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이번 지방 선거 광역단체장 후보 공천 신청을 마감한 국민의힘은 아연실색할 결과를 받아 들었습니다. 중량감 있는 예비 후보들이 대거 출마를 포기했습니다. 흥행이 부진하다는 표현을 넘어 이쯤 되면 출마 파업이라 부를 만합니다. 전통적으로 불리한 지역은 물론 선거의 승부를 가를 접전지에서도 출마하겠다고 나서는 인사가 없었습니다.
대표적인 곳이 서울입니다. 나경원, 신동욱 등 출마가 점 쳐지던 현역 의원들이 줄줄이 출마를 포기했습니다. 가장 큰 충격은 오세훈 서울시장의 움직임입니다. 현역 시장이 '이 대로면 필패'라며 당의 노선 변화를 선결 조건으로 내걸고 공천을 신청하지 않았습니다. 또 다른 승부처인 충남에서도 신청자가 전무합니다. 심지어 현역 지사인 김태흠 충남지사조차 신청장을 내지 않았습니다. 인천에는 현직인 유정복 시장만 공천을 신청했습니다. 경기도지사에는 양향자 최고위원과 재선 의원 출신 함진규 전 한국도로공사 사장이 신청했습니다. 하지만 여론조사 선두권인 유승민 전 의원, 김은혜 의원은 불출마 뜻을 표했습니다. 제주도 기획재정부 출신의 문성유 전 한국자산관리공사 사장이 단독으로 나섰습니다. 그나마 전통적으로 보수 강세 지역인 PK와 충북, 강원 등지에서만 2~4명의 후보가 신청해 겨우 경선의 모양새를 갖출 수 있게 됐습니다. 선거 승리의 가능성도 낮아질 뿐 아니라 경선 흥행도 기대하기 힘들어졌습니다.
극심한 후보 기근, 원인은?
국민의힘 인사들이 출마를 꺼리는 이유는 오세훈 시장이 잘 설명했습니다.
오 시장은 지난 7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당 노선 정상화라는 선결 과제를 풀지 않는 이상 후보 접수와 경선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며 "현 상태에서의 경선은 많은 지역에서 노선 갈등으로 이어져 본선 경쟁력의 처참한 몰락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무엇이 국민 신뢰를 회복하고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는 길인지 반드시 결론을 내야 한다"고도 말했습니다.
쉽게 말해 '이길 수 없는 싸움인데 나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실제 광역단체장 공천 신청에서 대부분 지역의 경쟁률이 낮지만 국민의힘의 아성인 대구와 경북 지역은 신청자로 문전성시입니다. 대구에는 주호영·윤재옥·추경호·유영하·최은석 의원 등 현역 5명에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 홍석준 전 의원, 이재만 전 대구 동구청장, 김한구 전 달성군 새마을협의회 감사까지 무려 9명이 몰렸습니다. 경북도 이철우 현 지사와 김재원 최고위원, 3선의 임이자 의원, 4선을 지낸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백승주 전 의원, 이강덕 전 포항시장 등 6명이 신청 명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당선 가능성만 높으면 당 지도부 노선에 대한 찬반과 상관없이 출마 희망자가 넘쳐나는 것입니다. 거꾸로 그만큼 이번 선거에서 TK를 제외하면 국민의힘 간판으로 이기기 쉽지 않다는 우려가 크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비유하자면 전쟁터에 나갈 장수들이 "이런 전략과 지휘관 밑에서는 개죽음뿐"이라며 출전을 거부하는 상황입니다. 지휘부가 전술을 바꾸거나 지휘권을 내려놓지 않는 한 전투에 나설 병사조차 구하기 힘든 위기인 것입니다.
부랴부랴 '절윤' 결의, 반전 시도는 했는데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 몰리자 국민의힘은 어제 오후 국회에서 긴급 의원총회를 열고 의원 107명 전원의 이름으로 결의문을 냈습니다.
▶12·3 비상계엄 사과 ▶윤석열 전 대통령의 정치적 복귀 반대 ▶당내 갈등을 증폭하는 행동과 발언 중단 등을 담았습니다.
결국 '절윤'을 당의 공식 입장으로 내걸었습니다. 장동혁 대표도 함께 이름을 올렸습니다. 지난달 20일 '윤석열 대통령 1심 판결에 대한 입장'을 밝히면서도 '절윤은 분열 야기'라며 '절윤 세력과 절연'을 고집하던 기존 입장을 바꾼 셈입니다. 송언석 원내대표는 의원총회 모두에 "(절윤 논란은) 단순한 정치 공방이 아니라 국민의힘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라며 확고한 의지를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출마 포기 불사까지 거론하던 오세훈 시장도 긍정적 반응을 내놨습니다. 오 시장은 의총 뒤 "비로소 수도권 출마 후보자들이 선거에 임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발판이 마련됐다"며 "드디어 변화가 시작됐다"고 말했습니다. 적어도 국민의힘이 윤석열 전 대통령과 계엄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정리하지 않는 한 이번 선거에서 이길 가능성은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반전의 계기를 마련하는데 나선 셈입니다.
막바지에 몰려서…통할까?
국민의힘이 '계엄' 15개월 만에 '절윤'을 공식화했지만 이를 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습니다. 우선 '믿을 수 있겠느냐'는 점입니다. 지난 달에도 당권파 핵심인 김민수 최고위원이 '절윤'을 내세우며 '통합'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이어지는 국민의힘 지도부의 행보는 한동훈 전 대표의 축출, 배현진 의원 징계 등 전혀 다른 방향이었습니다. 상기했듯이 장동혁 대표는 급기야 "절윤 세력과의 절연"까지 입에 올렸습니다. 이번에도 말로만 '절윤'으로 끝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당 안팎에서 제기됩니다. 장 대표는 어제 결의문에 이름은 올렸지만 관련해서 일절 발언하지 않았습니다. 결의문을 직접 낭독하라는 요구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절윤'을 실제 행동으로 옮길지 불분명한 것입니다.
통합의 핵심 열쇠인 한동훈 전 대표의 징계 철회 문제도 그대로 남았습니다. 어제 의원총회에서는 한 전 대표의 복당 문제도 거론됐습니다. 결의문 채택 과정에서 김도읍 의원이 "한 전 대표에 대한 복당 없이는 윤 어게인과 절연했다는 말은 의미가 없다"며 이를 결의문에 포함시킬 것을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한 전 대표 등 친한계 징계를 주도한 윤민우 당 윤리위원장과 일부 당직자의 사퇴 요구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논란 끝에 결론을 내지 못했고 결의문에 관련 내용을 포함시키지 못했습니다. 가장 가시적이고 상징적이며 핵심적인 숙제를 풀지 않은 채 미뤄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현 지도부가 지방 선거의 키를 끝까지 잡을 것이냐는 문제도 있습니다. 어제 의원총회에서 그동안 침묵하던 중도파 의원들까지 당 지도부의 노선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낸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리고 '절윤'에 반대하던 장동혁 대표의 뜻과 다른 결의문이 채택됐습니다. 장 대표의 지도력에 흠집에 크게 났습니다. 앞으로 영이 설 지 의구심이 드는 상황입니다. 바닥을 치고 있는 지지율이 크게 반등하지 않는 한 지원유세를 원하는 후보가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어제 의원총회에서 장 대표 거취 문제까지는 거론되지 않았지만 앞으로 이에 대한 논란이 분출될 여지가 있습니다.
국민의힘으로서 가장 갑갑한 점은 이제 남은 시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3개월도 채 남지 않은 기간 동안 차근차근 빌드업 해서 당의 체제와 노선을 개선할 여유가 없습니다. 유권자들이 충격적으로 받아들일 만한 변화와 혁신을 시도하지 않는 한 현 국면을 전환하기 쉽지 않습니다.
이번 '절윤' 결의도 간단치 않았지만 이제 겨우 첫걸음일 뿐입니다. 여전히 당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윤어게인' 세력과 어떻게 갈라설지, 찬핵과 반핵으로 갈라진 당 내분은 어떤 방식으로 수습할지, 이미 떠나버린 중도층을 다시 끌어 오기 위해 무슨 메시지를 표출할지, 계엄과 탄핵 이슈를 완전히 털어내고 어디에 새로운 전장을 마련할지 등 남은 과제가 산더미입니다. 말 그대로 日暮途遠(일모도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