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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가에서 5백 미터 '무색무취' 고독성 가스 샌다…'부취제'만 쓰였더라면 [스프]

장세만 환경전문기자

입력 : 2025.10.20 10:54|수정 : 2025.10.20 10:54

수입 목재·과일 검역용 '메틸 브로마이드' 가스 실태 봤더니


'무색무취' 살충 독성 가스 대기중 그대로 방출
해외에서 수입해 오는 목재나 과일 등엔 많은 벌레들이 함께 들어오기 마련입니다. 이 같은 외래 해충의 반입을 막기 위해서 방역, 즉 살충 작업이 이뤄집니다. 농식품부 산하 농림축산검역본부가 담당합니다. 이때 쓰이는 물질이 메틸 브로마이드(MB, Methyl Bromide)라는 유독 가스입니다. 농약 관리법상 고독성 농약으로 분류될 만큼 유해성이 높은 물질입니다. 흡입 시 중추신경계를 억제하고 폐부종이나 의식 소실 등을 유발할 수 있는 급성 독성이 있는가 하면 반복 노출 시 신경계와 간, 신장은 물론 생식 독성 등 만성 독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됩니다. 문제는 무색무취한 특성 탓에 노출돼도 알 수가 없는 데다 공기보다 무거워 누출 시 피해를 키울 수 있습니다. 가스안전공사의 안전정보 자료에 따르면 이 가스 누출 시 피해 영향범위를 알 수 있습니다. 소규모 누출 시 740미터까지, 대규모 누출 시 1.7킬로미터까지 피해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인체 유해성뿐만 아니라 대기환경에도 악영향을 미칩니다. 오존층을 파괴하는 물질로 제조 및 사용 자체가 지난 2005년부터 금지됐는데(개도국은 2015년 이후) 예외적으로 목재나 과일 등을 수출입할 경우 검역 용도도만 허용된 상황입니다.

실제로 목재를 수입할 때에는 항만 보세구역에 산같이 나무를 쌓아놓고 그 위에 거대한 덮개를 씌운 뒤, 그 속에 메틸 브로마이드 가스를 주입합니다. 그리고 24시간 정도 지난 뒤 덮개를 개방하는 식으로 훈증 살충 작업이 이뤄집니다. 국회 환노위 이용우 민주당 의원실이 검역본부에 요청해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메틸브로마이드 187톤이 사용된 것으로 나타납니다. 인천항이 84톤으로 사용량이 가장 많았고 군산항(37톤), 부산신항(21톤), 광양항(15톤)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환경
환경항만 보세지역에서 수입 목재 훈증 살충 작업 모습


항만 외 일반지역 100여 곳서 고농도 화학가스 쓰이는데
문제는 항만이나 공항 보세 구역뿐 아니라 일반 지역에서도 이 같은 작업이 이뤄진다는 사실입니다. 항만 내 보세구역이 좁은 데다 목재 수입량이 많다 보니, 농림축산검역본부는 항만 외 일반지역에 있는 제재소들도 식물 검역 장소로 지정해 수입 목재에 대한 훈증 살충 작업이 이뤄지는 겁니다. 전국에 항만 공항 외 별도로 지정된 이런 식물 검역 장소가 100곳이 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실제 이 같은 작업이 이뤄지는 현장을 찍은 영상을 봤더니 문제가 많아 보였습니다. 고독성 화학가스를 사용하다 보니 작업 중 노출로 인해 인명피해가 잇따랐지만 아직도 여전히 안전 준수 사항이 지켜지지 않는 모습이었습니다. 훈증 살충을 마치고 덮개를 개방할 때 방독면을 착용하도록 돼 있지만 규정이 지켜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현장에서 3미터 떨어진 곳에 접근금지 표시줄을 설치해야 할 의무도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해당 영상을 본 뒤, 제가 현장을 직접 가봤습니다. 해당 제재소는 인천 북항 인근 한 공단 지역으로부터 지하철역 인근 상업시설 지역으로 넘어가는 중간쯤에 위치했습니다. 해당 지하철 역 인근에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 있습니다. 해당 제재소에서 지하철 역까지는 5백 미터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수입 항만이라면 이 같은 작업이 이뤄지더라도 일반인 접근이 불가능한 만큼 문제가 없겠지만 이곳 제재소는 상황이 달랐습니다.


유독 가스 사용 및 누출, 주민들은 '깜깜이'
제재소 출입문 앞으로는 주민들이 오가는 보행로가 있습니다. 훈증 살충 작업이 이뤄지는 장소와 불과 10여 미터 떨어져 있습니다. 출입문 바로 맞은편에는 편의점과 식당이 있었습니다. 점심시간이면 인근 업체들의 직원들이 보행로로 오가고 있었고 편의점과 식당을 드나들며 제재소 출입문 근처를 오가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제재소에서 이 같은 위험물질을 사용하는 작업이 이뤄지는지 알기 어려웠습니다. 해당 방역업체 작업자뿐 아니라 인근 주민들 역시 독성 화학가스 위험에 노출됐다고 밖에 볼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덮개 속에 주입했던 메틸 브로마이드 가스를 별도의 회수, 정화 처리 없이 대기 중에 방출한다는 겁니다. 만 하루 정도 살충 작업을 한 뒤 덮개를 열어젖히는 식으로 가스를 처리하는 겁니다. 메틸 브로마이드의 유해성이 알려지면서 뉴질랜드 등 일부 국가에선 훈증 작업 후 회수 정화 절차를 거치도록 규정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덮개 속에 파이프를 넣어서 가스를 흡입한 뒤 개방하는 식입니다.
장세만기자뉴질랜드에서 쓰이는 메틸브로마이드 가스 회수 장치

우리는 아직 이런 규정이 전무한 상황입니다. 항만 외에 일반지역에서 작업이 이뤄질 경우 주민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조치가 이뤄져야 합니다. 어떤 물질이 쓰이는지 알 수 있도록 표시판 등 공지의무도 강화해야 합니다. 현장에선 방역업체 작업자는 물론 가스 농도 측정을 하러 온 농림축산검역본부의 감독관마저 방독면을 착용하지 않은 채 가스 측정 등 감독을 벌이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장세만기자방독면을 쓰지 않은 채 메틸브로마이드 덮개 개방 후 처리하는 모습
작업자농림축산검역본부 홍보 사진 속 방독면 쓴 작업자 모습


대기오염물질 배출 시설 예외조항이 만든 사각지대
이 같은 위험한 물질을 사용하는 작업이 이뤄지는 데도 왜 관리 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을까요? 이용우 민주당 의원은 올해 국정감사 준비 과정에서 현행 대기환경보전법상 사각지대를 지적했습니다. 해당 법령에선 대기오염물질 배출 시설에 대한 규제 조항들을 갖고 있는데,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이렇습니다. 대기환경보전법 시행규칙 별표3에서 규제를 적용할 대상 시설을 나열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는 입자상 물질 및 가스상물질 발생 시설 중 '훈증시설'이란 항목이 있습니다. 목재나 과일 수입 시 훈증 살충 작업은 여기 해당하는 셈입니다. 하지만 해당 조항의 비고4에서는 구체적인 적용 업종과 관련해, 통계법 상 한국표준산업분류에 따른 특정 항목에만 적용한다며 '운수 및 창고업'으로 한정하는 예외 규정을 뒀습니다. 이 같은 예외조항 탓에 메틸브로마이드라는 고독성 화학가스 사용 시설이 사각지대로 방치돼 온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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