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토니우 코스타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유럽이 개방적 이민정책과 과도한 규제로 '문명 소멸' 위기에 빠졌다는 미국 정부의 진단에 유럽연합(EU)이 내정에 간섭하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유로뉴스 등 현지 언론은 안토니우 코스타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이 현지시간 8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자크들로르 콘퍼런스에서 "동맹국은 다른 동맹국의 정치적 삶이나 민주적 선택에 개입하겠다고 위협하지 않는다"며 "우리가 어떤 비전을 가졌고 표현의 자유가 무엇인지 미국이 유럽 대신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코스타 의장은 미국 정부의 빅테크 규제 비판에 대해 "정보의 자유 없이는 표현의 자유도 없다고 역사가 가르쳐줬다"며 "미국 기술 재벌들을 방어하기 위해 시민의 정보 자유가 희생된다면 진정한 표현의 자유는 결코 있을 수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유로뉴스는 미국이 새 국가안보전략(NSS)에서 유럽을 비판하며 정책 전환을 촉구한 이래 EU에서 나온 가장 단호한 발언이라고 논평했습니다.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행정부 수반 격인 집행위원장과 함께 EU 정상으로 대우받습니다.
외무장관에 해당하는 카야 칼라스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앞서 "미국은 여전히 우리의 가장 큰 동맹으로, 서로 다른 주제에 대해 늘 견해가 일치한 건 아니지만 전반적인 원칙은 여전히 존재한다"며 맞대응을 자제했습니다.
미국 정부는 지난 5일 NSS에서 미국의 오랜 동맹인 유럽이 '문명의 소멸이라는 엄혹한 전망'을 맞고 있다며 반이민 정책을 주장하는 유럽 극우정당들을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같은 날 EU 집행위원회가 일론 머스크 소유의 소셜미디어 엑스(X·옛 트위터)에 과징금 1억2천만유로, 즉 한화로 약 2천59억 원을 부과하면서 유럽과 미국의 신경전이 증폭됐습니다.
유럽통합과 EU의 각종 규제에 비판적인 유럽 우파·포퓰리즘 진영은 미국이 정치적 지원을 사실상 공식화하자 화색을 띠는 모양새입니다.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는 엑스에 "(EU 본부가 있는) 브뤼셀의 권력자들은 논쟁에서 이길 수 없으면 과징금을 들고 나온다"며 "유럽에 필요한 건 우리가 무얼 읽고 말할 수 있는지 정하는 비선출 관료가 아닌 표현의 자유"라고 적었습니다.
그는 과징금을 부과받고 EU 해체를 요구한 머스크에게 "경의를 표한다"고도 했습니다.
오르반 총리의 피데스당과 프랑스 국민연합(RN) 등이 속한 유럽의회 교섭단체 유럽을위한애국자(PfE)는 "이 검열 체제를 해체하기 위해 싸울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폴리티코 유럽판은 미국의 새로운 EU 비판이 우파 진영의 정치적 의제를 부각하는 데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사진=AP,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