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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TER 8NEWS] "이것들이 세금으로 잔치판을 벌여?" 정치인 싹 날려버린 동남아 Z세대의 분노

윤창현 기자

입력 : 2025.09.22 17:36|수정 : 2025.09.22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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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말이었죠. 인도네시아 곳곳에서는 지방 의회 건물들이 방화로 불에 타고 수도 자카르타의 경찰 기동대를 시위대가 습격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하원의원 580명이 지난 1년 동안 우리 돈으로 한 430만 원 정도 거액의 주택 수당을 받아온 사실이 1년 만에 뒤늦게 드러난 겁니다. 수도 자카르타 최저임금의 한 10배 정도, 그리고 가장 가난한 지역에 비교하면 거의 20배에 달하는 액수입니다. 서민들과 노동자들의 삶은 갈수록 질이 떨어지고 있는데 정치인들이 세금으로 잔치판을 벌이면서 분노가 터져 나오게 된 것입니다.

네팔을 좀 살펴볼까요? 이번 사태의 표면적인 발단은 네팔 정부가 등록하지 않은 소셜미디어 서비스를 차단하면서 벌어지게 됐습니다. '네포키즈'라는 말 아마 많이 들어보셨을텐데 이번 사태와 관련해서요. 정관계 고위층 자녀들을 일컫는 말인데 부와 권력이 혈연을 중심으로 계속해서 대물림되는 현상을 조롱하는 듯한 그런 말입니다. 그것 때문에 이런 소셜미디어 서비스를 아예 차단하려고 한 것 아니냐라는 분노가 젊은 시위대들 사이에서 촉발된 것이죠. 대통령 관저 또 국회의사당, 정부 건물 곳곳이 방화로 불에 타버렸습니다. 정부 인사들이 헬기로 탈출을 했고, 미처 피하지 못한 장관들은 거리에서 몰매를 맞거나 집에 쳐들어온 시위대에 의해서 폭행당하는 장면들이 외신을 타고 알려졌습니다. 

동티모르로 가보겠습니다. 동티모르 의회가 국회의원 65명한테 세금으로 한 대에 1억 원 정도 하는 도요타 SUV를 지급하기로 하면서 촉발이 됐습니다. 동티모르는 인구가 130만 명 밖에 안 되는데 전 국민의 40%가 빈곤층으로 분류될 정도로 불평등과 가난 빈부 격차가 아주 극심한 나라입니다. 그런데 국회의원들 연봉은 1인당 국민소득 10배나 된다고 합니다. 4만 달러 정도가 되고요. 이런 상황에서 또 세금을 써서 고액의 SUV까지 의원들이 챙기려고 하니까 젊은 층의 분노가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결집된 겁니다. 

어제는 또 필리핀에서 대규모 반부패 시위가 격렬하게 벌어졌습니다. 필리핀이 해마다 태풍이나 홍수로 인한 피해가 아주 극심한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어 정부 예산이 한 13조 원 정도가 책정이 되고 투입이 됐습니다. 그런데 세금을 이렇게 쓰는데 해마다 수해는 반복되고 이거 세금 똑바로 쓰는 거 맞느냐 하는 불만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인데 마침 그때 국회의원들이 건설사로부터 집단적으로 뇌물을 받은 사실이 폭로가 된 것입니다.

이번에 시위가 이렇게 확산된 동남아 여러 나라들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아주 젊은 나라입니다. 일단 평균 연령이 아주 어리고요. 그리고 공통적으로 정부 투명성 지수라든가 반부패 지수가 아주 낮은 축에 속하는 나라들입니다. 여기에 같은 젊은층이지만 권력이나 부의 세습에 의해서 특권을 누리는 사람들의 모습에 더 큰 박탈감을 느끼게 되고 이렇다 보니까 어떤 특정 정치 세력에 대한 지지나 불신보다도 정치 세력과 제도 자체를 부인하는 그런 경향이 아주 강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번 시위 사태를 보면서 일각에서 그런 얘기하십니다. 2011년 북아프리카를 휩쓴 아랍의 봄처럼 아시아의 봄으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 이런 얘기들을 하시는데요. 제 생각에는 조금 시기상조라고 보여집니다. 제가 당시에 이집트 카이로 특파원으로서 중동 현장에서 이집트, 튀니지, 리비아 같은 나라들의 시민 혁명 전개 과정을 목격을 했었습니다. 그때 SNS가 얼마나 큰 역할을 했냐 하면 북아프리카 전역으로 시위가 확산되는데 짧게는 2주, 길게는 한두 달 이 사이에 이 철옹성 같은 권력들이 도미노처럼 무너져 내렸습니다. 
하지만 10여 년이 지난 지금 이들 나라 상태들이 어떤지 한번 살펴봐야겠죠. 여전히 경제난 불평등 그리고 정치적 불안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리비아는 독재가 끝났는데 독재가 끝나고 나서 민주주의가 찾아온 게 아니라 아직도 아직도 내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집트는 시민 혁명이 벌어지고 민선 정부가 들어서긴 했는데 이게 1년 만에 군부 쿠데타로 다시 전복이 돼 버렸습니다. 당시에 쿠데타를 이끌었던 엘시시, 이집트의 전두환이라고 불리는 정보사령관 출신 군인인데요. 13년째 철권 통치를 이끌고 있습니다.

이번 동남아 시위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Z세대, 젠지라고 불리는 세대들이 정치적 주도 세력으로 과연 단기간에 성장할 수 있느냐 이거 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사회 경제적 혼란을 수습할 비전과 능력을 현실 정치에서 실현할 수 있느냐 이건 또 다른 문제가 되겠죠. 동남아 시위 사태가 어디까지 이어질지는 향후 몇개월 간 진행 상황이나 발전 경로를 면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취재: 윤창현 / 구성: 정경윤 / 영상취재: 양현철 / 영상편집: 소지혜 / 제작: 디지털뉴스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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