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고비
비만치료제를 취재하러 나가기 전 제게 작은 고민이 하나 있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드나들 텐데 비만치료제를 받아가는 사람을 어떻게 구별해서 인터뷰하지?' 지인들과의 대화방에서 이야기를 꺼냈더니, '프로 다이어터'인 친구 한 명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걱정 마. 금방 알 수 있어. 비만 치료 주사는 전부 냉장 보관이라 병원에서 나오든 약국에서 나오든 보냉백을 들고 있을 거야."
소위 '성지'로 불리는 종로 약국거리를 찾아가 무작정 서서 지켜봤습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아이스크림 담을 때 쓰는 은색 보냉백을 들고 나오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조심스레 물어봤더니 진작부터 '위고비'를 처방받아 왔고, 병원 안에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가히 열풍이라 부를 만 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만 치료제를 처방하고 있는 의사 이야기로는 자신의 병원에 오는 사람들 중에 다이어트가 목적인 사람들의 비중이 20% 정도 됐었는데 '위고비' 출시 이후로는 30% 정도로 늘었고, '마운자로'가 출시되면서부터는 절반 정도에 육박하고 있다고 합니다.
'마운자고', '위고비' 독주에 브레이크?
사실상 노보노디크스의 '위고비' 독주체제이던 비만 치료제 시장에 일라이 릴리의 '마운자로'가 뛰어들면서 경쟁은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물론, 처방규모만 놓고 봤을 때는 '마운자로'가 '위고비'에 견주긴 어렵습니다.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서미화 의원실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받은 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 DUR 현황을 보면, '위고비'는 출시 약 11개월 만에 DUR 점검이 56만 건 넘게 이뤄졌습니다. 첫 달 1만 1천여 건을 시작으로 꾸준히 규모가 늘어서 지난 5월 이후로는 매달 8만 건 넘게 처방되고 있는 게 확인됩니다.

'마운자로'가 우리나라에 출시된 이후 언론에서는 '물량이 달린다, 품귀다' 이런 기사들이 쏟아졌습니다. 도대체 '마운자로'가 얼마나 처방됐는지가 시장의 관심사였는데 이것도 의원실 자료를 통해 첫 윤곽이 확인됐습니다. 마운자로가 출시된 지난달 20일부터 31일까지 12일 동안 DUR 점검이 총 1만 8579건으로 집계된 겁니다. 첫날 1천4백여 건을 기록하더니 일주일 만에 '위고비' 출시 첫 달 DUR 점검 건수를 넘었습니다.

DUR은 약을 처방·조제할 때 병용, 연령, 임신처럼 안전에 주의해야 할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시스템입니다. 의사나 약사의 DUR 점검은 실제 처방전 발행이나 조제, 복용 여부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걸 들여다보는 이유는 전액 비급여인 비만 치료제의 경우 건강보험 통계를 집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처방 동향이나 경향성을 파악할 수 있는 수단이 DUR 점검이라는 이야깁니다. 정리하면, DUR 점검 건수가 '위고비'나 '마운자로'의 정확한 처방 건수를 의미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하다고 이해하면 쉬울 것 같습니다.
진짜 '품귀'인지 궁금해서 '마운자로'를 들여오는 한국 릴리에 물어봤습니다. 일단 그건 아니라고 합니다. 약국 몇 군데 전화도 걸어봤는데 없다, 물량이 달린다고 대답하는 곳도 있지만 처방전을 가지고 오면 된다는 대답을 하는 곳이 더 많았습니다. 구체적인 이유를 알 수는 없으나 병·의원이나 약국이 원하는 만큼의 물량을 공급하지 못하면서 빚어지는 현상으로 보입니다. '마운자로'가 초기 돌풍에 그칠지, '위고비'를 넘어설지는 충분한 기간을 두고 지켜봐야 판가름 날 전망입니다.
국내 승인 적응증 차이는?
'마운자로'가 출시 초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이유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옵니다. 그러나 출시 전부터 후발 주자인 '마운자로'가 '위고비'보다 체중 감량 효과가 더 크다고 입소문이 났던 게 '오픈런'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힙니다.
'위고비'는 GLP-1(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 수용체를 자극해 식욕을 억제하는 단일 작용제입니다. 반면 '마운자로'는 GLP-1과 GIP(위 억제 펩타이드) 수용체를 동시에 자극하는 이중 작용제로, 작용 기전이 '위고비'보다 하나 더 많습니다. '위고비'는 2.4mg 용량을 68주간 투여했을 때 14.9%의 체중 감량 효과를 보였지만, '마운자로'는 72주간 투여 시 용량 5mg에서 15%, 10mg 19.5%, 15mg 20.9%의 체중 감량을 보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위고비'도 2.4㎎보다 3배 정도 높은 7.2㎎를 72주간 투여한 결과 위약 대비 평균 21%의 체중 감소 효과를 보였다는 연구 결과를 감안하면 누가 더 많이 살을 빼준다고 단순 비교할 일은 아닙니다. 두 치료제 모두 비만 치료제의 벽과 같았던 10% 이상 체중 감량 효과를 입증했기 때문에 용법에 맞게 필요에 따라 잘 쓰면 됩니다. 참고로 식품의약품안전처 의약품 통합 정보 시스템에서 '위고비'와 '마운자로'를 검색했을 때 나오는 효능 효과는 다음 표와 같습니다. 어떤 제품이 월등하다고 판단할 만한 근거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까?
위에 적은 표에 나와 있듯이 '위고비'와 '마운자로' 모두 처방 기준이 있습니다. 체중을 신장의 제곱으로 나누는 체질량 지수, 즉 BMI가 30이 넘거나 27 이상이면서 고혈압, 당뇨 같은 질환이 하나 이상 있을 때입니다. 그러나 병원들을 돌아다녀보면 이런 기준을 지켜서 처방하는 곳도 있지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처방을 내주는 곳도 많습니다. 비만치료제 처방이 소위 '돈 되는 장사'이기 때문입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위고비'도 '마운자로'도 부작용이 있습니다. 특정 증상이 '위고비'보다 '마운자로'가 덜한 것도 있다 하지만 구토·구역·설사 같은 흔한 위장관 부작용부터 급성 췌장염 같은 중대한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건 공통적입니다.
그러나 이미 비만치료제를 처방받아야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에게 이런 부작용은 큰 문제로 와 닿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위고비'냐 '마운자로'냐를 선택하기 전에 나는 얼마나 오래 처방을 유지할 것인지, 꾸준한 운동이나 식단 같은 생활습관을 개선할 의지가 충분한지를 따져보는 일입니다.
두 비만 치료제 모두, 주사를 맞기 시작하면 일단 대부분의 사람이 체중 감량 효과를 볼 수 있는 건 맞습니다. 물론 개인 차이는 있겠지만요. 주사를 맞는 동안에는 당화혈색소가 정상 수치로 돌아오는 등 대사가 정상화되는 부수적인 효과들도 누릴 수 있습니다. 노보노디스크와 일라이 릴리 모두 비만치료뿐만 아니라 동반되는 이점이 많다는 걸 홍보하는데 열을 올리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중단한 이후입니다. 한 달에 수십만 원이 드는 주사 비용을 평생 아무렇지도 않게 감당하며 살 수 있는 사람은 드뭅니다. 다시 말해, 몇 달 처방받다가 '이제 됐다' 싶으면 끊을 확률이 높다는 건데, 이때 지금까지 들인 비용과 노력이 물거품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체중이 다시 상승하기 때문입니다. 체중이 줄어들 때 근육이 감소하는 것도 위험하지만 투약을 중단한 후에는 지방이 먼저 찐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비만치료제의 처방과 중단을 반복하면 근육은 빠지고 지방만 많은 몸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깁니다. 정상 체중인 사람이 비만 치료제를 계속해서 처방받았을 때 어떤 일이 생길지에 대해서도 아직 안정성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습니다.
흔히 다이어트는 평생 하는 거라고들 합니다. '주사 몇 방'이 인생을 영원히 바꿔주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단기간 체중 감량 효과만 보고 시도했다가는 득보다 실이 더 클 수도 있습니다. 지속 가능한 식습관과 꾸준한 운동이 뒷받침되어야만 원하는 결과를 오래 유지할 수 있습니다. 출연에서도 말씀드렸지만 부작용 없이 무조건 살을 빼주고, 사용하지 않아도 줄어든 체중을 잘 유지시켜주는 그런 기적의 비만치료제는 안타깝게도 아직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