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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A 없이 혼자 오라'…푸틴의 은밀한 제안 받은 사람은?

김민표 기자

입력 : 2025.12.21 14:15|수정 : 2025.12.21 17:10


▲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특사인 스티브 윗코프

외교 경험이 없는 억만장자 부동산 개발업자인 스티브 윗코프가 우크라이나 종전 논의를 관장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특사가 된 것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펼친 은밀한 작전의 결과라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푸틴 대통령이 미국의 노련한 외교관들과 정보기관들을 제치고 '트럼프 절친 채널'을 확보하게 된 과정을 소상히 전했습니다.

기사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과 40년 가까이 교류해 온 윗코프는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중동 특사로 임명된 직후 사우디아라비아의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를 통해 놀라운 내용의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푸틴 대통령이 직접 만나길 원하며, 만남을 위해 러시아에 있는 미국인 수감자의 석방도 검토할 수 있다는 제안이었습니다.

조건은 단 하나로, "중앙정보국(CIA) 담당자도, 외교관도, 통역도 없이 혼자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윗코프는 실제로 모스크바에서 푸틴 대통령을 면담했고, 2월에 미국인 수감자 마크 포겔을 데려왔습니다.

이 일로 윗코프의 위상이 크게 강화됐습니다.

WSJ은 푸틴 대통령의 트럼프 주변 인사들의 '심리 프로필'까지 분석하며 접근 대상을 골랐다고 전했습니다.

당시 우크라이나 특사로 지명됐던 키스 켈로그 전 중장의 경우 딸이 우크라이나 관련 자선단체를 운영한다는 점 때문에 '비우호적' 인물로 분류됐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이런 평가를 바탕으로 켈로그 대신 외교 경험은 없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절대적 신임을 받는 윗코프를 낙점했다고 합니다.

이후 켈로그는 우크라이나 문제에서 사실상 배제됐고, 윗코프는 푸틴 대통령의 측근인 키릴 드미트리예프 러시아 국부펀드 대표와 함께 유럽의 새로운 안보·경제 질서를 논의하는 핵심 인물로 부상했습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의 맏사위인 재러드 쿠슈너까지 가세해 전후 국경 문제, 우크라이나 군의 형태, 대러 제재 해제 시점까지도 논의하고 있습니다.

WSJ은 전쟁과 평화라는 중대한 문제에 전문 외교관이 아닌 사업가들이 이처럼 깊숙이 관여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는 상대국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첩보기관과 노련한 외교관들이 주도했습니다.

이런 전통적인 외교·정보 시스템은 작동을 거의 멈춘 상태로, 미국은 6월 이후 모스크바에 대사를 두지 않고 있고, 국무부의 유럽·유라시아 담당 차관보도 공석입니다.

윗코프는 CIA의 러시아 관련 브리핑 제안을 여러 차례 거절했고, 국무부가 붙여준 소수의 지원 인력조차 그의 해외 회동 내용을 제대로 공유받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유럽 동맹국들도 미국의 외교 방향을 알 수 없다며 불만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윗코프는 최근 여섯 번째 러시아 방문에서 푸틴 대통령과 자정까지 5시간 넘게 회담했습니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습니다.

우크라이나와 유럽은 윗코프가 러시아 편에서 우크라이나에 영토 양보를 압박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사진=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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