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뉴스

뉴스 > 국제

[사실은] 엡스타인이 살아 있다? '생존설' 추적해 보니…

이경원 기자

입력 : 2026.02.14 10:13|수정 : 2026.02.14 15:01



2019년 8월 10일. 뉴욕의 한 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억만장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자수성가한 사업가이자 희대의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이었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 66세, 재산은 무려 5억 7800만 달러로 우리 돈 8,342억 원에 달했습니다.

그의 죽음 이후 숱한 의문이 쏟아졌습니다. 워낙 거물이었던 만큼 유력 인사들과 친분이 두터웠는데, 성 접대 리스트의 존재가 공개된 바로 다음 날 사망했다는 점에서 더욱 그랬습니다. 그의 사망 이후 6년이 훌쩍 넘었음에도, 엡스타인이란 이름은 끊임없이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지난 연말 미국 법무부가 당시 엡스타인 관련 수사 자료 일부를 공개했습니다. 사실 이 과정 역시 미국 국내 정치 역학이 얽히고설킨, 지난한 과정을 거쳤습니다. 어쨌든 이 문건 속 거론된 유력 인사들 이름 하나하나가 뉴스가 됐습니다. 도널드 트럼프와 빌 클린턴, 전, 현직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 관세 전쟁 최전선에 있는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등입니다.

이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의혹은 대서양을 건너 유럽으로 갔습니다. 영국 왕실을 비롯해 정치계, 나아가 프랑스와 노르웨이 등의 정치권 인사들의 엡스타인과의 교류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전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초대형 스캔들로 번지고 있는 겁니다. 죽은 엡스타인이 산 거물들을 쫓고 있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이런 초대형 스캔들에는 늘 음모론이 따라 붙습니다. 대표적인 게 SNS를 중심으로 퍼지고 있는 엡스타인의 '생존설'입니다. 힘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연루설을 감추려 엡스타인이 사망한 것처럼 위장했다는 취지로 읽혔습니다. SNS에서는 엡스타인 생존 사진이 확산됐습니다.

그리고 이건 미국 만의 얘기는 아니었습니다. 국내에서도 빠르게 퍼졌습니다. 국내의 한 SNS입니다.

엡스타인 생존설 팩트체크 사실은
엡스타인이 버젓이 도로를 걷는 사진. "봐봐, 살아 있다니까"란 설명이 적혔습니다. 엡스타인이 살아서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는 사진입니다. 조회수가 128만에 달했습니다.

SBS 사실은팀은 사진의 출처를 추적하기로 했습니다. 먼저, 키보드의 화면캡쳐 키(Prt Sc ScrLK)로 사진을 캡쳐했습니다.

엡스타인 생존설 팩트체크 사실은
그다음 이 사진을 구글 검색창에 첨부, 출처를 확인했습니다. 검색창에 커서를 놓고 붙여넣기(Ctrl+V)를 누르면 간단히 할 수 있습니다.

엡스타인 생존설 팩트체크 사실은
원본 사진이 검색됐는데, 오른쪽 하단을 보면 구글 제미나이의 표식이 있습니다. AI로 만든 사진입니다.

엡스타인 생존설 팩트체크 사실은
국내에서 퍼지는 사진은, 이 제미나이 표식을 제외하고 엡스타인의 상반신만 따로 떼어 퍼진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SBS 사실은팀은 역추적 검색 방식을 통해 첫 게시자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첫 게시자는 미국 유저였는데, 구글 제미나이로 만든 사진이라고 실토하며, 이렇게 사진이 화제가 될 줄 몰랐다는 글을 썼습니다.

엡스타인 생존설 팩트체크 사실은
국내 SNS에 퍼지는 엡스타인 생존 사진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다른 사진도 생성 과정을 추적해 보니, 원래 사진에서 수염만 붙인 합성 사진으로 확인됐습니다. 즉, 2015년 외신에 자주 보도됐던 사진을 AI로 변형시킨 겁니다.

엡스타인 생존설 팩트체크 사실은
이 뿐 아닙니다. 이번에는 다른 SNS입니다. 미국 정부가 엡스타인의 사망이 조작됐음을 인정했다는 내용의 SNS가 빠르게 퍼졌습니다. 그리고 그 증거로, 최근 미국 법무부가 공개한 엡스타인 관련 문건을 그 증거로 들었습니다.

역시 국내 SNS입니다. 조회수는 188만입니다.

엡스타인 생존설 팩트체크 사실은
이 내용이 사실인지 미국 법무부 문건을 확인했습니다. 미국 법무부 홈페이지에 엡스타인 관련 문건이 있었습니다.

엡스타인 생존설 팩트체크 사실은
해당 문구를 확인했습니다. 엡스타인 사망 엿새 뒤인 2019년 8월 16일 작성 문건이었습니다. 총 6페이지였습니다. SNS 속 문구가 그대로 있었습니다. 일단, SNS에 첨부된 문서 사진은 조작된 건 아니었습니다.

엡스타인 생존설 팩트체크 사실은
이 게시글만 보면 누군가 엡스타인의 가짜 시신을 만든 뒤, 진짜 엡스타인을 빼돌린 것처럼 보입니다.

정말 그런 건지, 문서에 담긴 앞뒤 문맥을 살펴봤습니다.

엡스타인 생존설 팩트체크 사실은
일단, 이 문서는 엡스타인 사망 직후, FBI가 사건 경위를 파악하기 위해 교정 당국 책임자를 인터뷰한 내용이었습니다. 엡스타인 사망 경위 파악을 비롯해, 엡스타인의 사망 전후 행동 패턴, 사망 당일 관리 부실에 대한 책임 소재 파악이 주요 내용입니다.

국내 SNS가 인용한 미국 법무부 문서 문구는 미국 교정 당국이 대규모 언론 취재를 피하기 위해, 엡스타인의 실제 시신을 다른 차량으로 운반했다는 내용이 핵심이었습니다. 이 부분만 보면 '사망 조작'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차를 바꾸는 '취재진 따돌리기'가 핵심 내용이었던 겁니다.

엡스타인 (사진=AP, 연합뉴스)
죽은 이가 알고 보니 살아 있었다는 음모론은 그 자체로 꽤나 매력적입니다. 희대의 성 범죄자가 힘센 이들의 우산 아래 남몰래 삶을 연명했다는 스토리텔링은 숱한 의혹과 맞물리며 제법 그럴듯하게 들리기도 합니다. "음모론은 민주주의의 배기가스"라는 미국 작가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말처럼, 표현의 자유가 있는 곳에 음모론이라는 정보의 찌꺼기는 불가피합니다.

다만, SNS 유통망, 여기에 AI 기술 혁명이 더해지면서, 우리 시대의 음모론은 유례없는 질적 도약기를 맞고 있습니다. 공권력에 대한 불신, 나아가 전방위적 적대감을 키우는 연료가 되기도 합니다. 엡스타인 생존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도덕적으로 타락한 힘 있는 사람들과 여기에 농락당한 평범한 사람들, 이런 극단적 이분법을 전제하고 있으니까요. 우리 사회 차고 넘치는 음모론 역시 엡스타인 생존 음모설이 생산되고 유통되는 방식을 닮았습니다.

음모론이 거세질 때, 시청자 분들이 직접 검증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SBS 사실은팀이 엡스타인 생존설에 대한 팩트체크 과정을 최대한 자세히 설명한 이유입니다. 학계에서는 이를 좀 유식한 말로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허위 정보에 기반한 음모론이 퍼져 나갈 때, "이거 검색했더니 AI로 만든 조작 사진이네요."라는 시청자의 댓글 하나가 가진 파급력이 적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작가 : 김효진, 인턴 : 황누리)
SBS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