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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 막자는데 왜 비판?…미네르바의 교훈 [스프]

최선호 논설위원

입력 : 2025.12.23 17:30|수정 : 2025.12.23 17:30

[이브닝 브리핑]


이브닝브리핑
두 번째 필리버스터...허위조작정보 근절법

오늘(23일) 정오를 조금 지나 국회에서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이른바 '허위조작정보근절법'에 대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가 시작됐습니다. 내란전담재판부 특별법에 이은 이틀째 필리버스터입니다. 종결 동의가 곧바로 제출됐기 때문에 24시간 뒤 이미 표결이 예정된 상황입니다.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오늘 낮 국회 본회의장
표현의 자유와 언론에 관한 법은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언론 자신에 관한 법이란 점에서 이브닝브리핑에서 다룰까 말까 적잖은 고민을 했습니다. 정치권과 언론 및 시민단체 간에 뜨거운 논쟁이 이어지지만, 사실 시청자와 독자들에게 피부에 와닿을 정도로 실질적인 문제가 아닐 수 있다는 점도 고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위조작정보 이른바 가짜뉴스를 규제하겠다는, 선한 의도의 법이 왜 오히려 위헌 논란에 휩싸였는지? 이 상황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질문에 관해 독자들과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글을 시작해 봅니다.

'허위사실, 허위조작정보, 공익, 표현의 자유' 이번 논란과 관련한 핵심적인 키워드 네 가지입니다. 17년 전에 있었던 한 사건을 통해, 이 네 키워드에 얽힌 우리 사회의 고민을 되짚어볼 수 있습니다.



미네르바 사건의 교훈필명 미네르바, 박대성 씨
2008년 7월부터 당시 인기 커뮤니티였던 다음 아고라 경제토론방에서 활동했던 필명 미네르바를 기억하십니까?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대한민국에도 영향을 미칠 거라는 경고를 시작으로, 리먼브라더스 위기를 예측해 대중의 큰 관심을 받았던 미네르바, 바로 인터넷 논객 박대성 씨의 필명입니다.

미네르바는 그해 12월 정부가 주요 금융기관과 수출입 기업에 달러 매수를 금지하라는 긴급공문을 전송했다고 글을 썼는데, 검찰은 이 글이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1항 허위사실 유포 혐의에 해당한다며 체포했습니다. '공익'을 해칠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입니다. 직후 기획재정부가 실제로 금융기관의 외환 딜러들을 소집해 달러 매입 자제를 (공문이 아닌) 구두로 요청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지만 박 씨는 결국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재판의 쟁점은 미네르바의 글이 '허위 사실'인지 또 '공익'을 해할 목적이 있었는지, 두 가지였습니다. 법원의 결론은 미네르바 즉 박 씨가 "전적으로 허위의 사실이라고 인식하면서 글을 게재했다고 보기 어렵고, 허위 사실을 게시하겠다는 고의가 없는 이상 공익을 해할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보기 어렵다" 따라서 무죄였습니다.
<미네르바 사건 개요>

2009년 1월 7일 미네르바(박대성) 긴급 체포
2009년 1월 22일 전기통신기본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
2009년 4월 20일 서울중앙지법 무죄 선고, 석방
2009년 5월 14일 미네르바, 헌법소원심판 청구
2010년 10월 28일 헌법재판소 전기통신기본법 47조 1항 위헌 결정

2009년 4월 석방된 박 씨는 다음 달 전기통신기본법 제 47조 1항의 위헌 확인을 구하는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습니다. 위헌심사의 쟁점은 역시 '공익' 개념, 그리고 해당 법률이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여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했는지 여부였습니다. 헌법재판소는 1년 5개월 만, '7대 2로' 위헌 결정을 내렸습니다.

헌법재판관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 사안을 제가 간단하게 요약하기란 쉽지 않습니다만 '위헌'으로 판단한 다수의견의 핵심은, 먼저 '공익'이라는 개념은 추상적이고 어떤 행위가 '공익'을 해하는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사람마다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한 부분입니다. 따라서 구체적인 행위를 규제하기 위해서는 '막연히 공익을 해한다'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어떤 통신(행위)가 금지'되는지 '명확성'을 갖춰야 하는데, 문제가 된 '전기통신기본법 제 47조 1항 허위 사실 유포 금지'는 그 명확성을 갖추지 못해 위헌이라는 취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이 미네르바 사건은 허위사실과 공익, 표현의 자유를 규제할 수 있는 조건에 관해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은 물론 그 이후에도 많은 논쟁을 불러왔습니다. 이명박 정부 전반기 언론 자유, 표현의 자유와 관련한 논의에도 큰 영향을 끼쳤고, 이후 저널리즘 활동과 연구에도 많은 기준점을 제시했습니다.


허위조작정보와 민주주의
심리학자 지바 쿤다(Ziva Kunda)는 '정확성을 추구하는 욕구와 신념을 유지하려는 성향 사이의 긴장'을 인간 추론의 근간이라고 했습니다. 소셜미디어 시대 가짜뉴스의 생산과 (정치적 상업적 목적의) 유통 및 확산은 이 인간 추론의 근간을 뒤흔든다는 점에서 명백한 민주주의의 적입니다. 그런 점에서 허위조작정보 이른바 가짜뉴스의 위험성에 대한 우려와 규제 노력은 정당합니다.

제 역할을 못하는 레거시 미디어(라고 쓰고 '낡은 재래식 언론'으로 읽히는)에 대한 뉴스 소비자들의 누적된 불만,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맵고 자극적인' 대안적 미디어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가짜뉴스 규제 문제는 시급성을 더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국회에 상정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미네르바 사건의 교훈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 의문을 떨칠 수 없습니다. 특히 법사위 심사 과정에서 '허위사실'과 '허위조작정보'를 다시 뒤섞어버렸습니다. '고의·부당이익'이라는 의도성을 '허위조작정보' 판단 기준으로 제시한 국회 과방위 안조차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터였는데, 법사위는 '인격권·재산권·공익'이라는 큰 기준으로 다시 '허위사실'과 '허위조작정보'를 묶어버린 겁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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