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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만 년 전 석기시대 유물에 새겨진 기호들, 문자 기원 가능성"

유영규 기자

입력 : 2026.02.24 10:15|수정 : 2026.02.24 10:15


▲ 십자·점이 새겨진 4만년 전 매머드 조각상

유럽에서 발견된 석기시대 도구와 조각상에 새겨진 기호들을 분석한 연구에서 문자의 기원이 4만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독일 자를란트대 크리스티안 벤츠 박사팀은 24일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서 중앙 유럽에서 출토된 4만여 년 전 석기 시대 유물의 기호들을 분석한 결과 기원전 3천 년 등장한 초기 원(原) 설형문자와 동일한 수준의 복잡성과 정보 밀도를 지닌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같이 밝혔습니다.

연구팀은 이 연구는 유물에 새겨진 흔적들이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석기시대 인류가 이를 통해 정보를 전달하고 생각을 기록했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이것이 인류 기록 문자의 기원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기원전 3만 4천~4만 5천 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유럽 초기 구석기 유물에는 반복된 선, 홈, 점, 십자 모양 등 많은 수수께끼 같은 기호가 새겨져 있지만 이런 기호의 의미와 기능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유물 다수는 독일 남서부 슈바벤 쥐라 지역 동굴에서 발견됐으며, 중앙유럽 최초 현생인류에 해당하는 오리냐크 문화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연구팀은 이 연구에서 오리냐크 문화와 관련된 상아, 뼈, 사슴뿔 등으로 만든 도구와 조각상 같은 이동 가능한 소형 유물 260점에 새겨진 3천 개 이상의 기하학적 기호들을 분류 알고리즘과 통계 모델로 분석해 정량적 특성을 파악했습니다.

벤츠 박사는 "이 연구의 목표는 해독되지 않은 기호의 구체적 의미를 밝히는 게 아니라 통계학을 활용해 정보 부호화의 기원을 밝히는 것"이라며 "기호의 빈도 경향과 측정 가능한 특성을 분석해 후대 문자 체계와 어떤 공통점이 있고 어떤 차이가 있는지 살펴봤다"고 설명했습니다.

분석에는 십자와 점이 줄지어 새겨진 매머드 상아 조각상과 사람과 사자 혼합 형상에 점과 홈이 줄지어 새겨진 매머드 상아판 등 다양한 유물이 포함됐습니다.

논문 공동저자인 베를린 선사·고대사 박물관 에바 두트키에비치 박사는 "이 유물들은 최초의 문자 체계가 등장하기 수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를 떠나 유럽에 정착하고 네안데르탈인과 마주쳤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말했습니다.

분석 결과, 유물에 새겨진 기호 배열은 현대 문자 체계와는 명확히 구별되지만, 기호 배열의 통계적 특성은 기원전 3천 년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초기 원설형문자 점토판과 비교할 수 있을 정도의 복잡성을 지닌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기호 배열의 정보 밀도는 도구보다는 조각상에서 체계적으로 더 높았습니다.

벤츠 박사는 "유물의 기호 상징체계는 통계적으로 봤을 때, 4만 년 뒤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등장한 초기 원설형문자 점토판과 유사한 정보밀도를 지닌다"며 "개별 기호의 반복 빈도도 비슷하고 복잡성도 비교 가능한 수준"이라고 말했습니다.

연구팀은 이번 분석이 기호 배열의 의미를 최종적으로 해독할 수는 없지만, 가능한 해석 범위를 좁히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다며 유럽에 도착한 최초의 수렵·채집인들은 문자 등장 수만 년 전부터 이미 의도적이고 관습화된 기호 체계를 갖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벤츠 박사는 "반복 빈도가 높고 다음 기호를 예측하기 쉬운 특성 덕분에, 정보 밀도의 척도인 엔트로피가 훨씬 뒤에 등정한 원설형문자와 비슷하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었다"며 "기호와 상징을 통해 정보를 부호화하는 인간의 능력은 수천 년에 걸쳐 발전해 왔다"고 말했습니다.

(사진=Universitat Tubingen / Hildegard Jensen 제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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