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명의 기묘한 동거, 그중 지수를 살해한 사람은 누구?
4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꼭두각시 엄마의 비밀'이라는 부제로 경기도 용인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아동 학대 사건을 추적했다.
2016년, 경남 고성 경찰서의 여성청소년계 사무실은 비상이 걸렸다. 전국 경찰에 장기 결석 아동을 조사하라는 지시가 내려왔기 때문.
한 겨울에 반바지에 맨발로 탈출한 11살 은지. 당시 열한 살이었던 은지의 몸무게는 고작 16kg이었다. 은지는 2년 동안 친부와 그의 동거녀에게 감금 폭행을 당했던 것. 이들은 은지를 학교에도 보내지 않고 일주일씩 밥을 주지도 않으며 학대했다.
은지 사건이 알려지며 교육부는 경찰과 함께 학대 피해 아동을 찾기 위해 장기 결석 아동 전수 조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고성에서 2년째 무단결석 중이던 아홉 살 지민이가 포착됐다.
경찰은 아이의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아이의 행방을 물었다. 그러자 지민의 아빠는 "애 엄마가 큰 애랑 작은 애까지 데리고 가출한 지 7년째다"라며 행방불명이라고 했던 것.
경찰은 추적 끝에 천안에서 지민의 엄마 수진을 찾아냈다. 그런데 수진의 곁에는 둘째 지민만 있었고 첫째 지수는 없었다. 이에 경찰은 수진을 추궁했고, 이에 수진은 "외국에서 친정 부모님이랑 지내고 있다, 아니 거짓말이다. 사실은 입양 보냈다"라며 횡설수설했다.
결국 경찰은 수진에게 범죄 혐의점이 있다고 판단해 긴급 체포했다.
그리고 경찰은 조사를 통해 모든 비극이 시작된 곳으로 향했다.
수진은 딸 지수, 지민과 함께 방이 다섯 개에 발코니만 4개, 30평대 아파트 두 채 규모의 경기도 용인의 고급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경제적 문제로 가출을 했다던 수진의 이야기와는 맞지 않는 부분. 그런데 사실 이 아파트에는 수진의 가족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파트에는 수진의 대학 동창 은하 씨의 가족도 함께 동거 중이었던 것.
수진과 사정이 비슷했던 은하 씨는 수진에게 동거를 제안했다. 남편과 싸우고 가출한 뒤 지인의 도움으로 고급 아파트에서 지내고 있다는 은하 씨. 그는 도움을 준 지인을 박 선생이라 불렀다.
휴대전화 판매업으로 돈을 번 박 선생은 두 여자의 처지를 안타까워하며 자신의 매장에 취직도 시켜줬다. 그런데 해당 아파트에 산 지 2년 즈음되었을 무렵의 어느 날 지수가 사라졌다는 것. 수진 씨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사라진 지수. 그런데 수진 씨는 남편이 두려워 실종 신고도 못했다고 주장했다.
수진의 진술을 믿을 수 없었던 경찰은 수진과 라포를 형성한 후 진실을 말하도록 유도했다. 그리고 얼마 후 싸늘한 주검이 된 지수를 발견했다.
수진은 자신이 지수를 살해한 후 암매장했다고 자백했다. 가구에 흠집을 냈다는 이유로 지수를 베란다에 가두고 테이프로 의자에 묶은 후 때려서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것. 그리고 모든 것은 아이를 위한 훈육이라 주장했다.
그런데 얼마 후 살인 혐의로 기소된 것은 수진이 아닌 박 선생이었다. 혐의를 전면 부인하며 억울함 호소한 박 선생. 그는 수진의 부탁으로 시신 유기만을 도왔다고 주장했고, 은하 씨 가족도 박 선생의 억울함을 주장했다.
그러나 검찰은 주도적으로 학대 지시한 박 선생에게 살인죄, 박 선생 지시대로 한 수진에게는 학대치사죄, 암매장 도운 은하 씨는 사체유기 혐의, 은하 씨의 어머니인 송 씨 할머니는 아동복지법 위반으로 기소했다.
수진의 자백을 석연찮게 생각했던 경찰은 동거인들을 모두 불러 조사했고, 은하 씨의 아들 11살 민찬에게 전려 다른 이야기를 들었다.
민찬은 자신들이 살던 아파트에 박 선생의 가족도 함께 살며 무려 11명이 함께 기묘한 동거를 했다고 진술했다. 그리고 베란다에서 생활한 것은 본인과 지수, 지민 셋이었다는 것.
그리고 민찬은 지수가 수진이 아닌 박 선생에게 맞았다며 의자에 묶인 것도 한두 번이 아니고 12시간에서 24시간 묶여있을 때도 있었다고 했다. 또한 자신도 학대의 대상이었다고 고백했다.
2008년 초, 박 선생을 처음 만난 수진은 휴대전화 판매 사업에 투자하면 나중에 대리점을 내주겠다는 박 선생의 제안에 10억 가량을 투자했다.
남편과 살던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고 그것도 모자라 친정 부모님이 살던 집까지 팔고 사채까지 써서 돈을 마련했다. 그리고 은하 씨 가족도 박 선생에게 2억을 투자했고 그렇게 모두가 함께 박 선생의 아파트에 살게 되었다고.
하루 12시간 쉬는 날 없이 근무한 두 사람. 하지만 박 선생과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대리점은 차치하고 임금도 받은 적 없고 이에 신용불량자까지 되었다는 것.
그런데 그 무렵 박 선생의 아이들에 대한 학대가 시작되었다. 특히 박 선생은 지수를 굶기며 하루에 한 끼, 밥을 물에 말아 간장을 타서 줬다. 그리고 지수의 잘못을 수진의 잘못이라 나무라며 비난했다.
결국 수진은 "내가 괴물을 낳았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박 선생의 지시대로 아이들을 때리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때리며 어떤 날은 연거푸 100대를 때리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박 선생에게는 고마운 마음이었다. 무능력한 본인 대신 아이를 올바른 길로 인도해 준다고 생각했던 것.
경찰은 수진의 정신 감정을 의뢰했다. 정신과 전문의는 수진의 상태에 대해 "사이비 종교의 신도들, 열성 신도들에 준하거나 더 심한 것으로 보였다. 집주인이 신에 가까운 존재다, 신의 계시를 더 잘 받는 존재다 생각했던 것 같다. 집주인의 뜻이 신의 뜻이고 집주인을 거스르면 천벌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는 수진이 박 선생의 말을 믿은 이유가 돈 때문이라고 했다. 전문가는 "집주인이 쓴 전략이 전형적인데 종교적인 영험함 더하기 돈을 계속 어필한 거 같다. 속된 표현으로 기도발이 잘 먹혀서 돈을 벌게 하나님이 해주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는데 수진 입장에서는 돈이 확실한 증거가 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수진은 의존성 인격 장애가 의심될 만큼 독립성이 없고 자기 결정력이 약한 사람인 것으로 드러났다. 전문가는 그런 수진에게 박 선생은 "하늘이 내려준 동아줄 같은 존재"였을 것이라며 박 선생 말만 들으면 큰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고 했다.
지수가 죽던 날 박 선생은 "기도를 하다가 말씀을 들었는데 지수가 우리를 다 죽여버린대"라며 지수의 다크서클이 증거라며 수진을 몰아세웠다.
이에 수진은 지수를 의자에 묶고 사정없이 때렸고 온몸이 새빨개진 채 의자에 축 늘어진 지수는 겨우 목소리를 내어 "네 엄마 다 죽인다고 생각했어요"라고 말했다.
원하는 대답을 들은 수진은 됐다 싶어서 박 선생에게 보고했고 지수는 그대로 묶어둔 채 출근했다. 그런데 오후 4시쯤 박 선생에게 다급한 연락이 왔다. 지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
그리고 지수는 수진이 도착했을 때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 이후 수진과 은하, 박 선생의 동생은 박 선생의 지시에 따라 지수의 시신을 골프가방에 담아 차에 싣고 가서 박 선생의 시댁 선산에 시신을 암매장했다.
이후 박 선생은 이제는 지민을 문제 삼았다. 결국 수진은 쫓겨나듯 지민과 도주했고 천안으로 가게 된 것. 그러나 수진의 박 선생에 대한 믿음은 변하지 않았다. 그는 박 선생을 보호하기 위해 본인이 지수를 죽였다고 자백까지 한 것.
이에 전문가는 "지수 사망 이후 의존성이 더 깊어졌을 것이다. 믿음이 깨지는 순간 감당할 수 없는 절망에 빠지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또한 박 선생이 세 아이 중 유독 지수를 괴롭힌 이유에 대해서는 "박 선생은 수진이 투자한 10억을 애초에 돌려줄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지수를 핑계로 집에서 내쫓으려고 했던 것이다"라며 "돈 때문에 죄 없는 아이를 죽이고 이후 지민이까지 공격하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었다"라고 말했다.
2016년 봄, 첫 번째 공판이 진행됐다. 모든 혐의를 인정한 수진과 다르게 박 선생은 무죄를 주장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아이를 학대했다는 증거가 있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11살 민찬이의 진술이 증거 능력 자체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분석관들은 당시 베란다에 모기가 있었다는 민찬의 감각 정보를 통해 민찬의 진술이 신빙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결국 재판부도 민찬의 진술을 인정했다.
그리고 법의학자는 피의자들과 참고인들의 진술만으로 지수의 사인을 밝혀냈다. 다크서클로 기아 상태였다는 것 확인한 법의학자는 지수가 저혈량성 쇼크로 사망했다는 것.
법의학자는 "애는 계속 맞은 거다. 이슬비 맞듯이 맨날 또 맞았다. 매일 루틴으로 일과로 그렇게 맞은 거 같다"라고 말해 충격을 안겼다. 그리고 법의학자는 "짚불이 불 피워 놓으면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바깥에는 다 없어진 것 같은데 안에는 남아있다. 이 아이도 그랬다. 처음에는 의식이 없어져도 죽지는 않았다. 그때 병원에 데려갔으면 살았을 가능성도 있다"라며 안타까워했다.
이를 토대로 검찰은 박 선생에 대한 부작위에 의한 살인을 주장했다. 부작위에 의한 살인은 법적 의무를 가진 자가 적극적 행위를 하지 않아 타인을 사망에 이르게 한 범죄. 그리고 이는 살인의 고의성이 있어야만 입증되는 것.
살인의 고의성을 입증해야 하는 중요한 시점에서 모두가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공판이 진행 중이던 그때 방청석에서 누군가가 "내가 실로폰 채 사다 줬잖아, 당신이 그걸로 애들 때렸잖아"라고 소리쳤던 것.
소리를 지른 사람은 바로 은하 씨의 어머니 송 씨 할머니였다. 그는 거짓말로 일관하는 박 선생을 보면서 그의 실체를 깨달았고 이런 행동을 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증인석에 서서 그날의 끔찍한 비밀을 털어놓았다.
수진이 출근을 한 후 박 선생이 지수 방에 계속 들어갔다 나오는 것을 목격한 송 씨 할머니. 그는 "지수를 더 때리는 것 같았다. 박 선생이 들어간 뒤 지수의 비명이 두 차례 들렸다. 두 번째 비명이 들리고 한 시간 후 방을 나온 박 선생은 지수가 이상하다며 전화를 걸었다"라고 증언했다.
그리고 "애랑 애 엄마가 말을 안 들으니까 하나님이 그냥 죽게 내버려 두라고 했다"라는 말을 듣고 지수가 죽었구나 생각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박 선생은 수진의 애원에도 119에 신고하지 않고 대신 기도를 하라고 했다. 박 선생은 "모든 걸 다 포기할 테니 지수를 살려달라고 기도하면 아이가 살아날 것"이라며 수진이 자신에게 투자한 10억 원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라고 종용했던 것.
끝까지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은 박 선생은 송 씨 할머니의 증언도 거짓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를 신빙성 높게 판단했고 박 씨에게는 20년, 친모 수진에게는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잔혹한 범죄에 비해 아쉬운 처벌이었지만 박 씨는 억울하다며 항소에 상고를 거듭했다. 그러나 판결은 바뀌지 않았다.
그리고 수진은 "벌주셔서 감사하다"라며 눈물을 쏟아냈다.
사실 박 선생을 만나기 전에는 딸 바보였던 엄마 수진
참 잘 웃고 말을 잘하고, 착하고 똑똑하고 꾸미는 것에 관심이 많았던 지수. 살아 있었다면 올해 21살이 됐을 지수에게 방송은 늦었지만 반드시 전해야 할 말을 전했다.
이에 앞서 전문가는 "아이는 내가 뭔가 많이 잘못해서 엄마가 나를 바르게 가르치려고 때린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있다. 엄마가 이유 없이 나를 때린다고 생각하면 무섭다. 그래서 나보다 지혜롭고 어른인 엄마에게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거다. 그래서 내가 나쁜 아이이기 때문에 엄마가 때린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다"라고 말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이에 방송은 스스로를 못된 아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는 지수에게 "지수야,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위로를 건네 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붉혔다.
학대 피해 아동 은지로 인해 전국적으로 진행된 전수 조사. 그리고 조사 9개월 만에 시신이 된 여섯 명의 아이들이 세상에 드러났다.
그러나 이후 정기적 전수 조사는 중단되었고 2023년이 되어서야 교육부는 매해 전수 조사를 실시하도록 지시했다. 결국 또 한 명의 희생자가 나온 후 정기 조사가 결정되었던 것.
아동복지법은 아이들의 피를 먹고 자란다. 결국 아이들의 희생을 딛고 법 체계가 잡혀가는 것.
이에 마지막으로 방송은 "이제는 어른들이 아이들의 비극보다 한 발 더 앞서길, 그 발걸음이 부지런히 이어지길" 빌고 또 빌었다.
(SBS연예뉴스 김효정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