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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을 바쳤으나 돌아오는 건 없었다…국가 봉사견 사실상 사각지대

유영규 기자

입력 : 2025.09.29 07:00|수정 : 2025.09.29 07:00


▲ 2023년 붕대 감고 수색하는 구조견 '토백이'

지난 11일 오전 경기 연천군에서 70대 남성 A 씨의 실종 신고가 접수됐습니다.

이틀이 지나도 수사에 진척이 없자 119특수대응단 소속 인명구조견 '대찬'이 투입됐습니다.

대찬은 투입 30분 만에 수색 구역 특정 지점에서 반응을 보였고, 근처에 있던 A 씨를 발견해 소중한 생명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2022년 광주 아파트 붕괴 사고 현장에서 119구조견 '소백이'가 실종된 6명 중 4명의 위치를 찾는 데 결정적인 정보를 제공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소백이는 활동 기간 9년 동안 223건의 재난 현장에 출동하며 13명의 생명을 구했습니다.

이른바 '봉사동물'들의 활약상입니다.

봉사동물은 재난·구조·탐지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인간의 안전을 위해 헌신합니다.

그러나 은퇴 후 여생은 녹록지 않습니다.

입양되지 못하면 좁은 보호소 우리에 갇히고, 일부 기관에서는 이마저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소백이의 경우, 은퇴 후 입양된 지 불과 12일 만에 건강이 악화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23일 봉사동물의 지원을 논의하는 국회 정책포럼이 열렸습니다.

앞서 8월 '동물보호법 개정안'이 발의된 데 이은 행사입니다.

일생을 인간 구조에 바친 봉사동물의 처우 개선과 은퇴 이후의 지원 필요성에 목소리가 모입니다.

현행 '동물보호법' 제2조에 따르면, 봉사동물이란 장애인 보조견 등 사람이나 국가를 위해 봉사하고 있거나 봉사한 동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동물을 말합니다.

군견·경찰견·구조견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봉사동물은 보통 1~2세에 기초 훈련을 받고, 3~4세부터 현장 투입이 가능합니다.

현역 활동 기간은 약 7~8년으로, 보통 10세 전후에 은퇴합니다.

봉사동물의 평균 수명이 12~14년임을 감안했을 때, 은퇴 후 여생은 전체 수명의 4분의 1에 해당합니다.

은퇴 결정 시 삶의 질에 대한 심각한 고려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은퇴 시점은 나이뿐 아니라 핸들러가 판단하는 임무 수행 능력과 질병 상태에 따라 결정됩니다.

폭발물 탐지, 구조, 마약 탐지 등 주요 임무에서 능력이 저하되거나 질병으로 인해 임무 수행이 어려운 경우 은퇴합니다.

그러나 관련 법과 제도의 공백 속 은퇴 후 관리 체계는 미흡합니다.

사단법인 지속발전가능연구소 '마침표'와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실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은퇴 봉사동물의 민간 입양률은 22%에 그쳤습니다.

다수는 보호시설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습니다.

은퇴한 봉사동물이 일반가정으로 입양되면 정서적 안정감을 되찾는 경우가 많지만, 시설에 남게 되면 우울감과 외로움에 시달리기 쉽습니다.

견사에서는 24시간 보호자가 곁에 있는 것이 아니어서 안정감 수준이 가정과 크게 다르다고 김 의원실은 설명했습니다.

의료 지원 공백도 문제입니다.

현역 시절에는 국가 예산으로 치료비가 지원되지만, 은퇴 후에는 별도의 예산이 책정되지 않아 정밀한 치료가 쉽지 않습니다.

관세청 등 일부 기관은 내부 예산을 전용해 치료를 돕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기관은 그렇지 않은 상황입니다.

치료가 불가능한 경우 어쩔 수 없이 안락사를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영 마침표 소장은 "현재 국가 봉사견들은 사실상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며 "견사에만 남겨지거나 일부 기관에서는 관리조차 제대로 되지 않고, 심지어 유실되는 사례도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법적으로는 '물건'으로 등재돼 감가상각 처리되면 끝"이라고 밝혔습니다.

현역 봉사동물에 대한 진료 여건도 열악한 상황입니다.

특수목적견 등 봉사동물을 운용하면서 동물병원까지 운영하는 기관은 군이 유일합니다.

이로 인해 군 동물병원에는 군견뿐 아니라 경찰견, 탐지견 등 다른 국가기관 소속 봉사동물도 찾습니다.

그러나 군 동물병원은 춘천 육군 군견훈련소, 진주 공군교육사령부, 대전 국군의학연구소 등 단 3곳에 불과합니다.

서울과 인천 등 수요가 많은 지역에는 시설이 전무합니다.

현재 전국 봉사동물은 약 1천200마리입니다.

응급 상황 시 가까운 일반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으나, 수술과 입원 비용이 600만~700만 원에 달하기도 합니다.

예산 부족으로 부처별 대응이 어렵다 보니 자연스럽게 군 동물병원으로 발길이 이어집니다.

군 동물병원에서 항암 치료를 할 수 없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기본적인 처치나 단순 치료는 가능하지만, 고난도의 항암 치료는 전문 인력과 시설이 부족해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항암 치료는 면역력이 크게 저하된 동물에게 무균 환경과 관련 전공의 숙련된 의료진이 필수적이지만, 현재 군 견사와 병원은 이러한 조건을 충족하지 못합니다.

365일 24시간 대응 체계도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군견·경찰견은 활동 특성상 야간 활동이 많지만, 수의사 인력 부족으로 항시 진료가 불가능합니다.

이에 따라 공공 의료 체계 확립과 권역별 관리 체계 구축 등 전문적 의료 지원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김예지 의원이 8월 국가와 지자체가 봉사동물 및 은퇴 봉사동물에 대해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동물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시각장애인인 김 의원은 안내견과 함께 의정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23일 국회에서 열린 '봉사동물 지원 법적 근거 마련을 위한 국회 정책포럼'은 봉사동물과 은퇴 봉사동물 지원을 위한 법적 근거와 제도적 기반을 강화하고, 은퇴 이후 처우 개선과 입양 활성화를 촉진하는 데 목적을 뒀습니다.

김 의원은 이날 포럼에서 "입양을 기다리는 예랑이라는 군견을 만난 적이 있다"며 "은퇴 이후 삶이 불안정한 것을 보고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봉사 동물이 현역일 때 합당한 대우를 받고, 은퇴 후에도 제2의 삶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토론에서는 봉사동물의 생애주기를 고려한 지원 체계 마련, 은퇴 이후 입양 확대, 정부와 지자체의 책임 강화 방안이 주요 의제로 다뤄졌습니다.

참석자들은 법적 근거 마련과 더불어 사회적 인식 제고가 병행돼야 한다는 점에 공감대를 형성했습니다.

이 소장은 "봉사동물 지원을 법제화하려는 배경은 '공적 영역에서 활동한 동물의 권익 보장'에 있다"며 "이번 법안이 통과되면 은퇴 봉사동물의 이력 관리가 범정부 차원에서 진행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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