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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찐리뷰] 필리핀 사탕수수밭 살인→마약 공급 총책…박왕열, 징역 60년 받고도 교도소 초호화 생활 중

입력 : 2026.01.16 13:23|수정 : 2026.01.16 13:23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15일 방송된 '특집: 타깃 K' 1부 '마왕의 탄생'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배우 천우희, 가수 이기찬, 배우 서현철이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위험한 파견

때는 2015년 2월. 필리핀행 비행기에 한 남자가 탔어. 33세 이지훈 씨야. 경찰 간부 후보생 시험에 합격해 경찰이 된 그는 경감으로 승진 후 해외 파견을 가는 길이야. 이 경감은 이 공고를 보고 지원할 때만 하더라도 자신이 선발될 거라 기대를 안했어. 면접에서 지나치게 솔직하게 말했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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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파견 결정을 듣고 나서 좀 당황했어요. 당연히 안 될 거라고 생각했고, 보통 한 번에 되는 경우도 잘 없거든요. 당시 제가 미혼이었는데, 미혼이라서 보낸단 말도 있었고."
-이지훈, 당시 필리핀 파견 경찰

그런데 그 뒤로, 전화가 불이 나기 시작해. 전화를 받은 이 경감은 등골이 오싹했대.

"합격하고 나서 동기가 전화 와서 '너 거기 가지 마. 거기 가면 죽어' 이러는 거예요. 부랴부랴 기사를 찾아봤는데, 알고 보니 험악한 동네였죠."
-이지훈 경감

너는 '앙헬레스'라고 들어봤어? 스페인어인데, 영어로 하면 Angeles, '천사들'이란 뜻이래. 그런데 사람들은 앙헬레스를 '3G의 도시'라 불렀어.

3G는 Golf(골프), Gambling(도박), Girl(여자)이야. 한마디로 필리핀에서 손꼽히는 유흥 도시라는 거야. 그리고 하나, 또 유명한 게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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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앙헬레스시의 한 중국음식점 앞에서 세 발의 총성이 들렸습니다. 식사하고 나오던 한국 교민 34살 임 모 씨 등 세 명에게 필리핀인 두 명이 총격을 가한 겁니다."
"필리핀 앙헬레스시 한인 밀집 지역의 한 주택. 현지 경찰이 뒷마당을 파보니 시멘트 아래서 한국인의 시신이 나왔습니다."
"필리핀 앙헬레스의 주택가에서 여러 명의 남성들이 강제로 한 남자를 차량에 태웁니다. 끌려가는 남성은 한국인 사업가 53살 지 모 씨였고, 납치범들은 현지 경찰관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지 씨에게 마약 혐의가 있다며 데려간 곳은 마닐라에 있는 경찰청 본부였습니다. 그리고 경찰청에 주차된 차량 안에서 이들은 지 씨를 목 졸라 숨지게 했습니다."
-뉴스 보도들

앙헬레스엔 한인들이 모여 사는 코리아타운이 있는데, 그곳에서 한인들을 상대로 한 범죄가 끊이지 않아. 2012년부터 5년 동안 해외에서 피살된 한국인 총 164명이야. 그중 필리핀에서 피살된 한국인 48명. 전체 해외 피살 사건의 30%를 차지해. 당시 한국인이 가장 많이 살해되는 나라, 필리핀이었어.

한국인을 노리는 범죄가 줄을 잇자, 경찰청은 필리핀 정부랑 협의해서 '코리안 데스크'를 만들기로 해. 한국 경찰을 해외에 파견해서 한인 대상 범죄를 전담하게 한 거야. 하지만 그곳에서 수사권은 없어.

"수사권이란 자체도 그 나라에서 그들만이 사용하는 자주권이기 때문에. 그 어느 누구도 그 나라 경찰이 아니면 수사권을 가질 수 없어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고요."
-이지훈 경감

대신 필리핀 경찰을 돕는 조력자 역할을 한대. 그렇게 2010년 필리핀 마닐라에 코리안 데스크가 만들어졌어. 그리고 2015년 한인 대상 범죄가 끊이지 않는 앙헬레스에도 코리안 데스크가 신설돼. 여기에 최초로 파견된 경찰이, 바로 이지훈 경감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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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감이 근무할 곳은 앙헬레스 범죄수사국. 여기에 코리안 데스크가 생긴 거야.

"청부살인으로 유명한 도시예요. 통상적으로 살인사건이 나면 90% 이상이 청부 살인. 그리도 셋업(set-up) 범죄(허위 사실을 조작하여 무고한 사람을 범죄자인 것처럼 만드는 범죄 행위). 극단적인 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것으로 유명하죠. 앙헬레스에는 혼자, 팀원도 없죠. 제가 최초로 파견된 사람이었기 때문에, 정보도 많이 없고. 많이들 위험하다고 만류했죠. 고민을 많이 했죠 사실. 이왕 이렇게 된 거, 중도에 관둔다고 하기에 창피했고. 사람 사는 곳이니 가보자 결심했죠. 2주 만에 7킬로 정도 빠진 거 같아요. 저도 마음고생 많이 해서. 고통스러웠던 시간이었습니다."
-이지훈 경감

오늘은 이지훈 경감이 코리안 데스크로 근무하며 겪은 사건을 이야기할 거야. 그가 부임한 이듬해에 맞닥뜨린 사건이야.

▲ 사탕수수밭에서 발견된 시신

2016년 10월 12일, 사건을 처음 접했던 그날의 이야기야.

"그날 아침에 제가 정확히 기억하는 게, 한인타운에 있는 커피숍에서 정보원을 만나기로 해서, 출근 전에 아침 7시, 8시쯤 됐을 거예요. 정보원과 커피를 마시며 얘기를 하고 있는데, 같이 근무하는 필리핀 경찰한테 전화가 와서 '어디냐, 사건이 일어났는데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더라고요. 전화를 끊고 잠시 후에 왔는데, 갑자기 서류를 내밀어요. 시체 세 구의 사진이 있는 서류를 내밀며 '얘네 아냐'고 묻더라고요."
-이지훈 경감

전날 발견된 시신인데, 아직 신원을 알 수 없다는 거야. 필리핀 경찰은 사진을 보여주며 "중국인들 같은데, 혹시 아는 중국인 있어?"라고 물었어. 이들은 같이 카지노 쪽으로 가서 수소문을 해봤어. 근데 아무리 수소문해도 아는 사람이 나오지 않아. 그때 이 경감 머리에 물음표 하나가 떠올랐어. '근데 왜 중국인이라 생각하는 건가?' 였어. 물어보니, 신분증도 나오지 않은 시체인데, 중국인 같이 생겨서 중국인이라 생각했다는 거야. 그 말을 듣자마자 이 경감은 탐문을 멈추고, 곧장 시신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 그리고 시신에서 지문을 채취해서 한국으로 보냈어. 만약 이 시신들이 한국인이라면, 금방 신원을 확인할 수 있어.

이 경감은 답신을 기다리며, 피해자들이 입고 있던 옷들을 살펴봤어. 그런데 셋 다, 속옷이 없어. 그냥 티셔츠에 반바지만 걸친 거야. 사망한 세 명이, 남자 두 명에 여자 한 명이었거든. 근데 속옷이 없어. 그때 계속 옷을 살펴보던 이 경감의 눈에 뭔가가 들어왔어. 그걸 보는 순간, 불안감이 엄습해. 옷에 상표가 한국어로 적혀 있는 거야.

"한국말로 적혀있는 티셔츠를 발견해서, 순간 제가 섬찟했죠. 그래도 아닐 거야... 중국인들도 한국 제품 많이 좋아하니까... 라고 애써 생각했어요."
-이지훈 경감

자신의 예감이 아니길 바라고 있던 그때, 갑자기 이 경감의 휴대폰으로 문자가 마구 들어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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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가 들어올 때 직감했죠. 한국인이 아니라면 그냥 한 번 딱 울리고 말 텐데, 문자가 다다다다 들어오니까. 아 이거는 피해자들의 인적 사항과 신원 관련 내용이 들어오는 거다, 라고 직감해서 열어보니. 세 명 모두 한국인으로 밝혀진 거죠. 큰일 났다, 그 생각 밖에 안 들었어요."
-이지훈 경감

사망한 채로 발견된 세 명 모두 한국인이었어. 이들이 발견된 곳은, 앙헬레스 인근에 있는 사탕수수밭이었어. 전날 아침 일찍 근처를 지나던 농부가 둑길에서 핏자국을 발견한 거야. 그 옆을 보니, 내리막 경사로 쪽에 풀들이 길게 쓰러져 있어. 농부는 그 흔적을 따라 경사로를 내려가. 그러자 드넓게 펼쳐진 사탕수수밭이 나와. 그런데 그 사이로, 사탕수수가 쓰러져 있는 게 보여. 마치 누군가 드나든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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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는 그 안쪽으로 몇 발자국 들어섰어. 그러자 바닥에 반쯤 파묻힌 시신이 보여. 놀란 농부는 바로 경찰에 신고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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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 도착한 경찰은 시신이 발견된 곳 안쪽에서 두 구의 시신을 추가로 발견했어. 그렇게 해서 남자 둘, 여자 하나의 시신이 발견됐어. 모두 머리에 총을 맞고 살해된 채였어. 세 명이 한꺼번에 살해되는 일은 필리핀에서도 드문 일이야. 그런데 그 세 명이 모두 한국인인 거야. 바다 건너 한국도 발칵 뒤집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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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에서 한국인 피살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한국인 세 명이 총격을 받고 피살됐다고 외교부가 밝혔습니다."
"이들 모두 머리에 총상을 입은 상태였고 남성 한 명은 다리가, 여성 한 명은 손목이 테이프로 묶여 있었습니다. 발견 당시엔 아시아계로 추정됐지만 우리 경찰이 지문을 받아 분석한 결과, 쉰한 살 A씨와 마흔여섯 살 B 씨 등 모두 한국인으로 확인됐습니다."
-당시 뉴스 보도 중

▲ 수상한 남자

엄청 큰 사건이 발생했어. 이 사건 수사의 최전선에 있는 인물, 바로 이지훈 경감이야. 이 경감은 한국에서 보낸 피해자들의 사진을 들고 탐문을 시작해. 현지 한인사회는 좁아서, 한 두 다리만 건너면 다 아는 사이였거든.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피해자들을 안다는 사람이 없어. 피해자들이 이곳에 오래 거주한 교민은 아니라는 거야. 이 경감은 포기하지 않고 탐문을 계속했어. 그리고 드디어 한인회 사무실에서 연락이 와.

"한인회에 갔더니 이미 소문이 다 났죠. 한국인 세 명이 총 맞아 죽었다고. 주민들에게 둘러싸여 기다리는데, 잠시 뒤에 피해자 세 명을 안다는 사람이 뚜벅뚜벅 걸어 들어왔어요."
-이지훈 경감

피해자들을 알고 있다는 유일한 인물, 바로 이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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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서른여덟 살의 한국인이야. 현지에서는 잔조(ZANJO)라고 불린대. 그는 앙헬레스에서 정킷방 사업을 해. 정킷방은, 카지노 VIP룸을 대여해 음성적으로 운영되는 사설 카지노를 말해. 이곳에서는 주로 불법 도박이 이루어진다고 해. 이 경감은 잔조에게 피해자들에게 물었어. 그는 차분하게 대답했대.

"그 사람들요? 한국에서 알게 된 사람들이에요. 필리핀에 잠시 온다고 해서 저희 집에서 같이 지냈어요."

시신으로 발견되기 전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자, 이렇게 대답해.

"그날 밤, 마닐라에 누굴 만나러 간다길래 태워다 줬어요. 근처에 내려준 게 마지막이에요."

이것저것 묻는 질문에 대답하고 잔조는 돌아갔어. 그 후 이 사건의 단서를 계속 되돌려 보던 이 경감은, 잔조의 진술에서 말이 안 되는 부분을 발견했어.

"뭔가 이상하다, 뭐지? 이 생각이 계속 맴돌았거든요. 그러다 피해자들 옷가지에서 속옷이 없었던 게 기억났어요"
-이지훈 경감

누군가를 만나러 멀리 외출하는 사람들이, 속옷도 안 입고 나갔다? 백번 양보해서 남자들은 그렇다 쳐도, 중년 여성까지 속옷을 안 입었다는 게 이상해. 그래도 아직 단정할 수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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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이 사람이 범인이라고 단정할 순 없죠. 이 사람(잔조)이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이건 거짓말이다' 그 정도 확신은 했었고, 증거를 찾기 위해서 사방팔방 노력을 했죠."
-이지훈 경감

▲ 필리핀 한인 피살사건

한편, 한국에서 피해자들에 대해 조사하던 중, 뜻밖의 사실이 발견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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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들의 인적 사항이 이미 확인된 상태였기 때문에, 주변 상황을 확인했죠. 사건 발생일로부터 두 달 정도 전에 강남에서 유사 수신업체를 차리고 130여 명의 피해자들로부터 150억 원 정도의 피해를 입히고 필리핀으로 도주한 상태였다, 거기까지 확인했습니다."
-정백근, 당시 국제범죄수사대 팀장

유사수신행위는, 법률에 따른 인허가를 받지 않고 투자금을 유치하는 자금 조달 행위를 말해. "1억 원을 투자하면 매달 2%씩 배당금을 주고, 1년 후 투자 원금을 돌려주겠다"라는 식으로 자금을 모으는 거야. 일종의 다단계 방식으로 투자금을 받는 거야. 돌려막기로 이자를 지급해 오던 이들은, 1년이 되기 직전 갑자기 종적을 감췄어. 그리고 두 달 후 필리핀에서 살해된 채로 발견됐어. 피해자들과 함께 사라진 돈 150억 원도 행방을 알 수 없어.

아직 밝힐 게 많은데, 앙헬레스에 있는 코리안 데스크는 이경감 혼자야. 사건 발생 이틀 만에 네 명의 베테랑들로 구성된 수사지원팀이 앙헬레스로 급파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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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범죄수사대 사건 담당인 저를 포함해서 총기와 관련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권위 있는 국과수 총기 담당 박사님, 그다음에 과학수사요원, 그리고 범죄분석관, 프로파일러까지 네 명이 구성돼서 급파됐습니다."
-정백근, 당시 국제범죄수사대 팀장

그뿐만이 아니야. 필리핀 각지에서 근무하고 있던 코리안 데스크들도 모두 앙헬레스로 집결했어. 이들은 가장 먼저 사건 현장인 사탕수수밭으로 향했어. 그곳에 아직 발견되지 않은 증거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런데 사건 현장을 조사한 수사지원팀은 모두 이상한 점을 느꼈어. 왠지 많이 본 거 같은 기시감이 든 거야. 보통 필리핀에서 일어난 사건들은 청부살인이 대부분이야. 거리나 식당에서, 총을 쏘고 달아나는 식이래. 피해자와 아무 연관이 없으니까, 시신을 숨길 필요가 없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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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선 살해를 당하면 시신이 어딘가에 유기되고 이런 것들이 일반적인 상식이라면, 여기선 오히려 유기된 상황이 더 이례적이라 느꼈어요."
-이지훈 경감

게다가 시신에 남은 총상도 부자연스러워. 부검 감정서를 보면 총탄이 들어간 사입구의 피부가 결 모양으로 찢어져 있었다고 해. 총구를 바짝 대고 쏘면 이런 흔적이 남는데. 그리고 총탄이 지나간 방향도 좀 이상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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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적으로 머리 측면에 대고 쏘는 경우라면, 탄도가 총알이 들어간 사입구와 나간 사출구가 수평이 돼야 하는데, 두 사람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그런 상황이었거든요. 굉장히 비정상적이에요. 아마 이 사람들이 쓰러진 상태로 총을 맞지 않았나. 완전히 제압된 상태에서 쏘지 않았나 생각하는 거죠."
-김동환,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총기연구실장

범인은 피해자들을 완전히 제압해서 사탕수수밭에 데려왔어. 그리고 이들을 바닥에 눕히고 마치 처형하듯 총구를 머리에 대고 쏜 걸로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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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부살인의 킬러는 목적 달성이 중요하지 숨기는 게 필요 없어요. 그냥 살해하고 갑니다. 왜냐하면 CCTV도 잘 없고, 추적도 약하고 검거율 자체도 굉장히 낮기 때문에. 이런 것들을 봤을 때, 이건 범인이 한국인인데…"
-이지훈 경감

사탕수수밭을 나온 수사팀은 또 다른 현장으로 이동해. 피해자들이 살해되기 전까지 머물렀던, 잔조의 집으로 간 거야. 피해자들은 이곳에 은신하며 밖으로 잘 나오지 않았다고 해. 어쩌면 이곳이 드러나지 않은 사건 현장일 가능성이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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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미놀 검사라고 알아? 혈흔 감식에 쓰이는 용액 루미놀을 뿌리면, 눈에 보이지 않는 혈액을 찾아낼 수 있어. 저택 곳곳에 루미놀을 뿌려봤는데, 어떤 혈흔도 발견되지 않았어. 하지만 저택에서 문서 하나가 발견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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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헬레스에 있는 카지노에 맡겨둔 예치금 보관증이야. 예치금은 총 3,000만 페소. 우리나라 돈으로 7억 2천만 원 정도야. 문서를 보면, 이 돈은 두 사람의 명의로 되어 있어. 우측엔 피해자 중 한 명의 이름, 그리고 좌측에는 '박왕열'이란 이름이 적혀 있어. 바로 잔조의 본명이 박왕열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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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탐문 결과 피해자들이 박왕열에게 거액을 투자했고, 박왕열이 그 돈을 카지노에 맡긴 사실이 밝혀졌어. 그런데 이 문서를 보면, 중요한 사실이 적혀 있어. "이 예치금은 오직 박왕열만이 인출할 수 있다"는 거야. 명의는 두 사람, 인출은 한 사람만 할 수 있다? 이상하지? 하지만 아직은 정황 증거야.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살인의 증거를 찾아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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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택 안을 찾던 수사지원팀은, 또 하나 중요한 증거물을 찾아내. 저택 안 주방에서 피해자들이 마신 걸로 보이는 콜라캔이 여러 개 발견됐어. 콜라캔에서 모두 다섯 명의 지문이 검출됐어. 피해자 3명과 박왕열, 그리고 새로운 제3의 인물, 김 씨가 등장한 거야.

▲ 공범의 등장

"그런데 마냥 공범이라고 할 수 없는게, 가정집이라서 누구라도 왔다 갔다 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조사를 해봤죠."
-이지훈 경감

일단 김 씨의 출입국 기록을 조사해 보니, 사건이 발생하기 일주일 전인 10월 4일, 혼자 필리핀에 입국했어. 그리고 10월 11일 아침, 사탕수수밭에서 시신들이 발견됐고, 김 씨는 10월 13일에 한국에 돌아갔어. 원래는 10월 15일에 돌아가려 했는데, 일정보다 이틀 앞당겨 돌아간 거야.

"이 사람이 더 의심됐던 게, 필리핀에 그간 왔다 갔다 한 사람이 아니고, 처음 필리핀에 왔는데 공교롭게도 사건 전후로 왔다 갔다 한 게 밝혀졌거든요. 그래서 굉장히 의심을 많이 했죠."
-이지훈 경감

의심은 곧 확신으로 바뀌어. 저택 앞을 지나던 청소부가 "한국에서 온 세 사람과 잔조, 또 한 명의 한국인이 같이 살았다" 하는 거야. 그리고 이어진 말에 이 경감은 소름이 돋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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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부가 갑자기 한 마디를 툭 던집니다. '삽을 빨리 갖고 오라'고 했다고. '삽'이라는 단어가 머릴 스치면서, 사탕수수밭 땅을 파는 장면이 겹쳐졌죠. 이 삽을 사용해 아마도 그런 작업을 했을 거다란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이지훈 경감

정황 증거는 두 사람을 가리켜. 박왕열과 또 다른 한국인 김 씨. 두 사람을 주요 용의자로 특정한 수사팀은 박왕열을 찾기 시작했어. 하지만 그 시점, 박왕열의 연락이 두절돼. 수사망이 좁혀 오자 사라져 버린 거야. 그런데 그가 잠적하기 전에 들른 곳이 있어. 바로 카지노. 거기에 맡긴 예치금을 인출한 뒤 종적을 감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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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한국 수사팀은 창원에서 김 씨를 체포했어. 이 사건에 대해 묻자 그는 혐의를 부인했어. 필리핀에는 머리를 식히러 놀러 갔을 뿐, 자기는 모르는 일이래. 아직 그가 공범이라는 증거는 없어. 피해자들과 그 집에 같이 있었고, 사건 직후 갑자기 필리핀을 떠났다는 것뿐이야. 결국 그대로 그를 풀어줄 수밖에 없었어.

▲ 집념의 추적

필리핀에 있는 수사지원팀은 증거를 찾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 우선 현장 인근의 CCTV를 모아서 분석에 들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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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왕열 주거지에서 범행 현장까지 이르는 CCTV를 코리안 데스트에서 전부 확보하고, 그게 4TB 정도. 그걸 가져와서 국내에서 분석하는 데만 열흘 이상 걸렸으니까. 직원들이 나눠서 보느라 애 많이 먹었습니다."
-정백근, 당시 국제범죄수사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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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흩어져 탐문 조사를 하고, 밤에는 이 경감의 집에 모여서 단서 정리를 했어.

"박왕열 주거지의 차량 출입 기록과 대조하면서 일일이 다 맞췄던 거죠. 매일 저녁 그걸 같이 분석하고, 시간대를 맞추고. 타임 테이블을 만든 거죠. CCTV를 통해서."
-정백근, 당시 국제범죄수사대 팀장

그렇게 CCTV 영상 분석을 통해 유력한 증거를 찾아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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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발생 전날 밤 10시 1분. 운전기사를 시켜 뭔가를 차에 옮기는 박왕열. 검은 차량으로 옮겨지는 건 '삽'이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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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약 6시간 후인 새벽 4시 28분경, 사탕수수밭 방향의 주유소 CCTV에서 그 검은 차량이 찍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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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약 한 시간 후, 그 차량이 다시 돌아오는 모습도 찍혔어. 그리고 45분 후, 농부에 의해 사탕수수밭에서 피해자들이 발견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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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인근의 콘도 주차장, 아침 7시 70분. 차에서 내린 운전석의 박왕열과 조수석의 또 다른 남자 김 씨. 그리고 김 씨는 흙을 털어내는 건지, 뭔가를 털어내는 행동을 해.

증거는 그뿐만이 아니야. 박왕열의 운전기사를 조사한 필리핀 경찰은 아주 결정적인 증거를 발견해. 박왕열이 길가에 버린 신발가방이야. 신발가방 안에서 45구경 권총과, 소음기가 발견됐어. 정밀 감식 결과, 피해자들을 살해한 도구라는 게 밝혀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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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경찰은 즉시 박왕열의 수배 전단을 배포했어. 그리고 사라진 박왕열의 뒤를 쫓기 시작해. 정 팀장을 비롯한 수사지원팀은 할 일을 다했으니 한국으로 돌아갔어. 이제부턴 한국에 있는 김 씨의 수사를 하게 될 거야. 앙헬레스에 남은 건 이 경감뿐이야. 그는 모든 정보를 동원해 박왕열을 찾기 시작했어. 그러던 중 "박왕열이 필리핀 여자친구와 도주 중이다"라는 제보가 들어와. 이 경감은 박왕열 여자친구의 SNS를 뒤졌어. 그리고 이 경감의 예상이 적중했어. 얼마 후에 여자친구의 SNS에 사진이 올라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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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은편에 앉은 남자의 왼쪽 팔에 새겨진 용 문신. 바로 잔조, 박왕열이야. 첩보대로 박왕열이 여자친구와 함께 있다는 게 확인된 거야. 그리고 또 한 장의 사진이 올라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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냅킨에 적혀있는 상호명. 리조트 이름이 써있는 걸 발견한 거야. 이 경감은 곧장 추적팀을 이끌고 그 리조트로 달려갔어. 앙헬레스에서 북서쪽으로 220km 정도 떨어진 '팡가시난'이란 곳이야. 차를 타고 다섯 시간을 달려가니 이미 오후 6시야. 근데 리조트에 물어보니 이 손님, 어제 체크아웃했대. 하루 차이로 놓친 거야. 허탈한 마음을 달래며 리조트에서 숨을 고르던 그때, 박왕열 여자친구의 SNS에 새로운 게시물이 올라와.

"파란 지붕의 리조트 사진이 올라와서 그 리조트가 어딘지 수소문해 보니까 또 위로 한 200km 지역의 리조트라 해서, '가자! 여기까지 왔는데 가야 한다!'"
-이지훈 경감

이번엔 '바기오'야. 지금 있는 곳에서 4시간 정도 더 가야 해. 이미 해는 져서 밤이 됐지만 지체할 수 없어. 도착해 보니 새벽 2시가 넘었어. 그런데 또, 이 사람들이 오늘 퇴실했대. 이번엔, '비간'에 있다는 정보를 듣고 달려갔지만, 역시 한발 늦었어. 금방 끝날 줄 알았던 박왕열 검거 작전은, 어느덧 2박 3일의 출장이 됐어.

"지도상의 맨 끝에 라오아그 공항이라고 있는데, 여기에서 바다로 조금만 가면 대만이 나옵니다. 날이 좋을 때 대만까지 보인다고 얘기들 하죠. 몰래 그쪽을 통해 나가려고 한다는 첩보가 들어와서."
-이지훈 경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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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박왕열이 필리핀을 빠져나가면, 언제 잡을 수 있을지 기약이 없게 돼. 이 경감은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지친 팀원들을 데리고 라오아그로 향해. 근데 이번에도 허탕이었어. 결국 이 경감은 추적을 포기하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대.

"계속 SNS가 한 발짝 느린 상황이고, 떠난 뒤에 올린다는 생각이 들어서, 필리핀 이민청이 한국인만 쫓는 게 아니라 전 세계 수배자들을 이 팀에서 다루는데, 제가 계속 이들을 데리고 다닐 수가 없거든요. 그래서 '조금 더 첩보가 구체화되면 다시 준비하겠다' 하고, 그다음부턴 저 혼자 다니기 시작했죠. 수십 차례의 검거 시도가 있었고, 계속 실패했죠. 새벽 3시 4시에 혼자 모르는데 가서 수색도 하고 그랬죠."
-이지훈 경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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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박왕열을 쫓은 지 한 달이 지날 즈음, 이 경감은 결정적인 첩보를 입수했어. 박왕열이 여자친구와 마닐라의 콘도에서 지내고 있다는 거야. 3시간 거리야. 근데 콘도에 도착한 순간, 자신감이 뚝 떨어져. 콘도의 규모가 어마어마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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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니까 콘도 자체가 단순히 몇십 세대가 아니라, 천 세대, 이천 세대가 사는 엄청 대규모 콘도였어요."
-이지훈 경감

게다가 박왕열 이름으로 된 기록도 없다는 거야. 천 세대의 문을 다 두드려볼 수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할까? 입구마다 기다려야 할 것이냐, 어떻게 할 것이냐, 고민하던 차에, 박왕열 여자친구 SNS에 새로운 사진이 올라온 거야. 거기서 새로운 단서를 찾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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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에 누워있는데, 파란색 침대보 뒤에 물결무늬 같은 커튼이 있는데, 마치 집에서 찍은 거 같은 호텔이 아닌 느낌이었어요. 이거 혹시 집에서 찍었으면, 이 커튼에 밖에서 드러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찾아봤죠."
-이지훈 경감

각자 취향대로 집을 꾸미고 살 수 있는 곳이었어. 마침 이 콘도가 복도식이라서, 이 커튼이 보이는 집을 찾아봤어.

"각 건물이 십 몇 층까지 있고, 한 층에 50세대 가까이 있었는데. 각 팀을 나눠서 찾다가. 물결무늬 커튼이 있는 집을 찾아냅니다. 그리고 안에 인기척이 있는지 보는 거죠."
-이지훈 경감

한 시간 넘게 수색한 끝에, 똑같은 집을 찾아낸 거야. 수색팀은 콘도 관리자를 불러 초인종을 누르게 했어. 그런데 인기척이 분명 있는데, 아무도 밖으로 나오질 않아. 거기서 한 시간 정도 대치했어. 대책을 논의하며 서있던 그때, 복도가 조용해지자 누군가 그 안에서 문을 열었어. 그 순간 추적팀은 총을 뽑아 들고 방 안으로 들이닥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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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최종 확인해야 하니 '박왕열 씨' 불러서 얼굴 확인을 해서, 필리핀 이민청 직원에게 맞다고."
-이지훈 경감

드디어 체포된 박왕열.

"제가 뒤에 따라가며 보니까. 방에 여자친구 SNS에 올라왔던 파란색 침대보와 물결무늬 커튼이 보였고, 그 사진이 잘 맞아떨어진 겁니다."
-이지훈 경감

이때가 11월 17일. 사건 발생 37일째 되는 날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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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에 전율이 찌릿찌릿했죠. 왜냐하면 제가 정확히 37일간 추적을 했는데, 하루에 네 시간도 못 잔 거 같아요. 반갑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쾌감이 들었죠."
-이지훈 경감

▲ 박왕열 검거, 그러나…

한편, 한국에서는 김 씨에 대한 조사가 이어지고 있었어. 정 팀장은 다섯 차례의 진술 조사를 했지만, 김 씨는 한사코 혐의를 인정하지 않아. 확실한 증거에도 막무가내야.

"압수한 의류와 가방끈에서는 실제로 화약 반응이 나왔고요. 심지어 거짓말 탐지기 검사까지 했습니다. 근거를 들이대도 계속 부인했습니다. 무조건 아니라고."
-정백근, 당시 국제범죄수사대 팀장

그러던 차에 필리핀에서 박왕열이 검거됐다는 소식이 들려와. 검거 다음날, 정 팀장은 김 씨의 여섯 번째 진술 조사를 하게 돼. 그날도 역시 범행을 부인하던 김 씨는 정 팀장의 질문 하나에 모든 걸 자백했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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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창원 경찰서에서 밤늦게까지 조사하는데, 마지막까지 부인을 하다가, 끝에 가서 제가 질문을 했어요. '너는 억울하지도 않냐? 박왕열은 범행하고 돈 챙겨서 도망가고, 너한텐 도대체 뭐가 남았냐' 나중에 고개를 계속 숙이고 있다가, 마지막에 그러더라고요.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게 첫마디였어요. '어디에?' 하니 '사탕수수밭에서요'"
-정백근, 당시 국제범죄수사대 팀장

그렇게 입을 열기 시작한 김 씨는 범행의 모든 과정을 털어놨어. 필리핀에 가기 전에 매일 빚 때문에 독촉에 시달렸지만, 돈 나올 구석은 없었어. 그러던 어느 날 전부터 알고 지내던 박왕열에게 전화가 온 거야. "사람을 죽이려는데 와서 좀 도와라. 그럼 내가 너 1억 줄게"라는 제안이었어. 경제적으로 한계에 몰려있던 김 씨는 그 유혹에 넘어갔어. 하지만 필리핀에 도착하자 박왕열이 말을 바꿨다고 해.

"식당에서 박왕열이 '총을 가지고 있으니까 상황을 봐서 정리를 해라'고 하였고, 제가 '형님 저 혼자서 처리하라고요?'라고 물었더니 '그럼 너 혼자 해야지'라고 해서, 제가 어떻게 저 혼자서 처리하냐고 하니까, 제가 필리핀에 들어온 것은 아무도 모르게 들어온 것이니까 저 혼자서 사람들을 죽여야 한다고 얘기했습니다."
-김 씨의 신문조서 中

김 씨가 계속 범행을 주저하자, 박왕열이 직접 나섰대. 사건 당일 새벽 2시경, 숙소에서 자고 있던 피해자들을 제압한 후에, 사탕수수밭으로 가서 권총으로 살해했다는 거야. 김 씨는 그걸 도왔을 뿐이라고 진술했어. 그 후 김 씨는 약속한 1억 원을 받지 못한 채, 도망치듯 필리핀을 떠났다고 해.

"일체 자백을 받고 그동안 우리가 수사했던 증거나 과정의 퍼즐이 다 맞춰졌기 때문에, 그래서 김 씨를 구속 송치를 했습니다."
-정백근, 당시 국제범죄수사대 팀장

결국 김 씨는 강도 살인과 사체 유기로 징역 30년을 선고받아. 그럼 박왕열은 어떻게 됐을까?

검거된 박왕열은 비쿠탄 이민자 수용소에 수감돼. 당시 '그알' 팀이 박왕열을 직접 만나 인터뷰했던 영상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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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컴에 잘못된 게 많은데, 콜라 캔에서 지문이 나왔다는데, 아니 내 집인데 그럼 내 집에서 나오면 지문이 다 내 거인데."
(김 씨는 조력만 했다는데?) "제가 안 넘어가니까 일단 저한테 미룬 거죠. 자기 형량 좀 줄이려고."
(김 씨를 살해 때문에 필리핀으로 불렀다는데?) "누굴 죽이려면 왜 불러요? 막말로 따지고 보면 필리핀에선 10만 페소, 5만 페소면 아무나 죽이는데. 내가 미쳤다고, 매스컴 보니까 1억 원 준다 그랬다던데."
(그럼 총은 누가 쏜 거냐?) "그 자리에 저는 없었어요."
(그럼 카지노에서 찾은 돈은?)"그게 3천만 페소. 그동안 제가 예치했던 거. 그 사망한 사람들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어요."
-박왕열 2018년 인터뷰 中

박왕열은 자신과 범행은 아무 상관이 없다, 카지노 예치금은 자신의 돈이라 주장했어. 근데 그의 진술과 달리 모든 증거는 그를 가리키고 있어. 경찰청은 박왕열 소환을 위해 필리핀 정부와 교섭에 나서. 한국으로 데려와 올바른 처벌을 받게 하기 위해서야.

송환 절차가 진행 중이던 2017년 3월. 필리핀에서 깜짝 놀랄 소식이 전해져. 박왕열이 수용소 천장을 뜯고 탈옥을 한 거야. 탈옥한 지 두 달 후, 다행히 박왕열은 다시 검거돼. 그리고 2년이 지난 2019년 10월, 재판을 받고 돌아오던 박왕열은 두 번째 탈옥을 감행해. 감시가 허술한 틈을 타 식당 화장실 환풍구를 뚫고 사라진 거야. 이렇게 사라진 박왕열. 그는 그 후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모습으로 다시 등장해. 이제부터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돼.

▲ 바티칸 킹덤

박왕열이 사라지고 다음 해, 코로나19가 한참 기승을 부리던 2020년도에 한국에선 지금껏 보지 못한 범죄가 성행하기 시작해. 바로 '마약 던지기'야. 일상적인 공간에 마약을 숨겨 놓고 구매자로 하여금 찾아가게 하는 비대면 마약 거래 방식이야. 201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한 던지기 수법은 2020년대로 들어서며 걷잡을 수 없이 퍼지기 시작했어. 왜 던지기 수법이 유행하기 시작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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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마약 범죄 수사를 처음 할 때는요, 그 당시 저희는 일명 '손손 방식'이라 했습니다. 직접 만나서 돈을 주고 마약을 건네받는 '손손 방식'. 이렇게 대면으로 이루어졌는데, 지금은 전혀 만날 일이 없는 텔레그램 같은 SNS와 비트코인 같은 가상 자산이 결합되면서 굉장히 폭발적으로 증가를 한 거죠.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이후부터 철저한 비대면이 이루어지면서 더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된 사례입니다."
-김대규, 전 경남경찰서 마약범죄수사계장

마약을 쇼핑이나 배달음식 주문하 듯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시대가 됐어. 그래서 텔레그램 마약방을, '24시간 마약 편의점'이라 부르기도 해. 김대규 계장이 이끄는 수사팀은 텔레그렘에서 이루어지는 마약 거래를 추적하고 있어. 근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야.

"예전에는 저희가 마약 사범을 잡으면 고구마 넝쿨 같았어요. 하나 잡아 쭉 끌어올리면 줄줄이 뽑혀 올라오는데, 지금은 딱 들면 거기서 잘려 버려요. 철저한 꼬리 자르기를 하기 때문에. 하선들이 상선의 인적사항을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김대규, 전 경남경찰서 마약범죄수사계장

하선을 잡아도 그들조차 상선이 누군지 몰라. 모든 지시는 텔레그램을 통해 비대면으로 이뤄지니 닉네임만 아는 거야. 게다가 한 사람이 여러 가지 닉네임을 사용하기도 하고, 한 닉네임을 다수가 공유하기도 해. 모른 척하는 게 아니라 진짜로 모르는 거야. 그래서 수사관들은, 마치 유령을 쫓는 거 같다고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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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팀의 목표는 던지기 수법으로 곳곳에 마약을 숨기는 일명 '드로퍼(dropper)', 이 드로퍼를 고용해 지시를 내리는 '판매책', 그리고 전국 각지에 활동하는 10명의 판매책들 위에는 '국내 마약 공급 총책'이 있어. 일명 닉네임 '바티칸 킹덤'을 잡으려는 거야. 이 바티칸 킹덤을 쫓는 기자가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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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회사로 제보가 하나 들어왔어요. 출처 없이 링크만 몇 개 주면서 텔레그램에 마약을 유통하는 방이 여러 개 있더라, 한 번 들어가 취재해 보면 어떻겠느냐 하는 제보가 왔었습니다."
-홍주환, 뉴스타파 기자

제보받은 링크를 통해 마약방에 들어간 홍 기자는 큰 충격을 받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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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방에 들어가 봤는데, 별천지더라고요. 적게는 수 십 명이 있는 방도 있고, 많게는 900명이 있는 방도 있었으니까요. 거기서 실시간으로 메뉴판처럼, 필로폰은 얼마, 액상 대마는 얼마, 이런 식으로 계속 메뉴판들이 올라오고 있었고. 심지어 이벤트도 진행하고 있었고. 지금 사면 할인해서 준다, 많이 사면 할인해 준다, 이러면서.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더라고요."
-홍주환, 뉴스타파 기자

그렇게 텔레그렘 마약방에 잠입 취재를 시작한 홍 기자는 한 마약상을 알게 돼.

"텔레그램 마약방에 잠입해 있던 중에, 되게 활발하게 활동하는 마약상이 있었어요. 그 마약상이 자신들이 있는 방을 '바티칸 킹덤'이라 부르면서, 열심히 올리는 거예요. 공격적인 마케팅이라 해야 할까요. 이벤트를 많이 걸고, 본인들이 마약으로 이렇게 돈을 많이 벌었다, 현금 다발이라든지 람보르기니 차라든지, 고급 시계, 양주 사진을 계속 올리면서. '우리는 쿨하고 잘 사는 사람들이야, 그러니 우리한테 끼고 싶지 않아?' 하는 걸 공격적으로 알렸어요."
-홍주환, 뉴스타파 기자

오래 활동해 온 마약상들조차 바티칸 킹덤의 정체를 몰랐대. 느닷없이 나타나 엄청난 양의 마약을 뿌려대기 시작한 거야. 하지만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이야.

2021년 1월, 서울 강남의 한 호텔 앞. 승합차에 타고 있는 건장한 남자들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호텔 쪽을 살피고 있어. 이들은 바로 경남경찰청 마약범죄수사계. 김대규 계장이 이끄는 팀이야. 바티칸 킹덤을 추적한 지 8개월. 마침내 국내 총책 바티칸 킹덤이 있는 곳까지 온 거야.

"피의자들을 검거하면서 휴대전화 포렌식과 여러 계좌 추적을 통해서 상선의 존재를 알게 됐습니다. 그 상선을 추적해 가는 과정에서 그 위의 국내 총책까지 올라가게 되었고, 그 국내 총책이 바티칸 킹덤이었습니다"
-김대규, 전 경남경찰서 마약범죄수사계장

수사관들은 호텔 주변 일당부터 동시에 검거했어. 한 명이라도 놓치면 연락을 받은 바티칸 킹덤이 숨어버릴 테니까. 그리고 마침내 수사관들은 바티칸 킹덤이 있는 객실로 들이닥쳤어. 근데 방안에 있던 인물을 마주한 김 계장은 깜짝 놀라고 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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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그 당시에 검거할 때 제일 놀랐던 부분이 그 부분이었습니다. 마약 전과가 하나도 없는 평범한 20대 청년이었던 거죠."
-김대규, 전 경남경찰서 마약범죄수사계장

헬스트레이너로 일하던 20대 청년이 거대 마약 조직의 국내 총책이었던 거야. 그의 집과 차 안에서도 엄청난 양의 마약이 발견돼. 검거 과정에서 압수된 것만, 총 49억 원 상당이었어. 바티칸 킹덤 사건으로 검거된 인원 총 96명. 놀라운 건, 그들 대부분이 초범이었어.

마약을 접하는 문턱이 낮아졌다는 거, 그리고 마약류를 처음 접하는 사람이 늘어났다는 걸 의미해. 더 심각한 문제는, 검거된 마약 사범들이 점점 어려지고 있다는 거야. 2023년 마약사범 연령대별 통계를 보면, 2015년에 비해 20대는 6배, 10대는 11배가 증가했대. 심지어 초등학생이 마약에 손을 대는 경우도 있대.

"저희들이 검거하고 보니 10대 청소년들이 너무 많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이버 도박에 빠졌던 친구들이 급전이 필요하니까 드로퍼로 직접 범행에 참여한 경우가 대다수였습니다."
-김대규, 전 경남경찰서 마약범죄수사계장

그렇게 바티칸 킹덤 조직을 뿌리 뽑았어. 그럼, 바티칸 킹덤의 텔레그램 마약방은 완전히 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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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바티칸 킹덤을 검거하고 난 이후에, 전국의 많은 기자분들이 저한테 전화가 왔었습니다. 바티칸 킹덤 구속한 거 맞냐고. 지금 바티칸 킹덤 9명이 돌아다니고 있다고. 저희가 바티칸 킹덤을 검거하고 조직을 격파해도, 마약 거래가 단절되지는 않습니다. 텔레그램 마약 판매 조직은, 머리를 하나 자르면 두 개가 생기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괴물 히드라 같다고 얘기합니다."
-김대규, 전 경남경찰서 마약범죄수사계장

▲ 마왕의 정체

그럼 어떻게 해야 뿌리 뽑을 수 있을까? 공급을 막아야 유통도 끊기겠지. 국내로 마약을 공급하는 해외 총책을 잡으면 돼. 해외에서 마약을 공급해 준 그 인물. 그는 한 달에 60kg 넘는 마약을 한국에 공급했다고 해. 60kg면 200만 명 정도가 투약할 수 있는 양인데, 금액으로 따지면 300억 원이 넘는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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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스스로를 '마왕 전세계'라 불렀어. 전 세계에 있는 모든 마약을 다 구해줄 수 있다는 의미래. 그의 정체는 누굴까?

바티칸 킹덤이 검거된 후, 텔레그램 마약방에서 오간 대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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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왕 전세계 A씨' '바티칸 킹덤 B씨'라고 칭한 기사 내용이야. 근데 이 기사 밑에 올라온 글 하나가 있어. 'A킹텐 B뽕트'라는 글이야.

'뽕트'는 바티칸 킹덤이 헬스 트레이너라 했잖아. '뽕 트레이너'의 줄임말이야. 그럼 '킹텐'은 무슨 뜻일까? 바로 '왕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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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킹덤을 조사 중에 그 배후에, 마왕 전세계, 박왕열이 있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필리핀에서 제조된 마약을 밀반입해서 텔레그램을 통해 국내로 유통하는 최대 조직의 총책이었습니다. 결국 자신의 판매를 위해 바티칸 킹덤을 조직적으로 키웠다고 알고 있습니다."
-김대규, 전 경남경찰서 마약범죄수사계장

필리핀에서 정킷방을 운영하던 잔조. 사탕수수밭에서 세 명을 살해한 박왕열. 그리고 국내에 엄청난 양의 마약을 퍼뜨린 마왕 전세계. 이 세 명이 동일 인물인 거야. 필리핀 현지의 마약을 한국에 유통시키던 그는 2020년 10월 필리핀 경찰에 체포됐어. 그런데 당시 그의 모습을 본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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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연히 초췌해진 모습의 박왕열. 그는 필리핀 법정으로부터 징역 60년을 선고받고 현지 교도소에 수감됐어. 하지만 마왕 전세계는 활동을 멈추지 않았어. 박왕열이 수감된 곳은 뉴빌리비드 교도소. 이곳은 우리가 아는 교도소와 많이 다른 곳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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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라기 보단, 어떻게 보면 범죄자끼리 모아놓은 '범죄자 마을'로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거, TV를 본다든지 운동을 한다든지 여자친구를 만난다든지. 여러 가지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곳입니다. 특히 수감 중에도 휴대폰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문제가 됐습니다. 박왕열 같은 경우엔 수감 중에 휴대전화를 사용하기 때문에, 마약류 거래가 원활하게 할 수 있는 거죠."
-김대규, 전 경남경찰서 마약범죄수사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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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만 있으면 이곳에서도 얼마든지 호사를 누릴 수 있어. 필리핀 당국이 이곳을 기습 단속한 적이 있는데, 초호화 빌라, 스파 욕조, 테니스장 등 온갖 호화 시설이 발견됐다고 해. 박왕열은 이곳에서도 VVIP로 지내고 있다고 전해져.

한국법에 의해 처벌하는 게 맞잖아. 하지만 그게 쉽지 않아. 한국과 필리핀 간에 협정한 범죄인 인도 조약에 따르면, 필리핀 사법 절차가 끝나야 한국으로 데려올 수 있다고 해. 그 말은 즉, 박왕열이 징역 60년 형기를 필리핀에서 마친 후에야 가능하다는 거야. 이대로라면 그가 살아서 한국땅을 밟을 일은 없어.

박왕열을 데려올 방법이 하나 있어. 바로 '임시 인도'. 양국이 합의만 하면 임시로 데려와 한국 법정에 세울 수 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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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7년에 살인을 저지르고 필리핀으로 도주한 최세용이란 인물이 있어. 한국인 관광객을 납치 살해해 오던 그는 현지에서 체포되어 형기를 마칠 때까지 데려올 수 없는 상황이었어. 하지만 2013년도에 한국과 필리핀이 합의하면서, 최세용을 임시 인도한 사례가 있어. 당시 한국 정부가 많은 외교적 노력을 기울인 결과라고 해. 그는 최종 인도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어.

지난 2018년 우리나라 법무부가 박왕열에 대해 인도를 요청했지만, 필리핀 정부는 송환을 보류했어.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그는 마약을 계속 유통시키고 있을지도 몰라. 이제 외교부와 법무부, 정부 차원에서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 그를 한국 법정에 세워야 하지 않을까.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SBS연예뉴스 강선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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