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마'의 텔레그램 채널에 올라온 중국 국적 남성의 여권 사진. 이 남성은 최근 캄보디아 수사당국에 체포된 중국인 3명과는 다른 인물이다.
"캄보디아에서 가장 빠르고 확실한 정보처예요. 경찰, 검찰보다 나아요."
지난달 16일 한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서 가족이 캄보디아로 간 뒤 연락이 끊겼다며 하소연을 하는 한 여성에게 다른 참가자가 "'천마'에 제보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며 말을 걸어왔습니다.
그는 "천마가 누구냐"는 질문에 국내 수사기관보다 낫다는 말과 함께 텔레그램 링크를 보내왔습니다.
링크를 타고 들어간 채팅방의 이름은 '범죄와의전쟁2'로, 이미 1만 5천여 명이 참여한 상태였습니다.
이곳엔 방장이 올려놓은 누군가의 사진과 여권 정보, 계좌번호 등이 빼곡히 쌓여있었습니다.
어제(12일) 언론 취재를 종합하면 '천마'는 이 텔레그램 채널의 운영자로, 지난 5월부터 캄보디아 등 동남아에서 한국인 대상 보이스피싱, 마약, 성매매 등을 저지른 범죄 의심자들의 사진, 여권 사본, 주거지 등 신상 정보를 공개하고 있습니다.
지난 8월 캄보디아 깜폿주 보코산 지역에서 사망한 채 발견돼 충격을 줬던 20대 대학생 A 씨가 범죄조직의 강요로 마약을 강제 투약하는 영상도 이 채널에서 처음 공개됐습니다.
캄보디아에서 활동하던 온라인 사기 조직이 검거되는 장면이나 이들의 일상 사진, 지인과의 통화 녹취록, 대화 내역, 범행에 이용한 대포통장 계좌번호 등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정보도 다수 올라와 있습니다.
일종의 '사적 제재'로 보이지만, 동남아발 범죄에 대한 정부 조치가 충분하지 못하다고 느끼는 구독자들은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천마가 운영하는 별도의 2천600여 명 규모 대화방에선 그를 '형님'이라고 칭하며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고생 많으십니다"라는 하는 등의 구독자 응원 메시지가 줄을 이었습니다.
언론이 텔레그램을 통해 접촉한 운영자 천마는 자신이 채널을 운영하는 취지가 "범죄 예방"이라고 답했습니다.
수사기관이 범죄 피의자를 검거하는 시간이 단축되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그는 "내사 착수부터 검거까지는 수개월, 수년이 걸리는데 (그동안) 수많은 범죄가 진행된다"라고 했습니다.
또 "사적 제재라는 꼬리표가 붙는 것은 유감"이라면서도 범죄 예방과 가담자의 빠른 검거를 위해 경찰에도 관련 자료를 제공하는 등 협조한다고 밝혔습니다.
천마는 채널에 올리는 정보를 어떻게 얻느냐는 질문에는 "직접 발로 뛴다"라며 "(텔레그램으로 들어오는) 제보만으로는 팩트체크가 불가능한 사건 사고들이 많다"고 짧게 답했습니다.
천마가 운영하는 채널이 유명해지며 지난달 15일에는 특정 관서에 근무하는 경찰들에게 '범죄와의전쟁2' 텔레그램 채널 링크가 담긴 문자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송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천마는 해당 문자를 직접 보낸 일이 없다며 "저를 싫어하는 인물이 그런 행동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채널을 운영하며 살해나 신상 공개를 한다는 협박을 수시로 받고 있다고 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천마 채널의 인기가 외교부·경찰 등 공적 시스템이 제 기능을 못 해 생긴 결과라며 정부가 엄중하게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사회 정의가 실현되지 않는다는 불만과 당국에 대한 불신을 양분으로 자경단 같은 사적 제재 채널이 '대체재'처럼 인식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사적 제재는 분명 한계가 있다"라며 "감정적인 화풀이에 그치지 않으려면 수사기관에 제보해 범죄자에 대한 신속한 검거가 이뤄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사적 제재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경고했습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범죄자라고는 하지만 정보를 공개하며 개인 사생활을 침해하고 사회 불신을 조장하는 부작용도 있을 것"이라며 "만약 이런 행위를 상업화하려는 시도로 이어진다면 크게 비판받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사진=텔레그램 캡처,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