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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석 신부 제자 토마스 "돌아가 한국 의술 펼칠 것"

유영규 기자

입력 : 2025.09.24 08:11|수정 : 2025.09.24 08:11


▲ 인제대 상계백병원의 간·담도·췌장(간담췌) 외과 전임의 토마스 타반 아콧 씨

"저는 봉사활동 욕심이 정말 많습니다. 이태석 신부님을 보면서 배웠습니다. 나중에 고국 남수단을 비롯한 아프리카 어느 나라든 가서 한국에서 배운 의술을 펼치고 싶습니다." 인제대 상계백병원의 간·담도·췌장(간담췌) 외과 전임의 토마스 타반 아콧(40) 씨는 지난 15일 서울시 노원구의 한 카페에서 가진 언론 인터뷰에서 당당히 꿈을 밝혔습니다.

남수단 북서부 오지 톤즈에서 인류애를 실천한 이태석 신부가 2010년 선종한 지 어느덧 15년이 흘렀습니다.

아프리카를 향한 토마스 씨의 열정에서 스승의 향기가 진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는 "이태석 신부님은 스승이자 아버지 같은 분이었기에 지금도 많이 생각난다"고 말했습니다.

또 머리 관리를 하려면 굳이 이태원의 미용실까지 가야 해 시간을 아끼려 자신이 직접 자른다고 했습니다.

그는 "해보니까 되더라. 이태석 신부님도 남수단에서 스스로 머리를 자르셨다"며 웃음을 보였습니다.

간담췌 외과는 수술이 어렵고 위험하기 때문에 한국 전공의들이 기피하는 분야입니다.

토마스 씨는 간담췌 외과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남수단에는 외과 의사가 부족하다"며 "간단한 충수염·담낭염 수술도 받지 못하고 죽는 사람이 많은데 이런 분들을 살리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2011년 수단에서 분리·독립한 남수단은 아프리카에서 최빈국으로 꼽힙니다.

석유를 둘러싼 무력 분쟁에 피란민이 대거 발생하는 등 정세가 불안정하고 보건, 교육을 비롯한 사회·경제 여건이 열악합니다.

톤즈 출신인 토마스 씨는 어렸을 때부터 내전의 참상을 목격했다고 합니다.

변변한 병원이 없어 병에 걸리거나 다쳐도 치료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10세 무렵 처음 의사의 꿈을 품었습니다.

그러다 2001년 톤즈에 온 이태석 신부를 중학교 4학년 때 처음 만나 미사와 의료 봉사를 도왔고 브라스 밴드 활동까지 함께했습니다.

그는 "이태석 신부님이 톤즈에서 진료하시는 것을 보면서 의사에 대한 꿈이 더 커진 것 같다"고 돌아봤습니다.

결국 이태석 신부와 인연은 그 꿈을 현실로 만들었습니다.

2009년 사단법인 '이태석신부의 수단어린이장학회' 도움으로 한국에서 공부를 시작했고 2012년 이태석 신부의 모교인 인제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한 것입니다.

그는 "처음 한국행을 제안받았을 때 한국어로 공부하는 것에 관한 걱정이 많았다"며 "주변 사람들과 상의한 후 '일단 해보자'는 생각으로 한국행을 결정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한국에 들어온 뒤에는 1년 반 동안 연세대 한국어학당에 다니는 등 낯선 한국어를 익히려고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토마스 씨는 "의대에 입학하기 위해선 한국어에 능숙해야 했다"며 "'굿닥터', '브레인'과 같은 한국 의학 드라마를 많이 보고 한국 학생들과 대화하다 보니까 나도 모르게 한국어가 늘었다"고 말했습니다.

의대 공부가 외국인에게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한국 학생보다 몇 배의 시간을 할애했고 전공책에 한글뿐 아니라 처음 접하는 한자도 많아 이중고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토마스 씨는 "같은 학년인 기숙사 룸메이트와 같이 공부하며 시험 유형을 파악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의대 졸업 후 의사국가고시에 합격한 토마스 씨는 작년 2월 전문의 자격시험에도 붙었습니다.

그는 "전문의 시험에 합격했을 때 너무 뿌듯하고 좋았다"며 "열심히 준비한 시험에 합격한 만큼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놨습니다.

그러나 막상 전임의 생활은 고된 하루의 연속이었습니다.

토마스 씨는 "쉬는 날이 별로 없는 점이 힘들었다"며 "후임 전공의가 없어 환자 인계나 당직과 같은 업무를 도맡아 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현재 간담췌 수술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외과 수술을 배우며 하루하루 바쁘게 보내고 있습니다.

토마스 씨는 "간담췌 수술을 잘하면 소장, 위, 대장 등 여러 종류의 외과 수술에 능숙해질 수 있다"며 "사실상 외과 전문의가 없는 남수단에 도움이 되고자 여러 분야의 수술을 공부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일은 힘들어도 수술을 무사히 마친 환자가 퇴원하는 모습을 볼 때 보람을 느낀다고 합니다.

그는 "처음에는 환자들이 외국인인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했다"며 "환자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며 유대 관계를 형성했다. 이젠 환자들이 나를 편하게 대한다"고 전했습니다.

삶의 든든한 버팀목은 가족입니다.

전공의 생활 시작 전인 2018년 11월 결혼했습니다.

아내와 딸들은 현재 우간다에 거주합니다.

그는 가족의 의미를 묻는 말에 "힘들 때 같이 힘들고 행복할 때 같이 행복한 존재"라며 "어떤 상황에서도 서로 이해하고 용서하는 것이 진정한 가족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습니다.

토마스 씨는 한국에서 의술을 충분히 배운 뒤 스승처럼 아프리카에서 인술을 베풀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배웠다 싶을 때 아프리카로 갈 것"이라면서 "아프리카에서 환자 진료는 물론 후배들에게 의술을 가르쳐줄 생각"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또 한국에서 의술을 배울 기회가 흔치 않은 만큼 자신을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남수단의 의료 환경을 두고는 "수술용 장비가 너무 부족한데 의료 장비에 대한 지원이 이뤄지면 좋겠다"며 "남수단에서 간담췌 전문 외과도 만들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토마스 씨는 한국에서 16년째 지내면서 따로 불합리한 대우를 받은 적은 없었다고 합니다.

다만 아프리카에 대한 선입견이 조금이나마 깨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습니다.

그는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아프리카어'를 알려달라고 하는 분들이 있었는데 남수단만 해도 많은 언어가 있다"며 "아프리카가 다 가난하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잘 사는 나라도 적지 않다"고 강조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생활하는 아프리카인들에 대한 응원 메시지도 남겼습니다.

토마스 씨는 "솔직히 외국 사람에게 한국 생활이 쉽지 않다"며 "한국 내 아프리카인들이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꿈을 향해 열심히 달렸으면 좋겠다"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사진=토마스 씨 제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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