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팝의 공주들' 헌트릭스, 겨울여왕 엘사도 앉지 못한 그 왕좌 올랐다
Q. 노래로만 보면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겨울 왕국'이 빌보드에서 누렸던 지위를 넘어섰더라고요. 그렇게 인기가 있을 만한 요인이 뭘까?
'골든'이 히트하는 파죽지세를 보고 놀라고 있는데, 제가 알기로 애니메이션 주제가가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한 것은 '알라딘'의 'A whole new world' 그리고 '엔칸토'의 'We Don't Talk About Bruno'. 엄청난 열풍이라고 볼 수 있고, 기존 애니메이션 시장의 붕괴와 재편도 일부 시사하고 있는 게 아닌가.
디즈니 등 이른바 미국의 빅 플레이어들의 애니메이션 또는 프랜차이즈들이 잘 안 되고 있잖아요. 과도한 PC주의 이야기도 나오고, 기존에 갖고 있던 세계관이 젠지·알파 세대에게는 먹히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나오는 상황에서 '갑툭튀'의 새롭고 강력한 애니메이션이 나온 거죠.
누구나 즐길 수 있고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고, 다인조의 멋진 사람들이 나와서 똑같은 댄스를 맞춰 추면서 사랑 노래를 부르는 포맷의 대표 주자가 케이팝이 된 거예요. 이런 것들을 잘 이용해서 디즈니를 비롯한 빅 플레이어들이 고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넷플릭스라는 네트워크를 등에 업고 여름 시즌을 겨냥해서 너무 잘 나왔다, 이게 성공 요인인 것 같아요.
'케데헌'의 매력, '경기 침체 속 여름'의 정곡을 찔렀다!?
올해 들어서 USA 투데이 등 미국 매체에서 '리세션 팝'에 대한 기획 기사들이 많이 나왔어요. '불황 팝' 또는 '경기 침체 팝'인데, 요즘 경기가 안 좋으니까 2천 년대 후반에 유행했던 팝들이 돌아오고 있다. 케이티 페리, 레이디 가가의 초중기 음악, 블랙 아이드 피스 등의 공통점은 대책 없이 신나고 밝다는 거죠.
경기도 안 좋고 살림살이가 안 좋으니까 아무 생각하지 말고, 이해하라고 강요하지 마, 그냥 신나는 거 듣고 싶어. 듣고 있으면 캘리포니아 해변에서 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음악. 이런 분위기가 강해지고 있다는 거죠. 그런 시장 분위기에서 '불황 팝'에 딱 들어맞는 곡이 2025년 현지에서 잘 안 나왔다는 거예요.
작년까지만 해도 사브리나 카펜터라든지 테일러 스위프트가 초대형 투어를 하면서 예전에 발표한 곡들이 '썸머 팝'으로 대두됐었는데, 2025년에는 이렇다 할 경쟁자들이 없었고. 제가 볼 때는 '골든'이나 '소다 팝'이 썸머 팝 공식에 정확하게 들어맞는 곡이에요. 심지어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스토리도 뒷받침을 해주고 있고. 종합하면 리세션 팝, 썸머 팝에 대한 갈증까지도 '케이팝 데몬 헌터스'와 수록곡들이 흡수했다.
Q. 영화에서 메시지를 다루는 것도 케이팝과 일맥상통한 게 있다고 생각이 들었거든요. 지구를 지키고 악령을 쫓고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기에, 서구에서 보기에 긍정적인 메시지를 주로 다루는 케이팝과 일맥상통한 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 이미지를 갖고 케이팝을 보고 있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고요.
굉장히 중요한 말씀 해 주신 것 같아요.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성공한 요인이 여러 가지 있겠지만 부차적인 요인 중 하나는 스토리가 단순하다는 거죠. 권선징악, 요즘에 잘 나오지 않는 스토리. 요즘에는 히어로물이나 애니메이션도 인물의 복합적인 특징을 보여주려고 하고, 그렇게 해서 시퀄, 프리퀄 만들고 세계관을 가져가려고 해요.
근데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큰 세계관이 필요하지 않은 세계관이에요. 권선징악이고. 물론 혼문에 대한 설명이 나오긴 합니다만 빨리 숏폼처럼 지나가고 이해하기 쉽죠. 어떻게 보면 케이팝의 특징과도 맞닿아 있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해외에서 보기에는 건강하고 밝고 어둠을 물리쳐 줄 것 같다는 거죠. 그것을 '케이팝 데몬 헌터스' 제작진이 영리하게 스토리를 단순화·도식화시키면서 잘 결합해 낸 게 아닌가.
'케데헌' 흥행, K-컬처 확산의 '부스터'? "'피크아웃'에 대한 경계심도 가져야 할 때"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깨알 같은 고증들이 많긴 했지만 잘 살펴보면 허술한 부분도 많아요. 가족용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에 스토리, 캐릭터, 디테일 들을 단순화·도식화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은 이해가 갑니다만, 예를 들면 케이팝은 팬 문화가 중요한데 팬을 뭉뚱그려서 묘사합니다. '떼샷'으로 웃으며 응원하는 것만 몇 개 나오고 지나가요.
그리고 케이팝은 그 어떤 팝 장르보다 굉장히 큰 시스템 속에서 만들어지거든요. 곡을 만들 때도 마찬가지고 영상 제작이라든지 숏폼 제작도 마찬가지인데, 그런 스태프나 공동 제작자에 대한 조명이 거의 없어요. 바비라는 매니저가 하는 얘기 맨날 똑같아요. '팬들이 기다리고 있어' '팬을 위해서' 휴가 보내고 있는데 갑자기 들어와서 팬이 기다린다고 얘기하면 아이돌들이 갑자기 '아 정말? 그럼 우리 휴가 반납' 이런 식의 스토리가 전개돼요.
얼핏 보면 항상 건강하고 밝고 긍정적인 케이팝 문화로 보일 수도 있지만 케이팝의 어두운 면이죠. '지금 쉴 때가 아니야, 팬들이 빨리 숏폼 올려달래'라고 하면 휴가를 반납할 수밖에 없고 늘 24시간 댓글의 공포에 시달리고, 이런 감정 노동들이 사실 많이 단순화돼서 표현되죠.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