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 측근 '7인회' 출신들의 '인사 청탁' 장면. 어제 하루 정치권을 달군 이슈 중 하나지만, 어제는 12.3 비상계엄 1주년에 다소 밀린 감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재명 대통령의 측근 가운데 원조 친명 그룹이라는 7인회 출신들이 역시 그들과 대통령의 대학 동문이기도 한 인사를, 대통령실이 관여할 수 없는 민간 협회의 장(長) 자리에 앉히는 인사 청탁을 주고받았고, 대통령실 비서관이 '정권 실세' 의혹이 가시지 않는 대통령실 부속실장에게 전달하겠다고 한 것은 매우 심각한 사안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부적절했다면서 당사자 2명에게 '엄중 경고'하는 선에서 상황을 지켜보다가, 오늘 오후 들어 해당 비서관이 낸 사직서가 수리됐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인사는 지금까지 여러 정권에서 그랬지만 잘못 관리하면 정권을 심각하게 위태롭게 하는 리스크 요소라는 점에서, 어제오늘 여권의 대응이 적절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인사 청탁의 대상이 된 자리와 대상자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민주당 원내운영수석부대표인 문진석 의원이 그제인 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주고받다 언론사 카메라에 포착된 청탁 내용부터 정리해 보겠습니다.
"남국아 우리 중대 후배고 대통령 도지사 출마 때 대변인도 했고 자동차산업협회 본부장도 해서 회장하는 데 자격은 되는 것 같은데 아우가 추천 좀 해줘. 너도 알고 있는 000이다.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 좀 해줘봐" (문진석 민주당 원내운영수석부대표)
"넵 형님, 제가 훈식이 형이랑 현지 누나에게 추천할게요" (김남국 당시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
문자 메시지 내용과 대통령실 반응을 볼 때, '훈식이 형'은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 '현지 누나'는 김현지 제1부속실장을 가리키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청탁 대상이 된 사람의 이름이 이미 공개돼 있지만, 인사 청탁의 부적절성과 관련해 이 사람의 잘잘못이 뚜렷하지 않아 여기서는 익명 처리했습니다.
대통령 측근들, 정치권 출신 동문의 자리 챙겨주려 해
인사 청탁의 대상이 된 자리는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 회장이고, 이 협회는 현대차 같은 국내 완성차 5개 사가 참여하는 민간 사단법인입니다. 협회 소속사들이 자동차 산업 관련 정책에 관해 원하는 내용이나 의견을 정부나 국회에 제시하고 협의하는 이른바 대관(對官) 업무 창구입니다. 협회 회장은 전에는 완성차 회사 최고경영자급들이 돌아가며 맡았는데, 2011년부터 자동차 산업 관련 정부 부처의 고위 관료 출신들이 맡아왔습니다. 연봉이 2억 원가량 한다고 합니다. 회장은 이사회를 통해 선출하는 구조라서 대통령실이 개입할 여지가 전혀 없습니다. 지금까지는 정치인 출신이 회장을 맡은 적이 없는데, 이번에 청탁의 대상이 된 인사는 정치권 출신입니다. 연합뉴스 인물정보에 오른 이 사람의 이력을 보면 그렇습니다. 정치 관련 이력으로 . 국회의원 보좌관 . 새천년민주당 제16대 대통령중앙선거대책위원회 부대변인 . 열린우리당 제17대 국회의원선거 동작乙 국회의원 예비후보 . 국회 입법정책연구회 상임부회장 .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부의장을 지낸 이력이 기재돼 있습니다. 2019년에 KAMA의 상무급인 대외협력본부장 직을 수행한 기록도 있습니다. '대외 협력'은 이 협회의 주요 기능인 대관 업무이고, 이 때문에 문진석 의원은 이 사람이 협회장 자격이 있다고 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결국 정리해보면, 대학 동문인 문진석 의원과 김남국 전 비서관이 역시 동문인 정치권 출신 인사의 자리를 챙겨주려 한 것입니다.

문진석 의원이 맡고 있는 여당 원내운영수석부대표는 원내대표와 함께 여당의 국회 전략을 기획하고 집행하는 자리이고, 김남국 전 디지털소통비서관은 지난 9월 대통령실 조직 개편 때 홍보수석 아래에서 비서실장 아래로 위치가 바뀐 적이 있습니다. 대통령실 주요 업무인 디지털소통을 비서실장 아래로 둔 것이 강훈식 실장에게 힘을 싣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했지만, 홍보수석이라는 상관 아래 두지 않고 대통령이 원하는 업무를 곧바로 실행하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말들도 있었습니다. 그만큼 대통령이 신뢰하고 일을 맡기려는 측근이라는 얘기 같습니다. 이렇게 권력의 두 축인 여당과 대통령실에서 대통령의 측근으로 받아들여지는 사람들이 권한 없는 민간인 인사 청탁의 창구를 자임한 것입니다.
김현지 실장에게까지 청탁 전달됐는지 명확히 설명해야
이번 파문은 막강한 인사권을 행사하는 것 아니냐는 '실세' 논란 끝에 대통령실 총무비서관에서 제1부속실장으로 자리를 옮긴 김현지 실장에게까지 번졌습니다. 김남국 전 비서관의 반응을 볼 때, 이 정도 추천은 무리 없이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입니다. 숱한 언론사 카메라들이 지켜보는 국회 본회의장에서 문 의원이 무감각하게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은 장면이 촬영된 것이 지난 2일이었고, 이에 관한 첫 보도가 나온 것이 그날 밤 12시 무렵이었습니다. 그 사이에 김 전 비서관이 말한 '추천'이 김현지 실장에게 전달됐을 수도 있습니다. 관련 보도 가운데는, '김 실장에게는 전달되지 않은 것으로 안다'는 대통령실 관계자의 말을 전한 기사도 있긴 합니다. 청탁이 김 실장에게 전달됐는지 여부에 대해 대통령실은 명확히 설명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김 실장에게 어려움 없이 청탁 전달될 것이라는 인식 드러나
문진석 의원의 문자 메시지 내용 가운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 좀 해줘봐"라는 내용에 눈길이 갑니다. 문진석 의원과 김남국 전 비서관이 뜻을 함께했던 '7인회'는 이재명 대통령이 2017년 대선에 나설 무렵 만들어졌고, 강훈식 실장은 5년 뒤인 2022년 대선부터 이 대통령과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만큼 문 의원이 강 실장에게 거리감이 있을 수 있습니다. 원조 친명이라는 7인회 이전 측근들로는, 이 대통령이 성남시장과 경기지사를 할 때 참모 그룹인 '성남·경기 라인'이 있습니다. 문 의원의 글은 강 실장에게는 부탁이 수용되지 않을 듯하니, 성남·경기 라인 핵심인 김현지 실장에게 청(請)을 넣어 달라는 말 같습니다. 김남국 전 비서관은 비서실장과 부속실장을 '형', '누나'라고 지칭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막역하다는 걸 내세우는 것이겠지요. 이렇듯 김 실장에게는 인사 청탁이 별 어려움 없이 전달될 것이라는 인식이 드러난 것은, 김 실장이 막강 인사권을 행사한다는 세간의 의심을 더욱 짙게 하고 있습니다.
사안의 심각성에 비해 여권의 대응 안이해
이렇게 해명돼야 할 의심이 있는 상황에서, 여권은 '엄중 경고' 선에서 사안을 정리하고 싶어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오늘 JTBC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서, "강훈식 비서실장이 김남국 비서관에게 눈물 쏙 빠지게 경고했다"고 했습니다. 경고했다는 건 비서관으로 계속 쓰겠다는 뜻이겠지요. 그리고 나서 3-4시간 뒤에 김 전 비서관이 사직서를 내서 수리됐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사안의 심각성을 따져볼 때, 시간을 끌 일은 아니었다고 봅니다. 정치는 타이밍입니다. 우물쩍거리면 상황 판단 능력은 물론 기본적 인식이 의심 받게 됩니다. 민주당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문 의원의 행위가 부적절했다는 데 당 안에 이견이 없고 '엄중 경고'했다면서 거기에 그치고 있습니다. 이춘석 의원의 주식 차명 거래 의혹 등에 대해 전광석화처럼 행해지던 윤리감찰단 회부에는 선을 긋고 있습니다. 당의 관심은 문 의원이 원내운영수석부대표라는 직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느냐, 유지할 것이냐에 있는 것 같습니다. 당사자인 문진석 의원은 논란이 제기된 어제 국회와 당의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몸이 좋지 않다'는 이유를 댔다고 합니다. 그러다 오늘 소셜미디어에 세 줄짜리 짧은 글을 올렸습니다. 자신의 처신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어 송구하다면서, 앞으로 언행에 더욱 조심하겠다고 했습니다. 역시 현 수준에서 일이 마무리되길 기대하는 모습입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