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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무안공항 참사⑤ "조종사가 껐다?" 비공개 설명회서 사과한 항철위

하정연 기자

입력 : 2025.09.17 15:36|수정 : 2025.09.17 15:36


지난주, 여객기 참사 비공개 설명회…7월 중간 발표 논란 사과

지난주,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를 조사하는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가 유족들과 여객기참사특위 소속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비공개 설명회를 열었습니다. 지난 7월 조종사 과실 가능성을 언급하며 사고 원인을 중간 발표하려 했다 철회하면서 논란이 빚어진 지 두 달 만입니다. 취재 결과 이날 비공개 설명회에는 논란이 됐던 지난 7월 설명회와 달리 유족들 요청으로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제주항공 등 각 항공사 조종사노조와 항공학과 교수진들도 참여했는데요. 이날 현직 조종사들과 전문가들의 계속되는 질의에 사조위는 지난 7월 중간 발표 시도와 관련해 "모든 분야가 충분히 조사되지 못한 채 설명된 측면이 있다"며 처음으로 사과한 걸로 확인됐습니다. 사조위의 사과에 유족들은 "이미 조종사 실수라고 말하고 지금 와서 이런 말을 하면 어쩌냐"며 강하게 반발한 걸로 알려졌는데요. 그날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다수의 참석자들을 통해 취재해 봤습니다.
 

"IDG, 조종사가 껐다"더니…"충분히 조사되지 못하고 설명된 측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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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비공개 설명회에서는 사고기 우측 엔진전력장치(IDG)를 조종사가 끈 걸로 판단한다고 했던 사조위의 지난 7월 발언에 대한 질의가 집중적으로 이어졌습니다. 엔진전력장치, IDG(Integrated Driven Generator)란 비행기에 전기를 공급해 주는 장치 중 하나입니다. 지난 7월 사조위는 오른쪽 IDG가 엔진으로부터 분리돼 있었다며 조종사가 스위치를 조작해 직접 IDG를 끈 걸로 보인다고 유족들에게 설명한 바 있습니다. 이 때문에 당시 기내 전력 공급이 차단됐단 취지였는데요. 현직 조종사들과 전문가들 대부분이 의문을 제기하는 대목이었습니다.

현직 조종사들과 전문가들에 따르면 IDG는 실수로 잘못 끄기 힘든 스위치입니다. 다른 장치와 달리 덮개로 씌워져 있고, 덮개를 쉽게 열지 못하도록 구리선으로 감겨 있습니다. 비상 절차 매뉴얼에도 없고 굳이 할 필요가 없는 작업인데도 조종사가 껐다고 단언하려면 뒷받침할 근거가 있어야 했을 겁니다. 하지만 사조위가 당시 유족 설명회에서 근거로 내세웠던 건 보잉 737 매뉴얼이었습니다. 매뉴얼상 IDG가 분리되는 조건은 2가지가 있는데: 1) 조종사가 IDG 스위치를 수동으로 끄거나 2) 열에 의한 연결 해제, 즉 IDG 윤활유 온도가 너무 높아지면 자동으로 연결이 끊긴다며, 조사 결과 사고기 IDG 윤활유 온도가 높지 않았기에 이 가능성을 소거하면 조종사가 껐을 거란 결론이 나온단 겁니다. 결국 두 가지 조건 중 하나가 아닌 걸로 조사됐으니 남은 하나, 즉 조종사가 껐을 거란 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사조위는 IDG의 자체 결함, 또는 외부 충돌에 의한 물리적 분리 가능성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는데요. 유족과 전문가들의 불신을 키운 주요한 계기 중 하나였습니다.

당시 참석자들에 따르면 지난주 비공개 설명회에서 이와 관련한 현직 조종사들과 유족들 질의가 이어지자 사조위는 "추가적으로 확인한 다음에 말씀드리겠다", "이 얘기를 또 하면 계속 언급될 것 같다"며 정확한 답변을 내놓지 않은 걸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면서 IDG 제작사에서 추가 분석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는데요. 결국 조종사가 IDG를 끈 걸로 보인다는 7월 발표와 달라진 게 아니냐는 지적에 "죄송하다"며 "그때 모든 분야가 충분히 조사되지 못하고 설명된 측면이 있다"고 해명한 걸로 알려졌습니다. 이에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하는데 조종사 실수라고 단정해놓고 이제 와서 이런 말을 하면 어떡하냐", "기자들까지 불러놓고 얘기하려 했던 건데 이제 와서 달라지면 어쩌냐"는 유족들 항의가 빗발쳤다고 하는데요. 사조위 측은 "(엔진 조사뿐 아니라) 네 가지 분야에 대해 균형적으로 조사가 진행돼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부분이 있다고 보고 있다"며 "앞으로 조심하겠다. 당시 언론을 통해 발표하려고 했던 점을 사과드리겠다"고 말한 걸로 전해졌습니다.
 

12월 중간 보고서 발표…"콘크리트 둔덕 용역 완료, 보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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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사조위는 이날 설명회에서 콘크리트 둔덕과 조류 충돌 위험성 관련 용역이 완료됐고 수정, 보완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11월까지 조류, 운항, 기체(엔진), 방위각 시설에 대한 분야별 보고서 작성을 끝내고 12월 중간 보고서를 발표하겠단 계획을 공개했는데요. 당초라면 8~9월 중에 발표할 걸로 알려졌던 용역 결과를 "4대 분야 조사가 일정 단계에 도달한 시점에" 공개한다는 겁니다. 종합적 분석이 필요하단 명목인데, 지난 7월 엔진 조사 결과만 떼서 사실상 중간 결과를 발표하려 했던 때와는 판이하게 다른 행보입니다. 지난달 국회 여객기참사특위에서도 특위 위원들은 이 부분에 대해 집중적으로 문제 제기한 바 있습니다.
 
<국회 여객기참사특위 회의록 발췌> 2025.08.26

김은혜 의원(이하 김은혜): 지금 둔덕과 관련한 조사를 진행 중에 계십니까?
이승열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 단장(이하 이승열): 네 저희가 이 부분에 대해선 계속 조사 진행 중에 있습니다.
김은혜: 발표를 언제 하실 계획인가요?
이승열: 올해 말 정도 이내에는 엔진 조사와 다른 조사도 병행해서 발표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김은혜: 기장의 잘못이었다고 하는 사조위 조사는 그렇게 빨리 나왔는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둔덕 조사는 올해 말까지 가야되는 이유가 있습니까?

(…)

김미애 의원(이하 김미애): 7월 발표를 할 때 어떤 매뉴얼이 있었나 그게 궁금합니다. 사고 조사는 여러 단계가 있는데 7월에 발표하는 매뉴얼이 있었나요?
이승열: 7월은 엔진 조사에 관련된 내용만 발표를 한 것입니다. 그래서 중간 조사…
김미애: 그러니까 여러 단계가 있는데 굳이 그때 발표하는 매뉴얼이 있었습니까?
이승열: 일단 저희가 엔진조사 가기 전에 유족분들도 그랬고 국민적 입장에서도 그랬고 엔진과 관련돼 있는 것은 요구사항이 있었기 때문에 저희가 중간에 엔진조사 결과에 대해선 발표를 해야 되겠다고 판단을 내렸었습니다.
김미애: 그런데 제가 볼 때 앞으로도 조사 과정이 많이 남았잖아요. 그리고 8월 23일까지 용역해서 용역 결과가 나왔던 것 같은데 아직 우리한텐 제공이 안 됐습니다. 그러면 이런 것들이 있을 때마다 발표를 하실 건지, 아니면 국제적으로 이런 사고를 원인 규명 단계에 있어서 매뉴얼상 어느 단계에 발표를 해야 된다, 이런 게 있어서 한 건지, 아니면 유족들 요구가 있어서 한 건지 질의한 건데 매뉴얼에 따른 건 아니네요?
이승열: 발표하는 근거는 일단 예비, 중간, 최종 보고서는 의무적으로 발표하도록 돼 있고 중간에 저희가 필요하다고 판단 시엔 발표할 수가 있습니다.

기자들을 불러 모아 놓고 엔진 조사 결과는 대대적으로 발표하려 했으면서, 왜 가장 관심이 큰 콘크리트 둔덕과 조류 충돌 용역 관련 발표는 하지 않느냐는 문제 제기였습니다. 항공 사고는 통상 단일 요인이 아닌 다양한 기여 요인이 맞물려 작용해 발생합니다. 사실 기반(factual) 정보는 투명하게 공개하되 모든 가능성을 조사해 사고로 이어진 일련의 인과적 고리를 찾아내고, 종합적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섣부른 분석이나 판단은 지양해야 한다는 게 취재진이 앞서 인터뷰했던 미국 NTSB 위원들의 공통적인 제언이기도 했습니다. 사조위의 말마따나 모든 분야에 대한 종합적 분석이 필요하단 이유라면 성급한 중간 발표 논란이 일었던 엔진 조사 결과도 다른 영역과 함께 발표했어야 했던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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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비공개 설명회에서 유족들은 이미 마무리된 콘크리트 둔덕 용역을 어떤 이유로 수정, 보완하고 있는 건지 캐물은 걸로 알려졌는데요. 그러면서 사조위 측에 과업 지시서라도 공개해 달라고 요구한 걸로 전해집니다. 국회 특위 위원들도 보고서가 이미 나온 뒤엔 의문점들을 해소할 수 없다며 대중에 공개되어선 안 된단 이유라면 국회에라도 용역에 관한 정보를 공유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사조위는 콘크리트 둔덕과 조류 충돌 용역 등은 12월 안에 중간 보고서에 담아 공개한다는 방침을 밝힌 걸로 알려졌습니다. 공청회를 열어 조사 경과를 설명하고 필요한 정보도 그때 공개하겠다고 설명한 걸로 전해지는데요. 사조위의 조사 결과와 판단 근거,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데이터 등도 이때 공개될 걸로 예상되는데 사조위가 그간 제기된 각종 우려와 불신을 이 자리서 충분히 불식시킬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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