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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탈이 약해서? 직장인이 괴로운 진짜 이유 [스프]

최희진 기자

입력 : 2025.10.27 09:00|수정 : 2025.10.27 09:00

[갑갑한 오피스] 멘탈 탓하는 조직 (글 : 이진아 노무사)


직장인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 업무 스트레스도 만만찮은데 '갑질'까지 당한다면 얼마나 갑갑할까요?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와 함께 여러분에게 진짜 도움이 될 만한 사례를 중심으로 소개해드립니다.

얼마 전 첫 직장을 그만둔 한 청년을 상담한 적이 있었다. 그는 회사에서 가장 자주 들은 말이 "멘탈 좀 관리하세요"였다고 했다. 그 말이 계속 뇌리에 맴돌았고 어느 순간부터 자신을 '멘탈도 관리 못하는 사람'으로 규정하게 되었다고 했다. 결국 그는 더 이상 자신을 그런 환경에 두고 싶지 않아 퇴사를 선택했다.

요즘 기업들은 직원 복지의 상징처럼 '마음건강 프로그램'을 내세운다. 명상 앱 구독권, 힐링 세미나, 리프레시 휴가, 감정 관리 교육 등 겉으로 보기엔 세련되고 따뜻한 장치들이다. 그러나 실제로 직원들이 멘탈이 무너지는 상황을 살펴보면 이런 프로그램들은 엉뚱한 해답이다.

주구장창 이어지는 회의, 일방적인 발언 구조, 예고 없이 뒤집히는 결정, 쉽게 던져지는 폭언과 무례한 피드백들. 대부분 회사의 정책이나 의사결정 과정에서 비롯된 일들인데 그 결과로 생긴 혼란과 피로를 감당해야 하는 직원들만 '멘탈이 약한 사람'으로 불린다. 이상한 풍경이다.

조직은 종종 개인의 정신건강을 개인의 내적 문제로 취급한다. "요즘 ○○씨 상태가 좀 불안정해 보여요."라는 말은 걱정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팀 분위기를 해치지 말라"는 경고이기도 하다. 이런 구조에서는 직원의 멘탈이 '업무 역량'의 일부로 평가된다. "멘탈이 약하면 버티기 힘든 곳이에요." "일 잘해도 멘탈이 흔들리면 같이 일하기 어렵죠." 결국 문제의 원인은 조직의 구조적 압박이 아니라 그 압박을 견디지 못한 개인의 나약함으로 정의된다. 그렇게 문제를 진단하니 해결책도 왜곡된다. 마음건강 프로그램이나 심리상담 지원이 마치 근본 처방인 것처럼 제시되지만 실상은 구조적 불합리를 가려주는 일종의 진통제 역할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한 심리상담사 선생님과 대화 중 인상적이었던 얘기가 있었다. "직장 내 괴롭힘 상담의 대부분은 업무 자체보다 관계 스트레스예요. 그런데 그 관계를 바꿀 권한은 직원에게 없어요. 그래서 더 어려운 상담이에요." 이 말을 들으며 필자는 새삼 깨달았다. 조직 내에서 발생하는 직원의 문제를 개인의 회복력 부족으로만 설명하면 안 된다는 것, 그리고 어느 직원의 멘탈이 무너지는 근본 이유는 '사람의 성향'이 아니라 '조직의 구조'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조직에서 건강한 멘탈을 지키는 일은 직원이 '나 스스로 더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조직이 문제를 인식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에서 출발해야 한다. 물론 마음건강 프로그램이 일시적인 환기나 스트레스 완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불합리한 구조 위에서 진행되는 심리지원책들은 근본을 건드리지 못한 채 얕은 위로로 끝나기 쉽다.

어떤 회사는 아예 감정 안정도를 수치화해 평가하고 '멘탈 관리'를 개인평가지표에 포함시켰다고 한다. 멘탈 관리는 개인 몫이라는 일종의 선언으로 느껴진다. 상사는 분위기가 평안해지고 사람들이 다소 안정감을 찾은 거 같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정작 직원들은 더 이상 불만을 말할 수 없게 되었을 테다. 멘탈 관리도 못하고 감정도 불안정한 직원으로 평가받을 수는 없으니 말이다. 표면적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불안은 더 깊어진 것이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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