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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드론에 8번째로 발동된 나토 조약 4조…커지는 확전 우려

민경호 기자

입력 : 2025.09.12 00:14|수정 : 2025.09.12 00:14


▲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

러시아 드론이 무더기로 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인 폴란드 영공을 침범하며 유럽 전체가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나토 전투기까지 긴급 출격해 격추 작전이 벌어졌습니다.

나토 전투기가 회원국 영공에서 적의 목표물을 공격한 것은 1949년 나토 창립 이후 처음입니다.

폴란드가 이번 사건을 의도적 도발로 규정하고 나토의 집단 방위 카드까지 꺼내 들면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유럽 전체로 확전 될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현지 시간 10일 미국 뉴욕타임스 등에 따르면 러시아에서 발사된 드론들이 이날 새벽 폴란드 영공을 침범했습니다.

이번 사건은 우크라이나를 향한 러시아의 대규모 공습 과정에서 발생했습니다.

우크라이나를 향해 발사된 총 415대의 드론 가운데 최소 8대가 폴란드 국경을 넘었습니다.

폴란드 공군은 즉각 F-16 전투기를 출격시켰고, 나토 소속 네덜란드의 F-35 전투기까지 긴급 투입돼 격추 작전을 지원했습니다.

또한 이탈리아 공중조기경보통제기, 독일 패트리엇 방공시스템이 힘을 보탰습니다.

도날트 투스크 폴란드 총리는 이날 각료회의 뒤 "총 19차례 폴란드 영공이 침범당했고, 이중 드론 3∼4대를 격추했다"고 밝혔습니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개전 이래 러시아 드론이 우크라이나와 인접한 폴란드 영공을 침범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지난주에도 두 차례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많은 러시아 드론이 한꺼번에 폴란드 국경을 넘은 것은 전례가 없는 일입니다.

아울러 나토 동맹국 전투기가 동맹국 영공에서 적대적인 목표물과 교전한 것은 1949년 나토 창립 이후 처음이라고 NYT는 전했습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보고되지 않았지만, 격추된 드론 잔해가 민가와 마을에 떨어지며 큰 충격을 안겼습니다.

수도 바르샤바의 주요 공항은 일시적으로 폐쇄됐습니다.

폴란드 정부는 즉각 나토에 조약 제4조 발동을 요청했습니다.

4조는 영토 보존, 정치적 독립 또는 안보를 위협받은 동맹국이 긴급 협의를 요청할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나토는 폴란드의 4조 발동 요청에 따라 이날 북대서양이사회에서 관련 논의를 했다고 밝혔습니다.

1949년 나토 창립 후 조약 4조가 발동된 것은 7차례뿐이고 이번이 8번째라고 나토는 밝혔습니다.

가장 최근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한 2022년 2월 24일로, 당시 불가리아·체코·에스토니아 ·라트비아·리투아니아·폴란드 ·루마니아·슬로바키아가 공동으로 발동을 요청했습니다.

이번 사건이 '집단방위 의무'를 담은 나토 조약 제5조 발동까지 이어질지는 불확실하지만 일단 폴란드는 우선 4조를 발동해 동맹국들과 함께 이번 위협의 성격을 규명하고, 공동 대응 방안을 모색하기로 결정한 겁니다.

투스크 총리는 이번 사건을 "대규모 도발"로 규정한 뒤 "상황은 심각하며, 우리가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비해야 한다는 점을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러시아의 우방국 벨라루스의 파벨 무라베이코 참모총장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드론 공습을 주고받다가 전자전 장비 때문에 드론이 항로를 이탈해 발생한 우발적 사고라고 주장했습니다.

러시아 국방부 역시 폴란드의 어떤 목표물도 타격할 "계획이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폴란드 동부 루블린의 검찰청 대변인은 지금까지 발견된 9대의 드론이 모두 '게르베라'라고 불리는 상대 방공망 교란을 위한 미끼용 드론이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일부 유럽 국가들은 이번 사건이 단순한 우발적 사고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독일 국방장관은 "이렇게 많은 드론이 폴란드 영토를 우발적으로 비행했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고 밝혔습니다.

구이도 크로세토 이탈리아 국방장관은 이번 사건을 "도발과 시험"이라는 두 가지 목적을 지닌 "고의적인 공격"이라고 규정했습니다.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러시아의 의도는 중요하지 않다며 "이것은 전적으로 무모하고 위험하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향해 나토 영토의 한 치라도 방어할 준비가 돼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NYT는 "이번 사건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나토와 러시아 간의 직접적인 대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다시 한번 불러일으켰다"며 "특히 폴란드는 군사비를 증액하고 군사력을 강화하는 등 높은 경계 태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국경 침범을 넘어 푸틴이 나토의 결의를 시험하고 있다는 신호로도 해석되고 있습니다.

영국 BBC는 "의도적이든 아니든, 이번의 전례 없는 사건은 러시아에 나토 회원국을 공격하기로 결정할 경우, 서방으로부터 어떤 종류의 대응을 기대할 수 있는지에 대한 귀중한 정보를 제공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유라시아 전문가인 키어 자일스 선임 연구원은 "러시아의 의도와 관계없이 이는 유럽과 나토에 시험대"라며 "러시아는 유럽의 결의, 특히 폴란드가 이런 종류의 공격을 견뎌낼 수 있는 능력으로부터 배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나토의 초기 방어 체제에 심각한 허점이 드러낸 사건이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고 로이터 통신은 전했습니다.

슬로바키아의 페테르 바토르 전 나토 주재 대사는 "나토는 드론이 영공을 침범한 후에야 대응했다"며 "이는 나토의 최우선 목표인 위협 억제에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나토가 우크라이나와 협의해 러시아 드론이 나토 회원국 영공에 진입하기 전에 우크라이나 내부에서 요격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영국 싱크탱크 국제문제전략연구소의 미사일·드론 전문가인 파비안 힌츠 연구원은 "나토의 전통적인 방공시스템은 미사일과 유인 전투기를 방어하도록 설계됐다"며 이번 사건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규모 저가 드론 공격에 나토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줬다고 지적했습니다.

(사진=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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