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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대입하면, 모든 게 용서돼"…배우 이진욱이 달라졌다 [스프]

입력 : 2025.09.25 09:00|수정 : 2025.09.25 09:00

[주즐레]


주즐레
(SBS 연예뉴스 강선애 기자)

배우 이진욱은 데뷔 23년 차 배우다. 그동안 '로맨스가 필요해' 같은 로맨틱 코미디도, '나인', '보이스' 같은 장르물도, '스위트홈', '오징어게임' 같은 글로벌 흥행작도 출연하며, 오랜 시간 다양한 작품으로 대중을 만나왔다. 그런 그가 처음으로 변호사 역할을 맡아 법정물을 선보였다. 최근 종영한 JTBC 드라마 '에스콰이어:변호사를 꿈꾸는 변호사들'(이하 '에스콰이어')을 통해서다.

'에스콰이어'는 대형 로펌을 배경으로 변호사들의 고민과 성장, 사내 정치와 음모, 다양한 소송 에피소드를 녹여낸 작품이다. 특히 정의롭고 똑똑하지만 아직은 서툰 신입 변호사 강효민이 차갑지만 실력은 최고인 파트너 변호사 윤석훈을 통해 완전한 변호사로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가 중점으로 그려진다. 이진욱은 정채연이 연기한 강효민 캐릭터를 성장시키는 윤석훈 역을 맡아 프로페셔널한 변호사의 면모를 연기했다.

'에스콰이어'는 초반 3%대의 낮은 시청률로 시작했지만, 입소문과 함께 시청률이 상승하며 최고 시청률 9%대를 기록했다. 또 넷플릭스에서도 5주 연속 비영어 시리즈 10위 안에 오르며 인기를 입증했다. 이 정도면 성공적인 드라마 성적인데, 정작 이진욱은 '에스콰이어'가 대중의 사랑을 받을 것이라 확신하지 못했다고 한다.

"대중들이 많이 본다는 건 다른 문제잖아요. 정성스레 만들었는데 대중의 호응을 못 받을 때도 있죠. '에스콰이어'는 좋은 작품이라 생각했고 보신 분들은 재밌어할 거라 예상했지만, 솔직히 요즘 사람들에게 구미가 당길만한 드라마는 아니라고 봤어요. 그래서 대중적인 호응은 생각 못했죠. 요즘엔 화려하게 현혹시키는 드라마들이 많고 거기에 다들 익숙해져서 저희 드라마는 약간 심심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싶었죠. 근데 좋은 평가를 받고 이런 관심까지 받으니, 너무 행복해요."

이진욱의 배우 인생에서 첫 변호사 도전이었다. 변호사 캐릭터는 대사량도 많은데 일상에서 쓰지 않는 법률 용어가 많아 베테랑 배우들도 연기하기 버거워하곤 한다. 그런데 이진욱은 "나랑 잘 맞았다"며 큰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어릴 적 경험한 '적성검사' 이야기를 꺼냈다.

"어릴 때 적성검사를 하면, '제1적성'에 변호사가 나왔어요. 제가 변호사가 가장 잘 어울리는 타입의 인간이라는 거예요. 근데 그 당시엔 사법고시를 패스할 엄두가 나지 않아 변호사는 제 직업 선택지에 있지도 않았죠. '에스콰이어' 대본을 보니, 그때 생각이 나더라고요. 현실에선 이루지 못했던 '제1적성'을 지금 해보는구나 싶었어요.(웃음) 그렇게 적성에 잘 맞아서인지, 윤석훈의 사고가 실제 저와 크게 다르지 않더라고요. 저도 윤석훈처럼 행동하고 말할 거 같았어요. 그래서 이해하는데 어렵지 않았죠. 저랑 아주 잘 맞았어요."

극 중 윤석훈은 냉철한 성격에 일에 있어서 빈틈없이 완벽하다. 이에 후배 변호사들의 길라잡이가 되는 존재다. 이진욱은 스스로 정한 기준에 따라 답이 확실한 윤석훈의 성격이 자신과 닮았다고 설명했다.

"저도 답이 확실해요. 한 번 결정하면 뒤를 안 돌아보고, 후회도 없어요. 혹여 후회하는 마음이 들더라도, 지나간 일이니 빨리 잊으려 하죠. 배우가 캐릭터를 이해하는데, 종종 '왜 그러지?' 하며 부딪히는 경우가 있어요. 근데 윤석훈은 막힘 없이 잘 받아들여졌어요. 그런 부분에서 편안했죠. 작가님이나 감독님한테 전화해서 '캐릭터가 이해 안 된다' 말할 필요도 없었고요."

윤석훈 캐릭터에 대한 이해도가 아무리 높았어도, '변호사 윤석훈'의 기능적인 능숙함을 연기하는 건 다른 문제다. 어려운 법률 용어들, 소송에 관련돼 복잡하고 긴 대사를 자연스럽게 내뱉기 위해서는 특별한 노력이 뒤따랐다.

"보통 일반적인 대사는 냅다 외우면 외워져요. 근데 이건 안 외워지더라고요. 단어 자체가 생소하고 대사가 긴데, 읽어도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가 안 갔어요. 다들 걱정했죠. 어릴 땐 대사 외우는 걸 안 무서워했는데, 이제 제가 어린 나이는 아니잖아요. 진짜 열심히 했어요. 생활 패턴부터 바꿨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며 규칙적인 생활로 뇌를 건강하게 하려 했고, 공부한다는 느낌으로 대사를 외웠어요. 이렇게 열심히 공부해 본 적이 없는 거 같아요. 과거 입시 때도 이렇게 공부하진 않았거든요. 제 연차에 현장에 가서 대사를 못 외우면 너무 창피하잖아요. 그게 공포스러워서 더 열심히 한 거 같아요. 다행히 큰 창피는 안 당했어요.(웃음) 오히려 배우들 모두가 걱정한 만큼 준비를 철저히 해와서, 법정신 촬영은 빨리 끝나곤 했어요. 초반에 배우들의 준비 과정만 어려웠을 뿐, 그 이후엔 수월하게 찍었어요."

'에스콰이어'는 소송의 진행 과정, 변호사들의 사건 해결 방식을 엿보며 생소한 법적 절차를 간접 경험하는 법정물 특유의 재미를 선사했다. 그리고 사건을 다각도로 바라보며 여러 입장을 조명한다는 점이 이색적이었다. 법 앞에서 피고나 원고, 승소나 패소로 나뉠 순 있어도, 그게 절대적인 선과 악을 뜻하진 않고 다양하게 해석될 수도 있다는 메시지에 공감하게 했다.

"단순히 재미로만 생각하진 않았어요. 어떤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이 한 곳에 치우쳐 있지 않아 고민하게 만드는 것, 그런 배움을 준 거 같아요. 대본을 보며, 어떤 사건은 책임을 묻기 애매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더라고요. 또 누구든 소송을 겪을 수 있잖아요? 저희 작품을 보며,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미연에 방지할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이걸 바탕으로 변호사에 대한 인식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에 대한 배움도 줄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신입 변호사의 성장기를 다루는 작품인 만큼, 신입 변호사 강효민을 연기한 정채연과 그를 성장시키는 윤석훈 역의 이진욱의 연기 호흡이 중요했다. 이진욱은 같은 소속사 후배이기도 한 정채연에 대한 믿음이 컸다. 아직 신인이라 초반엔 우려의 시선들이 있었지만 "대본리딩 하는 날, 걱정을 종식시켰다. 현장에서도 너무 잘해서, 오히려 '나만 잘하면 되겠다' 생각했다"며 즐거웠던 촬영장 분위기를 전했다.

극 중 윤석훈과 강효민은 사수와 부사수, 멘토와 멘티의 관계지만, 강효민이 윤석훈에 설렘을 느끼는 장면들이 곳곳에 등장하며 이들의 러브라인 발전 여부를 궁금케 했다. 이를 두고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이 드라마가 잘 짜인 법정 성장드라마로만 끝나길 바란다는 반응과, 남녀주인공의 로맨스까지 기대한다는 반응이 엇갈렸다. 이진욱은 '에스콰이어' 속 윤석훈과 강효민의 로맨스 서사에 대한 뒷이야기를 들려줬다.

"원래 대본에는 러브라인이 있었어요. 근데 그 러브라인이 저희 드라마의 장점을 희석시킨다고 판단해서 러브라인을 들어내고 담백한 느낌으로 가고자 했어요. 그리고 또 하나 의견을 모은 게, 시청자가 둘의 러브라인을 원한다면 진행시킬 순 있어도, '시청자보다 앞서가지는 말자' 였어요. 둘의 감정이 동료로서 우정인지, 선후배 간의 고마움인지, 정말 남녀 간의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것인지, 그걸 우리가 나서서 표현하지 말고 한걸음 떨어져서 보여주고자 했죠. 사랑이란 게 원래 그렇잖아요. 인지하지 못했는데 자기도 모르게 진행되곤 하는… 그런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이진욱은 '에스콰이어'를 통해 배우로서 또 다른 성장을 보여줬다. 이건 단순히 연기력 차원의 성장이 아니라, 내면의 무언가가 더 단단히 확장된 느낌이었다. 이진욱이란 배우를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에도 보이는 변화를, 그 스스로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이를 '인간에 대한 이해도'라 생각했다.

"최근에 좀 느끼는 거 같아요. 제가 남들보다 느린 거 같은데, (연기한 지) 20년쯤 지나니까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그런 걸 보는 감이 좀 생기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래서 캐릭터를 이해하는 게 좋아졌어요. 확실히 어릴 때보단 인간에 대해 이해하는 게 편안해졌어요. 예전엔 '왜 슬픈 거지?', '뭐에 화가 난 거지?' 하며 이해를 못 하고 훨씬 건조하게 반응했었거든요. 배우 일을 하면서, 더 사람다워진 거 같아요."

인간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다는 이진욱이 요즘 관심 있게 보는 분야는 '삶과 죽음'이다. 심오할 수 있는 주제로 보이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좀 더 긍정적이고 즐거운 인생을 살기 위한 생각의 변화, 작은 낭만 같은 일이다.

"일상에서 '죽음'을 대입시키면 많은 게 해결돼요. '오늘은 어제 죽은 사람이 꿈꾸던 내일이다'라는 말도 있잖아요. 만약에 일을 하며 상대가 너무 짜증 나 때려치우고 싶을 때, '이게 마지막 작품이다' 생각하면 바로 문제가 해결돼요. 또 여름이 너무 더워 짜증 나도, 그런 여름이 열 번 밖에 안 남았다고 생각하면 더운 것도 소중해져요. 사랑하는 누군가와 싸웠는데, 상대방이 곧 죽는다고 생각해 봐요. 그럼 다 용서되죠. 어릴 때부터 삶과 죽음, 이런 쪽에 관심이 많았는데, 나이가 들고 생각이 더 많아졌어요. 또 얼마 전에 영상을 하나 봤는데, 오랫동안 아픈 아이의 병시중을 들던 아버지가 너무 힘들어서 짜증을 냈는데, 아이가 죽은 후에 자기가 병시중을 평생 해도 된다며 후회하는 다큐였어요. 그 영상을 보고 '후회라는 게 이렇게 무섭구나', '지금의 고통과 스트레스도 살아 있으니 가능한 거다'라는 생각을 더 갖게 됐어요."

'죽음'을 대입하는 방식으로 화나고 짜증 나는 일을 긍정적으로 치환시키는 성격이라 그런지, 이진욱은 스트레스 자체가 별로 없다. 연예인이 갖는 만병의 근원인 악플조차도 그는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바람 잘 날 없는 연예계에서 참 바람직하고, 롱런할 수 있는 성향이다.

"전 외부 자극에 크게 영향을 받는 타입이 아니라 스트레스가 별로 없어요. 스트레스 검사를 받으면 제로가 나와요. 그렇다고 생각이 없는 사람은 아니에요.(웃음) 고민도 많이 하고 생각도 많이 해요. 악플에도 크게 상처받지 않아요. 오히려 기발한 악플을 보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지?'라며 신기해하죠. 성격이 예민한 편이긴 한데, 또 '그럴 수 있지' 이해하면 잘 넘겨요. 이런 성격이 길게 보니 장점인 거 같아요. '인간 이진욱'한테는 좋은 성향이라 생각해요."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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