안이 국회를 통과한 뒤에라도, 적어도 대통령이 '패가망신'을 공언한 금융 범죄에 한해서만큼은 유관기관들이 함께 일하며 대응할 수 있는 '합동수사단'의 출범이 불가피해 보인다.

텔레그램/시그널 등 보안 메신저와 다크웹을 사용하며 증거를 남기지 않는 범죄자들은 늘어나는데, 대한민국 수사기관에는 이들을 회유해 범죄 몸통을 추적하기 위한 '플리바기닝' 같은 유인책도 없다. '검찰 공화국'의 오명을 짊어진 한국 사회에서 '플리바기닝'은 검찰의 '조작 수사'를 가능하게 할 수 있다는 문제 제기가 이어져 왔다. 하지만 모든 정책적 수단엔 장점과 단점이 있기 마련이다. 대통령까지 전 국민 앞에 나서서 발본색원을 주문하고 있는 금융 및 경제 범죄에 한해서만큼은 적정한 통제 방안을 갖춘 '플리바기닝'을 도입하는 방안을 전향적으로 검토할 때가 됐다.
법 체계가 다른 외국 사례를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디스커버리(Discovery, 증거개시)' 제도 정도는 도입돼야 개인 투자자들이 민사 소송을 통해 실질적 구제를 받을 수 있다는 목소리도 거세다. 미국에서의 민사 소송이 강력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로 소송 시작 전 상대방의 이메일이나 내부 문건 등을 공개하도록 강제하는 '디스커버리 제도'가 흔히 언급된다. 주가조작의 증거가 기업 내부 서버나 임원 휴대폰 등에 있는데, 디스커버리 제도가 부재한 한국에서는 피해자인 개미들이 민사 소송에서 스스로 이를 입증해야만 한다.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법원에 증거조사를 신청해도 기업이 "영업비밀"이라며 거부하면 강제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 통상 개미들의 민사 소송은 형사 재판 결과가 나오는 걸 기다리곤 하는데, 최근처럼 형사사법 제도 변화로 수사와 재판에 소요되는 기간이 길어질 경우, 국가 권력의 힘을 빌어 자료를 확보할 수단마저 없어지게 된다.
실망은 환호를 먹고 자란다
깊어진 한국의 정치 양극화는 주식시장과도 연동해 작동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당을 싫어하는 이들 중 꽤 많은 사람들이 '이재명과 민주당이 코스피 5000을 달성할 리 없다'며 '곱버스'에 거액을 베팅했다. 일부 보수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는 '중국 자본 유치론' 같은 괴담도 퍼졌다. 현재 시점을 기준으로, 이 포지션에 베팅한 많은 사람들은 거액의 계좌 손실이라는 쓴 잔을 받아 들고 있다. 한편 정치적으로는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당을 싫어하지만 국내 주식 상승에 베팅한 투자자들은 '일베' 같은 극우 커뮤니티에서 불어난 수익을 인증하며 '대재명'을 외친다. 자본시장 등락에 따라 여론 정치의 지형마저 요동치는 동조화 현상이 심심찮게 관찰되고 있다.
자본시장 정상화 등 여러 정책들의 추진으로 한국 주식시장이 장기적으로 우상향할 수 있다는 전망이 국내 기관뿐 아니라 해외 기관에서도 나온다. 하지만 '장기 우상향'의 전망이 실현된다 해도 그 과정에는 부침이 있을 수밖에 없다. 자본시장의 성장 과정에 크고 작은 사이클이 동반된다는 것은 물리 법칙과도 같은 사실이며, 현 정부 임기 중에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될 '정해진 미래'다. 이 부침의 사이클 속, 이재명 정부는 한반도의 계절만큼이나 극단적으로 요동치는 여론을 달래며 자본시장 정상화를 비롯한 여러 국정 과제를 추진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자본시장 질서를 떠받치는 제도의 정합성과 안정성이 필수적으로 담보 돼야 한다.
정부-여당 사이 몇 차례 소용돌이를 거쳐 새로운 형태의 형사사법 제도가 마련됐다. 여러 범죄에 대한 대응력이 떨어져 장기적으로 정권 운영에 걸림돌이 될 거란 우려가 정부와 여권에서도 분출하고 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기를 바랄 뿐이다. 다만 이제부터 중요한 것은 앞으로 따라올 수밖에 없을 제도 보완 과정이다. 이제는 '정권이 바뀌면' 과 같은 모호한 가정법 대신, '정해진 미래'를 상정한 정교한 설계도를 그려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