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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4 미국보다 덴마크가 더 무섭다?
03:03 "하루아침에 벼락거지?"...미국 두려운 이유
04:33 한반도보다 10배 더 큰데 "도망갈 곳 없다"
여기는 그린란드입니다. 가만히 있으면 바람 소리, 파도 소리만 들리는 이 조용한 땅이 2026년이 시작되자마자 전 세계에서 가장 시끄러운 곳이 됐습니다.
[도널드 트럼프/미국 대통령 : 우리는 미국의 안보 관점에서 그린란드가 필요합니다. 유럽도 우리가 그린란드를 가질 필요가 있다는 걸 알고 있어요.]
[메테 프레데릭센/덴마크 총리 : 그린란드 병합을 막기 위해 그 무엇이든 할 것입니다. 저는 민주주의와 국제사회 규범을 믿습니다.]
트럼프의 위협이라는 게 익숙한 외교 전략이라고 잘 알려져 있습니다. 세게 지르고 난 다음에 얻을 것 얻고 빠지는 그리고 절대로 협상에서는 부끄러움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그런 스타일이라는 걸 이곳 사람들도 웬만큼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당사자들 그린란드인들이 느끼는 공포와 두려움은 제 생각과 예상보다도 훨씬 컸습니다.
1. 미국보다 덴마크가 더 무섭다?
먼저 그린란드 사람들이 이번 위협에 실제로 공포를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당연히 미국일 겁니다. 하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덴마크입니다. 아마 이게 더 클지도 모릅니다. 그린란드 사람들은 덴마크를 믿지 못합니다. 덴마크가 자신들을 끝까지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이 크지 않습니다. 이미 지난 1979년에 주민투표를 통해 70%가 넘는 찬성표를 얻어서 덴마크로부터 자치권을 따냈습니다. 지금은 주민들이 완전 독립을 원하면 투표를 해서 결정할 수 있도록 법까지 만들어놨습니다. 그만큼 오래전부터 갈등이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덴마크와 그린란드 사이가 이렇게 된 건 이유가 있습니다. 멀리 18세기 식민지를 덴마크가 처음 만들 때 그때까지 갈 필요도 없고요. 50년 전으로만 가보면 답이 나옵니다. 당시 그린란드에서는 인구가 계속 늘어났습니다. 1950년부터 70년대까지 인구가 2배로 훌쩍 늘었습니다. 그러자 덴마크는 이렇게 인구가 급증하게 되면 독립 주장으로 이어질 수 있겠다라고 생각을 하고 인구를 제한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택한 방식은 너무나 비인간적이었습니다. 그린란드 여성에게 피임기구를 강제로 삽입하는 방식이었습니다. 5천 명에 가까운 여성들이 피해를 당했고요. 아이를 갖지 못했습니다. 일제시대에 일본인이 우리 조선인 인구를 줄이겠다고 조선 여성들에게 만약 이런 짓을 했다고 생각을 해보면 어떤 느낌일지 짐작이 가실 겁니다. 그런데 이 어처구니없는 이 사실은 불과 4년 전인 2022년이 돼서야 세상에 크게 알려졌습니다. 진상조사위도 그제서야 꾸려진 겁니다. 그린란드 사람들은 그런 피해를 당했지만 제대로 바깥에 말도 못 했던 겁니다. 또한 그린란드 아이들을 강제로 덴마크로 이주시켜서 가족과 떨어져 살게 만들었습니다. 덴마크에서 선진 교육을 받게 하자는 게 취지였는데 덴마크에 우호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보자는 뜻이 강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불법적으로 입양해서 가족들과 아이들을 떼어놓는 일도 많았습니다. 이런 아픔이 있는 그린란드 사람이다 보니까 덴마크를 어떻게 믿겠습니까? 아무도 자신들을 지켜줄 사람이 없는 것 같았고 그게 곧바로 두려움으로 이어졌던 겁니다.
2. "하루아침에 벼락거지?"...미국 두려운 이유
둘째 이유는 미국입니다. 특히 말 바꾸기 전문인 트럼프를 믿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할 겁니다.
[닝 헤게온/그린란드 인권단체 의장 : (트럼프가 (지난 3주간) 그린란드 사회에 남긴 게 무엇입니까?)
제 생각에는 공포입니다. 네 공포입니다.]
군사적 위협, 정치적 위협 이런 이유들은 많이 이야기가 된 것들이니 빼고서 말씀을 드리면, 경제적인 이유가 또 있습니다. 그린란드는 유럽식 복지 제도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저축 대신 세금을 많이 내서 무상 교육, 무상 의료, 연금 같은 혜택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지금 저축이 부족해도 소득의 45%, 50%까지 세금으로 내면서 노후까지 보장이 되니까 넉넉하지는 않아도 크게 부족하지 않은 그런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미국식 경제 시스템이 적용이 되면 이 철저한 자본주의 시스템에 맞춰서 살아갈 돈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동안 저축 대신에 세금을 냈는데 그게 다 쓸모가 없게 되고 당장 지금부터 돈을 벌어서 미국식 시스템에 적응을 해야 한다면,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벼락거지가 되는 거 아니냐"라는 실제로 두려움을 갖고 있었습니다. 특히 요즘에 알래스카 원주민 사회 등에서 들려오는 말이 결코 미국은 원주민을 그들이 했던 말처럼 존중하지 않는다고 절대로 미국에 귀속돼선 안 된다고 말리는 말이 많이 나오는 것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린란드는 지금 한쪽에는 덴마크 그리고 또 다른 한쪽에서 미국이 나타나서 뭔가 중간에 오도 가도 못하고 딱 끼어버린 듯한 느낌, 그런 느낌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3. 한반도보다 10배 더 큰데 "도망갈 곳 없다"
또 하나의 두려움은 이건 약간 지리적인 겁니다. 여기 와서 그런데 제가 공감하게 된 게 그린란드 사람들에겐 일종의 집단적 폐소공포증이 있습니다. 제가 있는 곳이 (수도인) 누크인데 자동차로 저 끝에서 끝까지 20분이면 갑니다. 그것도 최고 속도 제한이 시속 60km입니다. 그 길이 끝나면 비포장 도로가 나오는 게 아니라 아예 진짜 길이 끝납니다. 기차는 아예 존재하질 않습니다. 땅은 남북한 다 합친 것보다 10배는 더 큽니다. 그런데 도망갈 곳이 없다고 느끼는 겁니다. 하늘길이 있는데, 하늘길은 공항 한 곳만 막으면 끝납니다. 그래서 외부 공격이 실제로 닥쳤을 때 '그냥 여기 앉아서 당할 수밖에 없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나마 많은 게 배입니다. 여기 보면 집집마다 배가 1대씩 있는데, 겨울엔 그 배를 쓰지 않고 다 육지로 올려놓습니다. 제가 만난 어떤 주민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빨리 끝나기를 바란다고 말씀을 하시면서도 거기는 미사일이 날아온다고 하면 자동차로 다른 도시, 심지어 다른 나라로 넘어갈 수 있지만 여기는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하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군사적 위협까지 가능하다는 말이 나오니까 다른 나라로 당장 떠나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협상 국면으로 들어갔습니다. 덴마크와 미국이 군사 기지와 광물 채굴권 등을 놓고 협상을 하고 있습니다. 부디 그 협상이 잘 돼서 그린란드 주민들이 좀 덜 걱정하고 편하게 사는 날이 빨리 오면 좋겠습니다.
(취재 : 권영인, 구성 : 신희숙, 영상취재: 김시내, 영상편집 : 나홍희, 디자인 : 육도현, 제작 : 디지털뉴스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