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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체제 위기 도화선된 건 '아얀데 은행' 파산 사태

조제행 기자

입력 : 2026.01.14 17:54|수정 : 2026.01.14 17:54


▲ 이란 반정부 시위

현재 이란의 체제 위기를 예고한 가장 큰 조짐은 아얀데 은행 파산 사태였다고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3일(현지시간) 분석했습니다.

아얀데 은행 몰락은 그 자체로 경제 붕괴의 상징이었을 뿐만 아니라 경제난을 더욱 가속했으며, 결국 반정부 시위를 촉발해 이슬람 공화국 수립 50여 년만에 가장 심각한 위기를 일으켰습니다.

아얀데 은행은 작년 10월에 대출 부실로 50억 달러(7조 4천억 원)의 손실이 쌓인 상태에서 청산됐습니다.

이란 정부는 국영 은행을 동원하고 엄청난 양의 돈을 찍어내 문제를 덮어보려고 시도했으나 해결책은 되지 않았습니다.

이 은행이 망해버린 일은 국제 제재, 부실 대출, 인플레이션을 일으키는 화폐 발행에 대한 의존 등으로 이란 금융 시스템이 점점 부실화되고 유동성이 고갈됐음을 보여줬습니다.

다른 5개 은행도 비슷한 부실화가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란 입장에서 이번 위기는 최악의 시기에 닥쳤습니다.

이란 정부는 작년 6월 이스라엘과 미국의 공격을 받았던 '12일 전쟁' 당시 자국민을 방어할 능력이 없다는 사실이 들통나면서 신뢰성이 크게 훼손된 상태였습니다.

또 핵 프로그램 협상에서 양보를 거부하면서 제재 완화를 기대하기 어렵게 됐고, 작년 11월에는 핵 문제로 이스라엘과 미국이 다시 공격할 수도 있다는 위협을 받고도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란 리알화는 가치 급락의 악순환에 빠졌고 정부는 이를 막아낼 능력이 없습니다.

이라크로부터 들어오던 달러가 미국의 제재 시행으로 끊겼고, 석유 판매에 따른 외화 수익이나 해외 외환 보유고도 제재 탓에 만져보지도 못하고 동결됐습니다.

이란 정권은 수십 년간 우회 수단과 편법을 동원해 망가진 경제가 간신히 굴러가도록 유지했으나 이제는 한계에 봉착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심화되는 경제 위기를 해결하거나 점점 절박해지는 국민의 필요를 충족시킬 길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평소에 대규모 시위에 참여하는 것을 꺼려온 상인들까지 수백 명 단위로 테헤란의 거리에 쏟아져 나와 민생안정 대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에서 중동 및 중앙아시아국 부국장을 지낸 금융 전문가 아드난 마자레이는 아얀데 은행이 정권 유력 인사들과 연줄이 튼튼한 곳이었다면서 작년 6월 이스라엘의 공격 이후 점점 심각해져 온 이란 정권의 정통성 상실을 이 은행 부실 사태가 더욱 심화시켰다고 설명했습니다.

아얀데 은행은 2013년에 이란 사업가 알리 안사리가 국영은행 2곳을 다른 은행에 합병해서 설립했습니다.

안사리는 엄청나게 부유한 가문 출신이며 런던 북부에 호화주택도 갖고 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보수파인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 전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영국은 작년 10월 아얀데 은행 청산 직후에 안사리를 "부패한 이란 은행가 겸 사업가"라며 제재 대상 명단에 올리면서, 이슬람 혁명수비대(IRGC)에 자금을 지원해왔다는 점 등을 이유로 댔습니다.

은행 청산 당시 안사리는 "은행이 통제할 수 없는 결정들과 정책들" 탓에 은행이 망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아얀데 은행은 이란 은행들 중 가장 높은 이자를 지급해 예금을 끌어모았으며, 상환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부실 대출이 많았습니다.

이 은행이 가장 투자를 많이 한 사업은 2018년에 개장한 '이란 몰'이라는 초호화 초대형 쇼핑센터였습니다.

미국 펜타곤(국방부 청사)의 2배 크기인 이 몰은 '도시 속의 도시'라고 할 만큼 규모가 크고 호화로운 시설이었습니다.

아이맥스 영화관, 도서관, 수영장, 스포츠단지, 실내정원, 자동차 전시장, 16세기 페르시아 황궁을 본뜬 거울 홀 등이 설치됐습니다.

그러나 나라 경제가 침체된 상황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이란 몰 프로젝트는 안사리가 차린 아얀데 은행이 안사리가 운영하는 사업체들에 돈을 빌려주는 '셀프 대출'이었다는 게 이란 경제학자들과 공무원들의 설명입니다.

아얀데 은행 청산 당시 이 은행 자원의 90%가 이런 셀프 대출에 묶여 있었으며, 이란 중앙은행은 이 은행이 '폰지 사기'라고 평가했습니다.

아얀데 은행의 부실 징후는 오래전부터 드러나 있었으며 몇 년 전부터 보수파와 개혁파를 막론하고 많은 정치인이 이 은행을 폐쇄해야 하며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내서 이 은행을 지원하는 일도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란 금융당국은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급기야 골람호세인 모흐세니-에제이 이란 대법원장이 작년 10월에 공개적으로 나서서 중앙은행에 조치를 촉구하면서 만약 금융당국이 개입하지 않는다면 사법처리에 나설 것이라고 소셜 미디어 게시물로 경고하는 사태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중앙은행은 바로 다음날에 아얀데 은행 청산 조치를 발표했습니다.

정부는 아얀데 은행의 부채를 인수해줬으며, 이 은행을 최대 국영은행인 '멜리 은행'과 합병토록 했습니다.

이란 경제학자들과 중앙은행에 따르면 대형 국영 은행인 세파 은행을 포함한 최소한 5곳 이상의 국영 은행이 현재 비슷한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아얀데 은행 부실은 2018년에 미국의 대(對)이란 경제 제재가 복원되면서 가속화된 이란 금융시스템 위기의 일부였으며 그 핵심부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는 게 WSJ가 전한 경제학자들의 설명입니다.

자금 부족에 시달리게 되자 이란 은행들은 비상 유동성 메커니즘을 통해 중앙은행으로부터 차입한 돈에 의존해 왔습니다.

이 메커니즘은 이자율은 높지만 담보 제공이 불필요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은행들은 유력 인사들과 연줄이 있는 엘리트들에게 대출을 해줘서 투기와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에 투자금을 대줬으며 이런 채권은 급격히 부실화됐습니다.

중앙은행은 대출할 돈을 마련하기 위해 돈을 찍어냈으며, 이 탓에 물가가 급격히 상승하고 리알화 가치가 폭락했습니다.

2019년 기준으로 이란 은행 시스템의 약 70%를 정부가 장악하고 있었다는 게 마자레이의 설명입니다.

이런 와중에 이란 경제는 점점 강화되는 국제 제재,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 등 지역 동맹국의 몰락, 이스라엘과 미국과의 직접 충돌 등으로 더욱 수렁으로 빠져들었습니다.

2025년 한 해 동안 이란 리알화는 달러 대비 가치가 84% 폭락했으며, 식품 가격 상승률은 72%에 이르렀습니다.

미국 버지니아텍 소속 경제학자 자바드 살레히-이스파하니는 작년에 이란에서 빠져나간 '자본 탈출' 규모를 100억 달러(14조 8천억 원) 내지 200억 달러(29조 5천억 원)로 추산했습니다.

에너지 위기와 물 부족 사태가 워낙 심각해서 마수드 페제슈키안 대통령이 수도를 테헤란에서 인도양 연안 쪽으로 옮기자는 제안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정부는 작년 12월 제출한 예산안에서 긴축 정책을 시도했으나 이에 대한 반발이 거세자 1인단 1천만 리알(1만 3천500원)의 지원금을 매달 지급하겠다는 방안을 내놓는 한편 가격 통제에 불응하면 엄벌에 처하겠다고 위협했습니다.

이런 대책은 효과가 없었습니다.

작년 말에 시위가 본격화돼 전국 수십 개 도시로 퍼져나갔으며, 정부가 탄압을 강화하면서 최근 2주간 시위 참가자 수백 명이 숨졌습니다.

(사진=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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