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 두 나라 연극상을 모두 휩쓴 화제작 '야끼니꾸 드래곤'이 14년 만에 한국 무대에 돌아왔습니다. 재일교포 작가 정의신이 쓰고 연출한 이 작품은 1970년대 오사카를 배경으로 재일교포 가족의 삶을 그려내고 있죠. 이 작품에서 억척스러운 한국 엄마 영순 역으로 열연한 고수희 씨는 초연 당시 요미우리 연극상 사상 첫 외국인 수상자라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원래 일본어를 못했다는 고수희 씨는 요즘 일본 희곡을 번역하고 직접 연출까지 하고 있죠. 고수희 씨의 인생을 바꾼 연극 '야끼니꾸 드래곤' 이야기, 직접 들어보세요. 김수현 기자 : 한일 양국의 역사나 문화, 한일 관계가 굉장히 중요한 연극이잖아요. 십 몇 년 전과 지금은 느낌이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고수희 배우 : 그렇죠. 나라의 관계까지 깊게 생각하면 작품이 너무 어지러워지니까 최대한 그런 것들을 배제하고 인간의 삶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는데요.
김수현 기자 : 근데 관객 입장에서는 특히나
고수희 배우 : 네, 그렇죠. 제가 느끼기에 일제 강점기 세대는 여전히 한국인에 대한 차별이 있기는 한 것 같아요. 우월함이 있다고 느끼는 분들이 여전히 있는 것 같아요. 젊은 세대가 많이 봤으면 해요. 이런 아픈 역사가 있었다는 것을 젊은 세대가 보고 공감하고 역사를 알아가 줬으면 해서 인스타 홍보도 하거든요.
근데 그분들은 몰랐던 역사에 대한 이야기도 있지만 하나의 가족의 형태로 보고 있는 것 같아요. 지금 우리 가족도 역시 뿔뿔이 흩어지게 되고 지금과 17년 전, 50년 전의 역사를 얘기하는 것이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지금 처해 있는 상황들은 다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이 17년 만에 공연하면서 들었어요.
김수현 기자 : 이번에 정의신 선생님 인터뷰 보니까 어릴 때 들었던 얘기를 많이 녹여 넣었다고. 실제로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했었는데 그 배에다가 먼저 가재도구를 실어 보내고, 원래 그 배를 타려다가 못 탔는데 그 배가 가라앉았대요. 그래서 못 갔다는 얘기. 그게 대사에 나온다면서요?
고수희 배우 : 네. 아버지가 사위 될 사람 앉혀놓고 자기 얘기 해 주는 장면이 있어요. 내가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해서 아내를 만났고. 그 얘기를 할 때 모든 관객이 다 눈물을 흘려요. 교포들이 이렇게 살아왔구나.
저희는 일본에 친척 한두 분쯤 계시잖아요. 가끔 일제 이모 왔다, 일제 고모 왔다 하면서 밥솥 사 오시고 '저분들 진짜 잘 사나 보다' 이렇게 생각하고 자랐던 기억이 저는 있거든요. 그분들이 이렇게 힘든 일을 하면서 지냈다는 것을 이 작품을 통해서 좀 알게 됐어요. 모르는 사실들을 많이.
김수현 기자 : 시대는 다르지만, 더 늦게 나왔지만 '파친코' 생각도 났어요.
고수희 배우 : 맞아요. 제주도를 떠나서 일본으로 건너온 재일교포의 이야기는 대부분 맥락이 비슷해요. 즐겨 부르던 노래, 즐겨 먹던 음식, 모여 있는 사람들, 대부분 비슷한 흐름으로 가거든요.
교포에 대해 공부하고 알아보는 과정에서 항상 나오는 노래들, 제주도의 민요 등은 그분들이 한처럼 가지고 있는. '야끼니꾸 드래곤'에도 용길이가 시청 직원과 싸우고 난 다음에 그 아픔을 달래주려고 막내딸이 부르는 제주도 민요가 있어요. 그 노래를 다 같이 부르면서 '우리 힘들지만 이겨나가자' 이런 느낌의 희망을 주는 노래들을 부르는 장면도 있습니다.
(극중 장면 감상)
다른 재일교포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는 연극을 만들면서 실제로 일본에서 재일교포들이 있는 요양원에 찾아간 적이 있었어요. 할머니들과 인터뷰하려고. 이 '너영나영'을 부르시더라고요.
김수현 기자 : 슬퍼도 계속 슬퍼하고 있는 게 아니라 웃고.
고수희 배우 : 웃고 이겨내고. 정 선생님은 그게 한국인의 정서 아니냐고 얘기하시더라고요. 일본에서 나고 자라서 이름은 정의신이고 국적은 한국이지만 일본 교육 받고, 뼛속까지 일본인이 아닐까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그런데 할머니한테, 아버지·어머니한테 들었던 이야기와 받았던 감정을 그대로 갖고 계셔서, 가끔 '한국인들은 이렇게 하잖아, 한국 사람들은 이런 마음이잖아' 얘기하실 때 깜짝깜짝 놀라요. 정 선생님이 한편으로는 정체성에 혼란이 왔었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김수현 기자 : 상도 많이 받으셨잖아요.
고수희 배우 : 일본에서 받을 수 있는 상은 다 받은 것 같아요. 요미우리 연극상에서 여자 우수 연기상 받았습니다. 외국인한테는 처음으로 주는 상이었고 이후에도 외국인한테 준 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수현 기자 : 이제 십 몇 년 만에 또 다시 같은 역을. 뭐 좀 달라진 거 느끼세요? 같은 역을 하지만 세월이 흘렀으니까.
고수희 배우 : 다시 재공연을 한다고 했을 때 나도 그동안 삶의 파도가 있었으니까 그만큼 깊이가 생기지 않았을까 생각했고, 조금 더 깊이감을 드러내서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근데 상황은 똑같으니까, 글쎄요. 어떤 것에서 제 14년이 드러났는지는 모르겠지만 관객들은 이제 완벽하게 엄마 같은 느낌이 든다는 얘기를 해 주시는 분들도 있고요. 어릴 때는 너무 어렸으니까 '무조건 해내야 돼' 이런 것이 있었다면, 지금은 내용을 잘 이해하고 그들의 감정을 좀 더 깊게 이해하려고 하는 정도지요.
김수현 기자 : 지금 헤어스타일도 역할 때문에 그렇게 하신 거죠?
고수희 배우 : 네, 이제 공연이 얼마 안 남아서 일본에서 저희가 두 달 반 동안 체류하면서 연습하고 공연을 하는 동안 파마를 하고 갔거든요. 근데 머리가 자라서 엊그저께 오늘 여기 나와야 된다는 걸 알면서도 머리를 짧게 자르고 왔습니다.
김수현 기자 : 네, 작품이 중요하죠. 그런데 '야끼니꾸 드래곤'이 계기가 돼서 일본 공부도 많이 하시고 일본어뿐 아니라 재일교포 얘기를 다룬 작품을 직접 번역도 하시지 않았어요?
고수희 배우 : 제가 50이 되기 전에 용기를 내서 하고 싶었던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극단을 만들었어요. '극단 58번국도'라는 극단인데요. 일본 오키나와에 있는 국도예요. 가고시마에서부터 오키나와까지 연결돼 있는, 일본의 최장거리 국도라고 하더라고요. 일본 작품만 하겠다고 마음 먹고 만든 극단이어서 일본의 좋은 희곡들을 찾아내서 무대에 올리고, 한국과 일본 관련된 오리지널 작품을 만들어보자는 의도에서 만든 극단이고요.
'해녀 연심'이라는 첫 창작극을 만들었는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올해의 신작에 당선돼서 내년 3월 대학로에서 공연하게 됐어요. '해무'라는 연극을 쓴 김민정 작가가 썼고, 제주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해녀의 일생에 대한 이야기인데 '야끼니꾸 드래곤'과도 겹치는 이야기가 있기도 하고요.
그 작품을 만들면서 재일교포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하게 됐고, 저희 극단원들 다 데리고 오사카에 가서 리서치도 하고. 눈으로 보지 않으면 느낄 수 없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신중하게 만들고 있는 작업들이 있고요. 일본 희곡을 가져오려면 내용을 알아야 돼서 열심히 일본어 공부를 한 것도 있고, 요즘에는 챗GPT 등이 있잖아요. 그렇게 번역도 하고, 작품 올리고. 저희 극단에서 하는 작품들은 제가 출연하지 않기로 마음 먹고 연출을 하고 있습니다.
김수현 기자 : 연출가로 이름도 다른 걸 쓰시더라고요.
고수희 배우 : '나옥희'라는 이름을 쓰고 있어요. 저희 어머니 성인 '나' 가, 아버지 이름 중 '옥' 자, 남편 이름 중 '희' 자를 한 글자씩 따서 '나옥희'라고 만들었고요.
굳이 부캐를 만든 이유는 '배우 하는 고수희가 연출도 해?' 이런 느낌 안 받게 하려고 나옥희라는 이름을 썼는데 금방 들통이 나버렸습니다. (웃음) 일본에 '나오키'라는 이름이 많잖아요. 그래서 일본 분들은 '그런 의미에서 나오키야?' 그러면서... 의도한 건 아닌데 여러모로 좋습니다.
김수현 기자 : '야끼니꾸 드래곤'이 중요한 삶의 전환점이었네요.
고수희 배우 : 네, 저한테는 굉장한 작품이죠. 제 인생은 이 작품을 만나기 전과 만난 후로 나뉘는 것 같아요.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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