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 사례로 꼽히는 미국, 법과 제도가 차별로부터 장애 학생을 빈틈없이 보호한다.
지난 1994년 「특수교육진흥법」 개정을 통해 법조문에 처음으로 '통합교육'이라는 용어가 공식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일반 학교 교실에서 비장애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받는 통합교육이 제도권 내에서 첫 발을 뗀 것입니다. 다만, 이 시기에는 장애 학생을 "일시적으로 참여시켜 교육하는 것"에 그쳤습니다.
10여 년 뒤인 지난 2007년에는 기존 법을 폐지하고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이하 '특수교육법')>이 새롭게 제정됐습니다. 이 법은 '통합교육'을 규정함에 있어서 "장애 유형과 정도에 따라 차별받지 아니하고 일반학교에서 또래와 함께 개개인의 교육적 요구에 적합한 교육을 받아야 함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비로소 장애 학생들이 차별받지 않고 교육받을 권리가 법으로 보장받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나 법은 현실을 바로잡지 못했습니다. 통합교육이 시작된 지 30년이 넘었지만 교과서조차 제때 받지 못하는 차별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장애 학생에게 교과서 적시 지급" 의무화한 미국
시각장애가 있는 학생들이 교과서를 제때 지급받지 못하는 문제는 우리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그렇다면 전문가들이 선진 사례로 꼽는 미국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이미 미국에서는 30년 전인 지난 1995년 '학습 자료를 시각장애학생에게 적합한 매체로 비장애 학생들과 같은 시기에 제공해야 한다'는 사회적 의제가 설정됐습니다. 이후 미국에선 2004년 「장애인교육개선법」 개정을 통해 교육 당국이 시각장애 학생에게 적시에 교과서 등 학습 자료를 제공하도록 했습니다.
우리는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교실에서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이는 선언에 그치고 있습니다. 반면, 미국은 시각장애 학생들이 현실에서 겪는 차별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런 미국식 해법을 우리 국회도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시각장애 학생들에게 교과서를 적시 지급하도록 규정하는 법 개정안이 속속 발의되고 있고 있습니다. 실제로, 재작년 11월 민주당 백승아 의원은 장애 학생을 위한 대체 교과서가 새 학년이나 새 학기 시작 전에 적시에 제작 및 보급돼야 함을 규정하는 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고, 올해 2월에는 민주당 서영교 의원이 같은 취지의 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우리도 미국처럼 될 수 있을까
그런데, 이 법안들만 국회를 통과되면 우리도 미국처럼 나아질 수 있을까요?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바로 한국시각장애인협회는 국회에서 발의 된 법안에 대해 반대 의사를 나타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아니, 미국처럼 바뀔 수 있는 건데 왜 반대를 하지? 저도 처음에는 이런 의문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한국시각장애인협회에서 반대하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누가, 어떻게 제때 지급하게 할 것 인지에 대해 구체적인 책임과 방식을 법안에 담지 않으면 마찬가지로 '선언'에 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협회 측의 이런 요구는 유별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바로 미국에서 이렇게 하기 때문입니다. 앞서 설명드린 미국의 「장애인교육개선법」은 단순히 '교과서 적시 지급 의무'를 규정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대신 어떻게 적시 지급을 할 것 인지에 대한 고민까지 담겼습니다.
실제로, 미국의 「장애인교육개선법」은 일반 교과서를 만들 때 점자 교과서로 쉽게 전환될 수 있는 특정 표준 체계에 맞춘 디지털 파일도 함께 만들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표준 체계에 맞춘 파일은 'NIMAS'로 불리는데, NIMAS는 출판용 원본 파일을 점자 교과서로 변환하기 쉽게 구성된 중간 단계의 파일 형식으로 미국 교육장관이 고시하는 접근성 표준에 해당합니다. (시각장애학생용 교수·학습자료 접근성 표준 연구, 김영일)
이렇게 촘촘하게 설계된 법 덕분에 미국에서는 일반 교과서 제작이 끝날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출판사가 제공하는 교과서 NIMAS 파일을 다운 받아 인쇄하기만 하면 됩니다. 사실상 출판사가 일반 교과서를 만들 때 점자 교과서를 동시에 만드는 것과 같은 효과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도 미국처럼 바뀌려면 '점자 교과서를 적시에 지급하라' 정도의 규정만 신설하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미국처럼 점자 교과서와 쉽게 호환될 수 있는 표준 체계와 이 체계에 맞춰 점자 교과서가 적시에 지급될 수 있는 시스템까지도 법제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다시 기다려야 하는 건가
그렇다면, 시각장애가 있는 학생들과 교사들은 미국처럼 표준 체계를 만든 다음 법제화될 때까지 기다려야 할까요?

취재를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우리도 지난 2018년 국립특수교육원에서 미국의 NIMAS를 벤치마킹 해서 만든 표준 체계('KS X 1967')가 이미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출판사가 교과서를 만들 때 이 표준 체계에 맞춰서 만들도록 하면, 우리도 미국처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난 1월 국민권익위원회는 이 표준 체계에 맞춰 출판사가 교과서를 제작하지 않고 있어서 새 학기마다 시각장애 학생과 교사들이 제때 교과서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시각장애 학생들과 부모, 교사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헌법 소원을 제기했지만, 교과서를 제때 받지 못하는 문제는 의지만 있다면 지금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습니다. 무관심 속에 방치돼 차별만 고착화되고 있을 뿐입니다. 부디 새 학기에는 모든 학생들의 책상에 차별 없이 교과서가 놓여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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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 학생에게 교과서 적시 지급" 의무화한 미국…우리는? [취재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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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학기마다 교과서를 제때 받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취재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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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학했는데 교과서 없어"…교과서 지급에도 차별이 있다 [취재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