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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천만 굴뚝 매달리기, 이젠 지상에서 오염물질 측정한다 [스프]

장세만 환경전문기자

입력 : 2025.11.05 09:00|수정 : 2025.11.05 09:00

환경과학원의 '지상 시료채취' 검사법은?


지난 8월 말, 전북 전주의 한 발전소 굴뚝에 올라 작업중이던 40대 남성 직원이 숨지는 사고가 났습니다. 100미터짜리 굴뚝 가운데 사고가 난 위치는 40미터 높이였습니다. 피해자는 해당 발전소가 유해 대기오염물질을 얼마나 배출하는지 측정 작업을 위해 굴뚝에 올랐는데, 무거운 측정장비를 사람 대신 이동해 주던 드론 장비가 굴뚝과 부딪히면서 파편 조각들이 머리 위로 떨어지는 바람에 충돌했고, 해당 작업자가 결국 숨진 겁니다.
지난 8.28 배출 물질 측정 중 사망자 발생한 전북 전주의 모 발전소 굴뚝
이 같은 측정 방식, 즉 작업자가 직접 굴뚝에 올라 수동으로 측정하는 방식의 위험성은 사실 오래전부터 지적돼 왔습니다. 대부분의 굴뚝 시설이 세워진 지 수십 년이 지난 게 대부분인 데다, 일반 작업과정에서는 올라갈 일이 없다 보니 사다리나 계단 등 시설물의 안전성이 제대로 관리 감독되지 못한 까닭입니다. 더구나 수십 종류의 오염물질 측정을 위해선 각기 다른 측정장치를 모두 수작업으로 옮겨야 하다 보니 100킬로그램이 훌쩍 넘는 장비를 두세 명이 일일이 측정구까지 옮겨야 합니다. 환경과학원이 실태 파악을 위해 수집한 현장 사진들을 보면 열악한 굴뚝 상부 작업현장의 실상이 드러납니다.
지구력
지구력
현재 대기배출사업장 굴뚝 실태를 보여주는 사진


수동 자가측정 98%, TMS 자동측정은 2%에도 못 미쳐
이처럼 위험한 수작업이 계속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국내 굴뚝오염물질 측정 체계가 여전히 '사람이 직접 오르는 방식'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TMS라고 불리는 자동측정장치가 있긴 하지만 가격이 비싸고 측정 대상 물질의 종류에 한계가 있습니다. 전국에 있는 대기오염물질 배출 사업장 전체 6만 9백여 곳 가운데 굴뚝자동측정기기(TMS)가 설치된 곳은 960여 곳으로, 전체의 1.6%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98% 넘는 곳들은 여전히 사람이 직접 굴뚝 위에 올라가 시료를 채취하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굴뚝 매달리지 않고 지상에서 측정한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국립환경과학원은 지난 2017년부터 '굴뚝 시료 자동채취 및 비접촉식 측정기술' 확보를 목표로 연구개발을 추진해 왔습니다. 굴뚝 벽 측정구에서 추출한 배출가스 시료를 배관을 통해 땅으로 끌어내려 분석하는 방식입니다.

관건은 기존 측정과 지상 시료채취 방식 간에 측정 결괏값을 일치시키는 기술을 확보하는 겁니다. 굴뚝 측정구와 지상측정 지점간 배출가스 압력과 온도 유지, 수분 응축 방지 등 오염물질이 변형되지 않도록 동일 조건을 구현하는 게 핵심입니다.

그동안 연구를 통해 환경과학원은 가스상 측정 대상 물질 25종 가운데 질소산화물·황산화물·먼지 등 19개 물질에 대한 동일 조건을 구현하는 측정 기술을 확보했다고 최근 국정감사 과정에서 밝혔습니다.

현재 배출 허용기준이 있는 45개 물질에 대해 연간 자가측정(수동측정)이 이뤄지는 횟수는 모두 190만 건으로 집계됩니다. 1종 사업장의 굴뚝의 경우 매주 1회 이상 측정 주기 물질에 대해 연간 98만 건의 자가측정이 이뤄지는 식입니다. 이 가운데 지상 시료측정이 가능한 물질의 종류는 25종인데, 이를 모두 지상 측정으로 전환할 경우 93만여 건의 직접 수동 측정 횟수를 줄일 수 있다는 게 환경과학원 분석입니다. 48% 넘게 줄인다는 겁니다.


올 연말까지 '대기오염 공정시험 기준' 개정
이 같은 새로운 기술을 바탕으로 국립환경과학원은 올해 연말까지 관련 고시 개정을 추진 중입니다. 자동·비접촉식 측정기법을 '대기오염 공정시험기준'에 포함하는 개정안을 마련했으며, 현재 관계기관 검토와 업계 의견수렴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고 환경과학원은 밝혔습니다.

개정안에는 자동화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물질군, 적용 가능한 배출구 조건, 검·교정 기준 등이 구체적으로 명시될 예정입니다. 시범사업은 2026년부터 일부 산업단지 및 대형 발전소를 중심으로 시행될 전망입니다. 환경부 관계자는 "기술적 타당성과 신뢰성이 확보된 만큼, 현장 적용을 서두를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굴뚝 직접 측정' 대신할 '지상 시료 채취' 확산 전망은?
이번 변화의 배경에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높아진 기업의 법적 책임 의식도 자리하고 있습니다. 굴뚝 측정과 같이 고위험 현장에서 인명 피해가 발생하면, 발주기관이나 사업주가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업계에서는 안전한 자동화 측정으로의 전환 요구가 커졌습니다.

다만 지상 시료채취를 위한 설비개선에 수천만 원의 비용이 필요합니다. 중소형 사업장에게는 큰 부담인만큼 설치비 보조나, 환경개선자금 융자지원 항목에 측정 설비를 포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사업장의 유해 대기오염물질 배출 관리 제도의 개선 필요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상 시료 채취 문제보다 훨씬 큰 문제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사업장 대기오염물질 측정·관리 체계는 대부분 '굴뚝 중심'으로만 설계돼 있습니다. 하지만 환경부와 환경과학원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비산배출 저감을 위한 시설관리기준) 사업장 내 전체 오염물질 배출량 중 약 60% 이상이 굴뚝이 아닌 공정 설비, 저장시설, 이송라인, 하역시설 등에서 '비산(非散) 형태로 배출'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굴뚝에서 얼마나 많은 오염물질이 배출되나 아무리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실제 절반 이상 배출은 놓칠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화학·정유·철강 계열 사업장은 원료 이송 중 증기나 가스가 새어 나오거나, 저장탱크 상부의 개폐 시 유해가스가 직접 대기로 방출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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