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춘천지법
"반갑다 친구야, 우리 학창 시절에 같이 축구했던 사이잖아. 기억나?" 2021년 3월 지적장애가 있는 한 남성에게 A(48) 씨가 대뜸 자신을 동창이라고 소개하며 말을 걸어왔습니다.
A 씨는 마치 오래된 친구인 것처럼 대화를 이어가며 친분을 쌓고는 한 달 뒤 '사업'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는 자기 아내가 러시아인이라며 인천공항에 내린 러시아 사람들을 원주로 데리고 오는 일을 하자고 꼬드겼습니다.
그러더니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한데, 네가 대출받은 다음 그 돈을 내게 달라"고 했습니다.
모두 새카만 거짓말이었습니다.
A 씨는 피해자가 지적 능력과 판단력이 부족하고 돈에 대한 관념이 없다는 점을 파고들어 악질적으로 돈을 뜯었습니다.
피해자가 제3금융권으로부터 받은 대출금을 비롯해 상조보험 가입을 강권해 사은품으로 지급되는 냉장고와 현금 150만 원을 챙기는 등 4차례에 걸쳐 1천720만 원을 가로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의료관광 사업을 구실로 "사람을 만나 활동하기 위해 신용카드를 만들어달라. 대금은 나중에 내가 결제하겠다"고 속여 피해자 명의 신용카드를 써댔습니다.
그러고도 되레 "신용카드 1개만으로는 활동하기가 어렵다. 하나 더 만들어달라"며 총 2개의 카드로 740만 원을 긁었습니다.
피해자가 카드 사용대금에 대해 걱정하자 "나중에 사업으로 이익이 생기더라도 돈을 주지 않겠다"고 겁을 줬습니다.
그러나 A 씨는 당시 별다른 재산이나 수입도 없고, 채무초과 상태에 있었을 뿐 사업을 추진할 뜻도, 능력도 없었습니다.
그가 사업 추진비로 쓰겠다고 가져간 신용카드 사용 명세에는 식비, 간식비, 주유비 등 온통 생활비뿐이었습니다.
A 씨는 사기 범행 과정에서 돈을 빨리 주지 않는다고 피해자를 닦달했고, 신용카드 사용에 있어 토를 달지 말라고 화를 내거나 협박했습니다.
피해자의 집에서 피해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입단속을 시키고, 피해자 본가의 재산 상황까지 캐물으며 피해 상황을 숨기고 더 뜯어낼 궁리만 했습니다.
결국 준사기와 여신전문금융업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 씨는 1심에서 징역 1년 4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에서 구속됐습니다.
그는 "피해자가 술장사하자고 제안하며 돈을 건넸다"라거나 "카드 사용명세는 피해자가 쓴 것이거나 피해자의 허락에 따라 사용한 뒤 대금을 갚았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모두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판단했습니다.
1심을 맡은 춘천지법 원주지원은 A 씨와 피해자가 쓴 의료관광 사업 투자계약서가 매우 비정상적인 점과 녹취록 등을 근거로 A 씨가 피해자의 사리분별력 부족 또는 심신장애를 이용해 범행한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1심은 "피해자에게 심각한 피해를 초래했고, 그 과정에서 피해자의 가족이 피해자의 금전 사용을 들여다보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피해자 가족 재산도 알아보는 등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고 질타했습니다.
이어 "또한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이 문제를 인식하고 변제를 요구하기 시작하자 허위 증거를 만들기 위한 시도까지 하고도 범행을 부인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주장을 하면서 피해회복을 하지 않고 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판결에 불복한 A 씨는 항소심에서 뒤늦게 죄를 모두 인정하며 형을 낮춰달라고 했으나 춘천지법 형사1부(심현근 부장판사)는 "마음을 뒤집은 경위와 범행 내용 등을 고려할 때 형을 변경할 정도의 사정변경으로 보기는 어렵다"며 기각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