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와 여당의 사법부 압박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오늘은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이 국회를 찾았습니다. 대법관 증원 등 여권의 사법개혁 추진에 대해 법원의 입장을 설명하고, 윤석열 전 대통령 내란 혐의 재판 진행 상황을 알리기 위한 방문입니다. 추미애 법사위원장 주도로 오는 30일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청문회 개최가 결정된 가운데 우원식 국회의장과의 만남이라서 더욱 이목이 집중됐습니다.
우원식 "국민불신 결자해지해야"...천대엽 "사법부 독립, 정치적 중립성 보장돼야"
회동이 비공개로 전환되기 전에 우원식 의장은 작심한 듯 사법부를 향해 쓴소리를 쏟아냈습니다. 우 의장은 "유감스럽게도 정의의 최후 보루인 사법부의 역할에 대한 국민 불신이 높다"며 "사법부가 결자해지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사법부에 대한 불신의 원인으로 지난해 12.3 계엄 사태 이후 이른바 민주주의를 복원하는 과정에 사법부가 보여준 모호한 태도를 지적했습니다.
우원식 국회의장
"사법부의 헌정 수호 의지에 대한 국민들의 의구심은 매우 중대한 일련의 일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라 전체로도 몹시 아픈 일이고 국민께도 큰 상처와 당혹감을 준 일이었기 때문에 눈 감고 지나간 일로 흘려보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합니다.. 사법부가 결자해지를 통해 신뢰를 스스로 얻고.."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은 삼권분립과 사법부 독립, 정치적 중립성 보장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우 의장의 지적에 대해서는 "사법권의 온전하고 합리적인 행사를 통해 국민의 기본권 행사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도록 사법부가 노력해야 한다는 말씀으로 이해하겠다"면서, 12.3 계엄 당시에도 사법부가 그 위법성에 대해 분명히 지적했다고 강조했습니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12·3 비상계엄이 발생했을 때 여러 대법관과 대법원장의 의견을 수렴해서 불과 며칠 뒤 국회 법사위, 본회의장 등에서 여러 차례 '계엄은 위헌적 조치'라는 사법부의 입장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국민들의 신속한 호헌의식과 국회의 노력을 통해 정상적인 헌법질서가 회복됐습니다"

천 처장은 내란 재판이 신속하게 진행되도록 최대한 지원하겠다는 뜻도 밝혔습니다. 지난 19일 열린 전국법원장회의에서 여러 법원장들이 이에 관한 의견을 제시했다며 헌법과 법률, 직업적 양심에 따라 신속하게 재판이 진행될 수 있도록 모든 사법 행적적인 지원 조치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비공개 회동 이후 취재기자들은 조희대 대법원장 청문회 관련 대화가 있었는지 캐물었습니다. 그러나 박태서 국회의장실 공보수석은 청문회 문제는 거론되지 않았으며, 우 의장이 내란재판 등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높이기 위한 진정성 있는 조치를 법원 측에 요청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정청래, 강경파 두둔..."대통령도 쫓아냈는데 대법원장이 뭐라고 호들갑"
더불어민주당은 강경파에 지도부까지 나서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사퇴압박 수위를 높였습니다. 정청래 대표는 거친 표현까지 써가며 강경파 의원들을 두둔했습니다. 정 대표는 오전에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의힘과 언론들이 '조희대 청문회'를 두고 삼권분립 사망 운운하는 것은 역사의 코미디"라고 운을 뗐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국민들은 헌법 유린, 삼권분립 훼손, 부정 비리 국정농단, 내란 사태 등 불의한 대통령들을 다 쫓아냈다"며 "대법원장이 뭐라고 이렇게 호들갑이냐"라고 말했습니다. 법사위원장이 당 지도부와 상의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대법원장 청문회를 추진, 의결한 것 아니냔 지적을 의식한 듯 "추미애 법사위원장을 비롯한 법사위원들께서는 열심히 해주시기를 바란다"고도 했습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SNS 中
"우리 국민은 이승만 대통령도 쫓아냈고, 박정희 유신독재와 싸웠고, '광주학살' 전두환·노태우도 감옥에 보냈다. '부정비리' 이명박도 감옥에 보냈고 '국정농단' 박근혜, '내란 사태' 윤석열도 탄핵했다. 대통령도 갈아치우는 마당에 대법원장이 뭐라고?"
대법원장 청문회를 밀어붙인 추미애 법사위원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다시 한 번 청문회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내란 실패 후 윤석열이 제거 목표로 세운 이재명을 사법적으로 제거하려고 벌인 '조희대의 9일 작전'이 밝혀져야 한다"며 "삼권분립을 배반하고 정치로 걸어나온 것은 조 대법원장이다. 대의 기관 국회에 출석할 의무가 있다"고 거듭 주장했습니다.
※ <조희대의 9일 작전>은 민주당 서영교 의원이 자신의 SNS에 거론했던 의혹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이 4월 22일 대법원 배당으로부터 5월 1일 유죄 취지 파기환송될 때까지 9일 동안 벌어졌던 일들을 서 의원의 시각으로 이름 붙인 것입니다.
김병주 최고위원은 한발 더 나아갔습니다. 한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당 지도부든 원내지도부든 조 대법원장의 대선 개입 의혹을 확인·조사·수사해야 한다는 전체적 공감대를 갖고 있다"면서 "민주당은 조희대를 반드시 사퇴시키고 사법개혁을 확실히 완수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뿌리깊은 사법부 불신...대법원장 청문회 무산되면 '탄핵 카드'도 만지작
이렇게 민주당이 사법부 압박의 고삐를 조이는 배경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우선 현 사법부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이 거론됩니다. 오늘 사법부 2인자인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이 직접 국회를 찾아 사법부의 개혁 의지를 밝히면서 유화적 제스처를 보였지만, 법원 내부에서는 최근 보이고 있는 민주당의 행보가 명확히 '삼권분립 침해'라는 시각이 우세합니다. 마찬가지로 민주당도 내란종식으로 가는 길에 사법부가 걸림돌이 될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어제 열린 국회 법사위 법안심사1소위에서도 양측의 입장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났습니다.
민주당 3대 특검 특위가 지난 18일 발의한 내란전담재판부 설치 법안은 3대 특검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에 설치되는 내란전담재판부가 담당하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가 1배수로 후보자를 추천하면 대법원장이 1주일 안에 위촉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전 내란특별재판부 법안과 달리 재판부 후보 추천위에 국회 몫을 제외하는 대신에 법무부가 1명, 법원 4명, 대한변호사협회가 4명을 추천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국회 추천 몫을 없애 삼권분립 위반 소지를 없앴다고 하지만, 법원행정처는 "사무분담이나 사건배당에 관한 법원의 전속적 권한은 사법권 독립의 한 내용"이라며 "(법원 외부에서) 판사를 임명하는 것은 개별 사건의 사무분담·사건배당에 영향을 미치도록 하는 것이므로 그 자체로 사법권 독립을 침해한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특히 후보자 1배수 추천과 관련해 "추천위가 추천한 1배수를 그대로 임명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회의는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종결됐습니다.
박수현 민주당 수석대변인도 브리핑에서 내란사건을 맡고 있는 지귀연 재판부 등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습니다. 신속한 재판을 돕겠다며 재판장보다 열위에 있는 한 사람을 찔끔 늘린 것은 의미가 없고, 재판 지연으로 구속기한이 만료돼 윤석열 전 대통령이 거리를 활보하는 사태를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조 대법원장이 청문회에 불출석하면 탄핵이나 국정조사 등 다음 카드를 꺼낼 수 있음을 시사했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