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 정착한 탈북민이 3만 4천여 명에 이르고 있지만, 탈북민들을 이방인으로 보는 시선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많이 남아 있습니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지난해 성인 남녀 1,200명을 대상으로 통일 의식 조사를 한 것을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친근감을 느끼는 이주민은 미국인이 첫 번째였고 그다음으로 동남아시아인, 일본인, 탈북민 순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탈북민을 미국, 동남아시아, 일본인보다도 더 멀게 느끼고 있다는 것입니다.
탈북민 정착지원기관인 남북하나재단이 지난 1일 탈북민들의 남한 사회 적응 사례를 발표하는 '2025 남북한 주민 사회통합사례 발표대회'를 열었습니다. 2014년부터 시작돼 올해로 12번째를 맞는 이번 대회에는 54명의 후보자가 응모해 최종적으로 7명이 본선에서 발표기회를 가졌습니다. 지난 1일 개최된 '2025 남북한 주민 사회통합사례 발표대회'
탈북민들이 밝힌 남한 사회 정착의 어려움
탈북민들이 남한 사회에서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많은 부분들 가운데 하나는 북한식 말투와 이로 인한 남한 주민들의 편견, 또 외래어가 많아진 남한 언어 습득의 어려움 등이었습니다.
"제 업무가 수도 요금 민원 상담인데 함경도 무산 출신이라 그런지 민원인들에게 보이스피싱이라는 오해도 많이 받았습니다. 또 외래어를 많이 모르니까 동료들끼리 대화할 때도 어려움을 많이 겪었고요."
- 탈북민 조경옥 씨 발표 중에서
"민원인에게 전화를 하니 저를 보이스피싱으로 오해를 하면서 '한국 사람들도 취업하기 힘든데 저런 것들을 왜 공공기관에 앉혀 놨냐?' 하며 욕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탈북민이 재입북한 사건이 일어나자 '너도 갈 거잖아, 너희는 총 쏘는 것 밖에 모르지?'라고 하던 팀장님도 계셨습니다. 하지만, 내가 잘못하면 탈북자가 잘못했다고 평가하기 때문에 견딜 수밖에 없었습니다."
- 탈북민 김도연 씨 발표 중에서
북한에서의 경력은 살리기 어렵고 남한에서 새로운 일을 배워 먹고살아야 하는 탈북민들. 이들은 황야에 내던져진 외톨이처럼 바닥에서부터 하나씩 하나씩 자립의 돌을 쌓아가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고 말합니다.
"마트에서도 일하고, 온천에서도 일하고, 심지어 주유소 배달차를 몰고 다니며 주택에 하우스에, 그리고 공사 현장에 기름을 배달하기도 했습니다. 여자의 힘으로는 버거운 일이었습니다."
- 탈북민 천소현 씨 발표 중에서
"유명 떡집을 찾아가 무급으로 2개월 동안 일을 배우며 하루 2시간씩 출퇴근했습니다. 배운 대로 작은 떡집을 열었지만, 막상 손님 앞에 내놓은 떡의 맛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주변에서는 '곧 문 닫을 거다'라는 말까지 했습니다."
- 탈북민 박은숙 씨 발표 중에서
아파도 돌봐줄 가족이 없고, 긴 터널의 반대편에 밝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 확신할 수 없는 현실의 고단함은 탈북민들을 지치게 만듭니다. 그래도 북쪽에서 인권을 유린당하고 제대로 먹지도 못한 채 살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고 말합니다.
"대한민국에서 병원에 입원하니까 부모 형제가 옆에 없다는 게 너무 서럽더라고요. 병원 치료받고 나와서 다시 일하는데 힘든 일을 하면 재발하고, 또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고, 퇴원하면 또 돈을 벌기 위해서 일하고, 다시 입원하고 치료받고… 일과 치료가 반복되는 생활은 지나가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 탈북민 조경옥 씨 발표 중에서
"(힘들 때마다) 저는 파주 통일전망대를 찾아가 북한 쪽을 바라봅니다. 저기 살고 있는 사람들도 살기 위하여 노력하는데 이런 좋은 환경에서 못해낼 것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언젠가 통일된 그날이 온다면 고향의 나의 형제들에게 당당하게 서기 위하여서라도 포기하지 말자고 결심합니다."
- 탈북민 김도연 씨 발표 중에서
이렇게 힘든 사람들에게는 주변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큰 도움이 됩니다. 화재로 모든 것을 잃었던 한 탈북민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주변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과 위로가 재기의 발판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저를 일으켜 세운 것은 주변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었습니다. 면사무소 직원, 전 직장 동료, 이웃 주민들의 헌신적인 도움과 '불이 나면 사업이 번창한다'는 위로, 그리고 '목숨 걸고 넘어온 사람이니 이보다 더한 시련도 이겨낼 것'이라는 남편의 응원이 저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 탈북민 천소현 씨 발표 중에서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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