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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유튜버의 성폭력 피해 고백, 그 후에 벌어진 일 [스프]

입력 : 2025.11.27 09:15|수정 : 2025.11.27 09:15

[주즐레]


유튜버지난 2일 한 여성 유튜버가 성폭행 피해 사실을 고백하는 영상을 올렸다. 평소 운동과 다이어트 과정을 공유해 왔던 22세 크리에이터는 카메라 정중앙을 똑바로 바라보며, 눈이 벌겋게 충혈된 채 1년 반 동안 감춰왔던 고통을 털어놓았다. 지난해 5월 22일 새벽, 술에 취한 상태로 택시를 타고 귀가하던 중 지하주차장에서 택시기사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이후 병원 치료와 정신과 상담을 이어가며 극단적 선택을 시도할 만큼 심각한 외상을 겪었다는 내용이었다.

이 영상은 올라온 지 하루 만에 조회수 100만 회를 넘겼고, 20여 일이 지난 현재까지 한 편의 조회수가 340만 회에 육박한다. 댓글에는 "나도 피해자지만 말하지 못했다"는 공감의 메시지들이 이어졌고, 개그우먼 강유미는 직접 슈퍼챗을 보내며 응원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연대의 목소리만 이어진 것은 아니다. 댓글에서 시작된 의심은 곧바로 유튜브 콘텐츠로 번졌다. 검색만 해도 여성 유튜버의 얼굴을 변형한 섬네일들이 수십 개씩 등장한다.

이 영상들 대부분은 여성을 특정하지 않는다면서도 "무고는 심각한 범죄다"라는 말로 자연스럽게 결론을 몰아간다. 영상 속에서는 피해자의 과거 발언, 생활 방식, 정신과 진료 이력 등이 끄집어내져 "말이 바뀐다", "믿기 어렵다"라는 의심의 단초로 사용된다. 이들이 내세우는 공통된 근거는 대체로 비슷하다. 피해 고백 이후 조회수가 늘었고, 슈퍼챗 수익이 발생했고, 광고로 돈을 벌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이 여성 유튜버의 피해 고백은 수익을 발생시켰다. 전 세계 유튜브 슈퍼챗 순위를 나타내는 한 사이트에서 이 여성 유튜버의 첫번째 성폭행 피해 호소 영상 공개 이후 24일 동안 구독자가 약 2만 명 증가했고, 이후 업로드 된 영상들로 인해 조회수가 940만 회나 상승했다. 슈퍼챗은 88만 원을 기록. 조회수를 기준으로 대충 잡았을 때 2000~3000만 원 정도 올렸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 부분에서 이 여성 피해자에 대한 진정성 의심이 시작된다. 유튜브에서 공개적으로 피해 사실을 고백하는 방식이 다소 이례적이긴 하고 실제로 수익으로 이어지는 행위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진위 여부를 의심할 근거가 될까. 그렇다면 이 여성 유튜버의 영상 내용을 '합리적으로' 의심하는 유튜버들이 올리는 수십만 조회수의 콘텐츠들은 공익적 목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본지는 제3자의 제보를 통해 서울중앙지방법원 사건 기록을 직접 확인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건은 지난해 5월 22일 새벽 발생했으며, 피해자는 술에 취해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피고는 택시기사로 피해자와 일면식 없는 초면이었다. 국과수 감정 결과 피고의 DNA가 검출됐고, 경찰은 준강제추행으로 송치했다가 보완수사 이후 혐의가 '준강간치상'으로 변경됐다. 기소는 2025년 9월, 불구속 상태에서 이뤄졌다. 절차적으로도, 법적으로도 '사건은 존재한다.'

"시간이 왜 이렇게 오래 걸렸나"라는 의심이 또 다른 공격의 근거가 됐다. 이에 대해 피해자 측 김재련 변호사는 "초기 수사에서 국선 변호였고, 핵심 증거 확보가 미흡했다. 첫 조사가 3주 뒤에 잡히는 등 지체가 있었고, 준강제추행→준강간치상으로 바뀌며 수사가 길어졌다"고 설명했다.

유튜브는 1인 미디어 시대의 공론장이다. 누구든 의견을 낼 수 있고, 사회적 이슈가 빠르게 공유될 수 있다. 하지만 성폭력 보도만큼은 전통 미디어가 수십 년간 실수와 시행착오 끝에 쌓아온 기본 원칙들이 있다. 피해자 특정 금지, 추측 보도 금지, 외모나 태도를 근거로 신빙성을 평가하지 말 것, 2차 가해를 막을 것. 지금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사적 재판'은 이런 원칙과 정반대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재미있는 지점은 이 질문이 언제나 피해자에게만 적용된다는 사실이다. '피해자다움'이라는 사회적 스테레오타입은 여전히 견고하다. 피해자는 울고, 무너지고, 경제적 활동도 최소화해야 한다는 식의 기준이다. 당당하거나, 경제적 활동을 이어가거나, 밝은 척하는 모습이 포착되면 '진짜 피해자가 맞나?'라는 의심이 순식간에 따라붙는다. 이는 성폭력 연구에서 지적하는 전형적인 '피해자 전형성 위반'이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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