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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삼성전자야? SK하이닉스야?…젠슨 황, 빙긋 웃으며 한 말은

김관진 기자

입력 : 2025.11.04 17:13|수정 : 2025.11.04 21:17

젠슨 황의 유머와 철학, '피지컬 AI'의 시대를 말하다


경주 APEC 기간 방한했던 젠슨 황 엔비디아 CEO에 대한 관심이 식을 줄 모른다. '깐부 회동'으로 시작해 'GPU 26만 장 공급' 발표까지, 한국을 떠난 지 나흘이 됐지만 그의 흔적은 여전히 짙다. 명실공히 전 세계 AI 기술 생태계를 이끄는 핵심 인물이기에 언론의 취재 경쟁도 뜨거웠다. 젠슨 황의 위트와 유머, 철학은 그가 경주 APEC CEO 서밋의 특별연설 이후 열었던 기자간담회에서도 그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달 31일 경북 경주 예술의전당 원화홀에서 열린 '2025 APEC 경주 엔비디아 기자간담회'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답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다시 만나기 어려운 상대에게 제한된 시간 내 반드시 '필요한' 질문을 하기 위한 기자간담회. 비장한 긴장감마저 흐르던 분위기는 젠슨 황의 "당이 떨어졌다"는 말 한마디가 풀어냈다. 가까이 과자와 음료수를 두고 때론 입 안에서 우물거리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모습은 국내 여느 기자간담회에서도 쉬이 보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돌아다니며 기자들에게 막대과자를 권하고, 함께 사진을 찍으면서도 그의 얘기는 단단하고 논리적이었다. 예정된 1시간을 훌쩍 넘겨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젠슨 황은 AI의 본질과 한국의 기회와 역할, 그리고 AI 기술 경쟁의 철학을 하나의 거대한 서사로 풀어놨다.

지난달 31일 경북 경주 예술의전당 원화홀에서 열린 '2025 APEC 경주 엔비디아 기자간담회'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기자들에게 과자를 나눠주고 있다. (사진 촬영=김관진 기자) 

젠슨 황이 정의한 '피지컬 AI'…"AI는 이제 물리 법칙을 이해해야 한다"

"AI는 밀면 넘어지고, 가려져도 존재하는 물체를 인식해야 한다. 그게 진짜 AI의 시작이다."

젠슨 황은 '피지컬(Physical) AI'의 개념을 이렇게 정의했다. 그가 말하는 피지컬 AI는 단순히 데이터를 계산하거나 언어를 학습하는 차원을 넘어, 세상의 물리적 법칙을 이해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인공지능을 뜻한다. 이는 AI가 현실 세계에서 로봇·자동차·제조 라인 등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실행형 지능(Embodied Intelligence)' 단계로 진입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젠슨 황은 "인과관계, 관성, 운동량 같은 물리 세계의 법칙을 이해하지 못하는 AI는 진정한 지능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인식에서 행동으로, 알고리즘에서 실제 물리적 반응으로 나아가는 AI의 진화 방향을 가리킨다. 이는 엔비디아가 최근 집중하고 있는 '로보틱스용 AI 플랫폼'과도 맞닿아 있다.
 

왜 한국인가…"한국의 주력 산업과 맞닿아 있다"

그는 한국의 산업 생태계를 완결형이라 평가했다. 반도체·디스플레이·자동차·로봇 등 하드웨어 기반 산업이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젠슨 황은 "AI가 공장에서 로봇을 설계하고, 그 로봇이 다시 새로운 로봇을 생산할 수 있는 시스템이 바로 한국의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젠슨 황은 한국이 바로 이 전환의 중심에 설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물리적 세계를 다루는 산업이야말로 AI가 가장 큰 부가가치를 창출할 영역"이라며 "그 산업들이 바로 한국의 주력 산업"이라고 말했다. 정밀한 제조 기술과 시스템 역량을 갖춘 한국이 AI를 얹으면, 산업 구조가 새로 쓰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세계를 선도하는 AI 국가가 될 것이다."
 

"삼성전자야? SK하이닉스야?"…젠슨 황의 대답은

젠슨 황에게 건네진 질문 가운데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질문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기술력을 직접 비교해 달라'는 것이었다. 젠슨 황 특유의 유머를 곁들여 "한국의 프라이드치킨은 놀랍도록 끝내 준다"며 "그런데 한국이 이렇게 잘하는 게 또 있다, 메모리 산업이다. 한국의 메모리 산업은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엔비디아가 한국 메모리 산업, 특히 고대역폭메모리(HBM) 분야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각각 다른 방식으로 중요 파트너로 보고 있다는 메시지를 내놨다. 삼성전자는 GPU용 HBM 패키징 기술을, SK하이닉스는 고대역폭 메모리(HBM3E) 생산 역량을 각각 주도하고 있다.
 
"Samsung and SK Hynix have different strengths. One is more focused and specialized, while the other is broader and more diversified. Focus has its advantages, and diversity has its advantages. We need both." ("삼성과 SK하이닉스는 각각의 장점을 갖고 있는데, 한 회사는 집중력에서 다른 한 회사는 다양성에서 강점을 보인다. 집중에는 집중력은 집중력의 장점이 있고, 다양성에는 다양성의 장점이 있다. 우리는 두 회사 모두 필요하다.")

젠슨 황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기업을 "세계 최고의 파트너"라고 평가하며 "HBM3, HBM4 그리고 이후에 어쩌면 HBM97까지 오랫동안 협력 관계를 이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젠슨 황은 기자간담회를 마치며 "AI는 인류가 만든 가장 복잡한 기술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어려운 길을 스스로 걸어온 회사"라며 "고통 없이는 위대함이 없다, 그건 한국이 내게 가르쳐준 진리"라고 말했다. AI의 본질이 끊임없는 학습과 시행착오에 있듯, 젠슨 황은 한국인의 도전 정신을 AI 혁신의 원동력에 비유했다.
 
"And one thing I truly admire about Korean culture is its strength of character born through struggle. It's only through suffering that greatness is achieved." ("제가 한국 문화를 진심으로 존경하는 이유 중 하나는, 시련을 통해 만들어진 그 강한 성격(character)입니다. 고통을 통해서만 위대함이 만들어집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지난달 31일 포항경주공항에서 출국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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