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뉴스

뉴스 > 사회

"생환의 끈 안 놓았는데"…끝내 주검으로 돌아온 남편에 오열

유영규 기자

입력 : 2025.11.12 12:30|수정 : 2025.11.12 12:30


▲ 울산 화력발전소 붕괴 사고 현장 구조작업

"만에 하나 살아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오늘(12일) 오전 울산 남구의 한 병원 장례식장, 울산화력발전소 보일러 타워 붕괴 사고로 숨진 김 모(63) 씨의 빈소가 차려진 이곳은 정적 속에 간헐적인 통곡이 이어졌습니다.

김 씨는 사고 발생 이튿날인 지난 7일 오전에 위치가 확인된 매몰자 3명 중 한 명입니다.

무너진 잔해의 추가 붕괴 위험 때문에 구조가 지연되면서 발견 나흘 뒤인 11일 밤이 돼서야 시신이 수습됐습니다.

생환의 희망을 놓지 않았던 가족들은 소중한 남편, 동생을 끝내 주검으로 맞았습니다.

상복 차림으로 영정 앞에 주저앉은 아내 김 모 씨는 "혹시 살아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고 오열했습니다.

사고 직후 일주일 가까이 사고 현장과 인근 숙소를 오가며 생환의 끈을 놓지 않고 구조 소식을 기다렸던 가족들의 얼굴은 핼쑥해져 있었습니다.

김 씨의 큰누나(75)는 분향소 입구에 걸린 동생의 이름을 한동안 눈을 떼지 못한 채 손수건으로 연신 눈가를 훔쳤습니다.

처음엔 뉴스로 사고 소식을 접했다고 했습니다.

큰누나는 "TV로 봤을 땐 남 일인 줄 알았지. 시간이 좀 지나고 나서야 저기에 내 동생이 있는 걸 알고 가슴이 쿵…"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일곱 남매 중 여섯째였던 김 씨는 12살 터울의 누나에겐 꼭 아들 같은 동생이었습니다.

큰누나는 "어렸을 때 엄마가 돌아가셔서 내가 업어 키우다시피 했다"며 "무뚝뚝한 성격이었지만 저한테만은 잘했다"고 회고했습니다.

삶이 바빠 자주 만나지는 못해도 종종 전화를 걸어 "밥은 먹었냐", "아픈 데는 없냐"며 살뜰히 챙기는 동생이었습니다.

큰누나는 "젊었을 때 방황하다가 요즘 들어 마음을 다잡고 잘살아 보려던 참이었는데 이런 일을 당했다"며 "술에 취하면 종종 전화를 걸어 사는 일을 하소연하곤 했는데 그 이야기를 좀 더 잘 들어줄 걸 후회가 된다"고 눈물지었습니다.

용접 기술이 있던 김 씨는 젊은 시절부터 울산지역 공사 현장을 전전하며 생계를 이어왔다고 합니다.

이번에도 울산화력발전소 보일러 타워 해체를 위한 '취약화 작업'에 투입됐다가 붕괴한 구조물에 다른 작업자 6명과 함께 매몰됐습니다.

큰누나는 동생의 죽음을 슬퍼하면서도 "아직도 못 찾은 사람이 거기 더 있다"며 "우리 동생은 그래도 찾았다지만 아직 못 찾은 가족들은 얼마나 애가 타겠냐"고 했습니다.

그는 "소방관들이 매몰 상태인 동생 신원을 확인해주고는 '사망하신 것 같다', '못 구해 드려 죄송하다'며 울었다. 소방관들도 울고 우리도 울었다"며 "그 위험한 데서 끝까지 찾아줘서 너무 감사하다"고 전했습니다.
SBS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