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즈니가 오랜만에 명작을 들고 나타났다. "흔치 않게 성공적인 후속작"이라 평가받는 <주토피아 2>가 그 주인공이다. 전작인 <주토피아>(2016)가 개봉한 지 약 10년 만에 다시 우리를 찾았다. 전작은 개성 있는 인물을 토끼, 여우, 나무늘보 등 동물로 표현하며 '주토피아'라는 세계관을 완성해 세대를 가로지르는 사랑을 받았다. 한편, 지난주 개봉한 <주토피아 2>는 개봉 4일 만에 누적관객수 140만 명을 돌파, 전작의 아성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지금처럼 얼어붙은 극장가에서 흔치 않은 일이다.
<주토피아 2>가 이렇게 폭발적인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계관을 성공적으로 확장했고, 음악도 훌륭하며, 머리에 콕콕 박히는 대사도 맛있다. 그런데 유독 감탄하게 되는 것은 풍성한 서사의 다발을 한 줄기로 쌓아가며, 지금 시대를 관통하는 가치를 정면으로 다루는 방식이다. 이야기꾼으로서 디즈니의 역량은 정점에 올랐다. 서사는 이렇게 짜는 것이라고 레슨 하는 것만 같은 작품. 그래서 이 영화가 '무엇을, 어떠한 방식으로 이야기하는지'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아래부터 <주토피아 2>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다.
경찰 파트너가 된 '주디'와 '닉'. 이들은 파트너 워크숍에 참가한다. 여기에는 서로 다르다는 이유로 아웅다웅하는 동물들이 한가득이다. 쥐와 짝꿍이 된 코끼리는 파트너를 볼 때마다 기겁한다. 자꾸만 털 속의 이를 골라 먹는 파트너를 보며 소름 끼쳐하는 동물도 있다. 영화는 이 장면을 통해 질문을 던지며 시작한다. 그건 "불편할 정도로 나와 다른 이들과 어떻게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을까"에 관한 고민이다. 맞다. <주토피아 2>는 다양성에 관한 이야기다.
주디와 닉은 신비로운 책을 훔친 푸른 뱀, '게리'를 추적한다. 주토피아에서 뱀을 비롯한 파충류는 동물들이 꺼리는 종족이다. 포유류와 생김새도, 습성도 다른 이들은 주토피아의 시민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이때 파충류는 우리 사회에서 차별받는 소수를 상징한다.
게리는 뱀이라는 이유로 곧잘 누명을 쓰며, 동물들은 그 모함을 쉽게 믿어버린다. 여기에는 음험한 모사꾼, 밀턴 링슬리의 계략이 한몫을 한다. 밀턴은 '프레임'의 힘을 안다. 그래서 파충류를 향한 혐오를 조장하며, 다시 그 혐오를 통해 자기에게 유리한 프레임을 짠다(이 영화에는 '누명을 씌우다'라는 의미로 'frame'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언론은 진실과 다른 뉴스를 전파하고, 시청자는 이를 비판 없이 취한다. <주토피아 2>는 가짜뉴스와 편파적 보도로 휘청이는 지금 사회를 풍자한다.
영화가 시종 날카롭게 비판하는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툰드라 기후 장벽'이다. 기후를 핑계로 세워진 단단한 장벽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방점은 기후가 아니라 장벽에 있는 것. 영화는 시작과 동시에 툰드라 기후 장벽 동상을 실수인 척 박살 내 버린다.
주토피아 시는 이 장벽을 확장하려 한다. 이는 점점 더 번져가는 분리와 차별을 드러낸다. 링슬리는 이 장벽을 통해 당초 주토피아의 토대를 건설한 게리 집안을 쫓아내고, 더 넓은 영역을 차지하려 한다. <주토피아 2>는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는 이민자 차별과 디아스포라의 비극을 전면에 내세운다. 시대를 외면하지 않는 대담함은 박수받을 만하다.
그러니까 <주토피아 2>는 자꾸만 견고해지는 장벽과, 그것을 관통하는 용기 있는 자들의 이야기다. 그래서 이 작품의 주인공은 게리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뱀인 게리는 걷는 대신 부끄럽게 미끄러지며 이런저런 경계를 투과한다. 그래서 게리의 부드러운 미끄러짐은 <주토피아 2>를 상징하는 움직임이다.
닉과 주디는 책을 훔쳐 달아난 게리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 과정은 서로 다른 동물들이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는 여정이다. 닉은 자주 강조한다. "여우는 단독 생활 동물이야." 주디는 말한다. "절대로 토끼의 귀를 잡아당기지 마." 하지만 투닥거리던 이들은 서로를 위해 조금씩 희생하며 결국 상대를 이해하게 된다. 자기 '종족'의 특성을 강조했던 뾰족한 말들은 마지막에 이르러, '나'의 못남과 진심을 드러내는 뜨거운 고백으로 바뀐다.
주디는 중얼거린다. "우린 너무 달라." 그렇다면 이 다름을 극복할 방법은 무엇일까? 영화가 제시하는 것은 하나, 바로 포옹이다. 이 영화는 허그(hug)의 이미지를 반복한다. 감옥에 갇힌 닉을 구해주는 비버 '니블스'는 그를 꼭 안아준다. 그리고 닉은 주디에게 이 행동을 반복한다. 포옹은 너와 나 사이의 경계를 지우는 움직임이다. 네가 누구든, 어떠한 종이든 인정하고 안아주는 태도. 그것이 우리를 구원하는 비밀이 아닐까요? <주토피아 2>는 묻는다.
닉과 주디, 그리고 여러 동물의 용기로 결국 게리의 진실은 밝혀지고 장벽은 허물어진다. 축축하고 꿉꿉한 곳에 사는, 그래서 우리(포유류)와 너무 다른, 마치 징그러운 벌레만 먹고살 것 같은 파충류는 이웃이 된다. 이 여정을 통해 닉과 주디는 진정한 파트너로 거듭난다. 결국 <주토피아 2>는 '다른 이들과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치열하게 고민하는 영화이며, "우린 너무 달라"라는 중얼거림을 극복하는 무수한 포옹에 관한 이야기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