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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종묘 차담회' 당일, 조선 왕실 신주 모신 공간도 열렸다

유영규 기자

입력 : 2025.10.02 06:58|수정 : 2025.10.02 06:58


김건희 여사가 지난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종묘에서 외부인들과 '차담회'를 할 당시 종묘 영녕전의 신실까지 둘러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신실은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神主·죽은 사람의 위패)를 모시는 공간입니다.

김 여사가 종묘 휴관일에 국가유산을 사적으로 이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평소 관람은 물론 출입도 엄격히 제한되는 의례 공간이 열렸다는 점에서 논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2일) 국가유산청이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여당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임오경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김건희 여사는 지난해 9월 3일 종묘 망묘루에서 '차담회'를 열기 전 영녕전을 방문했습니다.

당시 김 여사는 외국인 2명, 통역사 1명과 함께 있었으며 이재필 궁능유적본부장도 자리를 지켰습니다.

이들은 영녕전 건물과 내부 신실 등을 둘러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김 여사 일행은 종묘가 문을 닫는 화요일에 정문인 외대문이 아니라 영녕전 부근 소방문으로 들어왔고, 영녕전에서 5분 정도 머물렀다고 궁능유적본부 측은 설명했습니다.

궁능유적본부는 신실 개방 여부와 관련해 "(김 여사가 영녕전 일대에 머무르는 동안) 신실 1칸을 개방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당시 참석한 사람 가운데 신실 (내부)로 들어간 사람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신실 문 바깥에서 내부를 관람했다는 의미로 풀이됩니다.

김 여사와 함께 있던 외국인 동행자는 유명 화가인 마크 로스코(1903∼1970)의 가족으로 알려진 바 있습니다.

김 여사는 2015년 코바나컨텐츠 대표 시절 미국 워싱턴DC 국립미술관(내셔널갤러리)이 소장한 로스코 작품 50점을 들여와 '스티브 잡스가 사랑한 마크 로스코' 전시를 열었습니다.

신주를 모시는 신실은 종묘 안에서도 가장 신성한 공간으로 여겨집니다.

안쪽에는 왕과 왕비의 신주를 봉안한 신주장(神主欌)을 두고 양옆에는 의례용 상징물인 어보(御寶)와 어책(御冊)을 보관하는 보장(寶欌)과 책장(冊欌)을 배치합니다.

그 앞은 제사를 지내는 공간입니다.

영녕전의 신실은 매년 5월 첫째 주 일요일과 11월 첫째 주 토요일에 봉행하는 큰 제사, 즉 대제(大祭)가 있을 때만 문을 엽니다.

쉽게 열리지 않는 신성한 공간인 셈입니다.

궁능유적본부는 신실을 누가 개방하라고 지시했는지 묻는 의원실 질의에 "(대통령실) 문화체육비서관실에서 영녕전 내부를 볼 수 있도록 신실 1칸을 개방할 것을 지시해 개방하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문화체육비서관실은 '차담회' 전날인 9월 2일 오전 8시부터 종묘 일대에서 사전 답사를 했으며, 김 여사가 영녕전을 거쳐 망묘루로 이동하도록 동선을 짰다고 합니다.

그러나 종묘 안에는 평소 보기 어려운 신실을 재현한 공간이 있습니다.

국가유산청은 지난해 5월 향대청을 개편해 태조 신실을 재현한 공간을 상시 공개하고 있습니다.

향대청은 과거 종묘제례 때 쓰던 향과 축문 등을 보관한 곳으로, '차담회'가 열린 망묘루 바로 옆입니다.

재현 공간이 있는데도 신실을 열게 했다는 점에서 논란이 예상됩니다.

종묘관리소 측은 김 여사 방문에 앞서 영녕전 신실과 주변을 청소하기도 했습니다.

임오경 의원은 "김건희 여사 일행을 위해 영녕전 신실을 개방하라고 요구한 것은 명백한 '직권남용'과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에 해당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임 의원은 "관련 의혹이 국가유산 사적 이용으로 결론 나면 비용을 청구하고 담당자를 징계해야 한다"며 "국정감사에서도 진실을 파헤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종묘 신실 개방을 놓고 국가유산청 내부에서도 당시 대처가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윗선에서 장소 협조 요청이 있다고 해도 절대로 허용해서는 안 되는 장소가 종묘"라며 "비공개 행사라 하더라도 신실 개방은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궁능유적본부는 "당시 (김건희 여사가 참석한) 종묘 차담회가 대통령실 행사라고 판단해 영녕전 (신실) 1칸을 개방해 안내했다"고 해명했습니다.

종묘는 조선(1392∼1897)과 대한제국(1897∼1910) 시대의 역대 왕과 왕비, 황제와 황후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국가 사당입니다.

주요 건물 중 하나인 영녕전에는 총 16칸(실)의 신실이 있으며 태조의 4대 조를 포함해 역대 왕과 추존된 왕 15위와 왕후 17위,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의 신주를 모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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