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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구하려 난리인데…한국, 매년 111톤 버린다

장선이 기자

입력 : 2026.03.11 14:22|수정 : 2026.03.11 19:42

[취재파일] 고철값 300원, 희토류 4만 원…에어컨 속 광산이 열린다


300원 vs 4만 원

버려지는 에어컨서 희토류를 회수 방안 추진 중
경기도 용인의 한 자원순환센터. 버려진 에어컨 실외기 수십 대가 해체 라인 위에 놓여 있다. 작업자들이 먼저 폭발 위험이 있는 냉매 가스를 뽑아낸다. 겉면을 분리하자 에어컨의 심장부인 압축기, '컴프레서'가 드러난다. 압축기 안 모터의 중심부, '로터'에는 어른 손가락 두 마디 크기의 영구자석이 박혀 있다. 이 자석 안에 네오디뮴, 디스프로슘 같은 희토류가 들어 있다.

그동안 이 로터는 고철 더미에 섞여 kg당 300원도 안 되는 값에 팔려나갔다. 하지만 영구자석 안의 희토류만 따로 분리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kg당 2만~4만 원. 값이 100배 가까이 뛴다.
 

폐기물이 광물이 되는 날

지난 2월 6일, 기후에너지환경부는 폐에어컨 실외기에서 희토류 영구자석을 회수하는 사업에 '순환경제 규제특례'를 부여했다. 이순환거버넌스와 LG전자가 공동으로 참여한다. 이순환거버넌스가 전국 리사이클링센터에서 에어컨 실외기를 수거해 로터만 별도로 분리하고, LG전자가 자기장 탈자 방식으로 영구자석을 추출하는 구조다.
희토류 추출 과정
이순환거버넌스 김원섭 부장은 "전국 리사이클링센터에서 컴프레서 발생량이 약 2만 4천 톤 정도"라며 "경제적으로 약 60억 원 정도의 편익이 발생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핵심은 규제의 벽이 낮아진 데 있다. 그동안 폐가전에서 영구자석을 회수하려면 폐기물관리법상 폐기물 재활용업 허가가 필요했다. 수거 체계도 없었고, 분리 기술도 상용화되지 못했다. 이번 규제특례로 실증 기간 동안 재활용업 허가 없이 영구자석을 분리할 수 있게 됐다.
 

버리는 111톤, 사오는 7천 톤

2024년 기준, 국내에서 발생한 폐자원 속 희토류 영구자석은 약 111톤으로 추정된다. 에어컨뿐 아니라 자동차, 승강기, 풍력발전기 등에서 나온다. 하지만 이 영구자석의 재자원화율은 사실상 0%다. 한국무역협회가 집계한 33종 핵심 광물의 재자원화 수준을 보면, 네오디뮴은 재자원화율 0톤, 디스프로슘도 0톤이다. 구리(99.3%)나 알루미늄(95.5%)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한국은 희토류를 전량 수입한다. 한 해 수입량은 약 7천 톤.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특히 높다. 전기차 모터의 핵심 소재인 디스프로슘과 테르븀은 중국 의존도가 80%에 달한다.

버려지는 에어컨서 희토류를 회수 방안 추진 중 

중국이 꺼내 든 '자원 카드'

중국 희토류 광산 (사진=홍콩 SCMP 캡처, 연합뉴스)
문제는 그 중국이 희토류를 외교 무기로 쓰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2025년 4월, 중국은 정제된 희토류 6종과 영구자석 수출을 특별 허가제로 전환했다. 같은 해 10월에는 중국산 희토류가 0.1%만 포함돼도 제3국 수출 시 중국 정부 허가를 받도록 하는 포괄적 수출통제를 발표했다. 미국이 반도체로 중국을 조이자, 중국은 소재로 받아친 것이다.

기후에너지환경부 미래폐자원순환이용추진단 심은수 부단장은 "실증 사업 등을 통해서 영구자석 함유 폐전기·전자제품의 재활용 기준을 마련할 예정"이라며 "에어컨 이외에 냉장고나 세탁기 등 폐가전에 대해서도 적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2030년까지 재활용 희토류의 양을 1천400톤으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내놨다.
 

일본은 15년 전에 시작했다

같은 위기를 먼저 겪은 나라가 있다. 일본이다.

2010년 센카쿠 열도 분쟁 당시 중국은 두 달 가까이 희토류 대일 수출을 제한했다. 일본은 이 충격을 계기로 10억 달러 이상을 투입해 희토류 공급망 재편에 나섰다. 호주 광산업체 라이나스에 2억 5천만 달러를 투자해 대체 공급원을 확보했다. 2013년부터는 에어컨과 하이브리드 자동차에서 회수한 영구자석 재활용까지 영역을 넓혔다.

결과는 숫자로 드러난다. 세계경제포럼(WEF)에 따르면 일본의 중국산 희토류 의존도는 2010년 85%에서 현재 60%로 낮아졌다. 한국(80% 이상), 미국(75% 이상), 유럽(95% 이상)보다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올해 일본 환경성은 폐기 모터에서 희토류를 추출하는 실증 사업에 60억 엔(약 560억 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EU도 움직이고 있다. 2024년 4월 발효된 '핵심원자재법(CRMA)'은 2030년까지 전략 원자재 연간 소비량의 25%를 역내 재활용으로 충당하고, 단일 제3국 의존도를 65% 이하로 낮추도록 의무화했다. 지난해 12월에는 영구자석 재활용을 강화하는 추가 행동계획까지 내놨다.
 

규제가 광산을 막고 있다

한국의 출발은 분명 늦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속도다.

국내 도시광산업은 여전히 폐기물관리법상 '폐기물 처리업'으로 분류된다. 순환자원으로 지정받더라도 '오염 물질 무게 기준 2% 이하'라는 까다로운 조건이 붙는다. EU가 '5% 이하'이거나 '재활용률 90% 이상'이면 인정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번 규제특례도 실증 기간이 최대 4년(2년+2년)으로 한정돼 있다. 실증이 끝난 뒤 법적 기반이 마련되지 않으면 다시 원점이다.

안에서 막히는 사이, 밖으로는 빠져나가고 있다. 올해 초 폐기물의 국가 간 이동을 규제하는 바젤협약이 강화되면서, 타이완·베트남 등에서 폐배터리와 폐인쇄회로기판을 들여오던 국내 재자원화 기업들이 원료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양쪽 정부의 수출입 허가를 받는 행정 절차에만 한 달 이상이 걸린다. 반면 일본은 특례 규정을 유연하게 적용해 같은 원료를 빨아들이고 있다. 늦은 것에 그치지 않고, 늦은 사이에 빼앗기는 구조다.

정부도 위기감은 느끼고 있다. 지난 2월 5일 산업통상부는 '희토류 공급망 종합대책'을 발표하며 희토류 17종 전체를 핵심 광물로 지정하고, 1조 원 규모의 재정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비축 물량을 현재 6개월분에서 1년 치로 확대하고, 해외 자원 개발 융자 예산도 390억 원에서 675억 원으로 늘렸다. 정부 차원의 첫 희토류 종합대책이라는 의미가 있지만, 일본이 첫 위기 이후 15년간 쌓아온 시간을 생각하면 갈 길이 멀다.
 

광산은 우리 곁에 있다

판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미국은 지난 2월 2일 100억 달러 규모의 '프로젝트 볼트'를 발표하며 희토류 전략 비축에 나섰고, 이틀 뒤 54개국이 참여하는 핵심 광물 무역블록 '포지 이니셔티브'를 출범시켰다. EU는 재활용 목표를 법으로 못 박았고, 일본은 560억 원짜리 실증 사업을 올여름 가동한다. 자원 전쟁의 전선이 광산에서 폐기물 처리장까지 확장되고 있다.

한국이 매년 버리는 에어컨, 자동차, 세탁기 속에 111톤의 희토류 영구자석이 잠들어 있다. 기업은 나섰지만, 대량 분리를 위한 자동화 기술은 이제 개발을 시작한 단계다. 그 기술이 상용화될 때 제도가 함께 준비돼 있어야 한다. 광산은 산속에만 있지 않다. 우리 곁에 있다. 꺼낼 수 있느냐는, 기술과 제도가 함께 답해야 할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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